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가면 필자는 바다의 아름다움과 함께 바닷가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가게를 나와 조금만 걸으면 바닷바람을 맞을 수 있고, 식사 뒤에는 자연스럽게 바닷가 산책을 이어갈 수 있다. 여수의 매력은 아름다운 바다를 품었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 바다를 일상에서 편하게 누릴 수 있다는 점도 크다.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하는 것과 그 곁에서 생활하는 것은 다르다. 도시의 진짜 매력은 풍경과 생활이 만나는 자리에서 생겨난다.
종포해양공원은 그런 매력을 보여준다. 해안을 따라 약 1.5km의 산책로가 이어지고 공연장과 놀이터 등이 마련돼있어 시민과 관광객이 도심에서 바다를 만나고 머물 수 있다. 필자는 여수의 바닷가를 생각하며 서울의 한강을 떠올렸다. 서울에도 아름다운 강과 넓은 공원이 있다. 그런데 동네에서 한강으로 걸어가려면 왜 들어가는 길부터 찾아야 할까.
물까지의 거리는 가까운데 생활 속의 거리는 멀다. 그 사이에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가 있기 때문이다.
한강 북쪽에는 강변북로가, 남쪽에는 올림픽대로가 길게 이어진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며 바라보는 한강은 시원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차창에서 보던 강을 두 발로 만나려 하면 쉽지 않다. 나들목이나 연결통로를 찾아야 하고, 구간에 따라 돌아가거나 높낮이를 넘어야 한다. 지도에서 집과 강 사이가 짧아 보여도 실제로 걷는 길은 길어진다. 도시의 동서를 연결하는 도로가 정작 동네와 강 사이에서는 장벽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한강 주변에는 주거지와 상가가 많지만, 강변 공원과 일상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집을 나선 노인이 편하게 걸어갈 수 있는지, 유모차와 휠체어가 무리 없이 접근하는지, 가족이 저녁 식사 뒤 부담 없이 산책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강 옆에 공원을 조성하는 일과 시민을 그 공원에 연결하는 일은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공원이 아무리 넓고 아름다워도 찾아가는 길이 불편하면 강은 생활의 이웃이 되기 어렵다.
인류는 오랫동안 강가에서 살아왔다. 강은 마실 물과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제공했고,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통로였으며, 마을과 도시가 성장하는 기반이었다. 홍수의 위험을 경계하면서도 사람들은 강과 관계를 맺으며 삶을 이어갔다. 오늘날 되찾아야 할 것은 그 관계다. 안전한 생활 공간과 물가의 쉼터가 이어지고,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강으로 걸어갈 수 있는 환경이다. 강을 가까이 두고 살아온 오랜 생활의 가치를 현대 도시에서 다시 구현할 때다.
서울의 강변도로도 당시의 필요 속에서 만들어졌다. 1960년대 한강 개발 과정에서는 강변도로 건설과 공유수면 매립, 잠실과 여의도 개발이 추진됐다. 이후 1980년대 한강 종합 개발과 도로 정비는 오늘날 한강변 공간의 모습을 형성하는 주요 사업이었다. 팽창하는 서울의 교통을 처리하고 새로운 생활권을 연결하는 일이 시급했던 시대였다. 그 도로가 서울의 성장을 뒷받침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필요가 미래의 공간 배치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
산업화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자동차를 빨리 이동시키느냐가 도시 발전의 중요한 척도였다. 이제 그 계산에 사람의 시간도 넣어야 한다. 운전자가 아낀 몇 분만큼 보행자가 돌아가는 시간도 중요하다. 도로의 통행량과 함께 소음 때문에 머물기 어려운 공간, 아이와 노인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물가도 살펴야 한다. 차량의 흐름은 수치로 자세히 기록하면서 사람과 자연의 단절은 막연한 불편으로 남겨둔다면, 도시계획의 저울은 계속 자동차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호주 시드니의 바랑가루는 바닷가와 도시 생활을 다시 연결한 사례다. 과거 산업시설과 컨테이너 부두가 있던 바닷가를 공원과 산책 공간으로 바꾸고, 주변에 업무시설과 주거시설이 함께 자리하도록 조성했다. 시민에게 열리지 않았던 바닷가가 걷고 쉬며 도시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이 사례에서 주목할 것은 경관의 화려함보다 바닷가를 누구에게 열어주었느냐는 점이다. 좋은 바닷가는 멀리서 감상하는 도시의 장식에 머물지 않고 시민이 직접 사용하는 생활 공간이 된다.
강변도로의 위치를 바꾼 도시도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는 만사나레스강을 따라 달리던 M-30 순환도로 일부를 지하로 옮기고 지상에 공원을 조성했다. 2011년 4월 문을 연 마드리드 리오다. 도로가 차지했던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면서 강과 주변 지역의 연결도 개선했다. 강을 되찾는 일은 공원 하나를 더 만드는 사업을 넘어 도시의 단절을 줄이는 사업이 됐다. 자동차의 길을 재편해 사람의 생활 공간을 넓힌 선택이었다.
프랑스 파리도 센강변의 차량 통행공간 일부를 보행 공간으로 전환했다. 주민 의견 수렴과 영향평가 등을 거쳐 2016년 강변 보행구역을 설정했다. 교통 여건과 강의 규모가 다른 만큼 서울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강변도로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필자는 먼 훗날 사람들이 물가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면 각국이 강변도로를 옮기거나 줄이는 작업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미래는 일부 도시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서울에서도 변화의 방향은 제시된 바 있다. 서울시는 2022년 강변북로 지하화 구상을 소개하며 지상부와 한강을 연결해 수변 공간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을 시민의 생활 언어로 구체화하는 일이다. 어느 동네에서 강까지 가는 길이 짧아지고, 어떤 구간에서 보행의 불편이 줄어들며, 지상 공간을 시민이 어떻게 이용하게 되는지 설명해야 한다. 지하의 교통 처리와 지상의 생활권 회복을 함께 평가해야 사업의 목적이 선명해진다.
우리는 고가도로를 철거하며 도시 공간을 바꿔왔다. 아현고가도로도 노후화와 보수비 부담, 기능 저하 등을 고려해 철거했고, 이후 교통 연결과 시야 개선을 도모했다. 기존 시설의 역할과 비용, 주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따진 결과였다. 그렇다면 강변도로도 같은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고가도로가 동네를 갈라놓는 문제는 개선하면서, 강변도로가 사람과 강을 갈라놓는 문제는 왜 오래 감수해야 하는가. 익숙한 시설이라는 이유만으로 질문을 멈출 필요는 없다.
강변도로 재편에는 통근과 물류를 감당할 대책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지하화의 비용과 안전성, 교통 분산의 영향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도로를 옮겨 다른 동네에 소음과 혼잡을 떠넘기는 방식은 해법이 될 수 없다. 구간별로 지하화와 도로 축소, 연결 통로 개선, 대중교통 확충 등을 비교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모든 구간에 같은 방법을 적용하기보다 접근이 가장 어려운 곳에서부터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도로가 물러난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도 중요하다. 고가 주택과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서 시민의 길이 다시 좁아진다면 장벽의 형태만 바뀐다. 동네의 가게와 생활 공간은 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되, 물가를 따라 걷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또한 산책로를 만들었다고 자연이 저절로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홍수 때 물이 머무를 공간과 생태 서식지를 함께 지켜야 한다. 시민의 접근성과 강의 생태적 건강을 함께 높이는 것이 진정한 수변 회복이다.
국회도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준을 논의해야 한다. 하천과 해안에 새 간선도로를 계획하거나 기존 도로를 크게 고칠 때 접근성과 생태적 연속성을 함께 평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국비 지원을 심사할 때도 교통 개선과 함께 생활권 연결, 보행 편익, 자연환경 회복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이 물가까지 걸어가는 실제 거리와 시간을 조사하고 개선 순서를 공개해야 한다. 자연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법과 예산, 설계의 기준에 담겨야 변화가 지속된다.
여수가 필자에게 준 생각은 바다가 아름답다는 감탄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물가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 때 도시의 매력이 사람의 하루가 된다는 깨달음이었다. 한강도 출근길 차창에 스치는 풍경을 넘어 퇴근 뒤 걸어가고 싶은 공간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강을 따라 자동차가 달릴 길을 넓혔다. 이제는 강을 향해 사람이 걸어갈 길을 넓힐 차례다. 다음 세대에 남길 서울의 자랑은 누구나 편하게 강에 닿고, 그 곁에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도시의 품격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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