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기후 위기는 한때 공짜였던 자원에 가격표를 붙이며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열었다. 생수는 물론 깨끗한 공기까지 돈을 내고 사는 시대. 이제는 그 누구도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옛이야기를 듣고 웃지 않는다. 대신 뜨거워진 지구를 식히고 탄소를 줄이기 위한 기술 발전에 기꺼이 돈을 투자한다. 공장 굴뚝이 뿜는 탄소를 자원으로 바꾸고, AI로 기상 예측을 고도화하는 기술이 등장했다. 인간이 만든 위기를 인간의 기술로 되돌릴 수 있을까.
미국 텍사스 사막 한복판에 ‘세계에서 가장 큰 코’가 있다. 숨을 쉴 때마다 공기 중의 탄소를 빨아들인다. 아직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6년간 50만톤, 아마존은 10년간 25만톤 분량 탄소 제거 크레디트를 이미 계약해 뒀다. 완공도 안 된 시설의 탄소 제거 실적에 두 회사가 자본을 나눠 예약했다.
탄소 잡는 기술
세계에서 가장 큰 코의 정체는 스트라토스(Stratos). 퍼미안 분지에 지은 직접공기포집(DAC) 시설이다. 스트라토스는 올해 2분기 가동을 목표하고 있었다. 최종 점검까지 마쳤는데, 갑자기 설비 하나가 말썽을 부렸다. 핵심 기술은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가동 시점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2023년 발표 당시에는 2025년 중반 가동을 목표로 했던 프로젝트. 그 뒤로도 몇 차례 더 연기를 거듭한 끝에 지금은 목표 시점이 올해 말로 조정됐다. 그런데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이미 이곳 탄소 제거권을 사들였다. 기술이 완성되기도 전에 시장이 먼저 움직였다.
국내 기후 기술은 미국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움직인다. 대기 중 탄소를 직접 빨아들이는 대규모 DAC 시설보다는, 산업 현장에서 배출한 탄소를 잡아 다시 활용하는 CCU가 실제 사업장에 들어오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엔벡스(ENVEX) 2026’에서는 컨테이너 하나에 담긴 탄소 포집 시스템이 공개됐다. 음식물 쓰레기를 고농도 바이오 메탄으로 바꾸는 설비도 나왔다. 아예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탄소 네거티브 콘크리트를 만드는 스타트업도 있다.
이처럼 기후 위기는 재난만 남기지 않는다. 폭염과 산불과 홍수가 반복되면, 이를 막고 견디는 기술도 함께 성장한다. 탄소 잡는 기술부터 더위를 견디는 기술과 재난을 예측하는 인공지능(AI)까지. 위기가 만든 필요가 새로운 발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서 가장 큰 코로 몰리는 자본
기후 규제로 돈 버는 업계 리더들
그중 테슬라 사례는 가장 쉽게 와닿는다. 지난 10년간 온실가스 배출 규제 덕분에 118억달러(약 16조원)를 벌었다. 전기차를 만들면 남는 탄소 배출권을 내연기관 비중이 높은 GM, 포드, 스텔란티스 같은 완성차 업체에 팔아치운 결과다. 단순 생산 능력보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전기차 특성이 상품이 됐다.
현대차·기아는 테슬라와 달리, 규제를 지키기 위해 라인업 자체를 바꿔야 했다. EU가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하면서, 현대차는 전동화를 서둘렀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기자 간담회에서 “신차 기준 전기·수소차 비중은 2030년 40%, 2035년 70%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규제가 누군가에게는 수익 모델이 된 셈이다.
국내에서는 조선업 역시 비슷한 바람을 탔다. 국제해사기구(IMO)가 2050년까지 국제 해운 분야 탄소중립을 목표로 내걸자, 전 세계 선주들이 LNG·메탄올·암모니아 추진선으로 서둘러 갈아타기 시작했다.
HD현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수량인 43척을 수주했다. 지난해 국내 친환경 선박 수주 점유율은 세계 절반(50.3%)을 넘었다. 올해 들어서도 국내 조선업계는 이른바 슈퍼 사이클을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탄소 배출 규제가 선박 발주로, 발주가 곧 국내 조선소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항공유가 관심사다. EU는 2025년부터 항공유에 지속 가능 항공유(SAF)를 혼합할 것을 의무화했다. 그중에서도 합성연료(e-fuel) 세부 의무는 2030년부터 단계적으로 강화한다. 이 흐름에 맞춰 합성연료 생산 투자도 조금씩 몸집을 키우는 중이다.
폭염도 새로운 시장을 낳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건물 냉방 수요가 2035년까지 매년 약 4%씩 늘어날 것으로 봤다. 폭염이 심해지면 이 숫자는 더 커질 수 있다. 더워질수록 에어컨 사용이 늘어나고, 전력 수요도 함께 증가한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에어컨을 더 많이 돌릴수록 전력 소비가 늘고, 전력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배출될 수 있다. 그래서 냉방 기술 경쟁도 달라졌다. 얼마나 강하게 냉각하나뿐 아니라 얼마나 적은 에너지로 사람과 건물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지구 뜨거워질수록 똑똑해지는 인간
“날씨 이변에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아”
흥미로운 점은 냉방의 단위가 쪼개지고 있다는 것. 예전엔 방 전체를 식혔다면, 이제는 사람 한 명, 옷 한 벌, 지붕 한 장을 따로따로 식힌다. 지붕에 바르면 열을 반사하는 복사냉각 소재와 입으면 시원해지는 웨어러블 냉방 제품도 발전하고 있다.
영국 스타트업 바로칼은 압력만으로 열을 옮기는 ‘바로칼로릭’ 냉각 기술로 1000만달러 시드 투자를 받았다. 전기도, 냉매도 없이 작동하는 게 특징이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냉방 에너지 소비를 줄일 잠재력이 있다.
재난 예측 분야에서도 AI는 빠지지 않았다. ‘나우알파’는 기상청과 카이스트, 엔비디아 등이 함께 나서서 개발한 AI 기반 초단기 강수 예측 모델이다. 레이더 관측 자료를 입력받아 6시간 뒤까지의 강수를 10분 단위로 예측할 수 있다. 계산 시간이 40초 남짓에 불과하다. 국지성 집중호우처럼 돌발 재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예측 속도를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기술이 기후 위기를 한번에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상당수 기술은 아직 실증 단계에 있고, 논쟁이 끝나지 않은 분야도 있다. 일례로, 탄소 발생량을 덜어내기 위해 사용한다는 합성연료는 어차피 태울 때 탄소를 발생시키는 등 문제점을 지적받고 있다.
테슬라만 봐도, 올해 들어 미국 배출 규제가 완화되고 다른 업체들도 자체적으로 전기차를 늘리면서 크레디트 매출이 올해 2분기 기준 전년 대비 67% 급감했다. 규제가 만든 시장은 규제가 풀리면 그만큼 빠르게 쪼그라들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안 빠지는 AI
그래도 분명한 흐름은 있다. 위기가 절박해질수록, 위기를 다루는 기술에 자본과 인재가 몰리고 돈이 기운다는 것. 탄소를 잡고, 더위를 견디고, 재난을 예측하는 산업이 동시에 자라는 지금. 인간이 날씨 이변에 손 놓고 있지만은 않은 것이 확실하다. 폭염과 산불과 홍수가 반복될수록, 그걸 막고 견디는 기술에 자본과 인재가 몰린다. 위기가 곧 시장이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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