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가득한 여름 즐기기 ③고산정 및 제월대·문광저수지·송시열 유적

고요한 수면 위로 깃든 선비의 절개

바쁜 일상의 소란에서 벗어나 오롯이 마음의 평온을 찾고 싶을 때, 충청북도 괴산은 나지막한 산세와 물길로 다정하게 여행자를 맞이한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 절벽 끝에 서서 호젓한 정취를 느끼고, 푸른 나무들이 수면 위로 초록빛 그림자를 내어주는 저수지 산책로를 거닐며, 조선 선비의 단아한 숨결을 마주하는 여정. 고요함 속에서 내면을 조용히 다독여 줄 괴산으로 떠나자.

괴산 여정의 첫 마중길은 동진천과 성황천이 합류해 맑게 흐르는 달천 언덕 위의 ‘괴산 고산정 및 제월대’다. 이곳은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인 ‘제월대’ 정상부에 정자가 포근히 들어서 있다. ‘제월(霽月)’이라는 이름은 ‘비가 온 뒤 맑게 갠 하늘에 떠오른 달’을 뜻하는데, 예부터 선비들이 절벽과 강물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경에 반해 붙인 이름이라 전해진다.

고산정은 조선 선조 때,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문정공 유근 선생이 충청도관찰사 재임 중 지은 뒤, 훗날 관직에서 물러나 내려와 은거한 공간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내로라하는 선비들과 친목을 나누었다.

괴산의 첫 풍경

당대 이름난 문인인 이항복, 이덕형, 김상헌 등이 찾아와 시를 읊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1606년(선조 39년) 사신으로 조선을 찾았던 명나라 사신 주지번 역시 유근 선생과의 깊은 우정을 기념해 직접 ‘호산승집(湖山勝集)’ 편액을 써 남겼고, 이 글씨가 지금도 대청에 단정하게 걸려 있다.

고산정은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목조 정자로 다듬지 않은 자연목의 수수한 질감을 그대로 살려 사대부의 절제된 미학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단청을 칠하지 않은 처마의 담백함이 주변의 푸른 소나무, 탁 트인 강물과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마루에 앉아 밖을 바라보면 사각의 기둥과 문틀 사이로 달천의 푸른 물줄기가 그림처럼 들어온다. 바깥 풍경을 안으로 다정하게 끌어들이는 차경의 미학 덕분에 가슴속까지 시원한 해방감이 물씬 밀려온다. 벼랑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호젓하고 정갈한 휴식을 내 마음에 가득 채워보자.

시원한 강바람을 뒤로하고 고즈넉한 수변길을 따라 이동하면 쉼과 여유가 가득한 ‘문광저수지’를 만난다. ‘양곡저수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다. 실용적인 공간으로 태어났지만, 수변을 감싸 안은 은행나무길과 특유의 물안개, 고요한 수상 좌대가 어우러지면서 오늘날 전국에서 발길이 이어지는 사계절 힐링 명소이자 대표 친수 휴양 공간으로 정갈하게 자리 잡았다.

저수지 둘레를 따라 조성된 길은 턱이 없는 평지 산책로로 정비돼있어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편안하게 자연의 변화를 느끼며 걸을 수 있다. 연안 습지의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가깝게 관찰할 수 있는 탐방로를 지나다 보면, 수생식물 사이로 오가는 조류와 어류가 활기찬 생명력을 전해준다. 산책로 곳곳에는 예스러운 장독대와 자연석을 보기 좋게 놓아 농촌 마을 특유의 다정하고 향토적인 미감까지 풍성하게 선사한다.

문광저수지 풍경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잔잔한 수면에 펼쳐지는 완벽한 반영이다. 파도가 거의 없이 평평한 수면 위로 주변 산세와 청명한 하늘,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수목이 거울처럼 투영되는 순간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강물·숲이 건네는 느린 위로
마음을 다독이는 괴산 여행

저수지 중앙에 정렬된 아담한 수상 좌대(양곡낚시터)는 잔잔한 수면과 새벽 물안개가 어우러져 그 자체로 고즈넉한 풍류와 수채화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둑방길 끝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는 ‘물멍’에 잠겨보자. 잔물결 위에 근심을 살포시 실어 보내며 내면의 깊은 평온을 가득 채울 수 있다.

화양구곡 탐방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계곡의 빼어난 명승과 바위에 새겨진 옛 선비들의 바위에 새긴 글씨인 암각자가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 조선시대 송시열 선생과 제자들이 학문과 자연을 즐기던 이 옛길은 오늘날 국립공원 생태 탐방로로서 호젓한 문화 산책을 선사한다.

탐방로 길목에서 만나는 제3곡 ‘읍궁암’에는 숙연한 고사가 숨어 있다. 조선 현종 즉위년, 북벌의 뜻을 함께 품었던 효종대왕이 갑작스레 서거하자 송시열 선생이 이 바위 위에 엎드려 통곡하며 활을 잃은 슬픔을 토해냈다고 전해진다.

바위 표면에 오목하게 파인 수많은 구멍들은 당시 선생이 흘린 눈물 자국이라는 애틋한 전설을 품고 있다. 바위 주변에 서 있는 비석과 표석들은 효종에 대한 선생의 충절과 북벌 의지를 후대에 영구히 기억하고자 제자들이 정성을 다해 세운 소중한 사적 표지이다.

계곡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제4곡 금사담의 단단한 암반 위, 선생이 조선 현종 때 세운 ‘암서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에 얹혀 산다’는 안빈낙도의 뜻을 품은 암서재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암반 구조를 그대로 활용해 지어,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성리학적 자연관과 한국 전통 원림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바위벽에 새겨진 명나라 의종의 어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을 비롯한 암각자 군과 함께, 유교적 성지에 불교식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마애 각석이 공존하는 풍경은 조선 후기의 다채로운 사상적 흔적을 가만히 증언한다.

화양동 입구 인근에는 송시열 선생의 묘소와 신도비각이 단아하게 자리한다. 선생은 기사환국 때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으나, 이후 갑술환국으로 명예와 관작이 회복되면서 이곳 괴산으로 이장됐다. 봉분을 중심으로 상석, 향로석, 문인석 등 석물들이 조선 후기 사대부 묘제 양식과 엄격한 성리학적 예법에 맞춰 배치돼있다.

송시열의 위상

특히 정조대왕은 공자나 주자처럼 유교의 위대한 성현에게만 붙이던 최고의 존칭인 ‘송자(宋子)’로 선생을 높여 부르며 극진히 우대했다. 조선의 유학자 중 이런 성현의 칭호를 얻은 인물은 송시열 선생이 유일하며, 높은 위상에 걸맞게 단아하게 들어선 신도비각은 고즈넉한 멋을 더해준다. 

<webmaster@ilyosisa.co.kr>

 

<여행 정보>

-괴산 고산정 및 제월대 주소: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64-2, 문의: 043-830-3437

-문광저수지 주소: 충청북도 괴산군 문광면 양곡리 16, 문의: 043-830-3452~6

-괴산 송시열 유적 주소: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길 188, 문의: 043-830-34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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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