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먹는 ‘무늬만 회사차’ 논란

판치는 탈세차…허술한 제동법

[일요시사 취재팀] 박민우 기자 = 잘나가는 수입차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대형 악재가 돌출했기 때문이다. 탈세 논란이 그것. 오너나 경영진이 고가의 차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세금을 탈루하는 편법이 도마에 올랐다. 관련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어 수입차에 제동이 걸릴 지 주목된다.


 
수입차 판매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수입차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개월 앞서 15만대를 돌파했다. 협회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수입차는 7월 전년보다 10.7% 늘어난 1만8200대를 판매했다.

수입차 역대 최고
법인차 증가 연관
 
6월 2만4275대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데 이어 7월에도 2만대를 돌파, 두 달 연속 2만대를 넘어섰다. 올해 1∼8월 누적 판매량은 전년보다 23.2% 늘어난 15만8739대로 나타났다. 유럽차들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올 상반기 국내에서 팔린 수입차 10대 중 8대가 유럽차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중에서도 돌풍 주역은 독일차다. BMW와 벤츠, 폭스바겐, 아우디 등 독일 대표 브랜드들이 8만2443대를 팔았다. 전체 수입차 판매량의 70%에 이른다.
 
지난해 수입차 시장 규모는 역대 최고치인 19만6359대에 달했다. 2013년과 비교해 25.5%의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해 신차 시장에서 수입차의 점유율은 13.9%였다. 이 수치는 올해 다시 깨질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KAIDA 측은 “올해 20만 판매가 조기 달성될 것으로 본다”며 “판매량이 24만대로 전년대비 20%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잘나가는 수입차 시장. 앞으로의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는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대형 악재가 돌출했기 때문이다. 바로 탈세 논란이다. 관련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등 정부와 정치권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수입차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단 수입차 판매 증가는 법인차 증가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경제정의실천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업자 업무용으로 팔린 차량은 10만5720대로 조사됐다. 이렇게 팔린 찻값만 모두 7조4700억원에 달한다. 1억원 이상 수입차 1만4979대 중 83.2%(1만2458대), 2억원 이상 수입차 1353대 중 87.4%(1183대)가 업무용으로 판매됐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포르셰,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이른바 ‘슈퍼카’의 90% 이상이 업무용 차량으로 등록된다.

 
 
업무용 차량은 현행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에 따라 차량 가격은 물론 취득세 등 각종 세금과 보험료, 기름값 등 유지비를 5년간 무제한으로 사업자 경비로 처리할 수 있다. 문제는 오너나 그 일가, 또는 경영진이 고가 수입차를 회사 명의로 구입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데 있다. 대부분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사 명의로 수입차를 구매한 뒤 개인용도로 타는 것은 결국 세금 탈루란 지적이다. 
 
경실련은 “수입차에 주어지는 세제혜택이 해마다 2조5000억원에 이른다”며 “고가 수입차가 무늬만 법인차로서 사실상 탈세의 도구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실련은 대안으로 ‘캐나다 모델’을 제시했다. 캐나다는 업무용 차량에 대해 3만 캐나다달러(약 2700만원)까지만 경비처리를 해준다. 경실련은 “무제한인 업무용 차량 경비처리 기준을 3000만원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00만원 초과금액에 대해선 세금을 징수해야 한다는 것. 
 
이 경우 연간 약 9266억원의 세금징수가 가능하다는 게 경실련의 계산이다. 경실련 측은 “국내 법인차 증가와 수입차 판매 증가는 무관하지 않다”며 “업무용 차량에 지원되는 세금혜택을 제한하는 법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국회입법조사처의 ‘업무용 차량 과세제도 개선을 위한 조세정책 과제’에 따르면 영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경우 업무용 차량의 업무관련 범위 판단기준이 우리나라에 비해 구체적인 편이다. 영국은 고용의무 수행, 일시적 근무지 출근에 사용할 때에만 업무관련성을 인정한다. 일본은 통근, 기타 사업상 관련 운행을 업무에 사용하는 것으로 보지만 반드시 사용자의 신분은 법인의 임직원이어야 한다. 독일은 유한회사의 회사명의 차량은 100% 업무관련성을 인정하며, 인적회사는 업무용 차량이 업무에 50% 이상 사용되면 필수적 업무용 자산으로 분류한다.
 
불티나는 수입차…대부분 사업자 업무용
오너·경영진이 유용해 세금탈루 도마에 
 
뿐만 아니다. 해외 선진국들은 대부분 업무용 차량 구입비용에 대해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미국은 차량값이 1만8500달러(약 2000만원)를 넘으면 세금공제를 차등적으로 적용한다. 일본은 차량 가격 300만엔(약 2600만원)까지만, 호주는 5만7466호주달러(약 5000만원)까지만 비용으로 처리해 준다.
 
새정치민주연합 김동철 의원은 “업무용 자산취득에 대한 손금산입제도를 악용, 법인 명의로 최고급 승용차를 구입해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마치 절세의 수단으로서 잘못 인식되고 있다”며 “선진국처럼 세금공제의 한도를 정함으로써 최고급 차량을 법인 명의로 구매해 사적으로 이용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서둘러 보완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업무용 차량 관련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고가 업무용차의 무분별한 세금 탈루행위를 막기 위해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만 가입하면 저가차에서부터 수억원대의 고가차에 이르기까지 일괄적으로 총비용의 50%까지 경비처리를 허용하는 게 골자다. 
 
“해외 선진국들은
대부분 엄격제한”
 
그러나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개정안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내 실효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다음은 업계에서 논란 중인 업무용차 관련 세법개정안 문제점이다.
 
▲서민증세 불가피 = 우선 서민증세 논란이 불거진다. 정부안은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모든 업무용차 구입·유지비에 대해 50%는 기본으로 경비처리를 허용하고, 나머지 50%는 운행일지를 작성해 업무용으로 사용한 비율만큼 경비로 인정해준다. 따라서 50%를 초과해 경비로 인정받고 싶으면 운행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1000만∼2000만원대 저가의 업무용차를 보유하고 있는 중소사업자들의 세부담까지 수백만원 증가할 수 있다. 저가 업무용차는 최저생계비 보호목적의 소득세 인적공제(1인당 150만원)와 같이 취급해야 하지만, 정부안은 저가차까지 모두 과세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업무용차로 1630만원 소형세단을 구매한 개인사업자의 경우 현재 경비처리를 통해 5년간 총 1452만원의 세제혜택을 받았으나, 정부안이 시행되면 세제혜택이 최대 절반으로 감소해 726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업무상 사용비율을 70%까지 높여도 436만원의 세부담 증가를 피할 수 없다.

 
 

▲과세형평성 훼손 = 비싼 차를 가진 고소득사업자가 여전히 유리하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안은 임직원 전용보험에 가입만 하면 2억원대 차든, 1000만원대 차든 업무용으로 전혀 사용하지 않아도 총비용의 50%까지 기본으로 경비로 인정해준다. 2억원대 차를 업무용으로 사서 100% 개인적으로 사용해도 총비용의 절반(구입비만 1억원)을 공식 비용으로 처리해 주는 것이다.
 
반면 1000만원대 소형세단은 임직원 전용보험에 가입해 50%까지 경비로 인정받더라도 구입비 경비처리액은 500만원대에 불과하다. 유지비 역시 수억원대 세단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어 경비 처리액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합법적 탈루수단 제공 = 정부안은 사업주가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만 가입하면 업무상 사용여부를 입증하지 않아도 총비용의 50%를 경비로 인정해준다. 또 ‘임직원 전용 보험’과 ‘사업자 로고 부착’을 하면 업무상 사용여부 입증 없이 총비용 전액(100%)을 경비로 처리가 가능하다.
 
정부 업무용차 관련 세법개정안 추진
‘있으나 마나’ 허점투성…실효성 논란
 
이를 두고 사업주의 사적 사용을 통한 세금탈루를 방조하는 것을 넘어 합법적인 세금탈루 수단까지 제공하는 것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비업무용 부동산으로 호화주택을 구입한 후 이 주택 외벽에 ‘회사간판’만 달면 주택 취득비는 물론 유지관리비까지 전액 경비처리를 허용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정부의 고소득 사업주에 관대한 무자료 경비처리 혜택은 사업자 퍼주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뻔한 운행일지 조작 = 사실상 업무용차 규제를 위해 정부가 새로 추진하는 것은 운행일지 작성과 회사 로고(상표) 부착 밖에 없다. 이마저도 시작단계부터 허술한 작성이 우려된다. 운행일지를 통해 과세하려면 사업주들이 운행일지를 정직하게 작성하도록 유도하고, 허위로 작성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이 우선이다.
 
하지만 정부는 운행일지를 매일 기록하지 않고 주1회 또는 월1회 기록해도 인정해주는 ‘간편차량이용명세’나 ‘표준차계부’같은 운행일지 기재 간소화 방안을 제시했다. 더욱이 운행일지 허위 작성에 대해 규제·처벌 조항도 없다.
 
▲통상마찰은 핑계? = 정부는 업무용차 구입비에 대해 경비산입 상한액 설정이 어렵다고 한다.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게 그 이유인데, 이 논리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미 FTA 협정문 ‘민간 구매에 관한 정책’을 보면 각 당사국은 자국 영역의 민간인이 다른 쪽 당사국의 상품 또는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인 영향력이나 설득 수단을 통해 억제하는 것이 자국의 정책이 아님을 확인한다고 정했다. 한·EU FTA 협정문 ‘자동차 및 부품관련 부속서’는 특징적인 그 밖의 규제조치를 통하여 이 부속서에 따라 다른 쪽 당사자에게 발생하는 시장접근 이익을 무효화하거나 손상하는 것을 자제한다고 기술돼 있다.
 
두 내용은 업무용 차량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통해 탈세를 방지하겠다는 당사국(한국)의 고유한 주권법안의 권리 및 의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무용차에 대한 엄격한 규제는 자국(한국) 상품 소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할 때 상대국들의 통상 차원 이의제기는 가능하더라도, 적극적인 통상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큰회사 잡으려다
작은회사 죽인다
 
특히 수입차 관련 세법개정안은 정당한 조세권 행사를 통한 탈세방지 접근 성격이므로 FTA 협정과는 무관하다는 관점도 있다. 캐나다, 호주, 미국 등 주요 선진국도 고가차 구입을 통한 무분별한 세제혜택을 막기 위해 구입비 경비상한액을 설정하고 있다. 한국이 경비상한을 설정해도 상대국에서 통상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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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