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실종사건이 사망사건으로 바뀌었다. 수개월 동안 마음 졸였던 가족은 백골이 된 시신을 마주하고 무너졌다. 여기에 경찰의 사건 처리 방식이 충격을 더 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 시스템으로 지워진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제주도에서 일어난 ‘장미란씨 실종사건’이 국민을 경악에 빠뜨렸다. 장씨가 실종된 지 3개월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사건이 커졌다. 특히 장씨의 시신이 발견되기까지 경찰이 안일함을 넘어 ‘의도적’으로 행동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국민을 지켜야 할 수사 기관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 1명이
사건 끝내
경찰은 지난 24일 제주시 한림읍 수원리 인근 야자수 숲에서 발견된 시신이 장씨로 확인됐다고 25일 밝혔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장씨에 대한 부검이 진행됐다. 신원 확인을 위해 지문을 확보하려 했지만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대신 치아를 통해 신원을 확인했다고 부연했다. 또 장씨가 외출 당시 소지했던 휴대폰 등이 함께 발견됐고 팔찌와 반지도 착용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씨의 시신이 발견된 지점은 그가 지난 5월12일 오후 10시15분께 나선 장기 투숙 숙소에서 400m 떨어진 곳으로, 도보로 약 5분 거리다. 장씨는 실종된 지 104일, 실종 신고가 접수된 날(5월15일)로부터 101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장씨 사건이 충격적인 점은 경찰이 실종 신고를 임의로 처리했다는 데 있다. 장씨에 대한 실종 신고를 접수했던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부모 경장은 ‘장씨와 통화해 안전을 확인했다’며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 자료를 삭제하고 임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부 경장의 허위 종결은 수색 중지로 이어졌고 ‘골든타임’을 놓쳤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같은 사례가 장씨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장씨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또 다른 실종자 가족이 재차 신고했고 경찰은 이튿날 숨진 실종자를 발견했다. 이 사건 역시 부 경장이 허위로 종결 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 경장이 지난해 3월부터 지난 11일까지 실종팀에서 근무하며 담당한 실종 신고는 289건이다. 허위 종결한 사건이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경찰 허위 종결로
놓쳐버린 골든타임
심지어 부 경장은 프로파일링 시스템 내 장씨를 ‘교통사고 사상자’라고 표시해 관리 대상에서 삭제시킨 사실이 확인됐다.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은 실종 아동과 성인 가출인 등의 신고, 발견 정보를 관리하고 수색과 수사를 지원하는 경찰 내부 정보 시스템이다. 실종자의 과거 신고, 발견 이력과 해제 사유, 조치 내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부 경장의 행보를 두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경찰 사이에서 ‘충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 경장의 사건 처리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부 경장이 ▲장씨와 연락도 하지 않았으면서 가족에게는 무사하다고 거짓말한 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항목에 표기하면서 기록을 삭제한 점 ▲허위 종결한 실종 신고 사건이 또 있는지 등이 의문으로 떠올랐다.
부 경장은 현재 구속된 상태다. 사건이 드러난 후 긴급체포됐다가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된 지 하루 만이다. 제주지법은 지난 25일 직무유기, 공전자기록 위작 및 행사,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을 받는 부 경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장 발부 사유는 증거 인멸, 도주 우려 등이다.
제주서부경찰서 지휘 라인 4명도 전원 대기 발령됐다. 대상자는 장씨의 실종신고가 처음 접수됐을 당시의 제주서부경찰서장과 현 서장, 형사과장, 실종팀장 등이다. 경찰청은 이들에게 사건 처리에 대한 지휘 책임을 묻는 한편 지휘‧감독 책임과 관련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감찰 조사를 진행 중이다.
숙소 인근
시신 발견
장씨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면서 경찰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경찰이 이번 실종신고 허위 종결 논란으로 다시 한번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특히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불거진 검찰의 보완수사권 논란이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가 예정된 데 이어 보완수사권까지 없어지면서 경찰은 수사의 전 과정을 사실상 총괄하게 됐다. 경찰과 검찰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남겨둬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법안이 통과되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우려가 상당했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에 대한 걱정을 표했을 정도였다. 실제 경찰은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법안이 시행되는 시기까지 잘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장씨 사건이 터지면서 경찰의 수사력을 믿을 수 있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상대적으로 국민과 밀접한 수사 기관인 만큼 불안이 커지는 상황이다.
동시에 ‘성인 실종’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인이 실종되면 아동이 없어졌을 때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일하게 처리되는 현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많은 성인 실종자가 가출 등의 이유로 사라졌다가 안전하게 돌아오는 사례가 많다 보니 경찰의 대응력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실종자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경찰의 안일한 대응으로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면 실종자가 뒤늦게 발견된다 해도 그 시간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방법이 요원하다. 실제 장씨의 사례도 보면 다시 수색이 진행될 시점에는 CCTV 등 물리적 증거를 확보할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아동 실종
보다 많다
무소속 한동훈 국회의원실이 제주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장씨의 실종 지점 인근 공공 CCTV 118대의 영상은 6월 중순 모두 삭제됐다. 장씨가 사라진 곳은 제주시 한림읍 일대로 이 지역엔 방범용 CCTV 111대와 제주도 자치경찰단 교통정보센터의 교통정보수집용 카메라 7대가 설치돼있었다.
하지만 실종 당시 영상은 남아 있지 않다. CCTV 영상 보존기간이 30일이어서 자동 삭제된 것이다. 장씨가 사라진 지난 5월12일부터 20일까지의 영상은 6월11일부터 19일 사이에 지워졌다. 그사이 경찰이 영상 확보에 나섰으면 장씨의 동선을 확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장씨의 가족이 경찰 대응에 분통을 터트리는 이유다.
실종 전문가들은 장씨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된 가출인(성인 실종) 신고는 7만814건으로 전체 실종‧가출 신고의 56.5%를 차지했다. 18세 미만 아동(2만9563건), 치매환자(1만6583건), 지적‧자폐성‧정신장애인(8420건)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이 중 같은 기간 해제 처리된 성인 실종 사건은 7만591건으로 접수 건수의 99.7% 수준이었다. 해제 건수에는 이전 연도 접수분도 포함돼 정확한 해제율과는 차이가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 발견되는 셈이다. 경찰은 대부분 성인 실종 신고 사례가 단순 가출이나 일시적인 연락두절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0.3%의 실종자다. 실제 지난해 해제 처리된 성인 실종 사건 중 931건은 사망 상태로 발견됐다. 단순 가출 등으로 처리되는 비율이 100%에 가깝다고 해도 개별적으로는 범죄 가능성 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여기에 미해제 사건도 계속 누적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미해제 상태였던 성인 실종 사건 765건 중 441건은 올해 7월 말까지도 그대로다. 이렇게 수십년 간 누적된 성인 실종 미해제 사건은 지난달 말까지 6605건에 이른다.
대부분 단순 가출로 처리돼
법안 발의돼도 번번이 폐기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전미찾모)’ 회장은 “국가수사본부장이 (장미란씨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서울경찰청장이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전국 단위의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씨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실종수사팀 등을) 강도 높게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동이든 성인이든 사람이 실종된 사건에서 관건은 초동수사와 시간이다. 그 시간을 놓치면 실종자의 동선을 파악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성인 실종 사건이 1년에 10만여건이 발생한다고 했을 때 (해제율상으로) 1000여건이 시신으로 발견된다면 그 많은 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땅에 묻혔는지, 수장됐는지를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그걸 단순히 성인이라는 이유로 단순 가출로 처리하는 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 회장은 성인 실종법이 빨리 처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인 실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경찰 개인의 판단에 따라 사건이 자의적으로 처리되는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장씨와 같은 사례는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다. 현재 계류돼 있는 성인 실종법을 병합 심리해서 이번에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인 실종 관련 법안은 이미 수차례 국회에 발의된 바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단 한 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행법상 실종자는 18세 미만 아동이나 지적‧자폐성‧정신장애인‧치매 환자를 뜻하는 ‘실종 아동 등’에 한정된다. 성인 실종은 경찰청 예규에 따라 ‘가출자’로 분류된다. 그 결과 성인 실종의 ‘사각지대’가 생겼다.
22대 국회에서도 성인 실종 관련 법이 발의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임호선‧허성무 의원과 국민의힘 이달희 의원이 각각 발의한 제정안에는 ‘생명‧신체에 대한 위험으로 조속한 발견이 요구되는 사람’을 특정 성인 실종자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들의 위치를 추적하고 DNA 검사와 대조, 관계 장소 출입 조사 등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제정안에 포함했다.
사건 나야
허둥지둥
그동안 성인 실종 관련 법안을 두고 불거졌던 사생활 침해, 공권력 낭비 등의 문제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장씨 사건을 비롯해 뒤늦게 주검으로 발견되거나 끝내 돌아오지 못한 성인 실종 사건의 책임을 경찰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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