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사에서 최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장병들이 다친 일을 두고 “불의의 사고”라고 표현하자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대통령이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가 아니”라고 비판했고, 당내에서는 해당 사건을 ‘북한의 도발’로 규정하면서 정부가 이를 사실상 은폐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의 표현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별개의 문제며, 그 표현만으로 ‘침략 은폐’라는 결론까지 곧바로 도출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현재까지 확인된 군의 조사 결과를 보면 상황은 분명히 심각하다. 지난달 2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사고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북한산(産) 수지 반보병지뢰가 매설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유엔군사령부 역시 폭발 지점이 군사분계선(MDL) 이남이라는 판단을 내놨고, 국방부는 북한이 지뢰를 매설한 행위 자체가 정전협정 위반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한발 더 나아가 전날(30일) 합참은 “우리 장병들이 북한군의 지뢰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당한 사건”이라고 공식적으로 표현하고, 북한에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적어도 현재 공개된 군의 공식 판단은 북한군 지뢰에 무게를 두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북한의 책임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쟁점은 대통령이 ‘북한 도발’ 대신 ‘불의의 사고’라는 표현을 선택한 것이 군의 판단을 부정한 것인가. 또 그런 표현이 실제로 조사 결과를 감추거나 북한의 책임을 은폐하라는 지시와 연결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이 둘 사이의 연결고리는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방부는 야권의 ‘고의적 지연·은폐’ 의혹에 대해 “그렇지 않다”며 군이 투명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후 군은 북한의 지뢰 매설 사실과 정전협정 위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즉, 조사 과정에 대한 비판과 대통령의 표현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그것을 곧바로 ‘침략 은폐’라는 국가적 차원의 행위로 연결하려면 별도의 근거가 필요하다.
특히 은폐라는 워딩은 단순히 말을 아끼거나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알고 있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공개하지 않는 행위를 뜻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북한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은폐 의도를 입증했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국민의힘의 문제 제기에도 짚어볼 대목은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북한군 지뢰 가능성이 공개되고 정전협정 위반 판단까지 나온 상황에서 굳이 ‘불의의 사고’라는 표현을 택한 것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이 부적절하다”와 “북한의 침략을 은폐한다” 사이에는 상당한 논리적 거리가 있다. 게다가 대통령의 기념사는 군사작전 보고서나 조사 결과 발표문과 성격이 아주 다르다.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특정 사건을 어떻게 언급했는지를 두고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과, 정부가 실제 조사 결과를 조작하거나 감추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요구되는 증거의 수준부터 달라야 한다.
이번 논란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은 표현 하나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을 넘어 ▲폭발한 지뢰와 현장에서 발견된 지뢰의 동일성에 대한 최종 조사 결과가 무엇인지 ▲북한의 지뢰 매설 시점과 의도성이 어디까지 확인됐는지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에 대해 우리 정부가 외교·군사적으로 어떤 대응을 했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 세 가지에 대한 답은 기록과 증거로 검증이 가능한 반면 “불의의 사고”라는 표현에 ‘침략 은폐’라는 의도를 덧씌우는 것은 그렇지 않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대통령이 어떤 단어를 사용했느냐보다, 정부가 북한의 책임을 실제로 인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느냐에 맞춰야 한다. 대통령의 표현을 비판하는 것은 정치적 견해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 표현 하나를 근거로 곧바로 ‘침략 은폐’라고 규정하는 순간, 정작 확인해야 할 군의 조사 결과와 정부의 실제 대응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국가 안보 문제일수록 말의 강도보다 사실의 정확성이 먼저여야 한다. ‘사고냐 도발이냐’를 놓고 단어 싸움을 벌이는 데 머물기보다는 확인된 사실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분명하게 나누는 것이야말로 제1야당이 보여줘야 할 정치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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