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1948년 문을 연 검찰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김대중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을 시작으로 문재인정부의 ‘검수완박’을 거쳐 오는 10월 예정된 ‘검찰청 폐지’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겠다는 목적으로 달려왔다.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였다. 78년 동안 이어진 대한민국 검찰개혁의 잔혹사와 거대한 제도의 변천 과정을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검찰이 수사·기소·영장 청구 권한을 독점한 구조가 만들어진 건 1962년 제5차 개헌 당시다. 영장 청구의 주최를 검사로 규정함으로써 검찰이 수사 주도권을 쥐는 헌법적 근거가 됐다.
부작용 보니…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논의가 시작된 것은 1999년 김대중정부 시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5대 대선후보이던 당시 지방자치경찰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경찰을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누어 관리하고, 경찰을 지자체 소속으로 전환해 지역 특성에 맞는 독립적 치안 활동을 펼치겠다는 구상이었다.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본격적으로 자치경찰제가 공론화됐다. 먼저 경찰은 수사권 독립을 주장했다. 국가기관인 검찰이 자치경찰 수사를 지휘한다는 점이 경찰의 독립적 치안 활동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근거로 제시했다.
법무부는 경찰 측 주장에 반발했다. 수사권 독립은 형사소송 구조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인권을 악화한다는 점에서다. 당시 경찰대 출신 경찰 간부들은 수사권 독립의 당위성을 내세워 집단행동을 예고하는 등 긴장감이 고조됐다.
이에 청와대는 검찰과 경찰 두 집단 간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수사권 문제에 관한 모든 논의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경찰 수사권 독립 논란은 사태 발생 12일 만에 종결됐다.
이후 2004년 노무현정부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협의체’가 출범했다.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수사권 조정 문제는 자율과 분권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와 국민 편익을 고려해서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발언하는 등 수사권 조정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핵심은 검찰의 수사 주체를 명시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195·196조 개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검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합의는 결렬됐고, 결국 노 전 대통령이 나서 논쟁 중단을 지시했다. 노무현정부가 시도한 ‘대검 중수부 폐지’ 역시 실패로 돌아섰다.
2009년 5월, 고 노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본격적인 ‘정치검찰’을 향한 개혁 요구가 터져 나왔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론도 급부상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검찰 개혁은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해 오히려 갈증만 남겼다.
이명박정부는 자신의 임기 동안 검찰 개혁을 목적으로 ‘전관예우 금지’를 내세웠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전직 경찰청장 등 다수의 경찰 수뇌부가 이른바 ‘함바집 비리’에 연루되면서 수사권 조정 논의에 걸림돌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경 수사권 독립 둘러싼 충돌
잔혹사로 끝난 미완의 개혁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경찰 수사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사권 조정 공약을 내놨지만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한 채 원론적 언급만 하는 데 그쳤다. 다만 2013년 검찰개혁 요구의 한 축이었던 대검 중수부가 해체되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문재인정부 들어 검찰개혁이 급물살을 탔다. 첫 단추는 2018년 6월 발표된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이었다. 당시 정부는 검찰에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분산하고, 경찰과의 관계를 기존의 ‘제압과 지휘’에서 ‘협력관계’로 재정립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합의안은 2020년 1월 국회를 통과한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 개정안(검경수사권 조정법안)’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로써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지속되어 온 검사의 경찰 수사지휘권이 전면 폐지됐다. 검사와 경찰의 관계 역시 ‘상호협력 관계’로 재편하면서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게 됐다.
또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부여했다. 이전까지는 경찰이 모든 사건을 수사한 뒤 검찰에 송치해야 했으나, 개정 법안에 따라 경찰은 혐의가 없다고 판단할 경우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불송치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등장한 것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다. 2019년 12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통해 공수처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준비 과정을 거쳐 2021년 1월 공수처가 공식 출범했다.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 판·검사 등 고위공직자의 부패·비리를 전담 수사하는 별도의 독립 기구로 검사의 ‘제 식구 감싸기’를 차단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검찰개혁의 최종 단계 격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문정부 말기에 들어서야 이뤄졌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6대 범죄에서 2대 범죄(부패범죄·경제범죄) 수사권을 경찰 또는 다른 수사기관에 이전해 수사-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차 수사권 조정 시행 이후에도 정치권과 시민사회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남아있는 한 고발사건이나 과잉 수사 논란은 해소되지 않는다”는 우려가 제기된 탓이다.
이를 두고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전 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추미애 전 장관은 임기 내내 사생결단식으로 힘겨루기를 했다. 윤석열 당시 총장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친다)”이라고 거세게 반발하며 2021년 검찰총장직에서 사퇴, 이후 보수진영 대권 후보로 급부상했다.
혼란스러운 정국 속 2022년 4월과 5월, 국회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률안은 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국무회의인 5월3일 의결되면서 사실상 검찰개혁을 매듭지었다.
검수완박 흔든 검수원복 결말은?
전격 폐지 후 격동의 시기 예고
그러나 불과 4개월 뒤인 2022년 9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가 행정입법(시행령)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검찰 수사 범위를 복구하는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의 시작이었다.
당시 법무부는 직접 수사 개시 범위를 부패·경제 등 2대 중요 범죄로 한정한 검찰청법의 입법 취지에 따라 관련 시행령인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입법 예고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검찰청법상 수사 개시 범위는 축소됐는데,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상 수사 개시 범위는 오히려 확대돼 상위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윤석열정부에서 검찰은 언제나 논란의 중심이었다. 노골적으로 권력 맞춤형 수사에 나서 논란이 되거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를 받는 김건희씨의 수사는 ‘특혜성 출장 조사’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스스로 검찰 개혁의 명분을 쌓았고, 결국 ‘검찰청 폐지’란 운명을 맞게 됐다.
2025년 9월26일, 검찰청을 전면 폐지하고 기소 기능은 ‘공소청’으로, 수사 기능은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등으로 완전히 쪼개 이관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전격 통과했다. 이후 법무부가 ‘검사의 수사 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을 입법 예고하면서 윤석열정부의 검수원복 시행령은 폐기됐다.
법무부는 “시행령보다 상위에 있는 검찰청법의 취지를 반영해 시행령을 다시 개정하는 것”이라며 “검찰권 오‧남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범죄를 수사 개시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오는 10월2일, 검찰청법이 완전히 폐지됨과 동시에 검찰청은 공식 해체된다.
역사 속으로
검사의 직접 고소·고발 사건 수용이나 직접 보완수사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일반 사건 수사는 경찰이, 중대범죄 수사는 중수청이,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는 공수처가 맡고, 기소 및 공소 유지는 공소청이 담당하는 구조가 확립된 것이다. 2018년 시작된 수사권 개혁은 8년 만에 완전한 수사·기소 분리라는 사법 모델을 완성하며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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