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손에 쥔 대한민국 검찰은 오랜 기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녀 왔다. 하지만 고인 물은 언젠가 썩듯이 수사의 공정성 문제가 되풀이됐다. 대상에 따라 수사의 칼날을 선택적으로 가누는 행태도 비일비재했다. 이 같은 어두운 과거는 검찰개혁과 검찰청 폐지를 이끈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그동안 검찰을 향한 국민의 시선은 반신반의였다. 국가 형사사법 체계의 핵심 기관으로서 범죄를 단죄하고 법치를 수호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으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탓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춘 표적 수사부터 제 식구 감싸기까지, 오로지 권력 기구로 군림해 왔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강약약강
대한민국 검찰 흑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 수사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도왔지만 2008년 탈세 및 비리 의혹으로 수사 대상에 오르자 진술 과정서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꺼냈다.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원에 구입해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를 통하여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이다.
검찰은 “권양숙 여사가 박 전 회장이 선물한 명품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 “노 전 대통령의 딸이 불법으로 매매한 미국 고급 주택 계약서를 찢어버렸다” 등 수사 정황을 공식 브리핑에서 밝혔다. 논란의 중심은 박연차 게이트에서 ‘논두렁 시계’로 옮겨졌다.
해당 사건이 정치권 전역에 걸친 로비 의혹으로 확대됐고 모든 시선이 고 노 전 대통령을 향했다.
퇴임한 전직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고 수사 내용은 무분별하게 언론으로 흘러 들어갔다. 검찰은 전 청와대 행정관을 대거 소환조사하는가 하면,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 서버와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하는 등 전방위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정확한 증거나 정황 없이 박 전 회장의 진술에 의존해 수사를 벌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검찰은 혐의를 부인하는 노 전 대통령의 행동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검찰의 칼끝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시민과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했지만 한 달 가까이 사법 처리 결정을 미루면서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고 봤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난 이 사건은 국민에게 ‘정치 검찰’이라는 단어와 권력기관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각인시킨 시작점이 됐다.
막을 길 없는 막무가내 칼춤
비극 몰고 온 ‘논두렁 시계’
‘표적 수사’와 더불어 ‘봐주기 수사’ 논란 역시 검찰개혁의 불쏘시개가 됐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했던 구조에서 검사의 스폰서, 뇌물수수, 각종 비위 등에 대해 소극적이고 느슨한 수사로 일관해 온 탓이다. 전형적인 ‘제 식구 감싸기’ 행태가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커졌다.
‘김학의 별장 성접대 의혹’은 검찰의 대표적인 제 식구 감싸기이자 봐주기 수사 사례로 꼽힌다.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임명 직후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한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주요 골자다.
딩시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김 전 차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반려,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성접대 의혹이 담긴 동영상이 증거로 남았지만 이는 김 전 차관의 범죄 입증과 무관하며 피해 여성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에서다.
이듬해인 2014년 성범죄 피해 여성이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혐의로 고소했지만 마찬가지로 검찰은 “강제적인 성관계였을 가능성이 낮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정권교체 이후 김 전 차장은 사건 발생 6년 만인 2019년 법정에 다시 섰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동영상 속 인물이 김 전 차관이라면서도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보고 면소 판단했다. 검찰의 늑장 수사로 골든타임이 지난 셈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시민사회에서는 검찰이 김 전 차관의 성접대 혐의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김학의 사건’ 진상조사를 심의한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면소 판단을 두고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2013년 사건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검찰이 윤씨가 김 전 차관에게 사건을 청탁한 정황을 확보했는데도 김 전 차관의 성범죄 혐의만 들여다보는 등 소극적이고 부실한 수사를 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과거사위는 “김 전 차관을 비롯한 검찰 관계자들에 대한 윤씨의 폭로성 진술을 막기 위한 방편이 아닌지 의심된다”고도 주장했다.
“김학의 덮고 김건희 황제 수사하고”
커지는 검개 목소리…결국 공중분해
이 밖에도 검사장의 성추행 사건이 묻히거나 영장이 기각되는 일도 숱하게 일어났다.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던 검찰이 내부 검사의 비위나 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이나 단순 정직·견책 수준의 솜방망이 처분으로 사건을 무마했다는 지적이 끝없이 나오는 이유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검찰은 끝내 권력의 방패막이로 전락했다. 윤 전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씨 관련 수사는 검찰의 ‘선택적 수사’와 ‘봐주기 논란’이 극에 달한 사례로 꼽힌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명품 가방 수수 의혹, 공천 개입 의혹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검찰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을 받는 공범들이 유죄 판결을 받는 동안 김씨는 ‘V0’이자 성역의 존재로 머물렀다. 검찰이 처음 도이치 수사에 착수한 건 지난 2020년 4월이지만 이후 1년 가까이 검찰은 김씨를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김씨가 처음으로 조사를 받은 것은 지난 2021년 12월로 영부인이 된 이후였다.
그마저도 검찰청사가 아닌 대통령경호처에서 검사들이 휴대폰을 제출한 채 진행된 ‘황제 조사’였다.
한 차례 대면 조사를 끝으로 검찰은 김씨를 무혐의 처분했다. 이는 검찰이 스스로 수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포기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으로 남았다.
쓸쓸히 퇴장
살아있는 권력에는 복종하고 엮인 식구는 감싸며, 정치적 정적에게는 권력을 행사해 온 검찰의 행태는 결국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수많은 흑역사를 남긴 끝에 검찰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합의가 됐다.
오는 10월 권력을 과시하던 검찰청은 ‘수사권과 기소권 완전 분리’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무소불위 검찰의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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