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변호사도 속은’ 100억대 투자 사건 기막힌 사기 행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피해자가 날린 건 돈뿐만이 아니었다. 신뢰는 무너졌고 사람도 잃었다. 특히 수십년간 친하게 지내던 지인의 신뢰를 잃은 부분은 뼈아팠다. 하지만 피해자를 괴롭게 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직업적 특성상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상황에 휩쓸려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자괴감이 피해자를 사로잡았다. 피해자는 다름 아닌 변호사였다.

사기 사건의 무서운 점은 당한 사람을 극한까지 몰고 간다는 데 있다. 단순히 금전 피해를 본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을 탓하게 되는 굴레에 빠진다. 손해를 입은 당사자임에도 본인 탓을 하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속은 걸까’ 같은 생각은 피해자를 갉아먹는다. 정신적 고통을 견디다 못한 사기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속 끓이는
피해자들

‘불법 다단계’ 수법으로 피해자만 최소 수십명, 피해액 100억원 이상의 사기를 쳤다는 의혹을 받는 최모씨 사건이 딱 그렇다. 처음에는 사기꾼을 탓했던 피해자들은 최씨를 소개해 준 지인을 탓하다 이내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바로는 최소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쉽게 돈을 벌려는 욕심 때문에 속아 넘어간 게 아니냐는 주변의 비난도 피해자에겐 아픈 지점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주변 사람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숨어버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또 ‘조금만 기다리면 먼저 돈을 챙겨주겠다’는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수사기관 등에 도움을 받을 시기도 놓치곤 한다.

최씨를 만난 피해자들은 모두 ‘가스라이팅’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그를 두고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말투가 나긋나긋하고 조곤조곤했다’ ‘듣다 보면 정말 돈을 줄 것 같았다’ ‘홀리는 느낌이었다’ 같은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최씨로부터 약속한 돈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는 세금이나 비자금 등을 언급했다. 세금을 대납해 주거나 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특정 비율로 나눈다고 한 것이다. 최씨는 단기 대여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돈을 긁어모았다. 또 피해자의 카드로 정유 대금을 결제해 이른바 ‘카드깡’을 하는 방식도 사용했다.

최씨의 수법에 당한 피해자는 형사고소 건만으로 따졌을 때 30여명에 이른다. 이 중 한 건은 재판으로 넘어갔고 나머지는 아직 경찰 수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고소하면 돈을 주지 않겠다’ ‘조금만 기다리면 돈이 나온다’ 등 최씨의 협박과 회유를 믿고 기다리는 피해자도 적지 않은 걸로 파악돼 피해자 수와 피해액은 확인된 것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인의 명품백 문의에 연락
명품 리셀숍 대표 행세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피해자 가운데 소위 말하는 ‘사짜 직업’, 즉 전문직도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최씨의 피해자면서 또 다른 피해자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 활용됐다. 한 피해자는 “(최씨가) 의사도, 변호사도 돈을 넣었다고 해서 사기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일요시사>는 그 가운데 1명인 A씨와 접촉했다. A씨는 변호사로, 최씨와는 법률 자문 과정에서 안면을 텄다. 독특한 점은 A씨와 그 지인을 상대로 한 최씨의 사기 수법이다. ‘기업/개인 세금 처리 대행’이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니며 문서 한 장 없이 ‘입’으로만 사람들을 현혹했던 기존의 방식과는 판이했다.

A씨는 최씨를 명품 리셀숍의 대표로 알았다. 법률 자문을 해줄 당시 이미 명품 리셀숍 대표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서울 부촌에 자리한 사업장, 홈페이지, 명품관 직원들과의 대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채팅창, 최씨가 입고 두르고 다니는 명품들은 A씨의 눈을 멀게 했다. A씨는 피해 사실을 알기 전까지 최씨를 ‘대표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A씨와 최씨가 본격적으로 얽히기 시작한 시기는 2024년 11~12월경으로 확인된다. 법률 자문 이후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줄 알았던 두 사람은 A씨의 연락으로 재회했다. A씨는 “지인이 에르메스 백을 사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그때 최씨가 떠올라 연락하게 됐다”고 말했다. A씨가 최씨의 그물 안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어디다가
말도 못해

이어 A씨는 “최씨가 전에는 명품 리셀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사업자 없이 현금으로 거래하면서 수익을 보고 했는데 이제 정식으로 사업자를 내고 하려 한다고 했다”며 “그때 홈페이지도 만들고 서울 한남동 쪽에 사무실을 하나 빌려 ‘프라이빗하게’ 사업장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최씨가 말한 사무실은 존재했고 홈페이지도 그럴 듯했다. 또 사무실에는 대형 백화점 명품관 출신 직원들도 있었다. 제법 갖춰진 구색에 A씨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돈은 투자 형태로 들어갔다. A씨가 변호사였기에 법정 이자 이상을 준다거나 요구하는 대신 투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A씨의 돈만 들어간 게 아니라는 점이다. A씨에 따르면 자신의 소개로 최씨를 만난 지인들도 돈을 투자했는데, 그 돈의 액수가 수십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A씨가 넣은 돈은 4억원가량인데, 지인들이 엄청나게 큰돈을 최씨에게 준 것이다. 최씨의 또 다른 피해자들은 A씨 등의 피해액을 약 70억원으로 알고 있었다.

A씨는 “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자문을 맡기겠다. 개인 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그때도 법률 자문이 필요하다는 등의 말을 계속했다. 또 자기가 거래하는 고객 가운데 비슷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개해 주겠다고도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뭐에 홀린 것 같다”고 한탄했다.

A씨는 투자금이 들어가고 두세 달가량 지나고 돈이 제대로 반환되지 않자 그제야 ‘아차’ 싶었다고 털어놨다. 최씨가 세무조사 등을 핑계로 돈을 줘야 할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자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부를 인테리어하고 진열대를 놓는 등 사무실을 꾸미는 모습에 온전히 사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끝까지
이용했다

A씨의 눈을 뜨게 한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최씨의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 A씨를 수소문해 전화를 건 것이다. 2024년 11월 최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피해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아 일종의 ‘설명회’를 한 적 있다. 돈을 언제까지 주겠다는 둥, 왜 못 주고 있는지 등에 대해 언급하는 자리였다. 이날 최씨의 집에는 약 10명가량의 피해자가 모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날 최씨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정유 대금 사건 등으로 막힌 ‘카드깡’에 대해 말했다. A씨는 “(최씨가) 정유 대금 사건에서 카드를 대여해줬던 소유자들이 이거를 계속하고 싶어하는데,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그래서 실제 문제가 됐고 범행이니까 같은 방식으로 거래하는 건 당연히 불법이니 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A씨의 말은 스피커폰을 통해 최씨의 집에 모인 피해자들에게 전달됐다. 최씨는 A씨의 말을 통해 자신이 돈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합리화를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 사건(정유 대금 사건으로 추정)이 마무리되면 그때는 조금씩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실제 일부 피해자들은 최씨의 말을 믿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피해자를 통해 사기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그 길로 최씨를 추궁했다. 그리고 관련 내역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당시 연락을 준 피해자에게 들은 말인데 최씨는 명품 리셀숍 사무실에 대해 ‘실제로 하려고 하는 거 아니다’ ‘위장 사업장이다’ 등의 말을 했다고 했다”며 “정말 철저하게 당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A씨의 추궁에 최씨가 보여준 자료는 가관이었다. A씨는 “임대차 계약서도 확인하고 임대인에게도 물었는데 사무실 보증금도 다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다. 월세도 제때 낸 적이 드물다고 했다. 정말 딱 최소한의 외관만 갖추려고 진행했던 것이다. 제대로 공사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투자금 명목으로 수십억원
다른 피해자 전화에 ‘아차’

실제 최씨를 믿은 대가는 혹독했다. A씨는 돈은 물론 수십년간 알고 지낸 지인들도 잃었다. 최씨를 소개해 준 부분이 문제로 떠오르면서 지인에게 강한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또 A씨의 사정을 아는 주변 사람은 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점에 놀라움을 표했다. 피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선은 A씨를 옥좼다.

A씨는 자괴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말 괴롭다. 남은 인생이 이제 거의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죄책감도 없어 보이는 최씨의 태도에는 분노도 표했다. 그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가족들까지 생존 자체를 어렵게 만든 것 아니냐. 그거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랄까, 인간적인 부분이랄까 그런 게 없다”고도 했다. A씨의 말은 다른 피해자들도 입을 모아 하는 내용이었다.

더 큰 문제는 최씨의 사기 행각으로 금전적 손해를 본 피해자들이 원금 회복 등을 위해 최씨를 옹호한다는 데 있다. 최씨는 정유 대금 사건과 피해자의 사기 혐의 형사고소 사건 등에서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최씨를 구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들이었다.

당시 사정을 알고 있는 A씨는 “정유 대금 사건에서 최씨는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최씨가 현재 구속된 이모씨와 공범으로 엮이지 않은 건 피해자들이 카드 대금을 받았다고 진술했기 때문으로 알고 있다. 최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카드 대금을 지급했다고 했는데, 피해자들이 그게 맞다고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씨에 따르면 그렇게 진술해 준 피해자가 50여명에 이른다.

현재 재판 중인 형사고소 사건에서 구속 갈림길에 선 최씨에 대한 탄원서도 피해자들이 써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 피해자는 “최씨는 (피해자가) 고소한다고 하거나 문제를 제기할 조짐을 보이면 늘 돈을 언급했다. ‘고소하면 돈 받는 순위가 가장 마지막으로 밀린다’ ‘내가 감옥에 가면 돈을 줄 수 없지 않느냐’ 등의 말을 하곤 했다”고 주장했다.

남 탓하며
요리조리

남 탓도 서슴지 않았다. 최씨는 <일요시사> 보도 이후 한 피해자에게 연락해 ‘팀장님 그냥 저 감옥 가면 되는 건가요? 어찌 상황을 최악으로 몰고 가세요. 제가 어찌 해볼 수도 없게. 함께 좀 정리해요’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면서도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문자를 받은 피해자 때문에 돈을 못 주고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는 “피해자들 사이에서 아주 미친X이 됐다”고 말했다. 해당 피해자는 카카오톡 채팅방 등을 통해 최씨의 문제를 공론화한 인물로, 1년 가까이 그 주변을 파헤쳐 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는 “피해자들 가운데 여전히 최씨를 신봉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는 내가 나쁜 사람이 돼있는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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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공소청, 제 기능 못하는 내막

중수·공소청, 제 기능 못하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이 출범했다. 개문발차 상태다. 수장 공백과 법령 미비, 수사 인프라 모두 정리되지 않았다. 중수청의 경우 본청 사무실 공사 마무리까지 두 달여가 소요될 전망이다. 검사·수사관 대부분은 출근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담당했던 사건이 처리되는 데 수개월이 밀리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7대 중대범죄 수사를 맡을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 기능을 담당할 공소청 모두 수장과 인력, 하위 법령, 사무 공간 등 총체적 부실 상태로 개청했다. 채용이 확정된 이들은 어디로 출근해야 하는지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완성도 안 됐다 중수청은 지난달 7일 김지용 후보자가 초대 청장으로 제청됐으나 여권 내 반발로 인해 추가 검증을 거치느라 청문회조차 열지 못했다. 중수청법상 중수청 간부급인 1∼5급 수사관은 청장의 추천을 거치게끔 돼있지만, 청장 없이 문을 여는 바람에 첫 인사부터 원칙이 깨졌다.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정원은 수사관 2567명과 일반직 307명 등 총 2874명인데, 1·2차 특례 임용에 지원한 이들이 총 1962명에 그쳤고 5급 이상은 정원 629명에 지원자 212명으로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청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오전까지도 인사가 발표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어느 지역의 중수청에 출근해야 할지 통보받지 못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태였다. 중수청은 청사를 임대했으나 수사 인프라와 사무 공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본청과 서울청이 쓰게 될 서울 중구 르네스퀘어빌딩은 2∼17층을 임대했으나 당장 사용할 준비가 된 것은 여섯층뿐이다. 수사기관의 필수 시설인 조사실과 피의자 신병을 확보할 만한 시설을 갖추지 못해 당분간 타 기관의 공간을 빌릴 수밖에 없게 됐다. 중수청 개청준비단은 서울 3곳, 나머지 5개 지역 1곳 등 총 8곳의 경찰서 유치장을 사용하기로 경찰청과 협의했다. 법무부 교정본부에도 6개 지방중수청 인근 교정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도 아직 마련되지 않아 완성 전까진 경찰과 논의하며 사용하기로 했는데, 개청 직후에도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았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청의 청사와 시스템을 활용하고, 인력도 상당 부분 이어받아 중수청보다 준비가 순조로웠다. 지난달 22일에 직제안을 확정한 데 이어 29일에는 공소청 개청 날짜에 맞춰 검사 192명의 인사를 단행하는 등 진용을 갖추고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중이다. 다만 공소청 수장인 검찰총장은 추천위원회를 구성할 법무부 장관마저 공석이어서 후보자가 있는 중수청장보다도 임명에 먹구름이 꼈다. 중수청, 수사관 충원 부족한데 5급 이상 간부 1/3 수준 사무실 공사 마무리 최소 두달 “어디로 출근할지도 몰라” 우선 법무부는 공소청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달 23일 자로 이정현 신임 대검 차장검사를 임명해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하도록 했다. 공소청은 개정된 형사소송법 취지에 맞게 하위·관계 법령을 정비하는 작업도 끝마치지 못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에 맞게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하는 법령이 100여개에 달해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최근 법무부령 24건을 공포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검찰청 관련 명칭들을 정비하는 내용이다. 법무부는 오는 2일 개청에 맞춰 법령 개정을 모두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당장 수장 공백이 길어지면서 후속 법안 논의에서 일부 기관이 배제되는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중수·공소청·경찰 3개 기관의 사건 이첩 관련 규정을 담은 중수청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공소청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록에 따르면 소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공소청 관계자는 나와 있느냐”고 묻자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없다”고 답했다. 의사결정권자 공백으로 기관 간 의견 조율이 필요한 사안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행 중수청법에 따르면 중수청장은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 중인 사건이라도 중수청 수사와 겹치거나 사회적 파급력 등을 고려해 이첩을 요구할 수 있고, 해당 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관장의 결단이 필수적인데 직무대행 간 협의만으로는 이견을 좁혀나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두 기관의 정상적 운영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합동수사기구도 문을 닫게 됐다. 서울서부지검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합동수사팀은 1년2개월의 수사 끝에 지난달 30일 활동을 중단했다. 서울동부지검에 설치된 보이스피싱범죄합동수사부와 국가재정범죄합동수사단, 서울남부지검의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도 운영을 멈췄다. ‘검 목소리’ 완전 배제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중수청에서 금융위원회와 국세청 등으로부터 인력을 파견받아 합동수사기구가 하던 업무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중수청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수사가 불가능하다”며 “적어도 두세달 뒤에야 다시 업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거대해진 경찰 권력을 통제·견제하기 위한 장치였던 보완수사권마저 완전히 폐지됐다. 구자현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지난 7월 “한 번 더 살펴봐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며 사의를 표명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현재 경찰의 역량과 인력을 감안했을 때 실무상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당 강경파의 입김에 제대로 된 논의 없이 사라졌다. “공소청의 장은 검찰총장으로 한다”는 공소청법에 따라 공소청은 출범 시작부터 리더십 부재라는 혼란 속에서 출발하게 됐다. 검찰 수사권을 없애는 형사소송법만 개정됐을 뿐 그에 따른 하위 법령과 규칙 등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다. 공소청 직제안마저 출범 열흘 전 가까스로 완성됐다. 법무부에 따르면 형사소송법 개정과 연동해 정비하거나 신설해야 할 하위 법령은 137개에 달한다. 형법과 민사소송법은 물론 성폭력·스토킹 처벌법 등 개별 특별법과 법무부 소관 관계 법률만 61개에 달한다. ‘검찰’이라는 명칭 자체가 없어지는 탓에 50개의 대통령령을 정비해야 하고 검사의 수사권이 명시된 각종 수사준칙도 수정해야 한다. 검찰사건 사무규칙은 조문만 300개가 넘는다. 그만큼 법제처의 심사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논란만 검사의 역할 역시 수사 담당과 기소 담당으로 이원화한 데 포함되지 않는 검사는 수사 자체를 할 수 없다. 수사 역량이 뛰어난 다수의 검사를 중수청으로 보내 국가 수사 역량을 보존하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당초 정부안은 검찰청 검사가 중수청으로 이직할 경우 ‘수사사법관’으로 임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민주당이 이를 “이름만 중수청으로 바뀐 도로 검찰청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며 반대했다. 두 기관 출범 직전까지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은 김 후보자를 두고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었다. 중수·공소청 출범 직전인 지난 1일에서야 옹호하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해 “이런 사람을 ‘친윤(친 윤석열) 검사’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허위임을 알면서도 흠집을 내고 공격하기 위해 하는 억지 주장이라면 비판이 아닌 비방이고 국정 조언이 아닌 국정 방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후보자에 대해 강도 높게 공개 비판해 온 추미애 경기도지사를 겨냥해 “김 후보자는 문재인정부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검사장으로 발탁 승진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도 유튜브에서 “심지어는 김 후보자가 ‘친윤’ 검사, ‘친한(친 한동훈)’ 검사라고 일부가 지적한다”며 “여러 가지 추가 검증 과정을 살펴보면 실제 그것과는 굉장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민석 대표도 이날 김 후보자에 대한 여권 일각의 비판을 이 대통령이 직접 반박한 것에 대해 “전혀 아닌 것을 계속하거나, 아니라고 설명했는데도 계속 프레이밍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옹호했다. 공소청 수장 임명 법무부 장관 있어야 추천 거쳐 가능 대통령령 포함 하위 법령 100여건 깡그리 수정 필요 당내에서는 이 대통령이 인사청문 요청서를 보낼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친명(친 이재명)계 핵심인 김영진 행안위원장도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에서 “후보자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좀 과하지 않나”라며 “행안위에 중수청장 후보자를 보내서 (인사청문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수청이 개문발차하는 만큼 임명동의안이 국회로 제출될 경우 수장 공백 최소화를 위해 국정감사 기간 중이라도 인사청문회를 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범여권에서는 김 후보자를 향한 자진 사퇴 압박이 이날도 이어졌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원내대표는 이날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수사·기소 분리에 대한 철학도 없고, 친 윤석열 검사가 아니었다고 얘기하지만 그 당시 항명 사건에서도 동참했다”며 “여러 가지로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철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경찰청에서 열린 ‘전국 수사 지휘관 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새 체계가 현장에 뿌리내릴 때까지 ‘비상대응 체제’로 전환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김 대행은 “경찰 역량이 충분한지, 권한을 공정하고 절제하며 행사하는지 국민께서 엄중한 눈으로 지켜보신다”며 “관서·수사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비상 대응의 일환으로 경찰서장이 앞으로 중요 사건과 검사 요구 사건 등의 처리 현황을 매일 확인하고 시도청과 국가수사본부까지 교차 점검하는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전 수사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 권리 보호 절차를 대폭 강화하고, 사건 진행에 대한 통지를 내실화하는 등 수사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예정이다. 비상 체제 돌입한 경찰 사건 조작과 은폐, 뇌물수수 등 중대 비위가 확인되면 엄정 수사하고, 비위 당사자에 대해서는 파면·해임과 같은 중징계를 원칙으로 삼는 등 내·외부 통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김 대행은 “‘사건 핑퐁’으로 피해자 권리 구제가 지연돼서는 안 된다”며 “국민이 우려하는 부실·불공정 수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점검해 달라”고 당부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