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5·18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 논쟁에 포문을 열었다. 국민의힘 김태규 의원도 결이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사실상 이 의원을 두둔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과 박민영 미디어대변인까지, 이들 ‘장동혁 크루’는 왜 끊임없이 적을 만들까?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이 지난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새역사국민운동과 함께 ‘자유민주 관점 5·18 학술 포럼’을 개최했다. 새역사국민운동은 평소 5·18 민주화운동(이하 5·18)에 대해 “국가폭력이 기획한 학살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해 왔다.
8월의
5·18
이날 행사에는 전두환씨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허화평씨도 참석했다. 이 외에도 ▲이영훈 새역사국민운동 공동대표 ▲국민의힘 손수조 미디어대변인 ▲국민의힘 장성호 구로을 당협위원장 등도 참석했다.
이 의원은 “5·18은 특정 진영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학자의 연구·기자의 기사에 금기가 가해진다면 사상·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5·18을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열흘간의 소요 사태”라고 규정했다. 공동 발제자인 국민의힘 주동식 전 광주서구갑 당협위원장은 “대한민국의 정통 주인은 이승만·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맥락”이라며 5·18에 대해 “대외적으로 고립시키고 내부적으로는 분열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다음 날 이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지난 17일에는 국민의힘 책임당원 3700여명이 이 의원을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 의원이 행사에서 나온 발언은 자신의 의견과 무관하다고 밝혔다”며 “현재로선 징계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의원을 엄호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채널A 유튜브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토론회를 개최하고, 질문·논의하는 것조차 막는다면 이것은 또 다른 성벽이 될 것”이라며 “역사에 대한 존중과 별개로 이 이야기에 대한 질문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함께 근무했던 국민의힘 김태규 의원은 지난달 6일 YTN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5·18을 함부로 성역으로 만들어서 천부인권인 표현의 자유가 침투하지 못하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현재 국민의힘 원내수석대변인·법률자문위원장을 맡고 있고, 법제사법위원회에도 배치됐다. 최근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민주당 의원들과 고성을 주고받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과 박민영 미디어대변인도 장동혁 대표 체제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맡고 있다. 조 최고위원은 장 대표가 지명했고, 박 대변인은 당내 쇄신 요구에도 지난 3월 재임명됐다.
이들 5명이 똑같은 정치적 견해를 공유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들은 정치적 충돌이 발생했을 때 자신을 공격자가 아닌 방어자로 규정한다. 이어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와 충돌하는 상대에 대해선 선명한 경계를 긋는다. 이들은 최근 장 대표 주변에서 눈에 띄는 ‘장동혁 크루’라고 볼 수 있다.
“불편한 의견도 말해야” 장 크루의 자유론
“방어했을 뿐” 조·박 선명해진 정치적 경계
우선 이 의원·김 의원·김 최고위원은 민감한 정치적 쟁점에서 표현·사상의 자유를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19세기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4일 “5·18이 특별법에 의해 민주화 운동으로 규정됐으니 더 이상의 토론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 5·18은 성역을 넘어 이미 신화가 된 것”이라며 “특별법으로 보호받는 사건에 대해선 어떤 토론도 하면 안 된다는 거냐”고 반발했다.
김 최고위원도 지난해 11월 이재명정부가 중앙행정기관 공직자를 대상으로 비상계엄 가담자 조사를 추진하자 “대한민국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며 언론·집회·결사·표현·양심·통신의 자유 등을 거론했다. 이후에도 이재명 정부를 비판하면서 자유를 주요 언어로 사용해 왔다.
<자유론>을 대입하면 ▲틀린 의견이라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틀리고 상대가 맞을 가능성도 있다 ▲상대가 틀렸더라도 반론이 사라지면 참인 의견조차 ‘죽은 교리’가 될 수 있다 ▲사회적 다수의 압력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등 논리가 성립한다.
이를 이들의 방식으로 해석하면 이미 역사적·법적 평가가 이뤄진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토론 자체가 금기가 돼선 안 되며, 자신에게도 반대 의견을 말할 자격이 있다. 이들이 꿈꾸는 사회는 ‘불편한 의견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사회’인 것으로 보인다.
밀에 따르면 내면의 사상은 개인 자유의 핵심 영역이다. 옳은 생각을 하는 자유뿐만 아니라 틀렸다고 여겨지는 생각을 할 자유까지 포함된다.
하지만 밀도 자유를 무제한으로 주장하지 않았다. 밀은 <자유론>에서 개인의 자유와 타인에게 해악을 초래하는 행위 사이에 경계를 그었다. 말할 자유가 있다는 것과 말한 내용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같은 말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장동혁 크루’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정치적 문법은 상대와의 선명한 경계다. 독일 법학자 칼 슈미트는 정치를 궁극적으로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문제라고 이해했다. 그가 말한 정치적 적은 단순히 의견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집단적 존재 방식과 충돌할 수 있는 공적 상대를 뜻한다.
이 의원은 지난 4월 YTN <장성철의 뉴스명당>에서 “대한민국이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의 세력권 영토가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본다”며 “대단히 불건강한 또는 법치를 왜곡하는 세력이 포퓰리즘 정책을 통해 잠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건강한 자유 우파의 자유민주주의 영역을 넓히는 취지의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게 지지자들에게 통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의 발언은 상대 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공간을 잠식하니 다시 넓혀야 한다는 취지로 해독할 수 있다. 이는 슈미트가 말하는 정치공동체의 자기보존 논리와 공명할 수 있다.
어둠 속
죽는다?
지난 6월17일에는 “저더러 싸움꾼·투사라고 하지만 제가 먼저 싸움을 건 적은 한 번도 없고 방어를 했을 뿐”이라며 “싸움을 건 적이 없으니 제게 싸움꾼이라고 하는 것은 정당·합당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조 최고위원도 지난 6월19일 KBS 라디오 <전격시사>에 출연해 장 대표 사퇴론을 두고 “계속해서 똑같은 사퇴 요구를 앵무새처럼 떠드는 건 정치적 미숙아”라고 주장했다. 정치적 이견을 단순한 견해 차이를 넘어 상대의 정치적 자격과 판단 능력의 문제로 전환한 셈이다.
박 대변인은 지난해 11월 유튜브 채널 ‘감동란’에 출연해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을 향해 “장애인 할당이 너무 많다” “눈이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기득권”이라고 말하면서 “당론을 제일 많이 어긴다. 배은망덕”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박 대변인에게 장 대표가 경고했지만, 지난 3월 다시 그를 미디어대변인에 임명했다.
당시 박 대변인은 자신의 행위를 두고 “지도부 공격 등에 대한 방어적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과 박 대변인의 자기 설명에는 공통점이 있다.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정치공동체가 공격받고 있기 때문에 방어한다는 것이다. 조 최고위원도 장 대표를 향한 반복적인 사퇴 요구를 단순한 의견 차이보다 정치적 자격의 문제로 규정했다.
슈미트의 적·동지 구별은 극단적으로 전쟁의 가능성까지 전제한다. 하지만 적을 구별하는 것과 전쟁 자체를 선호하는 것은 다르다. 공동체가 자신의 정치적 존재를 위협받는다고 판단한다면 그에 맞설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슈미트가 말하는 정치적 적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나 단순히 의견이 다른 상대와도 다르다. 그는 정치적 적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악하거나 미학적으로 추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중요한 것은 정치공동체의 존재 방식과 양립하기 어려운 공적 상대냐는 것이다.
이 의원이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재임할 당시 ‘노동 권력’을 언급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지난해 8월 개정 방송법을 비판하면서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의 슬로건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를 인용했다.
이어 “언론이 정치·자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면 노동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며 “특정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언론은 어둠 속에서 죽는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에게 ‘노동 권력’은 단순히 견해가 다른 집단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주의적 언론관을 위협할 수 있는 권력 주체인 셈이다.
이 의원·김 의원·김 최고위원은 자유를 강조한다. 이 의원·조 최고위원·박 대변인에게선 자신들이 지켜야 할 영역과 정치적 상대를 나누는 강한 경계가 발견된다. 과연 이들에게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진영’은 같은 것일까.
존재감
도전장
슈미트는 히틀러 집권 전부터 나치즘을 지지한 인물은 아니지만, 1933년 이후 나치 정권에 협력하며 정권의 법적 정당화에 적극 나섰다. 반면 독일 출신 법학자 카를 뢰벤슈타인은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와 권리를 이용해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리는 파시즘의 위험에 주목했다.
뢰벤슈타인은 1937년 ‘전투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의 문제의식은 민주주의가 사상·표현·결사의 자유와 민주적 절차를 이용해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하려는 세력까지 무제한으로 관용해야 하느냐는 데서 출발했다.
나치 독일은 집권 후 민주적 질서를 해체했고, 전쟁과 유대인 학살이라는 비극으로 치달았다. 5·18을 홀로코스트와 동일선상에 놓을 수는 없지만, 우리 법은 5·18을 군부 등에 의한 헌정 질서 파괴 범죄와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다수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뢰벤슈타인의 시선은 이들이 강조하는 자유의 한계를 두고 “자유는 자신을 파괴하려는 행위까지 보호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뢰벤슈타인의 전투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국가가 법적·제도적 방어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전후 독일 기본법에는 이와 같은 방어적 민주주의의 정신이 반영됐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기 위해 표현·언론·집회 등의 자유를 남용하면 헌법재판소가 해당 기본권의 상실을 결정할 수 있다. 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하거나 폐지하려는 정당은 위헌정당으로 판단될 수 있다.
독일 기본법에는 이른바 ‘영원조항’도 있다. 개헌에 필요한 압도적인 의회 의석을 확보하더라도 연방제의 기본 구조·인간의 존엄·국민주권을 포함한 민주·사회·법치국가의 핵심 원칙 등은 헌법 개정으로도 훼손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5·18에 대한 국가적 재평가는 이미 1988년 국회의 진상조사와 청문회 등을 거쳐 진행됐다. 김영삼정부는 1995년 5·18 특별법 제정과 책임자 처벌을 통해 그 역사적·법적 평가를 제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신한국당을 포함한 여야가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다는 점도 국민의힘 계보와 무관하지 않다.
국민의힘이 향후 개헌 과정에서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자체를 부정한다면 보수 정당 계보가 직접 참여해 온 역사적 평가와 충돌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뢰벤슈타인의 질문은 결국 이들에게 돌아온다. “표현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훼손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유는 어디까지? 자유민주주의 자기방어 딜레마
같은 편끼리 말하고 듣기? 포럼·유튜브 소통 한계
마지막으로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시선을 대입해 볼 수 있다. 이 의원이 주최한 포럼은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인사들이 중심이 돼 진행됐다. 이는 이 의원뿐 아니라 국회에서 열리는 상당수 토론회가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
비슷한 견해를 여럿 나열해 서로의 의견을 확인할 뿐 반대 논거가 실제로 제시되고 검증되는 구조가 약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버마스라면 이 의원을 포함한 상당수 우리 국회의원에게 “당신들의 대화는 민주적 대화냐”고 물을 수 있다.
박 대변인의 김예지 의원 비판도 김 의원이 참여하지 않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이뤄졌다. 많은 청중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과 상대와 논거를 주고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런 방식은 이들만의 특징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자신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청중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반대자와는 강한 경계를 긋는 정치적 소통이 반복된다면, 그것이 실제 설득을 위한 대화인지 지지층을 향한 동원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론과 숙의민주주의는 상대를 자신의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취급하는 전략적 행위와 상호이해를 지향하는 의사소통 행위를 구별한다. 우호적인 토론자들만 모여 각자의 입장을 확인하거나 반대자를 향해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은 숙의보다 병렬적인 독백에 가까워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같은 자리에서 반론을 듣고 사실을 검증하면서 상대의 논거에 따라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가능성까지 열어두느냐는 것이다. 목적이 상호이해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확산하고 지지층을 동원하는 것인지도 구분해야 한다.
이 의원은 토론회에 대한 비판에 주로 ‘표현의 자유’를 강조했다. 하지만 반대편의 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답할 것인지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하버마스의 관점에서 진정한 공론은 말할 자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듣고 반론에 답할 준비까지 필요하다.
이 의원은 국회 입성 두 달여 만에 제명 촉구 결의안이 통과될 정도로 존재감을 키웠다. 김 의원과 김 최고위원은 이 의원과 비슷한 자유의 언어를 사용한다. 조 최고위원과 박 대변인은 보다 전투적인 정치 언어를 구사한다.
왜 적이
필요한가
다섯명의 정치적 주장과 역할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을 하나의 ‘장동혁 크루’로 묶어볼 수 있다면 공통된 질문도 생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하면서 자유를 강조한다. 동시에 그 가치를 위협한다고 판단한 상대와 선명한 경계를 긋는다. 이들이 지키겠다는 자유민주주의는 무엇이며, 그 자유민주주의에는 왜 이토록 선명한 ‘적’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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