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라도 과일왕’ 현대판 노예계약 의혹

왕이 되고픈 젊은 사업가의 몰락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왕’이 되고 싶었던 걸까. 30대 젊은 대표는 벌이는 사업마다 상호에 ‘왕’을 넣었다. 사업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그는 군림했고 다른 사람들을 신하로 여겼다. 거듭되는 폭정에 결국 난이 일어났다.

매일 새벽 과일 도매시장으로 출근, 시장을 뛰어다니며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찾던 남자가 있다. 30대 초반 남자가 친구를 돕다 자신의 사업을 차려 독립하는 모습에 미디어는 ‘신화’라는 찬사를 보냈다.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젊은 사업가. 화려한 외향에 많은 사람이 현혹됐다. 5년여가 지난 현재, 신화는 끝났다.

계약서는
프랜차이즈

코로나19는 유통 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감염병의 창궐로 오프라인 시장이 사망 선고를 받자 반대급부로 온라인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딸깍’ 몇 번으로 원하는 물건을 하루이틀 사이에 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너도나도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었다. 온라인 시장의 팽창으로 경쟁이 심해지자 유통 과정에 변주를 주는 방식이 생겨났다. 온라인 채팅방 등을 통한 공동구매 시스템도 그중 하나였다. 판매자는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소비자를 모은다. 소비자는 채팅방에 판매자가 올리는 물품을 살지 말지 의사를 표한다. 계좌이체 등을 통해 물품 대금을 지급하면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배송한다.

온라인 쇼핑몰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방식은 물품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대를 낮출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공동구매, 즉 공구 인원이 늘어날수록 물품이 싸지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공구 방식은 단점도 뚜렷했다. 특히 물건을 확실하게 받아볼 수 있다는 확신이 부족했다. 판매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소비자의 돈을 들고 도망가면 말 그대로 답이 없었다. 또 과일이나 채소 등 신선 식품은 품질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한 온라인 주문, 오프라인 픽업 방식이 생겨났다. 온라인 채팅방을 통해 주문을 받는 건 같지만 물건은 소비자가 직접 지정된 매장으로 가서 받는 것이다. 계산도 매장에서 진행한다. 과일이나 채소, 생선 등 신선도가 생명인 물건도 직접 품질을 확인한 뒤 거래할 수 있고 대면으로 결제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았다.

이 경우 판매자와 소비자의 온라인 직거래가 아닌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거래가 이뤄지면서 유통 단계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또 이 과정에는 유통업자와 오프라인 매장 운영자 사이에 일종의 계약 관계가 발생한다. 이 관계가 본사와 가맹점으로 묶인 게 바로 프랜차이즈 사업이다.

30세에 전남 지역서 시작
온라인+오프라인 방식으로

박모 대표도 이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농수산물시장에서 친구와 함께 일하던 그는 전남 지역에서 노점으로 시작해 2023년 10월 ‘과일왕’이라는 상호를 달고 매장을 냈다. 당시 그의 나이 30세였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 등에는 박 대표가 좋은 품질의 과일을 싼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새벽 시장을 누비는 모습이 올라왔다.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과일왕의 네이버 밴드는 성황을 이뤘다. 해당 밴드는 지점별로 구분돼 있는데 참여자가 많은 채팅방은 그 수가 10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점이 잠재적 소비자를 1000여명 이상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과일왕 상호를 단 매장이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여럿 생겨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유통을 맡았다. 서울, 광주 등의 농수산물시장에 가서 새벽마다 열리는 경매를 보고 각종 물품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공판장으로 간다. 각 매장의 점주들이 공판장에 모여 그날 판매할 물품을 받아 장사를 시작한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지난 1월까지 과일왕 상호를 단 매장은 19개였다. 하지만 지난 8월 말 기준 매장 수는 10개로 급감했다.

과일왕 상호를 뗀 점주들이 문제 삼은 건 박 대표의 횡포였다. 점주들은 본사의 갑질이 극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물품 공급부터 판매 가격, 물량, 심지어 매장 휴가 기간까지 박 대표가 통제했다는 것이다. 점주들은 “엄연히 계약을 통해 묶인 관계인데 (점주들을) 직원도 모자라 신하나 시녀처럼 여겼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과일왕 법인과 점주 사이의 계약서를 보면 프랜차이즈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 여럿 확인된다. 일단 ‘본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본사는 아래 기재된 판매점에 ‘과일왕&ALL바름’ 및 기타 본사가 지정 또는 사용하는 등록 상표 및 상호의 사용을 승인하며 판매점은 이를 수락한다'는 문구가 계약서 제2조(판매점 가입)에 나온다. ALL바름은 박 대표가 과일왕에 이어 낸 상호로, 몇몇 매장은 현재 이 간판을 달고 있다.

시작은
노점서

물품도 본사를 통해서만 받도록 했다. ‘판매점은 과일왕&ALL바름의 상품을 찾는 고객에게 좋은 맛과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본사가 공급 또는 지정하는 상품 및 제품만을 취급해야 한다’고 제7조(상품 및 제품의 공급과 가격) 항목에 기재했다. 상품의 공급가, 판매가도 본사가 정한다고 했다.

‘계약금 및 보증금(제4조)’ 명목의 돈도 오갔다. 과일왕 법인은 ‘판매점은 본사가 제공하는 상호, 상표 및 사업상의 판매 수익 창출을 위한 안전한 공급 대가로서 ○○○만원을 본사에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같은 항목에 ‘본사는 판매점의 상권을 지켜주고 안전한 공급에 대해 책임진다’는 문구도 넣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가맹사업거래의 요건으로 ▲가맹본부가 가맹점사업자에 영업 표지 사용을 허락 ▲가맹점사업자는 일정한 품질 기준이나 영업 방식에 따라 상품 또는 용역을 판매 ▲가맹본부가 경영 및 영업 활동 등에 대한 지원, 교육 및 통제 등을 수행 ▲가맹점사업자가 영업 표지의 사용과 경영 및 영업 활동 등에 대한 지원‧교육의 대가로 가맹금 지급 ▲계속적인 거래관계 등을 명시했다.

점주들은 “동일한 간판, 독점적 물품 공급, 가맹비 등 박○○은 가맹사업을 한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프랜차이즈 사업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점주들이 공정위에 신고한 내용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위법 사항이 언급된다. 하나는 가맹점주가 본사의 일반현황, 가맹사업 현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항목을 기재한 ‘정보공개서’를 등록하지 않은 점, 또 하나는 가맹비 명목의 돈을 개인 계좌로 받은 점 등이다. 가맹사업법상 가맹금은 반드시 은행 등 제3의 예치기관을 통해 입금받아야 한다.

쉬는 날도
통제했다

점주들의 주장에 따르면 박 대표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개인 사업처럼 했다. 실제 일부 점주들은 계약조차 맺지 않고 지점을 운영했다. 박 대표의 어린 시절 학원 선생님, 테니스 선생님 등 지인에서 시작된 관계도 여러 명이었다. 2000만원, 3000만원 혹은 무료 등 계약금 및 보증금 액수도 중구난방이었다.

또 점주들은 ‘마진 구조’가 심각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점이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점주들에 따르면 박 대표는 중도매인 자격이 없다. 중도매인은 경매 등에 직접 참여해 물건을 구매하고 이를 소매상 등에게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 허가가 필요하다. 대신 박 대표는 각 물품의 중도매인과 관계를 맺고 거래를 트는 방식을 택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점주들이 최초 구매가격을 모르고 물품을 공급받았다는 점이다. 즉 점주들이 물품을 받는 과정에서 듣는 건 ‘얼마에 팔아라’, 즉 판매가다. 일반적으로 물건을 유통하는 과정에서는 단계마다 마진이 붙는다. 유통업자, 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 물건이 가기까지 각 단계에서 이익을 보는 정도의 액수를 붙이는 것이다. 그래서 유통 단계가 복잡할수록 물품 가격은 높아진다.

한 점주는 “이 장사는 많이 팔수록 이득이 생기는 ‘박리다매’ 방식이다. 싸게 많이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박○○은 본인만 박리다매 방식을 취했다. 얼마에 사 왔는지 점주들한테 공유하질 않으니 마진을 얼마나 붙인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며 “본인이 돈을 받기 위해 영수증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그제야 최초 구매가를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또 (물품을) 박○○이 정해준 가격에 반드시 팔도록 했다. 박○○이 정해준 가격으로는 도저히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한 지점의 점주가 마진을 조금 더 붙여 판매한 적이 있는데 박○○이 과일왕 통합 밴드 라이브 방송을 통해 ‘폭리’를 취한다고 저격했다. 매장 자체가 동네, 단골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본사 대표의 공격은 타격이 컸다. 네이버 밴드, 유튜브 방송으로 점주들을 쥐락펴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개 육박했던 매장 수 절반
공정위 신고에 형사고소까지

그러면서 “프랜차이즈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건 일정 수준의 이익이 담보되기 때문 아니냐. 하지만 과일왕은 매장을 유지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였다. 하루에 16시간씩 일을 하는데 수중에 돈이 안 남는 희한한 일이 반복됐다. 또 박○○은 물품을 많이 샀다 싶으면 그걸 지점에 넘겼다. 재고는 쌓이고 인건비, 차량비, 임대료, 물품 구매비 같은 고정비는 매달 나가니 버티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박 대표를 믿고 매장을 차렸던 점주들 가운데 일부는 폐점에 이르렀고, 한 점주는 수천만원의 빚을 져 현재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절 이후엔 2주가량 매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할 때는 실소를 터트리기도 했다. 한 점주는 “본인이 쉬어야 한다고 했다. 물건을 본사에서밖에 받을 수 없으니 박○○이 쉬면 매장도 쉬는 거다. 추석, 설 때마다 그랬다”고 말했다.

점주들에 따르면 말을 듣지 않는 이들에 대한 보복도 철저했다. 한 점주는 “참다 참다 과일왕과 거래를 끊었는데 우리 매장 바로 뒤에 지점을 내줬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해당 점주는 다른 지점처럼 ‘제품 공급 및 판매점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과일왕(○○점) 양도‧양수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해당 점주는 과일왕의 한 지점을 아예 박 대표로부터 사버린 것이다. 거래대금은 2억원이었다. 그럼에도 해당 지점은 다른 곳과 동일하게 운영됐고 똑같이 박 대표의 통제를 받았다. 역으로 말하면 해당 점주는 가맹비로 2억원을 낸 셈이다. 그리고 현재는 박 대표가 내준 새로운 과일왕 매장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당 계약서 제12조(상권)에 ‘상권 및 영업 지역은 변경 상호 합의 후 결정한다’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다.

법정 공방
쌍방 가나

점주들은 “대부분 점주가 장사를 처음 한다. 박○○ 말만 믿고 뭣 모르고 덤볐다가 된통 당하는 중”이라며 “박○○은 과일왕에서 문제가 일어나자 ‘ALL바름 마켓’으로 간판 갈이했다. 지금도 가맹 모집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현재 점주들은 공정위 신고, 형사고소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선 기자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울먹인’ 과일왕의 해명 
가맹사업 부인 “픽업 매장”

과일왕 박모 대표는 지난 16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30분가량 울먹였다.

과일왕 전 점주들이 박 대표가 가맹사업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각 지점은 ‘픽업 매장’이었을 뿐 본사와 가맹점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내가 무지하다 보니 계약서에 가맹비로 적어서 받게 됐다”며 “가맹 모집을 한 건 아니고 손님들이 직영 매장을 이용하다가 다른 지역에도 할 수 없냐고 문의를 많이 주셨다. (물건을) 픽업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가맹 아닌 가맹처럼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픽업 매장이 있고 물건을 납품해야 하기에 보증금 형식으로 돈을 받은 매장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비용을 받지 않았다. 일부 점주들은 매장을 2~3개씩 운영했는데 아예 (보증금을) 받지 않은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 소비자가 모인 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나는 매장을 하라고 권유한 사실이 없다. 하고 싶다고 찾아오신 분이 많았는데 거절하다가 (일부 사람들이) 픽업 매장으로서만 하게 해달라고 해서 밴드를 만들었다”며 “가맹이라고 하면 (본사가) 내부 인테리어나 이런 걸 하도록 하지만 나는 다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먹고살게 해달라는데”

점주들이 돈을 벌지 못했다며 마진 구조에 대해 비판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돈을 못 버는 데 이걸(매장) 했겠나. 돈을 못 버는데 매장 하나를 더 해달라고 말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물론 장사가 가게마다 잘 됐겠나, 안 되는 데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힘들어서 그만하겠다고 하면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게 돈도 돌려줬고, 가게를 파는 데도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아울러 “손님들이 내 얼굴을 보고 오는 건데 지점이 문을 닫으면 내가 장사를 못한 거나 다름없지 않나. 그분들이 피해 보도록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억울함도 토로했다. 박 대표는 “문제를 제기한 점주들이 장사가 잘될 것 같은 곳에 매장을 하나 더 내달라 했는데 내가 거절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쌓였다가 터진 것 같다. 직원들하고도 트러블이 굉장히 많았다”며 “자기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지점을 하셨던 분들 가운데 저한테 도움 안 받은 데는 한 곳도 없다. 차도 빌려주고 힘들다는 분은 월급도 챙겨줬다. 배달까지는 안 해 드리는데 일부 지점은 해드리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느냐는 질문에는 “힘들다고, 먹고살게 도와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라고 울음을 터트렸다.

현재 박 대표 측은 변호사를 선임해 점주들의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형사고소 등에 대응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한 점주가 네이버 밴드에서 2000명이 넘는 회원을 새벽에 다 탈퇴 처리해 버리고 그분들한테 문자를 보냈다. 새로 밴드를 만들었으니 가입하라고. 네이버 밴드 회원은 내 개인 자산이지 않나. 일부 회원들이 개인 정보가 유출된 부분에 대해 기분이 나쁘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들에게 위임받아 개인정보 유출 관련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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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공소청, 제 기능 못하는 내막

중수·공소청, 제 기능 못하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이 출범했다. 개문발차 상태다. 수장 공백과 법령 미비, 수사 인프라 모두 정리되지 않았다. 중수청의 경우 본청 사무실 공사 마무리까지 두 달여가 소요될 전망이다. 검사·수사관 대부분은 출근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담당했던 사건이 처리되는 데 수개월이 밀리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7대 중대범죄 수사를 맡을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 기능을 담당할 공소청 모두 수장과 인력, 하위 법령, 사무 공간 등 총체적 부실 상태로 개청했다. 채용이 확정된 이들은 어디로 출근해야 하는지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완성도 안 됐다 중수청은 지난달 7일 김지용 후보자가 초대 청장으로 제청됐으나 여권 내 반발로 인해 추가 검증을 거치느라 청문회조차 열지 못했다. 중수청법상 중수청 간부급인 1∼5급 수사관은 청장의 추천을 거치게끔 돼있지만, 청장 없이 문을 여는 바람에 첫 인사부터 원칙이 깨졌다.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정원은 수사관 2567명과 일반직 307명 등 총 2874명인데, 1·2차 특례 임용에 지원한 이들이 총 1962명에 그쳤고 5급 이상은 정원 629명에 지원자 212명으로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청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오전까지도 인사가 발표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어느 지역의 중수청에 출근해야 할지 통보받지 못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태였다. 중수청은 청사를 임대했으나 수사 인프라와 사무 공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본청과 서울청이 쓰게 될 서울 중구 르네스퀘어빌딩은 2∼17층을 임대했으나 당장 사용할 준비가 된 것은 여섯층뿐이다. 수사기관의 필수 시설인 조사실과 피의자 신병을 확보할 만한 시설을 갖추지 못해 당분간 타 기관의 공간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다. 중수청 개청준비단은 서울 3곳, 나머지 5개 지역 1곳 등 총 8곳의 경찰서 유치장을 사용하기로 경찰청과 협의했다. 법무부 교정본부에도 6개 지방중수청 인근 교정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도 아직 마련되지 않아 완성 전까진 경찰과 논의하며 사용하기로 했는데, 개청 직후에도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았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청의 청사와 시스템을 활용하고, 인력도 상당 부분 이어받아 중수청보다 준비가 순조로웠다. 지난달 22일에 직제안을 확정한 데 이어 29일에는 공소청 개청 날짜에 맞춰 검사 192명의 인사를 단행하는 등 진용을 갖추고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중이다. 다만 공소청 수장인 검찰총장은 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법무부 장관마저 공석이어서 후보자가 있는 중수청장보다도 임명에 먹구름이 꼈다. 중수청, 수사관 충원 부족한데 5급 이상 간부 1/3 수준 사무실 공사 마무리 최소 두달 “어디로 출근할지도 몰라” 우선 법무부는 공소청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달 23일 자로 이정현 신임 대검 차장검사를 임명해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공소청은 개정된 형사소송법 취지에 맞게 하위·관계 법령을 정비하는 작업도 끝마치지 못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에 맞게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하는 법령이 100여개에 달해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최근 법무부령 24건을 공포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검찰청 관련 명칭들을 정비하는 내용이다. 법무부는 오는 2일 개청에 맞춰 법령 개정을 모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수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후속 법안 논의에서 일부 기관이 배제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중수·공소청·경찰 3개 기관의 사건 이첩 관련 규정을 담은 중수청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공소청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록에 따르면 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공소청 관계자는 나와 있느냐”고 묻자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없다”고 답했다. 의사결정권자 공백으로 기관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행 중수청법에 따르면 중수청장은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도 중수청 수사와 겹치거나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해 이첩을 요구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관장의 결단이 필수적인데 직무대행 간 협의만으로는 이견을 좁혀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두 기관의 정상적 운영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합동수사기구도 문을 닫게 됐다. 서울서부지검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합동수사팀은 1년2개월의 수사 끝에 지난달 30일 활동을 중단했다.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보이스피싱범죄합동수사부와 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 서울남부지검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도 운영을 멈췄다. ‘검 목소리’ 완전 배제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중수청에서 금융위원회와 국세청 등으로부터 인력을 파견받아 합동수사기구가 하던 업무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중수청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수사가 불가능하다”며 “적어도 두세달 뒤에야 다시 업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거대해진 경찰 권력을 통제·견제하기 위한 장치였던 보완수사권마저 완전히 폐지됐다. 구자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지난 7월 “한 번 더 살펴봐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며 사의를 표명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현재 경찰의 역량과 인력을 감안했을 때 실무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강경파의 입김에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사라졌다. “공소청의 장은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공소청법에 따라 공소청은 출범 시작부터 리더십 부재라는 혼란 속에서 출발하게 됐다. 검찰 수사권을 없애는 형사소송법만 개정됐을 뿐 그에 따른 하위 법령과 규칙 등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공소청 직제안마저 출범 열흘 전 가까스로 완성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과 연동해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할 하위 법령은 137개에 달한다. 형법과 민사소송법은 물론 성폭력·스토킹 처벌법 등 개별 특별법과 법무부 소관 관계 법률만 61개에 달한다. ‘검찰’이라는 명칭 자체가 없어지는 탓에 50개의 대통령령을 정비해야 하고 검사의 수사권이 명시된 각종 수사준칙도 수정해야 한다. 검찰사건 사무규칙은 조문만 300개가 넘는다. 그만큼 법제처의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논란만 검사의 역할 역시 수사 담당과 기소 담당으로 이원화한 데 포함되지 않는 검사는 수사 자체를 할 수 없다. 수사 역량이 뛰어난 다수의 검사를 중수청으로 보내 국가 수사 역량을 보존하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당초 정부안은 검찰청 검사가 중수청으로 이직할 경우 ‘수사사법관’으로 임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민주당이 이를 “이름만 중수청으로 바뀐 도로 검찰청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며 반대했다. 두 기관 출범 직전까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김 후보자를 두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중수·공소청 출범 직전인 지난 1일에서야 옹호하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해 “이런 사람을 ‘친윤(친 윤석열) 검사’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허위임을 알면서도 흠집을 내고 공격하기 위해 하는 억지 주장이라면 비판이 아닌 비방이고 국정 조언이 아닌 국정 방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후보자에 대해 강도 높게 공개 비판해 온 추미애 경기도지사를 겨냥해 “김 후보자는 문재인정부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사장으로 발탁 승진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도 유튜브에서 “심지어는 김 후보자가 ‘친윤’ 검사, ‘친한(친 한동훈)’ 검사라고 일부가 지적한다”며 “여러 가지 추가 검증 과정을 살펴보면 실제 그것과는 굉장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민석 대표도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한 여권 일각의 비판을 이 대통령이 직접 반박한 것에 대해 “전혀 아닌 것을 계속하거나, 아니라고 설명했는데도 계속 프레이밍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옹호했다. 공소청 수장 임명 법무부 장관 있어야 추천 거쳐 가능 대통령령 포함 하위 법령 100여건 깡그리 수정 필요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인사청문 요청서를 보낼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친명(친 이재명)계 핵심인 김영진 행안위원장도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서 “후보자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좀 과하지 않나”라며 “행안위에 중수청장 후보자를 보내서 (인사청문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수청이 개문발차하는 만큼 임명동의안이 국회로 제출될 경우 수장 공백 최소화를 위해 국정감사 기간 중이라도 인사청문회를 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범여권에서는 김 후보자를 향한 자진 사퇴 압박이 이날도 이어졌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원내대표는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철학도 없고, 친 윤석열 검사가 아니었다고 얘기하지만 그 당시 항명 사건에서도 동참했다”며 “여러 가지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경찰청에서 열린 ‘전국 수사 지휘관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새 체계가 현장에 뿌리내릴 때까지 ‘비상대응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김 대행은 “경찰 역량이 충분한지, 권한을 공정하고 절제하며 행사하는지 국민께서 엄중한 눈으로 지켜보신다”며 “관서·수사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비상 대응의 일환으로 경찰서장이 앞으로 중요 사건과 검사 요구 사건 등의 처리 현황을 매일 확인하고 시도청과 국가수사본부까지 교차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전 수사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 권리 보호 절차를 대폭 강화하고, 사건 진행에 대한 통지를 내실화하는 등 수사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다. 비상 체제 돌입한 경찰 사건 조작과 은폐, 뇌물수수 등 중대 비위가 확인되면 엄정 수사하고, 비위 당사자에 대해서는 파면·해임과 같은 중징계를 원칙으로 삼는 등 내·외부 통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김 대행은 “‘사건 핑퐁’으로 피해자 권리 구제가 지연돼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 우려하는 부실·불공정 수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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