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가득한 여름 즐기기 ④장풍숲·수승대·용암정(거창)

물길 따라 떠나는 거창의 풍류 여행

덕유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은 거창의 숲과 바위 사이로 굽이친다. 솔바람이 부는 장풍숲을 지나 너른 암반이 펼쳐진 수승대에 닿고, 계류를 내려다보는 용암정에서 고요히 머문다.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짓고 마음을 다스렸던 옛사람들의 풍류를 따라 거창으로 가자.

장풍숲은 장풍교 아래로 흐르는 위천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덕유산에서 흘러내린 물길이 빚은 솔숲으로, 멀리서 바라보면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모여 하나의 푸른 섬을 이룬 듯하다. 장풍교를 건너면 숲 안쪽으로 보행로가 이어지고, 얕은 물길과 둥근 바위가 어우러진 수변 풍경이 펼쳐진다. 숲에 들어서면 제각기 굽고 기울어진 소나무 줄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물과 소나무가 빚은 장풍숲

거친 나무껍질과 짙은 솔잎, 바닥을 덮은 푸른 풀이 서로 다른 질감을 이룬다. 높은 가지와 잎이 넓은 그늘을 드리우고, 그 사이로 스민 햇빛은 숲 바닥에 밝고 어두운 무늬를 그린다. 흙길과 잔디 쉼터, 벤치가 소나무 사이에 놓여 있어 솔바람과 물소리를 가까이에서 느끼며 천천히 걸을 수 있다.

장풍숲은 아름다운 경관에 머물지 않고 마을 사람들의 삶과 맞닿아 있던 숲이다. 한여름이면 들일에 지친 농부들이 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혔고, 옛 원학동 선비들은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 생활 속 휴식처이자 시와 노래, 그림이 어우러진 원림이었던 셈이다. 거창 출신의 조선시대 문신 동계 정온도 장풍숲의 풍경을 보고 ‘장풍로상(長風路上)’이라는 시를 남겼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앞산의 구름과 안개는 마을의 연기와 뒤섞이고 냇가에는 늙은 어부가 머물렀다. 정온은 그 고요한 모습을 두고 “어옹은 도롱이가 젖는 줄도 모르고, 갈대꽃 곁에서 백로와 함께 조는구나”라고 읊었다. 오늘날 위천의 물길과 소나무 군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모습을 바라보면, 옛 선비가 마주했던 아늑한 정취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장풍숲에서 위천의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거창 수승대에 닿는다.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너른 화강암반이 펼쳐지고, 그 사이로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른다. 매끈한 너럭바위와 짙은 소나무숲이 물길을 감싸고, 계곡 중심에는 수승대의 상징인 거북바위가 자리한다. 이곳은 자연경관과 오랜 기록문화가 조화를 이룬 가치를 인정받아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거북바위는 물 위에 떠 있는 거북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넓고 낮은 바위 위에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뿌리를 내렸고, 암면에는 크기와 서체가 서로 다른 글씨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수승대를 찾은 문인과 선비들이 남긴 시문과 이름이다. 흐르는 물과 바람이 바위의 형태를 다듬었다면, 사람들은 그 위에 자신이 마주한 풍경과 감흥을 기록했다. 자연이 만든 바위에 여러 시대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이곳은 본래 ‘수송대(愁送臺)’라 불렸다고 전한다. 퇴계 이황은 근심을 보낸다는 뜻의 수송대 대신 경치가 뛰어남을 뜻하는 ‘수승대(搜勝臺)’라는 이름을 시로 써 권했고, 이에 갈천 임훈 선생이 화답시를 남기며 새로운 이름이 널리 전해지게 됐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시와 새 이름이 전해지면서 수승대는 선비들이 산수를 감상하고 시문을 나누는 풍류 공간으로 널리 알려졌다. 거북바위에 가득한 각자는 수승대를 향한 옛사람들의 발길이 얼마나 오래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계곡 건너 소나무숲과 너럭바위가 만나는 자리에는 요수정이 서 있다. 조선 시대 학자 요수 신권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에서 비롯된 정자이다. 자연 암반을 인위적으로 깎거나 다듬지 않고 그 원형을 그대로 안고 서 있어, 정자가 계곡 풍경 속에 유연하게 녹아든다.

마루에 오르면 붉은 기둥과 채색한 난간 사이로 계류와 너럭바위, 소나무숲이 한 폭씩 나뉘어 들어온다. 처마 안쪽에는 다채로운 단청과 시문 현판이 이어지고, 모서리의 서까래는 부챗살처럼 정교하게 펼쳐져 있다.

덕유산서 수승대까지
거창의 풍류를 걷다

건축의 세부를 살핀 뒤 난간 너머로 시선을 옮기면 물과 바위, 숲이 정자의 일부처럼 어우러진다. 자연을 바라보며 학문을 닦고 시문을 나누었던 누정의 성격이 공간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승대의 풍경은 출렁다리에서 한층 넓게 펼쳐진다. 계곡 위 약 50m 높이에 놓인 보행 현수교로, 다리 위에서는 원학동 계곡과 이를 둘러싼 산림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발아래가 비치는 금속 격자형 보행 판을 따라 걸으면 다리가 가볍게 흔들리고, 바위 사이를 굽도는 물길이 멀리까지 이어진다. 거북바위와 요수정에서 만난 옛 풍류가 출렁다리의 탁 트인 조망으로 확장되며, 수승대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여준다.

수승대에서 위천의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용암정에 닿는다. 울창한 숲 사이로 맑은 계류가 흐르고, 물가의 너른 암반 위에는 기와지붕을 얹은 정자가 우뚝 서 있다. 인공적으로 평평한 터를 조성하는 대신, 바위의 울퉁불퉁한 굴곡을 따라 기둥 길이를 절묘하게 조율하여 세운 모습이 인상적이다. 정자와 암반, 물길, 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를 이룬다.

용암정은 조선 후기 학자 임석형이 위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까이 누리고자 세운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 깊고 유려한 곡선을 그린다. 자연석 위에 놓인 낮은 누하주(누마루를 받치는 아래층 기둥)와 처마 끝을 받치는 가느다란 활주(처마 끝을 받치는 보조 기둥)에서는 자연 지형을 살리면서 건물을 안정적으로 세운 옛 건축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정자 뒤편에 놓인 투박한 나무 계단을 오르면 누마루가 펼쳐진다. 평면은 중앙 뒤쪽에 온돌방을 두고 나머지 세 면을 마루로 둘렀다. 온돌방 사방에 문을 달아 필요할 때 활짝 열 수 있도록 구성한 점도 눈길을 끈다. 문을 열면 방과 마루의 경계가 옅어지고, 위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정자 안쪽까지 시원하게 스며든다. 굵은 기둥과 보, 촘촘한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에서는 단정하면서도 견실한 목조 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처마와 보 사이에는 모두 같은 ‘용암정(龍巖亭)’ 세 글자를 새긴 여러 편액이 걸려 있다. 한 편액은 획이 반듯하고 또렷한 해서에 가까워 글자를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다른 편액은 전서풍의 예스러운 글씨를 담았다. 전서풍 글씨는 획을 길게 늘이거나 둥글게 굽히고, 좌우 균형을 장식적으로 다듬어 익숙한 한자도 그림처럼 낯설게 보인다. 같은 세 글자가 서체에 따라 전혀 다른 문양처럼 변하는 모습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편액의 크기와 바탕색, 글씨의 굵기까지 하나씩 살피다 보면 용암정에 깃든 다채로운 서예미도 만날 수 있다.

자연과 건축 어우러진 용암정

용암정의 진가는 누마루에 앉아 계곡을 바라볼 때 선명해진다. 낮은 난간 너머로 투명한 물이 너럭바위 사이를 미끄러지듯 흐르고, 수면 아래의 돌과 황갈색 암반까지 또렷하게 비친다. 처마와 기둥은 바깥 풍경을 여러 폭의 화면처럼 나누고, 물소리와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은 그 장면에 생기를 더한다. 자연을 멀리 두고 감상하는 대신 건축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인 누정의 아름다움이 오롯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여행 정보>
-장풍숲 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송계로 12, 문의: 055-940-39 26
-거창 수승대 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2, 이용 시간: 시설별로 다르기 때문에 홈페이지 참조, 문의: 055-940-8530
-용암정(거창) 주소: 경상남도 거창군 용문들길 103-21, 문의: 055-940-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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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