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9월1일 정기국회가 막을 올린다. 국회는 오후 2시 본회의장에서 개회식을 열고 12월9일까지 100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정기국회는 임시국회와 무게가 다르다.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정부를 감사하고 법률을 만들며 다음 해 나라 살림을 결정하는 국회의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지난 1년을 결산하고 다음 1년을 설계하는 기간이다.
올해 임시국회는 1월부터 8월까지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열려 모두 여덟 차례, 220일간 회기를 이어왔다. 90%가 넘는 기간 국회가 회기 중이었던 셈이다. 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와 재난 안전, 소상공인 지원 등 민생·경제 법안을 처리한 것은 성과다.
그러나 특검과 사법개혁 등 쟁점 법안을 둘러싼 필리버스터와 강행 처리, 본회의 파행이 되풀이됐고 부동산 등 주요 민생 현안은 정기국회로 넘어왔다. 국회 문은 오래 열려 있었지만 국민이 체감할 만큼 정치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정기국회가 중요한 첫 번째 이유는 국정감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세금을 제대로 썼는지, 잘못된 행정은 없었는지를 따져 묻는다. 두 번째는 입법이고 세 번째는 예산이다.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고, 법이 있어도 예산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그래서 정기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면서 국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시간이다.
올해 일정도 빽빽하다. 1일 개회식을 시작으로 3일에는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리고, 7일과 8일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예정돼있다. 9일부터 11일까지와 14일에는 정치, 외교·통일·안보, 경제,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이 이어진다.
17일과 다음달 1일에도 본회의가 예정돼있고, 다음달 6일부터 27일까지 3주간 국정감사가 진행된다. 이후 11월엔 정기국회의 무게중심이 내년도 예산안 심사로 이동한다.
정부 예산안은 각 상임위원회의 예비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확정된다. 헌법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2일까지 다음 연도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정기국회는 국정감사로 정부의 과거를 평가하고, 법률로 현재의 문제를 고치며, 예산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특히 올해 정기국회는 이재명정부 출범 2년 차에 열린다는 점에서 지난해와 다르다. 지난해가 출범 3개월 된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확인하는 무대였다면 올해는 지난 1년의 성적표를 평가받는 첫 정기국회에 가깝다. 민주당은 국정 과제를 법률과 예산으로 뒷받침해 성과를 보여줘야 하고, 국민의힘은 정부의 지난 1년을 검증하면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여당에는 책임의 국회이고 야당에는 검증의 국회인 셈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민이 지켜봐야 할 쟁점은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는 8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2027년도 예산안이다. 정부와 여당은 AI와 반도체·데이터센터·피지컬AI 등 3대 메가프로젝트, 우주항공과 바이오, 청년 지원, 지방 성장, 국민안전 등에 과감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규모 확장재정이 국가채무 부담을 키우고 선심성 지출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얼마를 쓰느냐보다 어디에, 왜 쓰느냐가 이번 예산전쟁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0조원 이상 규모로 거론되는 미래대응기금도 뜨거운 쟁점이다. 미래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할 종잣돈이라는 여권의 주장과 정부의 또 다른 재정 주머니가 될 수 있다는 야당의 우려가 충돌한다. 지금의 100조원이 10년 뒤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을 만들 수도 있고 미래세대의 빚으로 남을 수도 있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증액하거나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효과를 따지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는 부동산이다. 재개발·재건축을 촉진하는 도시정비법, 부동산감독원 설치 문제, 용산공원 부지를 활용한 주택 공급 방안과 부동산 관련 세제 개편 등이 국회 테이블에 올라올 전망이다. 여기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문제까지 여야의 접근법이 다르다.
부동산 정책 하나가 집값과 전월세 시장, 건설 경기와 가계자산에 동시에 영향을 미친다. 공급이냐 규제냐라는 오래된 이념 싸움보다 국민이 실제로 살 수 있는 집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셋째는 AI를 비롯한 미래산업이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피지컬AI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 산업용지와 인프라가 필요하다.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를 위해 전기사업법과 수도법, 물관리기본법, 산업입지 관련법, 건축법 등의 개정이 거론되는 이유다.
대한민국이 AI 경쟁에서 미국과 중국을 따라가려면 기업의 투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국회가 규제를 풀 것은 풀고 안전과 환경을 지킬 것은 지키면서 미래산업이 뛸 운동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정쟁 때문에 미래산업의 시계까지 멈춰 세워서는 안 된다.
넷째는 사법개혁과 경찰개혁이다. 여권이 추진하는 이른바 ‘2차 사법개혁’을 놓고 민주당은 사법제도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민의힘은 사법부 독립을 흔들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동시에 수사권과 권한이 커진 경찰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도 과제다.
검찰을 개혁한다고 경찰 권력이 비대해지고, 사법부를 개혁한다고 정치 권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면 개혁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권력을 다른 권력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권력도 남용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개혁이다.
다섯째는 인사와 권력 감시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기국회 개회를 이틀 앞둔 지난달 30일 2기 내각으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이형일, 법무부 장관에 김승원 후보자를 지명하는 등 6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전격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오로지 '공소 취소'임을 확인한 '국정 테러 개각'이라며 핀셋 검증을 예고했다. 그러나 필자는 14일부터 열리는 인사청문회가 흠집내기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국정을 맡을 능력과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책임감을 검증하는 본래 기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다섯 가지 모두 여야가 쉽게 합의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바탕으로 국정과제 입법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고 국민의힘은 ‘입법 독주’를 막겠다며 맞서고 있다. 벌써부터 정기국회를 ‘100일 입법·예산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러나 법안 처리가 늦어지고 예산 심사가 부실해지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기국회가 정쟁에 묻혔다는 비판은 거의 매년 반복됐다. 국정감사는 고성과 호통으로 끝나고, 대정부질문은 정책보다 정치공방에 치우치며, 예산안은 법정 시한을 앞두고 여야 지도부의 막판 협상으로 결정되는 모습도 익숙하다.
수백조원의 국민 세금을 심사하면서 정작 국민은 어떤 사업이 왜 늘고 줄었는지 알기 어려웠다. 올해만큼은 이런 익숙한 풍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기국회는 여당이 정부를 지키고 야당이 정부를 공격하는 정치적 대결의 무대가 아니다. 국회가 국민을 대신해 행정부에 맡겨진 권력을 점검하고, 국민이 낸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 결정하는 자리다. 여당은 다수 의석을 가졌다는 이유로 야당의 질문을 외면해서는 안 되고, 야당도 정부를 공격하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수당에는 절제의 책임이 있고 소수당에는 대안의 책임이 있다.
오늘부터 100일 동안 국회가 다뤄야 할 숫자는 800조원만이 아니다. 집을 기다리는 무주택자,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매출이 줄어든 소상공인, 투자를 고민하는 기업,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지역 주민들의 삶이 그 숫자 뒤에 있다.
결국 예산이든 법안이든 국회가 판단해야 할 기준은 하나다. 국민의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하느냐다. AI도 부동산도 사법개혁도 그 기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번 정기국회가 정쟁이 아니라 민생과 미래를 놓고 경쟁하는 기간이 돼야 하는 이유다.
정기국회 100일은 길어 보이지만 대한민국의 지난 1년을 결산하고 다음 1년을 설계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더욱이 국회는 올해 이미 220일간 임시국회를 열었지만 국민의 기억에는 민생의 성과보다 입법 독주와 필리버스터, 여야의 충돌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이번 정기국회만큼은 달라야 한다. 800조원이 넘는 나라살림부터 부동산과 AI, 사법개혁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들이다.
12월9일 정기국회가 끝나는 날 국민은 국회에 물을 것이다. 320일 동안 국회의 문을 열어 무엇을 해결했고, 무엇을 바꿨으며, 대한민국의 내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했는가.
<skkim596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