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개혁신당 이준석 전 대표가 물러나자, 개혁신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수립 가능성을 예고했다. 당내 영향력이 막강한 이 전 대표가 물러났다고 해서 그의 영향력 자체가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개혁신당은 과연 21세기 한국판 인세이의 재림을 막을 수 있을까?
개혁신당 이준석 전 대표가 지난달 26일 대표직에서 전격 사퇴했다. 개혁신당은 같은 날 “지도부가 지방선거 패배 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며 “천하람 원내대표가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아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등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격 사퇴
이 전 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6·3 지방선거 이후 석 달 남짓, 저는 당의 자강과 쇄신을 위한 고민과 제안을 해왔지만, 당 안에서 충분한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사퇴의 변을 밝혔다. 이어 “누구의 탓도 아니고, 설득하지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대표인 저에게 있다”면서도 “우리 앞에는 미룰 수 없는 정치 일정이 놓여 있고, 정치의 시간은 누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방향에 대한 합의 없이 그 일정을 맞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제가 오히려 당내 다른 구성원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가로막고 있었다면, 그 자리를 비우는 것이 제가 당을 위해 선택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가 밝힌 사퇴의 변은 “개혁신당 내부에서 당의 자강·쇄신을 놓고 갈등이 있었고, 그 갈등 끝에 사퇴했다”는 내용을 암시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부 언론은 지난달 24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전 대표와 천 원내대표 등이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개혁신당 의원들에게 경기 남부 지역에 출마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천 원내대표는 전남 순천 출마를,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서울 송파 출마를, 이기인 사무총장은 경기 성남 분당 출마를 고집했다. 이 사무총장 외에는 이 전 대표와 의견이 달랐다는 것이다.
이 보도대로라면 이 전 대표는 ▲영국 스코틀랜드 국민당 ▲캐나다 블록 퀘베쿠아 ▲영국 자유민주당 등이 극대화해 구사했던 중점 공략 선거구 전략의 실전 적용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가 천 원내대표와 이 정책위의장이 국민의힘 합류를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해 실망감을 표출했다”며 “서로 언성까지 높였다”고 보는 등 내부 갈등이 상당히 심각하다는 설이 나돌았다.
천의 부산 사과…‘포스트 이’ 독자 행보?
291만표·91.93%가 만든 ‘직함 밖의 권력’
미묘한 엇박자는 지난 2일에도 나왔다. 정이한 전 부산시장 후보의 정치 테러 자작극과 관련해 개혁신당은 그동안 “당은 피해자”라는 의견을 고수했다. 그런데 천 원내대표는 이날 부산에서 ‘개혁신당 당 대표 권한대행’ 명의로 “잘못된 부산시장 공천, 부산 시민께 깊이 사죄드립니다”라는 피켓 사과를 진행했다.
이 전 대표가 물러난 후 불과 일주일 만에 의견을 바꿔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이다.
개혁신당은 지난 7일 전당대회를 진행하지 않고, 당헌·당규를 개정한 후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현행 당헌·당규에는 비대위 설치 근거 조항이 없기 때문에 당헌·당규부터 개정해야 한다.
천 원내대표는 이날 “조속한 수습을 위해 비대위원장을 모시고 비대위를 구성해 보다 파격적인 변화와 쇄신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어 비대위원장 후보군에 대해서는 “당연히 생각하는 분은 있고, 일정 부분 소통하는 분도 있다”며 “적절한 시기에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비대위원장에게 명실상부한 비상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한, 새 지도부가 당의 실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 이들도 있다. 개혁신당은 누가 보더라도 이 전 대표에 의한, 이 전 대표의 1인 정당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 전 대표가 당무에 개입하거나 ‘상왕 정치’를 할 의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 전 대표가 개혁신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비롯되는 인식·의문이다.
이 전 대표는 ▲개혁신당 창당자라는 상징성 ▲개혁신당에서 가장 높은 대중 인지도 ▲지역구 당선 및 대선 득표 291만7523표로 검증된 개인 브랜드 ▲핵심 지지층과의 연결 ▲당의 노선 형성에 대한 영향력 등을 바탕으로 당내에서 엄청난 비공식 권위를 가진다.
이 전 대표의 경기 남부 집중 전략에 대해 “천 원내대표·이 정책위의장이 협조하지 않는다”는 설이 돌자, 특정 커뮤니티에서 주로 활동하는 이 전 대표의 지지자들이 이들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다수 제시했다. 당의 노선 형성에 대한 영향력이 당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핵심 지지층이 곧바로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흥선대원군부터 시라카와까지…퇴위 후 권력
서로 다른 권력·권위 승계 ‘인세이’ 열리나
아울러 개혁신당 허은아 전 대표(현 대통령실 국민통합비서관)와 당직자들 간 공개 충돌 당시 이 전 대표는 당원 소환제를 사실상 주도했다. 당원 소환 투표에 참여한 으뜸당원 2만1694명 가운데 1만9943명(91.93%)이 허 전 대표의 대표직 박탈에 찬성하는 등 이 전 대표의 당내 영향력을 사실상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따라서 비대위가 설치되더라도 이 전 대표의 의원실인 국회 의원회관 530호실은 사실상 ‘운현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전 대표가 개혁신당의 비공식 영향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현궁의 주인이었던 흥선대원군은 공식적인 지위를 전혀 보유하지 않았다. 그에겐 ‘왕의 생부’라는 권위와 전국 각지에 퍼진 지지 세력이 있었다. 그는 안동 김씨·풍양 조씨 등 세도 가문에 의해 소외됐던 왕실 구성원 및 옛 사색 당쟁 당파 핵심 가문의 구성원을 골고루 기용했고,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흥선대원군을 광범위하게 지지했다.
흥선대원군은 이 영향력을 토대로 임오군란·을미사변 등 구한말의 대규모 정변에 개입했고, 고종을 폐위시키기 위한 다수의 음모를 기도했다.
일본 헤이안 시대에도 덴노가 양위해 죠코로 물러난 후 국정을 주도하던 인세이란 관행이 횡행했다. 덴노와 여러 죠코가 병존하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인 최고 정치권력을 행사했던 단 한 명의 죠코를 치텐노키미라고 불렀다.
이들 중 상당수는 머리를 깎아 승려가 된 후 절에서 기거하면서 인세이를 단행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특정 분야에서 비공식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빗대 인세이란 표현을 활용한다. 인세이를 토대로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일본 제72대 시라카와 덴노는 8세 된 아들 호리카와 덴노에게 양위한 후 죠코가 돼 실권을 행사했고, 아들이 요절하자 손자 도바 덴노를 즉위시키면서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조선 태종도 아들 세종에게 양위한 후에도 군권을 계속 직접 장악했다. 그는 이 군권을 토대로 가문의 세가 컸던 사돈 청송 심씨 가문을 전격적으로 숙청했다. 당시 세종은 세자에 책봉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즉위해 정치력이 부족했다. 태종은 아들이 처가에 휘둘릴 것을 염려해 전격적인 숙청을 단행했던 것이다.
온전한 사퇴
개혁신당이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이 전 대표가 온전히 물러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전 대표가 가진 비공식적 권위·영향력은 의원회관 530호실을 ‘운현궁’으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 허 전 대표를 끌어낸 당원 소환에서 확인된 91.93%의 압도적인 지지는 이 전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났다고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정치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 없는 이준석은 이미 현실이 됐다. 이제 개혁신당은 ‘이준석 없는 대표’가 가능한지 증명해야 한다. 개혁신당은 과연 인세이의 재림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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