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왕’이 되고 싶었던 걸까. 30대 젊은 대표는 벌이는 사업마다 상호에 ‘왕’을 넣었다. 사업은 이름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그는 군림했고 다른 사람들을 신하로 여겼다. 거듭되는 폭정에 결국 난이 일어났다.
매일 새벽 과일 도매시장으로 출근, 시장을 뛰어다니며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찾던 남자가 있다. 30대 초반 남자가 친구를 돕다 자신의 사업을 차려 독립하는 모습에 미디어는 ‘신화’라는 찬사를 보냈다. 1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젊은 사업가. 화려한 외향에 많은 사람이 현혹됐다. 5년여가 지난 현재, 신화는 끝났다.
계약서는
프랜차이즈
코로나19는 유통 시장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감염병의 창궐로 오프라인 시장이 사망 선고를 받자 반대급부로 온라인 시장이 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딸깍’ 몇 번으로 원하는 물건을 하루이틀 사이에 받을 수 있게 됐다.
이후 너도나도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었다. 온라인 시장의 팽창으로 경쟁이 심해지자 유통 과정에 변주를 주는 방식이 생겨났다. 온라인 채팅방 등을 통한 공동구매 시스템도 그중 하나였다. 판매자는 네이버 밴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소비자를 모은다. 소비자는 채팅방에 판매자가 올리는 물품을 살지 말지 의사를 표한다. 계좌이체 등을 통해 물품 대금을 지급하면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배송한다.
온라인 쇼핑몰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방식은 물품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가격대를 낮출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공동구매, 즉 공구 인원이 늘어날수록 물품이 싸지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공구 방식은 단점도 뚜렷했다. 특히 물건을 확실하게 받아볼 수 있다는 확신이 부족했다. 판매자가 나쁜 마음을 먹고 소비자의 돈을 들고 도망가면 말 그대로 답이 없었다. 또 과일이나 채소 등 신선 식품은 품질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한 온라인 주문, 오프라인 픽업 방식이 생겨났다. 온라인 채팅방을 통해 주문을 받는 건 같지만 물건은 소비자가 직접 지정된 매장으로 가서 받는 것이다. 계산도 매장에서 진행한다. 과일이나 채소, 생선 등 신선도가 생명인 물건도 직접 품질을 확인한 뒤 거래할 수 있고 대면으로 결제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선호도가 높았다.
이 경우 판매자와 소비자의 온라인 직거래가 아닌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거래가 이뤄지면서 유통 단계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또 이 과정에는 유통업자와 오프라인 매장 운영자 사이에 일종의 계약 관계가 발생한다. 이 관계가 본사와 가맹점으로 묶인 게 바로 프랜차이즈 사업이다.
30세에 전남 지역서 시작
온라인+오프라인 방식으로
박모 대표도 이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농수산물시장에서 친구와 함께 일하던 그는 전남 지역에서 노점으로 시작해 2023년 10월 ‘과일왕’이라는 상호를 달고 매장을 냈다. 당시 그의 나이 30세였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 등에는 박 대표가 좋은 품질의 과일을 싼 가격에 구매하기 위해 새벽 시장을 누비는 모습이 올라왔다.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과일왕의 네이버 밴드는 성황을 이뤘다. 해당 밴드는 지점별로 구분돼 있는데 참여자가 많은 채팅방은 그 수가 10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점이 잠재적 소비자를 1000여명 이상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과일왕 상호를 단 매장이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여럿 생겨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유통을 맡았다. 서울, 광주 등의 농수산물시장에 가서 새벽마다 열리는 경매를 보고 각종 물품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공판장으로 간다. 각 매장의 점주들이 공판장에 모여 그날 판매할 물품을 받아 장사를 시작한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지난 1월까지 과일왕 상호를 단 매장은 19개였다. 하지만 지난 8월 말 기준 매장 수는 10개로 급감했다.
과일왕 상호를 뗀 점주들이 문제 삼은 건 박 대표의 횡포였다. 점주들은 본사의 갑질이 극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물품 공급부터 판매 가격, 물량, 심지어 매장 휴가 기간까지 박 대표가 통제했다는 것이다. 점주들은 “엄연히 계약을 통해 묶인 관계인데 (점주들을) 직원도 모자라 신하나 시녀처럼 여겼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과일왕 법인과 점주 사이의 계약서를 보면 프랜차이즈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 여럿 확인된다. 일단 ‘본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본사는 아래 기재된 판매점에 ‘과일왕&ALL바름’ 및 기타 본사가 지정 또는 사용하는 등록 상표 및 상호의 사용을 승인하며 판매점은 이를 수락한다'는 문구가 계약서 제2조(판매점 가입)에 나온다. ALL바름은 박 대표가 과일왕에 이어 낸 상호로, 몇몇 매장은 현재 이 간판을 달고 있다.
시작은
노점서
물품도 본사를 통해서만 받도록 했다. ‘판매점은 과일왕&ALL바름의 상품을 찾는 고객에게 좋은 맛과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본사가 공급 또는 지정하는 상품 및 제품만을 취급해야 한다’고 제7조(상품 및 제품의 공급과 가격) 항목에 기재했다. 상품의 공급가, 판매가도 본사가 정한다고 했다.
‘계약금 및 보증금(제4조)’ 명목의 돈도 오갔다. 과일왕 법인은 ‘판매점은 본사가 제공하는 상호, 상표 및 사업상의 판매 수익 창출을 위한 안전한 공급 대가로서 ○○○만원을 본사에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 같은 항목에 ‘본사는 판매점의 상권을 지켜주고 안전한 공급에 대해 책임진다’는 문구도 넣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가맹사업거래의 요건으로 ▲가맹본부가 가맹점사업자에 영업 표지 사용을 허락 ▲가맹점사업자는 일정한 품질 기준이나 영업 방식에 따라 상품 또는 용역을 판매 ▲가맹본부가 경영 및 영업 활동 등에 대한 지원, 교육 및 통제 등을 수행 ▲가맹점사업자가 영업 표지의 사용과 경영 및 영업 활동 등에 대한 지원‧교육의 대가로 가맹금 지급 ▲계속적인 거래관계 등을 명시했다.
점주들은 “동일한 간판, 독점적 물품 공급, 가맹비 등 박○○은 가맹사업을 한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프랜차이즈 사업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점주들이 공정위에 신고한 내용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위법 사항이 언급된다. 하나는 가맹점주가 본사의 일반현황, 가맹사업 현황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항목을 기재한 ‘정보공개서’를 등록하지 않은 점, 또 하나는 가맹비 명목의 돈을 개인 계좌로 받은 점 등이다. 가맹사업법상 가맹금은 반드시 은행 등 제3의 예치기관을 통해 입금받아야 한다.
쉬는 날도
통제했다
점주들의 주장에 따르면 박 대표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개인 사업처럼 했다. 실제 일부 점주들은 계약조차 맺지 않고 지점을 운영했다. 박 대표의 어린 시절 학원 선생님, 테니스 선생님 등 지인에서 시작된 관계도 여러 명이었다. 2000만원, 3000만원 혹은 무료 등 계약금 및 보증금 액수도 중구난방이었다.
또 점주들은 ‘마진 구조’가 심각했다고 입을 모았다. 지점이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점주들에 따르면 박 대표는 중도매인 자격이 없다. 중도매인은 경매 등에 직접 참여해 물건을 구매하고 이를 소매상 등에게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 허가가 필요하다. 대신 박 대표는 각 물품의 중도매인과 관계를 맺고 거래를 트는 방식을 택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점주들이 최초 구매가격을 모르고 물품을 공급받았다는 점이다. 즉 점주들이 물품을 받는 과정에서 듣는 건 ‘얼마에 팔아라’, 즉 판매가다. 일반적으로 물건을 유통하는 과정에서는 단계마다 마진이 붙는다. 유통업자, 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 물건이 가기까지 각 단계에서 이익을 보는 정도의 액수를 붙이는 것이다. 그래서 유통 단계가 복잡할수록 물품 가격은 높아진다.
한 점주는 “이 장사는 많이 팔수록 이득이 생기는 ‘박리다매’ 방식이다. 싸게 많이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다. 그런데 박○○은 본인만 박리다매 방식을 취했다. 얼마에 사 왔는지 점주들한테 공유하질 않으니 마진을 얼마나 붙인 건지 알 방법이 없었다”며 “본인이 돈을 받기 위해 영수증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그제야 최초 구매가를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또 (물품을) 박○○이 정해준 가격에 반드시 팔도록 했다. 박○○이 정해준 가격으로는 도저히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한 지점의 점주가 마진을 조금 더 붙여 판매한 적이 있는데 박○○이 과일왕 통합 밴드 라이브 방송을 통해 ‘폭리’를 취한다고 저격했다. 매장 자체가 동네, 단골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본사 대표의 공격은 타격이 컸다. 네이버 밴드, 유튜브 방송으로 점주들을 쥐락펴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개 육박했던 매장 수 절반
공정위 신고에 형사고소까지
그러면서 “프랜차이즈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건 일정 수준의 이익이 담보되기 때문 아니냐. 하지만 과일왕은 매장을 유지할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였다. 하루에 16시간씩 일을 하는데 수중에 돈이 안 남는 희한한 일이 반복됐다. 또 박○○은 물품을 많이 샀다 싶으면 그걸 지점에 넘겼다. 재고는 쌓이고 인건비, 차량비, 임대료, 물품 구매비 같은 고정비는 매달 나가니 버티기가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박 대표를 믿고 매장을 차렸던 점주들 가운데 일부는 폐점에 이르렀고, 한 점주는 수천만원의 빚을 져 현재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절 이후엔 2주가량 매장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할 때는 실소를 터트리기도 했다. 한 점주는 “본인이 쉬어야 한다고 했다. 물건을 본사에서밖에 받을 수 없으니 박○○이 쉬면 매장도 쉬는 거다. 추석, 설 때마다 그랬다”고 말했다.
점주들에 따르면 말을 듣지 않는 이들에 대한 보복도 철저했다. 한 점주는 “참다 참다 과일왕과 거래를 끊었는데 우리 매장 바로 뒤에 지점을 내줬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해당 점주는 다른 지점처럼 ‘제품 공급 및 판매점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과일왕(○○점) 양도‧양수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해당 점주는 과일왕의 한 지점을 아예 박 대표로부터 사버린 것이다. 거래대금은 2억원이었다. 그럼에도 해당 지점은 다른 곳과 동일하게 운영됐고 똑같이 박 대표의 통제를 받았다. 역으로 말하면 해당 점주는 가맹비로 2억원을 낸 셈이다. 그리고 현재는 박 대표가 내준 새로운 과일왕 매장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당 계약서 제12조(상권)에 ‘상권 및 영업 지역은 변경 상호 합의 후 결정한다’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다.
법정 공방
쌍방 가나
점주들은 “대부분 점주가 장사를 처음 한다. 박○○ 말만 믿고 뭣 모르고 덤볐다가 된통 당하는 중”이라며 “박○○은 과일왕에서 문제가 일어나자 ‘ALL바름 마켓’으로 간판 갈이했다. 지금도 가맹 모집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현재 점주들은 공정위 신고, 형사고소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선 기자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울먹인’ 과일왕의 해명
가맹사업 부인 “픽업 매장”
과일왕 박모 대표는 지난 16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30분가량 울먹였다.
과일왕 전 점주들이 박 대표가 가맹사업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각 지점은 ‘픽업 매장’이었을 뿐 본사와 가맹점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내가 무지하다 보니 계약서에 가맹비로 적어서 받게 됐다”며 “가맹 모집을 한 건 아니고 손님들이 직영 매장을 이용하다가 다른 지역에도 할 수 없냐고 문의를 많이 주셨다. (물건을) 픽업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가맹 아닌 가맹처럼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픽업 매장이 있고 물건을 납품해야 하기에 보증금 형식으로 돈을 받은 매장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비용을 받지 않았다. 일부 점주들은 매장을 2~3개씩 운영했는데 아예 (보증금을) 받지 않은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 소비자가 모인 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나는 매장을 하라고 권유한 사실이 없다. 하고 싶다고 찾아오신 분이 많았는데 거절하다가 (일부 사람들이) 픽업 매장으로서만 하게 해달라고 해서 밴드를 만들었다”며 “가맹이라고 하면 (본사가) 내부 인테리어나 이런 걸 하도록 하지만 나는 다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먹고살게 해달라는데”
점주들이 돈을 벌지 못했다며 마진 구조에 대해 비판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돈을 못 버는 데 이걸(매장) 했겠나. 돈을 못 버는데 매장 하나를 더 해달라고 말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물론 장사가 가게마다 잘 됐겠나, 안 되는 데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힘들어서 그만하겠다고 하면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게 돈도 돌려줬고, 가게를 파는 데도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아울러 “손님들이 내 얼굴을 보고 오는 건데 지점이 문을 닫으면 내가 장사를 못한 거나 다름없지 않나. 그분들이 피해 보도록 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억울함도 토로했다. 박 대표는 “문제를 제기한 점주들이 장사가 잘될 것 같은 곳에 매장을 하나 더 내달라 했는데 내가 거절하니까 그런 부분에서 쌓였다가 터진 것 같다. 직원들하고도 트러블이 굉장히 많았다”며 “자기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지점을 하셨던 분들 가운데 저한테 도움 안 받은 데는 한 곳도 없다. 차도 빌려주고 힘들다는 분은 월급도 챙겨줬다. 배달까지는 안 해 드리는데 일부 지점은 해드리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왜 그렇게까지 했느냐는 질문에는 “힘들다고, 먹고살게 도와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라고 울음을 터트렸다.
현재 박 대표 측은 변호사를 선임해 점주들의 공정거래위원회 신고, 형사고소 등에 대응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한 점주가 네이버 밴드에서 2000명이 넘는 회원을 새벽에 다 탈퇴 처리해 버리고 그분들한테 문자를 보냈다. 새로 밴드를 만들었으니 가입하라고. 네이버 밴드 회원은 내 개인 자산이지 않나. 일부 회원들이 개인 정보가 유출된 부분에 대해 기분이 나쁘다는 뜻을 전해왔다. 이들에게 위임받아 개인정보 유출 관련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