Update. 2026.06.13 11:37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쉬었음’ ‘준비 중’ ‘숨 고르기’ ‘사회적 로그아웃’ 등 청년 ‘백수’를 가리키는 표현이 여러 차례 바뀐 건 이들에 대한 배려를 담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 문제라는 인식도 포함했다. 사회적으로 돌봐야 할 대상으로 못 박은 듯한 느낌이다. 정말 30대의 잔치는 끝난 걸까. 올해 기준 30대는 1987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이 해당한다. 민주화 항쟁, IMF 외환위기, 2002 한일월드컵 등 사회의 큰 굴곡과 함께 성장했다. 또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던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온라인 문화 개척을 주도했다. 동시에 MZ세대(1981년~2011년생)의 핵심이다. 국가 차원 하지만 최근 들어 30대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을 찾아보기 어렵다. 취업이 어려운 것을 넘어 구직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 해도 ‘희망퇴직’ 대상으로 거론된다. 산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상황에서 눈앞이 깜깜해질 만하다. 그러다 보니 30대 사망 원인 부동의 1위는 수년째 ‘고의적 자해’, 즉 극단적 선택이다. 앞뒤 양옆이 벽으로 꽉꽉 막힌 것도 모자라 점차 좁혀오는 형국이다. 한국 사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더 이상 하나의 정답을 따라가지 않는 시대에 대한민국 30대의 생존 전략은 평생직장 대신 해외 이민과 공무원 시험, 창업과 N잡으로 흩어지고 있다. 고용 불안과 연금·주거 위기 속에서 “지금처럼 살아서는 30년 뒤를 버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며, 현재의 30대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안정된 조직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가운데, 현재의 30대는 더 많은 자유를 얻은 대신 그 선택의 위험까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첫 세대가 됐다. 과거 대한민국의 30대는 비교적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해 한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승진과 결혼,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는 삶이 하나의 ‘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의 30대는 더 이상 같은 궤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희미해졌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장기화된 취업난과 채용 축소까지 겹치면서 기존의 경로에서 이탈하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30대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탈하거나 모색하거나 실제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30대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쉬었음’ 인구 255만5000명 중 청년층은 42만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의 이립(而立)은 30세를 일컫는 말이다. 서른 살이 된 이들은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불혹, 40세)에 이르기까지 10여년 동안 디디고 선 자리를 다져야 한다. 하지만 2026년 현재, 30대에게 주어진 사회의 자리는 그리 넓지 않다. 이들이 서 있을 곳은 어디인가. <일요시사>가 창간 30주년을 맞아 30대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1996년·2026년 그들이 사는 법 ②벼랑 끝에 걸치다 ③극단의 세대 해법은? ④김옥란 센터장이 전한 고립 청년들의 질문들 ⑤젊은 정치인들 이야기 ⑥게속 바뀌는 생존 전략 ⑦도약할 준비는 끝났다 <webmaster@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신문에 나왔어요.” 그 말 한마디가 정보의 신뢰도를 보장하던 때가 있었다. 대판 신문을 양손으로 펼쳐 들고 안경을 코에 걸친 채 기사를 읽는 어르신의 모습은 식자층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현재, 신문은 읽는 사람은커녕 그 존재 자체가 희미해졌다. AI가 대다수의 삶에 침투해 있는 이때, 신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공중파 뉴스와 조‧석간 신문으로 정보를 얻던 시대는 끝났다. 무슨 일만 일어나면 뉴스 채널을 찾고 다음 날 신문에서 소식을 확인하던 일도 사라졌다. 이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생성된 정보가 뉴스와 신문을 통해 최종 확인되고 있다. 정보의 시발점에서 종점으로 대중 매체 포지션이 변화한 것이다. 폭발적인 발전 속도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의 등장과 AI의 발달은 뉴스와 신문, 즉 레거시 미디어의 종말을 앞당기는 듯한 모양새다. 대중은 특정 시간에 제한된 정보를 전달받는 대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얻는 상황에 익숙해졌다. 또 AI 시대의 도래는 정보의 소비자였던 대중을 공급자로 탈바꿈시켰다. 신문은 레거시 미디어 중에서도 그 역사와 유래가 긴 편에 속한다. 역으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기다려라, 곧 우리가 간다.” 인터뷰 도중 ‘현역 기득권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곧바로 돌아온 한마디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말에 뼈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선거철마다 여야는 앞다퉈 개혁의 상징으로 청년 정치인을 앞세우지만, 막상 30대가 여의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청년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잃을 게 없어 더욱 솔직했다. 김지수 대통령 직속 대한민국 국민통합위원회 위원(1986년생)·더불어민주당 김보미 강진 군의원(1989년생)·정진호 의정부 시의원(1995년생)의 이야기다. 그들은 취재진이 끼어들 틈도 없이 치열하게 토론하다가도 청년 문제에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재치 있는 말투로 서로의 혼을 쏙 빼놓더니 이내 깔깔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세 사람은 기득권의 벽에 부딪혀 깨지고 좌절해도 또다시 도전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유난히 하늘이 푸르던 5월, <일요시사>가 여의도 국회에서 김지수·김보미·정진호를 만났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지수=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되고 싶은 김지수다. 2020년 비례대표 면접 탈락, 202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새누리당 황우여 전 대표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빨리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국민의힘 김문수 전 대선후보에게 지원을 요청해 후광을 빌리라”는 조언을 했다. 이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선 “덮으면 덮은 것 같아도 덮어지지 않는다”면서 “선정을 베풀어 국민이 아끼는 대통령으로 물러나라”고 말했다. ‘어당팔(어수룩해도 당수가 8단)’이라는 별명을 가진 새누리당 황우여 전 대표는 온화한 미소와 말투 속, 날카로운 정치적 대응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일요시사>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현 정국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황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최근 근황은? ▲정치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국민의힘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원래 상임고문은 현안 관련 역할을 맡지 않는데, 지난 대선 이후 정국 혼란 때 여러 역할을 맡았다. 제가 일선에 있을 때와 달라져서 후배 정치인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는 걸 느꼈다. 여야 모두 힘든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니 국민은 얼마나 더 안타깝고 힘드시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 틀에서 정치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는 원래 법조인으로, 제 천직이자 본업을 하면서 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해 “국민 간도 보고, 당원 간도 보고, 윤석열 전 대통령 간도 보는 간동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가수 태진아씨의 노래 ‘한라산 백록담에서 백두산 천지까지’를 인용하면서 “남북이 서로 왕복·소통하면서 살면 그게 평화”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만 83세의 고령이다. 그런데 “지역구에서 다시 한번 도전해 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왕성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창간 30주년을 맞아 그를 만나 현 정국과 남북 관계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다음은 박 의원과의 일문일답. -국회의장 선거 낙선 이후 차기 총선 출마 다짐을 밝혔다. 향후 정치활동 방향을 설명한다면? ▲제가 제 출마 여부를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지역구(전남 해남·완도·진도)와 호남·서울에 계신 많은 분께서 박지원이 없는 정치는 좀 삭막했을 텐데, 앞으로 더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한번 출마해서 국회의장에 도전해 보라는 지역구 주민의 의견도 많았다. 조정식 국회의장 후보자도 세 번째 도전 만에 당선됐다. 그래서 도전해 보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여기 제가 와도 되는 곳인가요?”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를 찾은 고립 청년들이 가장 먼저 건네는 질문이다. 취업난과 관계 단절,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방 안으로 숨어들던 청년들은 어느새 30대가 돼있었다. <일요시사>는 김옥란 센터장을 만나 30대 고립 청년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업난과 주거 불안, 관계 단절과 번아웃이 겹치며 청년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사회와 단절된 채 방 안에 머무르는 ‘고립 청년’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 번 사회와 멀어진 청년들은 다시 관계를 맺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다음은 김옥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가? ▲고립 위기에 놓인 19세부터 39세까지 청년들의 회복을 돕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단순히 취업만을 목표로 두기보다 신체·정서·관계·자립 회복을 함께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고립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30대 청년들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몇 년 전만 해도 센터를 찾는 청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두 번의 탄핵과 한 번의 계엄, 청년 세대를 불안으로 밀어 넣은 정치가 결국 업보를 돌려받았다. 청년이 극우·극좌라는 극단의 영역으로 나뉘면서 정치 양극화는 물론 사회적 혼란까지 초래한 것이다. 극우·극좌는 상대를 향한 혐오를 기반으로 한다. 그 틀을 깨는 건 한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진보적인 목소리로 기득권에 저항하던 운동권 청년’은 옛말이 됐다. 대한민국이 초고속 성장을 이룬 지금, 청년들은 불공정, 미래 불확실성, 젠더 이슈, 무한 경쟁 등 온갖 갈등이 중첩된 삶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결국 이 같은 불만이 정치적 제도와 기득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극우·극좌라는 과잉 반응으로 표출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닿지 못할 평행선 청년들이 극단적인 정치에 매몰되는 이유는 “역시 내가 옳았어”라는 자기 확신을 느끼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같은 성향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을 바라보는 색안경은 짙어진다. 극우에 있어 극좌는 “대한민국 공산당화에 앞장서는 사람”이며 극좌에 있어 극우는 “민주주의를 무너트리는 척결 대상”으로 정의된다. 해외는 정치 양극화가 가져온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과거에는 “조금 늦더라도 결국 자리 잡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한때 한국 사회는 30대를 ‘성장의 시기’로 여겼다.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리고, 자산을 형성하며 삶을 안정시키는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의 30대는 다르다. 반복되는 취업 실패와 불안정한 노동, 치솟는 집값이 기본인 경쟁 사회 속에서 삶을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은 물론 미래에 대한 기대감 자체를 내려놓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청년세대는 ‘3포세대’로 불렸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의미했다. 이후 포기하는 대상이 늘어나면서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 꿈과 희망까지 내려놓는다는 의미의 ‘N포세대’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벌어도 불안 놀아도 불안 그러나 최근 청년세대를 설명하는 분위기는 이보다 더 무겁다. 몇 가지를 포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와 단절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 새롭게 등장한 표현이 ‘사회적 로그아웃’이다. 극심한 경쟁과 취업난,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관계와 미래 계획을 하나씩 줄여나가다 결국 사회 바깥으로 밀려난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30대 청년들이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1991년생 성호씨(가명)가 직장을 그만둔 시기, 그와 서른 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 1961년생 은상씨(가명)는 오래 해오던 일에서 은퇴 시점을 헤아리고 있었다. 이들 부자는 유럽 섬나라 한 곳을 여행하기로 했다. 부자가 함께 이국땅에서 보낸 스물한 개 밤사이. 30년, 한 세대 차는 좁혀졌을까? 아들 성호씨는 4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막 나와 방황하던 시기였다. 한동안 “조직이 잘되면 나도 잘되는” 것이라 여기며 몸과 마음을 바쳤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조직과 사람에게 걸던 기대를 놓게 됐다. 그는 “동력 엔진이 꺼져버렸다”고 표현했다. 60년대생 평생직장 아버지 은상씨는 젊어서부터 영업 일을 해왔다. 지방 출장이 잦아 집을 며칠씩 비우는 일이 왕왕 있었다. 성호씨는 어렸을 때 젊은 아버지가 무슨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일하는 아버지를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듯하다고 했다.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부자는 여행을 떠났다. 성호씨는 몇 번인가 이미 여행한 곳이었기에 익숙한 그 섬에 아버지와 가고 싶었다. 여행하면서 부자는 여행지에도, 날씨에도, 서로에게도 더 익숙해질 수 있었다. 1961년, 소련(현
“우리도 <일요시사>와 함께 시작했어요.” <일요시사>가 뜻을 세우는 나이인 ‘이립’이 됐다. 지금까지 희망의 씨를 뿌렸다면 이제부터 풍성한 열매를 거둘 시기다. 연예계에도 그 힘든 과정을 거치고 빛을 발하는 스타들이 많다. 30년 전 본지와 같이 시작한 별들을 모아봤다. <pmw@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