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오는 6일 대법원 국정감사에 출석해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필자는 조 대법원장이 이날 국민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봤다. 먼저 청와대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갈등에 관한 입장을 밝히고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난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한 이유도 설명해야 한다. 청와대에 설명을 요구하는 만큼 자신이 이끄는 사법부의 판단 과정에도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
이 질문을 다시 꺼내게 한 것은 이석연 전 국민통합위원장의 국민일보 인터뷰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인터뷰에서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문제에 관한 조 대법원장의 판단을 지지하면서도, 대선 직전 선거법 사건 처리에는 비판적인 견해를 밝혔다.
한쪽의 손을 들어줬다고 그쪽의 모든 행동까지 옳다고 보지는 않았다. 필자가 주목한 것도 그 점이다. 사안마다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은 정치인과 법관은 물론 사법부를 평가하는 국민에게도 필요하다.
이 전 위원장의 지적 가운데 오래 남는 말이 있다. “사법부는 정치로부터 독립해야 하지만 국민의 의문으로부터 독립할 수는 없다.” 사법부 독립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그 독립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는 말이다. 대통령이나 국회가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동시에 국민이 재판의 공정성과 절차에 의문을 품을 때에는 설명해야 한다. 부당한 권력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과 국민의 정당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두 가지를 함께할 때 사법부의 독립은 더 설득력을 얻는다.
문제의 판결은 지난해 5월1일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사건 접수부터 선고까지는 34일이 걸렸고, 4월22일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뒤에는 9일 만에 선고가 이뤄졌다.
조 대법원장은 그 전원합의체의 재판장이었다. 6월3일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이었기에 판결의 내용과 함께 처리 속도도 큰 논쟁을 낳았다.
빠른 재판 자체를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재판 지연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신속한 판단은 중요한 권리며, 선거범죄를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법의 취지도 있다. 대선후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재판을 선거 뒤로 미뤄야 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 전 위원장이 강조한 사법 자제의 필요성은 무겁게 검토할 견해다. 다만 핵심은 선거 전에 판단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신속한 처리의 기준이 일관되게 적용됐고 그 과정이 충분히 설명됐느냐는 데 있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왜 이 사건은 그 시기에 전원합의체로 넘어갔는가. 어떤 이유로 짧은 기간 안에 심리와 선고가 진행됐는가. 신속한 처리와 충분한 검토를 어떻게 함께 확보했는가. 비슷한 성격의 사건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가.
법에 따라 처리했다는 선언만으로는 이런 질문이 풀리지 않는다. 법에 따른 판단이었다면 그 기준과 절차를 국민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이 전 위원장은 당시 처리에서 일관성과 형평성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그 평가가 곧 위헌이나 위법이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사법부가 가볍게 넘길 지적도 아니다. 법원은 유사한 사안에 일관된 법적 기준을 적용한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처리 속도와 절차가 달라 보였다면 그 차이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설명되지 않은 차이는 의혹을 낳고, 그 의혹이 쌓이면 다른 판결에 대한 신뢰까지 흔들 수 있다.
조 대법원장이 이번 국감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시 사건 처리의 기준과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다. 전원합의체 회부의 필요성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짧은 심리 기간에도 충분한 검토가 이뤄졌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다른 선거법 사건과 비교해 공통점과 차이점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미 공개한 설명은 정리하고, 풀리지 않은 의문에는 추가로 답해야 한다. 국민이 그 설명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근거를 내놔야 한다.
그 설명에 앞서 국민의 의문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보여야 한다. 필자가 듣고 싶은 첫마디는 이렇다.
‘당시 사건 처리로 국민께서 품으신 의문을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기존 설명으로 충분히 해소되지 않은 부분을 살피고, 설명이 부족했던 점은 보완하겠습니다.’ 국민의 질문을 정치적 공격으로만 받아들이면 대화는 시작되기 어렵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해 달라고 요구하는 만큼 국민이 왜 의문을 품는지도 존중해야 한다.
설명과 판결 번복은 구분해야 한다. 국감장에서 정치적 압력에 밀려 판결이 잘못됐다고 선언하라는 것이 아니다. 재판부 내부의 개별 발언이나 비공개 합의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는 요구도 아니다. 판결을 유지하면서도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의문에는 답할 수 있다.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 이유와 범위를 밝히면 된다. 자신의 판단을 지키려면 그 판단에 이른 과정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대법관 재제청 문제에 관한 입장도 밝혀야 한다. 청와대의 요구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는지,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판단한 제청권의 범위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권력에 절차와 근거를 요구하는 만큼 사법부도 자신의 절차와 근거를 설명해야 한다.
자신을 향한 질문에는 독립을 앞세우고 상대에게만 설명을 요구한다면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권력기관의 당당함은 같은 원칙을 자신에게도 적용할 때 나온다.
국회에도 책임이 있다. 국감은 대법원장을 정치적으로 굴복시키거나 판결을 다수결로 다시 심판하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된다. 의원들은 특정한 답을 강요하기보다 사건 처리의 기준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물어야 한다. 답변이 부족하면 무엇이 빠졌는지 짚고, 필요한 자료를 요구해야 한다.
고성과 모욕으로는 사법부의 설명 책임을 세울 수 없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자리인 만큼 질문에도 정확성과 절제가 필요하다.
법원의 권위는 법정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판결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절차만큼은 공정했다고 믿을 때, 법원의 판단은 사회를 묶는 힘을 얻는다. 결과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법원을 지지한다면 사법부 역시 진영의 한쪽으로 밀려난다. 어느 진영이 사법부를 응원하느냐보다 어느 국민이든 그 절차를 신뢰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법관의 판단권을 헌법을 통해 부여한 국민에게 사법부가 설명해야 하는 이유다.
6일 국감이 권력기관 사이의 대립을 되풀이하는 하루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를 향한 부당한 압력에 분명하게 선을 그으면서, 자신이 관여한 사건 처리에 대한 국민의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해야 한다.
이석연 전 위원장의 지적은 그 두 가지 책임을 함께 요구한다. 조 대법원장은 국감에서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는 만큼, 그 독립을 어떤 기준과 절차로 행사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국민의 의문에 성실하게 답할 때,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거부하는 목소리도 더 당당해질 수 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일 청와대의 초청을 받고도 국군의날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건강상의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대법관 재제청 문제로 청와대와 맞서는 시점이어서 여러 해석을 낳았다. 불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기관 사이에 생긴 거리까지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조 대법원장이 국군의날 행사에서 비워둔 자리를 6일 국감에서는 국민을 향한 진솔한 설명으로 채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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