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은 국가 최고 권력자의 위기관리 역량뿐 아니라 최일선 현장을 책임지는 지휘관의 역량까지 가혹한 시험대에 올린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22년 이태원 참사는 국가 재난 대응체계가 상층부 컨트롤타워와 현장 지휘부 모두에게 어떤 책무를 요구하는지 뼈아프게 각인시켰다.
세월호가 초기 상황 파악과 보고, 구조 지시 등 상층부 지휘체계의 총체적 기능 부전을 드러냈다면, 이태원은 다중밀집 사전 대비의 부재와 현장 기관 간 공조의 취약성을 보여줬다.
거대한 비극을 최고 권력자나 특정 기관장의 무능으로만 치부해서는 재난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사고 직후 현장에 투입된 기관들이 무엇을 파악했고, 누구와 소통했으며, 가용 자원을 어떻게 결집했는지 냉정히 복기해야 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긴급구조통제단장, 즉 소방서장에게 긴급구조활동의 총괄·조정 권한을 부여한다. 그러나 현장 통합지휘는 소방이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를 하부 조직처럼 움직이는 수직적 지휘가 아니다. 각 기관은 고유한 지휘체계와 법적 책무를 유지한다.
따라서 소방 지휘권의 실질적 본질은 강제적 위임 권한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직을 오직 인명구조라는 목표 아래 정렬시키는 ‘조정 리더십’에 있다.
법조문에 적힌 권한만으로는 극한 혼란 속에서 유관 기관을 즉각 움직일 수 없다. 평소 축적된 상호 신뢰와 실질적 공조 네트워크, 그리고 위급할 때 상대 기관장을 움직이는 지휘관의 영향력이 관건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은 두 핵심 지휘관의 엇갈린 행적에서 그 괴리를 드러냈다. 용산소방서장은 현장에 신속히 진입해 상황을 파악하고 구조를 개시했다. 반면 용산경찰서장은 도보 10여분 거리를 차량으로 1시간 이상이 걸려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의 질서 유지와 현장 통제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경찰서장의 공백은 혼란을 가중했다. 문제는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경찰서장의 진술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소방 지휘관의 책무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현장에 먼저 도착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면, 경찰서장의 위치를 즉시 확인하고 직통 연락을 시도했어야 한다. 재난망을 통한 공동대응 요청과 기계적 통보만으로 충분했는지, 경찰서장에게 위급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신속한 현장 합류를 강력히 촉구했는지 따져야 한다.
가용 경찰력의 전면 투입을 견인하기 위해 전화, 무전, 현장 연락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했는지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다.
이는 소방서장이 경찰을 물리적으로 강제할 권한이 있었는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현장을 먼저 장악한 지휘관으로서 인명 구명이라는 절대적 목표 앞에 얼마나 치열하게 조정 역량을 발휘했는지를 묻는 것이다. 지휘권은 타 기관을 지배하는 힘이 아니라, 타 기관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책임이다.
물론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현장 지휘관 개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다중밀집에 대한 예방과 안전관리 부재,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미흡, 경찰 지휘부의 안이한 판단과 기동대 배치 문제, 응급 이송과 의료 대응의 병목 등 복합적인 구조적 요인이 중첩되었다. 한 기관장의 연락 미비만으로 대규모 인명피해의 전체 원인을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현장에 먼저 도착한 지휘관이 유관 기관장을 얼마나 신속히 결집하고 자원을 동원했는지는 반드시 복기해야 한다. 세월호가 상부 지휘와 구조 지시의 결여를 질타했다면, 이태원은 분절된 현장 기관들이 골든타임 내 유기적으로 맞물려 작동하지 못한 실상을 고발했다.
두 참사는 재난이 닥쳤을 때 누가 상황을 통합하고 유관 기관을 움직이며 생명의 시간을 지켜내느냐는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재난 현장 지휘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도 바뀌어야 한다. 매뉴얼 암기나 도상훈련 성적표만으로 지휘관을 검증하는 시대는 끝났다. 평소 관할 경찰서장, 구청장, 거점 병원장이나 응급센터장과 실질적 핫라인이 가동되는지, 돌발 상황에서 유관 기관장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지를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훈련 역시 단편적 시연을 넘어 기관장들이 실제로 모여 지휘권을 연계하고 공동 결정을 내리는 혹독한 합동 실기로 전환해야 한다.
지휘권은 법령집 속에 박제해 두는 관상용 권한이 아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우선순위를 확립하고 무고한 생명을 건져낼 시간을 확보하라고 국가가 위임한 가장 무거운 책무다. 재난 지휘부가 지휘권의 본질이 조정 리더십에 있음을 자각하고 스스로 입증할 때, 비로소 참사의 반복을 멈출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