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31일, 성평등가족부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국회의원직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용 의원은 이날 자신이 페이스북에 “의원직을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이 국회에서 의석을 잃고 원외정당이 된다”고 썼다. 일각에서 제기된 사퇴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가 법 조문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것과 정치적으로 떳떳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장관에 입각할 경우 의원직을 내려놓는 것은 오랫동안 정치권에서 지켜져 온 관행이었다. 지역구 의원과 달리 비례대표 의원은 사퇴하면 다음 순번 후보자가 의석을 승계한다. 국회의원으로 국민의 대표 역할을 하다가 행정부의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다면, 국회 자리를 비우고 후순위 후보자에게 의석을 넘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정치적 질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고 한다.
용 의원이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은 원내 의석을 잃는다. 현재 기본소득당의 현역 의원은 용 의원 한 명뿐이다. 용 의원이 사퇴할 경우 비례대표 의석은 다음 순번인 고재순 전 노무현재단 사무총장(더불어민주당 소속)에게 승계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되면 기본소득당은 국회에서 0석이 된다.
용 의원은 ‘소수 정당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국회의원 한 사람의 자리가 특정 정당의 생존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례대표 의석은 의원 개인에게 주어진 정치적 재산이 아니다.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정당과 후보자에게 배분된 국민의 대표 자리다. 따라서 그 자리를 차지한 의원이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 이동한다면, 개인이나 정당의 사정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국민의 대표 기능이 어떻게 이어지느냐 하는 문제다.
더구나 용 의원 자신도 개인의 결정이 당의 진로와 직결될 수밖에 없는 소수 정당의 어려움을 이유로 들었는데 바로 대목이 이 역설적이다.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는 가장 큰 이유가 ‘국민을 대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의 원내 의석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이것은 국회의원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장관은 행정부의 핵심 직책이다. 국회의원은 입법부의 구성원이다. 물론 법적으로 겸직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두 권한을 동시에 쥐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용 의원이 맡게 될 자리는 성평등가족부 장관이다. 정부 부처의 정책을 총괄하면서 국회에서도 의정활동을 계속하겠다는 것은 단순히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부를 대표하는 장관과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의원이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한 사람이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과연 정치적으로 바람직한가라는 문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 책임의 문제다.
장관으로서 정부 정책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으로서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위치에도 서게 된다. 아무리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해도 국민 입장에서는 역할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결정에는 ‘당의 존립’이라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노골적으로 들어가 있다.
결국 국민이 선택한 비례대표 의석 하나를 정부 장관직을 수행하면서도 유지하고, 그 의석을 통해 소속 정당의 원내 지위를 계속 보장하겠다는 모양새가 된다. 이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선택인지, 정당을 위한 선택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치는 명분으로 평가받는다.
과거 정치권에서는 법에 명시되지 않은 원칙과 관행도 중요하게 여겼다. 법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엇이든 하는 것이 정치라면, 관행과 책임이라는 말은 애초에 필요하지 않다.
용 의원이 차기 총선에 비례대표로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으나 이것 역시 지금의 문제에 대한 답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다음 선거에서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현재 맡고 있는 국회의원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 있는 판단이다.
소수 정당의 어려움은 이해할 수 있다. 한 석이 당의 존립을 좌우하는 현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한 정치적 기준이 필요하다. ‘우리 당이 어려우니 의원직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논리는 정당의 입장에서는 절박할 수 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국회의원은 당의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장관이 되고 싶다면 장관의 책임을 다하고, 국회의원으로 남고 싶다면 국회의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두 자리를 동시에 차지할 수 있다는 법률 조항을 방패 삼아 두 권한과 두 지위를 모두 가져가는 것이 과연 국민이 기대하는 정치의 모습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법의 최소선을 지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할 수 있다’와 ‘하는 것이 옳다’ 사이에는 정치의 양심이라는 거대한 간극이 있다. 용 의원이 이번 선택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간극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의원직이 한 정당의 생존을 좌우한다면, 그 사실 자체가 먼저 정치적으로 성찰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그 해답을 ‘그러니 내가 계속 의원을 하겠다’는 결론으로 끝내는 것은 너무도 편협하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배지를 두 개 단 정치인이 아닌, 자신에게 유리한 권한 하나를 내려놓을 줄 아는 정치인의 책임감 있는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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