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헌법 개정 이후 다시 대선에 출마해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조정식 국회의장·조원철 법제처장까지 ‘국민의 선택’이나 ‘국민의 결단’을 언급했다. 이런 주장은 헌법학적으로 성립할 수 있을까?
조정식 국회의장이 지난달 28일 “권력구조 개편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 문제 등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의 여론과 선택의 문제”라며 “여러 정치적 당사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합의해 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국회 사랑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론의 선택?
“야권이 개헌에 반대하는 궁극적인 이유로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 거론된다”는 질문을 받은 조 의장은 “지금 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도 “나중에 개헌 논의에서 권력구조가 다뤄지면 이슈가 될 수 있는데, 헌법개정자문위원회나 개헌특위를 통해 의견이 수렴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조 의장의 발언은 크게 논란이 됐다. 결국 조 의장은 다음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당시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개헌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조원철 법제처장도 지난해 10월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결국 국민이 결단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답변했다.
그러다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실이 지난 12일 법제처로부터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법제처는 “대한민국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한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던 사람 중에는 이재명 대통령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지난해 5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론적으로는 헌법을 개정하면 그 조항조차도 국민이 바꾼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게 개정 당시의 국민의 뜻이라면 개정된 헌법에 따르는 게 국민주권주의에 더 맞는다”고 언급했다.
다만 “개헌 당시 대통령이 개정된 헌법에 따라 추가 혜택을 받겠다는 것을 국민들이 쉽게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전제했다. 지난 14일에도 “4년 중임 또는 연임제 개헌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면서 “필요하다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헌법 제70조는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하고 중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조 의장의 해명에서도 확인했듯,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고 규정한다.
조정식·조원철 ‘국민 선택·결단’ 거론
현직 불가 헌법 제70조·제128조 제2항
따라서 이 대통령이 개헌 이후 다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면 두 조항의 제한을 넘어야 한다. 여기서 등장한 방법론이 순차 개헌, 이른바 ‘쪼개기 개헌’이다. 제128조 제2항을 먼저 삭제한 후 제70조를 고쳐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바꾸는 방식이다.
박진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 3월 <대통령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의 소급적용에 관한 연구: 헌법 제128조 제2항의 해석과 적용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박 교수는 제128조 제2항을 먼저 삭제한 후 제70조를 개정하는 경우뿐 아니라 두 조항을 동시에 개정해도 현 대통령에게 새 헌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128조 제2항을 먼저 삭제한 뒤 제70조를 순차적으로 개정하든, 두 조항을 동시에 개정하든 신헌법은 개헌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도 효력이 미친다는 것이다.
반대로 헌법학자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제128조 제2항이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막고 한국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 마련된 ‘국민적 결단’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 조항을 개정하기 위한 헌법 개정을 제안하는 순간부터 제128조 제2항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해석이다.
정 전 장관의 의견에서 중요한 부분은 ‘국민적 결단’이다. 국민은 헌법제정권력의 주체다. 다만 헌법 개정 한계설에서는 헌법제정권자인 국민의 기본적 합의사항이나 헌법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는 개정은 헌법 내재적인 법 논리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다.
현행 헌법 제128조 제2항과 같은 내용의 조항은 제5공화국 헌법에서 제129조 제2항으로 신설됐다. 한국 헌정사에는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집권 기간을 늘린 사례가 있다.
이승만정부는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3선 개헌을 주도한 후 1972년 유신헌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연임 제한도 없앴다.
이후 신군부가 주도한 제5공화국 헌법조차 ‘장기 집권 배제’를 명분으로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제로 규정했다. 동시에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당시 대통령에게 적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장기 집권을 제도적으로 차단한다는 취지였다.
1987년 개헌에서는 5년 단임제를 선택하면서 이 원칙을 이어받았다. 따라서 제128조 제2항에는 “개헌을 현직 대통령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는 역사적·반성적 연원이 있다.
지지율 43%로 명분 충분한가
‘나치 법학자’ 그림자 아른
이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게 새로운 임기 규정을 적용하기 위한 개헌은, 헌법 개정 한계설의 입장에서 “헌법 개정의 역사적·내재적 한계를 무시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헌법적 자기 구속을 뛰어넘는 근거로 ‘국민의 결단’을 제시하는 것은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적 헌법관을 연상시킨다.
독일 법학자인 슈미트는 헌법의 근원에 주권자의 근본적인 정치적 결단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결단주의가 나치 체제를 위해 만들어진 이론은 아니지만, 슈미트는 나치 집권 이후 자신의 헌법 이론을 체제 정당화에 적극 활용했다.
따라서 역사적·반성적 연원을 가진 헌법적 제한을 없애면서 “국민이 다시 결단하면 된다”고 주장하면 결단주의 헌법관의 냄새를 풍길 위험이 있다.
문제는 국민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현직 권력자의 자기 수혜를 막기 위해 국민 스스로 만든 제한까지 현재의 정치적 결단을 이유로 없앨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2511명을 대상으로 무선 100% 자동응답(ARS) 방식을 적용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 응답은 43.0%였다. 부정 평가는 54.1%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응답률은 4.0%였다.
적어도 이 대통령이 국민 과반에게 직무수행 긍정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 일각이 현직 대통령의 재출마까지 ‘국민의 결단’으로 정당화하려 하면 상당한 정치적 뒤탈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슈미트 누구?
국민은 헌법을 만들고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장기 집권의 역사를 반성하면서 스스로 만든 헌법적 자기 구속도 현재의 정치적 결단만으로 해제할 수 있는 것일까. 슈미트의 결단주의가 남긴 역사는 이 질문을 가볍게 넘기기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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