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0원→20억원→0원…동아시아문화센터 3년째 부실 공시 논란

18억 주식 보유 불구 ‘0원’ 신고
이듬해 20억원어치 보유 확인

[일요시사 정치팀] 강주모 기자 =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147억원을 출연한 재단법인 동아시아문화센터가 최근 3년간 결산공시 과정에서 보유 주식을 누락하거나 처분 내역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무상태표에는 수십억원 규모의 주식 관련 자산이 잡혀 있었지만 별도의 자산현황표와 주식 보유·처분 명세에는 ‘0원’으로 기재된 사례가 확인됐다. 이후 20억원이 넘는 주식이 보유 자산으로 나타났다가 이듬해 다시 사라졌지만 처분 시점과 금액을 확인할 수 있는 명세는 공시되지 않았다.

지난 20일 <일요시사>가 동아시아문화센터의 2023~2025년 공익법인 결산서류를 분석한 결과, 재단은 2023년 재무상태표에 단기매매증권 18억1314만2311원을 기재했다.

하지만 같은 결산서류의 자산현황표 ‘주식 및 출자지분’ 항목과 부표2 ‘주식 등의 출연·취득·보유 및 처분 명세서’에는 보유액을 0원으로 신고했다. 한 재단의 동일 연도 결산서 안에서 주식 관련 자산의 존재 여부가 서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2023년 말 재단이 실제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정황은 2024년 결산서류에서 확인된다. 2024년 부표2에 따르면 재단은 그해 알파벳A 2200주, LG화학 562주, 삼성전자 3563주를 매각했고 엔비디아를 취득했다. 또 애플 1625주와 마이크로소프트(MS) 935주는 별도의 취득 내역 없이 보유 종목으로 기재됐다.

이를 역산하면 재단은 2023년 말 알파벳A·LG화학·삼성전자·애플·MS 등 5개 종목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주가와 원·달러 환율을 기준으로 계산한 평가액은 약 18억1314만원으로, 재무상태표에 적힌 단기매매증권 18억1314만2311원과 사실상 일치한다.

그런데도 2023년 자산현황표와 주식 명세서에는 보유 주식이 ‘0원’으로 기재됐다. 즉 재무상태표에는 약 18억원의 주식이 존재하지만, 주식 보유 명세에는 단 한 종목도 나타나지 않는 구조다. 재단 외부 자료에서도 유사한 수치가 확인된다.

시민단체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가 지난해 7월 국세청에 제출한 고발장에는 동아시아문화센터의 2023년 유동자산이 약 52억원이고, 이 가운데 단기투자자산 32억원, 단기매매증권 18억원으로 기재돼있다.

재단이 같은 해 자산현황표와 주식 명세서에서 주식 보유액을 0원으로 신고한 것과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2025년 공시다. 2024년 말 재단이 보유한 주식은 총 20억1649만원 규모였다. 애플 5억9819만원, MS 5억7933만원, 엔비디아 8억3898만원 상당인데 그해 말에는 이 주식 자산이 모두 사라져 보유액이 0원이 됐다.

문제는 2025년 결산공시에는 부표2가 첨부되지 않아 이 주식들이 언제, 어떤 가격에 처분됐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재단의 주식 자산이 1년 사이 20억원 규모에서 ‘0원’으로 바뀌었지만, 처분에 따른 현금 유입과 이후 자금의 이동 경로는 공시자료만으로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기간 단기투자자산의 규모다. 2024년 말 75억8082만원이던 단기투자자산은 2025년 말 98억6416만원으로 22억8334만원 증가했다. 주식 계정에서 약 20억원의 자산이 사라진 시기에 단기 금융자산은 비슷한 규모로 증가한 것이다.

다만 주식 처분 대금이 단기투자자산 증가분 가운데 얼마를 차지하는지는 현재 공개된 결산자료만으로 확인할 수 없다. 2025년 운용소득 사용명세서에는 하나증권을 통한 금융자산 취득에 11억5273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기재돼있다.

총자산 공시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발견됐다. 2024년 4월 공개된 2023년 원공시본에는 내부 계정인 ‘수익사업출자금’ 70억2826만원이 통합 재무상태표에서 제대로 조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익목적사업과 수익사업에 동일한 금액이 중복 반영되면서 총자산이 실제 152억원 수준임에도 222억원으로 공시된 것이다.

이후 재단은 2024년 10월 28일 재공시를 통해 총자산을 152억원으로 낮췄으나 재공시 과정에서 정정 사유란은 비어 있었다. 총자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70억원 규모의 수치를 바로잡으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지 않은 셈이다.

더욱이 해당 금액은 시민단체가 국세청 고발 과정에서 성격과 사용처를 밝혀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기타비유동자산 70억원과도 연결된다.

공시자료의 소재지 역시 일관되지 않았다. 법인 등기부에 따르면 동아시아문화센터는 2024년 주사무소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종로구 사직동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2024년과 2025년 결산서류의 자산현황표에는 이전 주소인 연희동이 그대로 기재돼있었다.

2025년 공시자료에서도 자산현황표에는 연희동 주소가, 세무확인서에는 종로구 사직동 주소가 적혀 서로 다른 주소가 병존했다. 각각의 오류가 단순한 작성상 착오인지, 아니면 재단의 자산 및 회계 상태를 파악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인지는 별도의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김 여사의 출연금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2024년 8~9월을 전후해 과거 결산공시도 잇따라 수정했다. 2017~2023년 중 6개 회계연도의 결산공시가 정정됐고, 2023년 기부금 이월 잔액은 기존 0원에서 97억6600만원으로 바뀌었다.

재단 설립 당시 결산서에 ‘노소영 1000만원 현금 출연’으로 기재됐던 항목도 이후 5억원으로 수정됐다. 특히 97억6600만원의 기부금 이월 잔액에는 김 여사가 2020년 출연한 95억원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잇단 정정은 단순 회계 오류인지, 아니면 공익법인의 자금 운용과 관련한 보다 구조적인 문제인지를 놓고 논란이 이어지는 배경이다.

공익법인의 출연재산 운용과 관련해서는 세법상 별도의 의무가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을 일정 기간 내 직접 공익목적사업 등에 사용하지 않는 경우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출연재산을 공익목적사업에 충당하기 위해 수익용·수익사업용 재산으로 운용하는 경우에는 세법상 ‘사용’으로 인정될 수 있어 단순히 금융자산을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세금 문제가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실제 과세 여부는 금융자산의 취득 경위와 운용 목적, 운용소득의 사용 내역 등을 종합해 과세당국이 판단해야 한다.

동아시아문화센터의 자산 구성을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자산 형태가 크게 바뀐 것도 눈에 띈다. 재단은 2024년 11월 청운동 건물을 47억원에 매각했다. 이후 단기투자자산은 43억9469만원 증가했다. 부동산 자산이 금융 자산으로 상당 부분 이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흐름이다.

이듬해에는 약 20억원 규모의 주식이 장부에서 사라지는 동시에 단기투자자산이 22억8334만원 증가했다. 부동산에서 금융상품으로, 다시 주식에서 금융상품으로 자산의 형태가 바뀐 셈이다. 그럼에도 재단 전체 자산 규모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24년 말 총자산은 179억9326만원, 2025년 말에는 179억5911만원으로 3414만원 감소하는 데 그쳤다. 즉 자산의 규모보다 자산의 형태가 바뀌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의 공시가 어떻게 이뤄졌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익사업 지출에서도 논란이 이어진다. 동아시아문화센터의 2025년 결산서류에 따르면 재단은 2024년 운용소득 19억1630만원 가운데 법정 기준에 따라 공익목적사업에 사용해야 할 금액을 15억3304만원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실제 공익목적사업 지출액은 2억9987만원에 그쳤다. 단순 계산하면 기준액과 실제 사용액 사이에 12억3316만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반면 같은 기간 재단이 하나증권을 통해 금융자산을 취득하는 데 사용했다고 신고한 금액은 11억5273만원이다.

공익사업에 직접 사용한 금액과 금융자산 취득에 사용한 금액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발생한 것이다. 다만 이 12억3316만원 전액이 곧바로 가산세 부과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익법인의 공익목적사업 사용실적은 해당 사업연도뿐 아니라 직전 4개 사업연도의 평균 사용실적 등을 함께 고려해 세법상 기준미달사용액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재단이 신고한 5년 평균 사용기준액은 3억660만원, 사용실적은 5997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를 적용하면 5년 평균 부족액은 2억4663만원이며, 재단 신고 수치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가산세는 약 2466만원 수준으로 계산된다.

실제 가산세 부과 여부와 금액은 운용소득의 구성과 직전 연도 사용실적, 자산의 세법상 성격 등을 확인한 뒤 과세당국이 판단할 사안이다.

재단의 공익사업 지출 가운데 장학금과 행사비 등에 사용한 금액은 7125만원으로 나타났다. 2025년 말 총자산 179억5911만원과 비교하면 약 0.4% 수준이다. 반면 단기투자자산은 98억6416만원으로 전체 자산의 절반을 넘었다.

2024년에는 애플·MS·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 기업 주식 약 20억원어치를 보유했고, 삼성전자 3563주와 LG화학 562주, 알파벳A 2200주 등을 매각한 것으로 공시됐다. 과거 결산자료에는 와인 약 1015만원, 미술품 약 1701만원을 매입한 내역도 확인된다. 이 같은 자산 운용이 재단의 정관상 목적사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2012년 설립 당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5억원을 출연했다. 이후 김옥숙 여사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총 147억원을 출연했다. 2022년 설립된 노태우센터에 출연한 5억원까지 합치면 두 재단에 들어간 김 여사의 출연금은 152억원에 달한다.

검찰이 지난 8월21일 김 여사의 연희동 자택과 동아시아문화센터, 노태우센터 등을 압수수색한 것도 이 자금의 출처와 이동 경로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재단 관계자와 노 전 대통령의 자금 관리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전직 비서관 등을 조사한 데 이어, 이혼소송 과정에서 이른바 ‘김옥숙 메모’를 제출한 노소영 관장에게도 참고인 소환을 통보하고 일정을 조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인 측은 김 여사의 출연금이 부동산과 주식, 금융상품 등으로 형태를 바꾸면서 재단 내부에 남아 있었던 점을 근거로 이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은닉 비자금과 연결된 자금 흐름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공개된 결산자료만으로 147억원의 출연금이 실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결국 검찰 수사의 핵심은 재단의 회계상 오류 여부를 넘어 김 여사가 출연한 147억원의 최초 자금 원천과 그 돈이 재단에 들어온 뒤 어떤 계좌와 자산을 거쳐 이동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의혹은 노소영 관장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에서 이른바 ‘김옥숙 메모’를 제출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은 지난 8월 강제수사에 착수한 뒤 재단 출연금과 자금 흐름을 들여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김 여사가 두 재단에 152억원을 출연했다는 사실과 재단 내부의 여러 회계·공시상 불일치다. 이제 남은 것은 ▲147억원은 어디에서 왔는가 ▲주식 20억원은 언제, 어떤 가격에 처분됐으며 그 돈은 어디로 이동했는가 ▲70억원의 총자산 중복 계상은 왜 발생했는지 각각의 숫자를 연결하는 일이다.

또 공익사업에 사용해야 할 운용소득과 실제 금융자산 취득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 모든 자금 흐름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과거 비자금과 실제로 연결돼있는지 여부다.

재단의 결산공시만으로 비자금 은닉을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복된 공시 정정과 주식 보유액의 불일치, 대규모 금융자산 운용, 부동산 매각 이후 자산 재편은 향후 계좌추적과 회계자료 분석 과정에서 확인해야 할 핵심 자료로 남게 됐다.

30여년 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끝난 줄 알았던 자금의 행방이 다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가운데, 이번 수사의 성패는 결국 재단 장부에 찍힌 숫자들을 실제 돈의 이동 경로와 연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kangjoom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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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공소청, 제 기능 못하는 내막

중수·공소청, 제 기능 못하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이 출범했다. 개문발차 상태다. 수장 공백과 법령 미비, 수사 인프라 모두 정리되지 않았다. 중수청의 경우 본청 사무실 공사 마무리까지 두 달여가 소요될 전망이다. 검사·수사관 대부분은 출근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담당했던 사건이 처리되는 데 수개월이 밀리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7대 중대범죄 수사를 맡을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 기능을 담당할 공소청 모두 수장과 인력, 하위 법령, 사무 공간 등 총체적 부실 상태로 개청했다. 채용이 확정된 이들은 어디로 출근해야 하는지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완성도 안 됐다 중수청은 지난달 7일 김지용 후보자가 초대 청장으로 제청됐으나 여권 내 반발로 인해 추가 검증을 거치느라 청문회조차 열지 못했다. 중수청법상 중수청 간부급인 1∼5급 수사관은 청장의 추천을 거치게끔 돼있지만, 청장 없이 문을 여는 바람에 첫 인사부터 원칙이 깨졌다.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정원은 수사관 2567명과 일반직 307명 등 총 2874명인데, 1·2차 특례 임용에 지원한 이들이 총 1962명에 그쳤고 5급 이상은 정원 629명에 지원자 212명으로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청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오전까지도 인사가 발표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어느 지역의 중수청에 출근해야 할지 통보받지 못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태였다. 중수청은 청사를 임대했으나 수사 인프라와 사무 공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본청과 서울청이 쓰게 될 서울 중구 르네스퀘어빌딩은 2∼17층을 임대했으나 당장 사용할 준비가 된 것은 여섯층뿐이다. 수사기관의 필수 시설인 조사실과 피의자 신병을 확보할 만한 시설을 갖추지 못해 당분간 타 기관의 공간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다. 중수청 개청준비단은 서울 3곳, 나머지 5개 지역 1곳 등 총 8곳의 경찰서 유치장을 사용하기로 경찰청과 협의했다. 법무부 교정본부에도 6개 지방중수청 인근 교정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도 아직 마련되지 않아 완성 전까진 경찰과 논의하며 사용하기로 했는데, 개청 직후에도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았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청의 청사와 시스템을 활용하고, 인력도 상당 부분 이어받아 중수청보다 준비가 순조로웠다. 지난달 22일에 직제안을 확정한 데 이어 29일에는 공소청 개청 날짜에 맞춰 검사 192명의 인사를 단행하는 등 진용을 갖추고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중이다. 다만 공소청 수장인 검찰총장은 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법무부 장관마저 공석이어서 후보자가 있는 중수청장보다도 임명에 먹구름이 꼈다. 중수청, 수사관 충원 부족한데 5급 이상 간부 1/3 수준 사무실 공사 마무리 최소 두달 “어디로 출근할지도 몰라” 우선 법무부는 공소청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달 23일 자로 이정현 신임 대검 차장검사를 임명해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공소청은 개정된 형사소송법 취지에 맞게 하위·관계 법령을 정비하는 작업도 끝마치지 못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에 맞게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하는 법령이 100여개에 달해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최근 법무부령 24건을 공포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검찰청 관련 명칭들을 정비하는 내용이다. 법무부는 오는 2일 개청에 맞춰 법령 개정을 모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수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후속 법안 논의에서 일부 기관이 배제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중수·공소청·경찰 3개 기관의 사건 이첩 관련 규정을 담은 중수청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공소청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록에 따르면 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공소청 관계자는 나와 있느냐”고 묻자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없다”고 답했다. 의사결정권자 공백으로 기관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행 중수청법에 따르면 중수청장은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도 중수청 수사와 겹치거나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해 이첩을 요구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관장의 결단이 필수적인데 직무대행 간 협의만으로는 이견을 좁혀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두 기관의 정상적 운영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합동수사기구도 문을 닫게 됐다. 서울서부지검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합동수사팀은 1년2개월의 수사 끝에 지난달 30일 활동을 중단했다.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보이스피싱범죄합동수사부와 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 서울남부지검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도 운영을 멈췄다. ‘검 목소리’ 완전 배제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중수청에서 금융위원회와 국세청 등으로부터 인력을 파견받아 합동수사기구가 하던 업무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중수청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수사가 불가능하다”며 “적어도 두세달 뒤에야 다시 업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거대해진 경찰 권력을 통제·견제하기 위한 장치였던 보완수사권마저 완전히 폐지됐다. 구자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지난 7월 “한 번 더 살펴봐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며 사의를 표명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현재 경찰의 역량과 인력을 감안했을 때 실무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강경파의 입김에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사라졌다. “공소청의 장은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공소청법에 따라 공소청은 출범 시작부터 리더십 부재라는 혼란 속에서 출발하게 됐다. 검찰 수사권을 없애는 형사소송법만 개정됐을 뿐 그에 따른 하위 법령과 규칙 등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공소청 직제안마저 출범 열흘 전 가까스로 완성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과 연동해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할 하위 법령은 137개에 달한다. 형법과 민사소송법은 물론 성폭력·스토킹 처벌법 등 개별 특별법과 법무부 소관 관계 법률만 61개에 달한다. ‘검찰’이라는 명칭 자체가 없어지는 탓에 50개의 대통령령을 정비해야 하고 검사의 수사권이 명시된 각종 수사준칙도 수정해야 한다. 검찰사건 사무규칙은 조문만 300개가 넘는다. 그만큼 법제처의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논란만 검사의 역할 역시 수사 담당과 기소 담당으로 이원화한 데 포함되지 않는 검사는 수사 자체를 할 수 없다. 수사 역량이 뛰어난 다수의 검사를 중수청으로 보내 국가 수사 역량을 보존하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당초 정부안은 검찰청 검사가 중수청으로 이직할 경우 ‘수사사법관’으로 임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민주당이 이를 “이름만 중수청으로 바뀐 도로 검찰청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며 반대했다. 두 기관 출범 직전까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김 후보자를 두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중수·공소청 출범 직전인 지난 1일에서야 옹호하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해 “이런 사람을 ‘친윤(친 윤석열) 검사’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허위임을 알면서도 흠집을 내고 공격하기 위해 하는 억지 주장이라면 비판이 아닌 비방이고 국정 조언이 아닌 국정 방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후보자에 대해 강도 높게 공개 비판해 온 추미애 경기도지사를 겨냥해 “김 후보자는 문재인정부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사장으로 발탁 승진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도 유튜브에서 “심지어는 김 후보자가 ‘친윤’ 검사, ‘친한(친 한동훈)’ 검사라고 일부가 지적한다”며 “여러 가지 추가 검증 과정을 살펴보면 실제 그것과는 굉장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민석 대표도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한 여권 일각의 비판을 이 대통령이 직접 반박한 것에 대해 “전혀 아닌 것을 계속하거나, 아니라고 설명했는데도 계속 프레이밍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옹호했다. 공소청 수장 임명 법무부 장관 있어야 추천 거쳐 가능 대통령령 포함 하위 법령 100여건 깡그리 수정 필요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인사청문 요청서를 보낼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친명(친 이재명)계 핵심인 김영진 행안위원장도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서 “후보자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좀 과하지 않나”라며 “행안위에 중수청장 후보자를 보내서 (인사청문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수청이 개문발차하는 만큼 임명동의안이 국회로 제출될 경우 수장 공백 최소화를 위해 국정감사 기간 중이라도 인사청문회를 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범여권에서는 김 후보자를 향한 자진 사퇴 압박이 이날도 이어졌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원내대표는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철학도 없고, 친 윤석열 검사가 아니었다고 얘기하지만 그 당시 항명 사건에서도 동참했다”며 “여러 가지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경찰청에서 열린 ‘전국 수사 지휘관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새 체계가 현장에 뿌리내릴 때까지 ‘비상대응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김 대행은 “경찰 역량이 충분한지, 권한을 공정하고 절제하며 행사하는지 국민께서 엄중한 눈으로 지켜보신다”며 “관서·수사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비상 대응의 일환으로 경찰서장이 앞으로 중요 사건과 검사 요구 사건 등의 처리 현황을 매일 확인하고 시도청과 국가수사본부까지 교차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전 수사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 권리 보호 절차를 대폭 강화하고, 사건 진행에 대한 통지를 내실화하는 등 수사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다. 비상 체제 돌입한 경찰 사건 조작과 은폐, 뇌물수수 등 중대 비위가 확인되면 엄정 수사하고, 비위 당사자에 대해서는 파면·해임과 같은 중징계를 원칙으로 삼는 등 내·외부 통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김 대행은 “‘사건 핑퐁’으로 피해자 권리 구제가 지연돼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 우려하는 부실·불공정 수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