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임 유혹’ 끄는 이재명, 왜?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6.08.25 15:56:05
  • 호수 15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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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불 속 결단의 시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헌법 개정 이후 다시 대선에 출마해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조정식 국회의장·조원철 법제처장까지 ‘국민의 선택’이나 ‘국민의 결단’을 언급했다. 이런 주장은 헌법학적으로 성립할 수 있을까?

조정식 국회의장이 지난달 28일 “권력구조 개편에서 현직 대통령의 연임 문제 등은 결국 주권자인 국민의 여론과 선택의 문제”라며 “여러 정치적 당사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합의해 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국회 사랑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여론의 선택?

“야권이 개헌에 반대하는 궁극적인 이유로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이 거론된다”는 질문을 받은 조 의장은 “지금 이를 이야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도 “나중에 개헌 논의에서 권력구조가 다뤄지면 이슈가 될 수 있는데, 헌법개정자문위원회나 개헌특위를 통해 의견이 수렴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조 의장의 발언은 크게 논란이 됐다. 결국 조 의장은 다음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당시 대통령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현직 대통령의 연임은 개헌 논의 대상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조원철 법제처장도 지난해 10월2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대통령의 연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결국 국민이 결단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답변했다.

그러다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실이 지난 12일 법제처로부터 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법제처는 “대한민국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한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와 비슷한 발언을 했던 사람 중에는 이재명 대통령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지난해 5월 기자간담회에서 “이론적으로는 헌법을 개정하면 그 조항조차도 국민이 바꾼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게 개정 당시의 국민의 뜻이라면 개정된 헌법에 따르는 게 국민주권주의에 더 맞는다”고 언급했다.

다만 “개헌 당시 대통령이 개정된 헌법에 따라 추가 혜택을 받겠다는 것을 국민들이 쉽게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전제했다. 지난 14일에도 “4년 중임 또는 연임제 개헌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면서 “필요하다면 자신의 임기를 단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헌법 제70조는 대통령의 임기를 5년으로 하고 중임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앞서 조 의장의 해명에서도 확인했듯,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고 규정한다.

조정식·조원철 ‘국민 선택·결단’ 거론
현직 불가 헌법 제70조·제128조 제2항

따라서 이 대통령이 개헌 이후 다시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면 두 조항의 제한을 넘어야 한다. 여기서 등장한 방법론이 순차 개헌, 이른바 ‘쪼개기 개헌’이다. 제128조 제2항을 먼저 삭제한 후 제70조를 고쳐 4년 중임 또는 연임제로 바꾸는 방식이다.

박진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 3월 <대통령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의 소급적용에 관한 연구: 헌법 제128조 제2항의 해석과 적용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박 교수는 제128조 제2항을 먼저 삭제한 후 제70조를 개정하는 경우뿐 아니라 두 조항을 동시에 개정해도 현 대통령에게 새 헌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128조 제2항을 먼저 삭제한 뒤 제70조를 순차적으로 개정하든, 두 조항을 동시에 개정하든 신헌법은 개헌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도 효력이 미친다는 것이다.

반대로 헌법학자인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제128조 제2항이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막고 한국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 마련된 ‘국민적 결단’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 조항을 개정하기 위한 헌법 개정을 제안하는 순간부터 제128조 제2항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해석이다.

정 전 장관의 의견에서 중요한 부분은 ‘국민적 결단’이다. 국민은 헌법제정권력의 주체다. 다만 헌법 개정 한계설에서는 헌법제정권자인 국민의 기본적 합의사항이나 헌법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하는 개정은 헌법 내재적인 법 논리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다.

현행 헌법 제128조 제2항과 같은 내용의 조항은 제5공화국 헌법에서 제129조 제2항으로 신설됐다. 한국 헌정사에는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집권 기간을 늘린 사례가 있다.

이승만정부는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3선 개헌을 주도한 후 1972년 유신헌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리고 연임 제한도 없앴다.

이후 신군부가 주도한 제5공화국 헌법조차 ‘장기 집권 배제’를 명분으로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제로 규정했다. 동시에 대통령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당시 대통령에게 적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장기 집권을 제도적으로 차단한다는 취지였다.

1987년 개헌에서는 5년 단임제를 선택하면서 이 원칙을 이어받았다. 따라서 제128조 제2항에는 “개헌을 현직 대통령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는 역사적·반성적 연원이 있다.

지지율 43%로 명분 충분한가
‘나치 법학자’ 그림자 아른

이 때문에 현직 대통령에게 새로운 임기 규정을 적용하기 위한 개헌은, 헌법 개정 한계설의 입장에서 “헌법 개정의 역사적·내재적 한계를 무시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헌법적 자기 구속을 뛰어넘는 근거로 ‘국민의 결단’을 제시하는 것은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적 헌법관을 연상시킨다.

독일 법학자인 슈미트는 헌법의 근원에 주권자의 근본적인 정치적 결단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결단주의가 나치 체제를 위해 만들어진 이론은 아니지만, 슈미트는 나치 집권 이후 자신의 헌법 이론을 체제 정당화에 적극 활용했다.

따라서 역사적·반성적 연원을 가진 헌법적 제한을 없애면서 “국민이 다시 결단하면 된다”고 주장하면 결단주의 헌법관의 냄새를 풍길 위험이 있다.

문제는 국민이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다. 현직 권력자의 자기 수혜를 막기 위해 국민 스스로 만든 제한까지 현재의 정치적 결단을 이유로 없앨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2511명을 대상으로 무선 100% 자동응답(ARS) 방식을 적용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 응답은 43.0%였다. 부정 평가는 54.1%였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응답률은 4.0%였다.

적어도 이 대통령이 국민 과반에게 직무수행 긍정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 일각이 현직 대통령의 재출마까지 ‘국민의 결단’으로 정당화하려 하면 상당한 정치적 뒤탈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슈미트 누구?

국민은 헌법을 만들고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장기 집권의 역사를 반성하면서 스스로 만든 헌법적 자기 구속도 현재의 정치적 결단만으로 해제할 수 있는 것일까. 슈미트의 결단주의가 남긴 역사는 이 질문을 가볍게 넘기기 어렵게 한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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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