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은 개혁보다 안정을 택했다. 이로써 ‘강경 개혁파’를 앞세운 정청래 전 대표 연임도 물거품이 됐다. 여당 전체를 흔든 전당대회인 만큼 후유증도 상당하다. 전당대회에 모든 걸 걸었던 정 전 대표의 정치 운명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이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던 이재명 대통령과 강경 개혁론을 앞세우던 민주당 정청래 전 대표 사이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갈등이 당원들의 마음속 위기의식을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자숙?
그동안 민주당에서는 정 전 대표의 자기정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 대표직을 놓고 정 전 대표와 겨룬 송영길 전 후보는 “민주당의 위기는 정청래 후보의 자기 정치에 있다”며 “이재명정부의 성공보다는 자기 측근들을 공천해서 자리를 잡게 하고, 자기 세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다. 심지어 자기 조직 확대를 위해 이재명 대통령까지 공격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생각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의견을 표시할 뿐만 아니라 유시민 작가처럼 대통령을 공격하는 세력들을 방치하고 사실상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는 듯한 모습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정 전 대표는 전당대회 마지막까지 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민주당은 개혁이 정체성이다. 개혁하면 승리했고 개혁에 실패하면 외면 받았다”며 “민주당을 민주당답게 정청래와 함께해 달라”고 강조했다. 1인1표 당원주권 개혁과 검찰개혁 등을 성과로 내세운 그는 “당원들만 믿고 가겠다”며 강력한 개혁 의지와 당내 단결을 지지층에 호소했다.
그러나 당심은 당정청 간의 소통과 안정을 주장한 김민석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제는 이재명정부와 발을 맞춰 민생을 돌보는 여당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당원들의 판단이 작용한 셈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지난 전당대회는 계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에 개혁 어젠다가 먹혔다”며 “그 프레임을 그대로 끌고 가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원들도 이제는 개혁을 매듭짓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라고 설명했다.
연임에 실패한 정 전 대표가 곧바로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결국 ‘안정’ 택한 당심
‘갈등의 벽’ 못 넘은 정
지난 17일 정 전 대표는 선거 패배 후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김민석 대표는 이겼지만 그의 주장은 진 것이 많다”며 “반명·분열주의· 신천지 3자 비밀 연합을 깨는 것이 이번 전대 본질이라고 했는데, 그건 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정청래가 숫자로 졌지만 정청래가 주장한 것까지 진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들과 만나서도 “조직은 바람을 이기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직이 너무 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숫자로 졌지만 우리의 열정과 가치가 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울컥했다. 그는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총선에서 이기고 대선에서 이겨야 하는데 이 사람 빼고, 저 사람 빼면 누구랑 총선에 승리한다는 말인가”라고 했다.
그는 국민여론조사에서 자신이 우위를 보인 점을 강조하며 “송영길 후보의 2순위 표까지 더해서 나온 결과다. 아마 2순위표를 더하기 전에는 5%포인트 정도로 이겼을 것”이라고도 했다. 선거 과정에서 ‘반명(반 이재명)’ 프레임에 갇히고도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친청(친 정청래)계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어준 뉴스공장 대표도 힘을 보탰다. 그는 김용 최고위원 후보의 탈락을 두고 “민주당 의원들에게 받아들여진 메시지도 무척 예사롭지 않다. ‘친명(친 이재명)이라고 내세우는 것이 자기 정치, 자기 당선에 도움이 되나?’ 의원들이 이제 따지기 시작할 것이다. 곧 총선이 있고 자기 선거가 다가오니”라며 “청와대로서는 의원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게 지금 지지율 빠진 것 이상의 위기”라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친청계인 최민희 최고위원도 “끝까지 정청래 전 대표와 함께하겠다”며 “제가 수석최고가 됐지만 제 표가 아니다. 정청래 대표님이 나눠준 표다. 이해찬 정신으로 정청래와 함께 민주당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는 KBS 라디오에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이 정청래 후보에게 손을 들어줌으로써 그 가치를 지켰다”며 “사실은 선호투표제가 적용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이 아닌가. 본래 얻은 득표율은 정 후보가 훨씬 더 높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 전 대표의 행보를 겨냥한 비판적 여론도 적지 않다. 여당 내에선 “꼬리가 길다”는 말이 나온 탓이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후보를 향해 “(선거 결과에) 꼬리를 달았다”며 “깨끗하게 승복하는 것이 더 큰 민주주의”라고 말했다. 그는 정 후보가 일반 국민여론조사에서 본인이 승리한 결과를 강조한 것을 두고 “선거 룰은 모든 걸 합쳐서 하기 때문에 그걸 강조할 필요 없다”고 지적했다.
최민희·이성윤·한민수 지도부 입성
“끝까지 함께” ‘정청래 입’ 될까
박 의원은 “저도 국회의장 (선거) 때 70~80% 국민적 당원의 지지를 받았지만 (국민·당원 여론조사에서) 5% 받은 사람한테 졌다”며 “(그때) 내가 돌아다니면서 ‘내가 국민 지지 받았으니까 나도 의장이다’ 이런 얘기하면 나만 바보 되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비록 정 전 대표는 고배를 마셨지만 그의 정치 생명이 끝났다고 보는 시각은 정치권 내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전당대회 내내 김민석 신임 대표와 각을 세운 친청계 인사들이 대거 지도부에 입성하면서 정 전 대표의 의중이 우회적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직접 지도부와 부딪히는 등 당청 갈등에서 벗어나면서도 주요 의사결정 과정마다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치권 일각에서는 낙선한 정 전 대표의 현재 상황이 강경 지지층 사이에서 오히려 동정표를 끌어모으는 강력한 ‘언더독’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시된다. 주류 세력과의 정면 대결 과정에서 “억울하게 밀려났다”는 프레임이 형성될 경우 강경 지지층의 결집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정 전 대표는 비주류에서 시작해서 당 대표까지 거머쥔 사람”이라며 “비록 지금은 낙선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 전 대표의 지지층이 한 순간 돌아설 일은 없다. 오히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다음을 고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다음이 총선이 될지 차기 당 대표가 될지 대선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라고도 설명했다.
결국 축적된 동정심은 정 전 대표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낙선 이후 정 전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당원 동지 여러분, 탈당하지 마시고 정청래와 함께 해 달라”며 곧바로 당원을 향한 메시지를 냈다.
동정론
정 전 대표는 “당의 주인은 당원인데 주인이 집을 나가서야 되겠느냐. 당원 주권 정당의 깃발을 더 높이 들어야 한다”며 “정청래와 함께 끝까지 가자. 당원 동지 여러분 정말 눈물 나게 고맙다”고 적었다. 이어 “민주당이 승리하는 그 길에 끝까지 힘을 모아달라.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저는 제 자리에서 개혁과 4통 통합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겠다.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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