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다단계 투자 사기사건 억울한 죽음 막전막후

‘피해자 극단적 선택’ 소문 아니라 진짜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마지막에 이르렀을 땐 사실상 ‘독 안에 든 쥐’ 상태였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압박을 견딜 힘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모든 게 끝난 자리에 남은 건 수억원대의 빚과 망가진 관계, 송사 등의 잔재였다. 이제 남아있는 자들이 이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어떤 날은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납니다.” 작게 웃으면서 말했지만 깊은 절망이 느껴졌다. 그는 지난해 7월 아내를 잃었다. 사인은 자살. 뒤늦게 아내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된 이후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아내의 죽음은 끝내 막지 못했다. 아내가 생전에 짊어졌던 짐은 이제 고스란히 그의 몫이 됐다.

아내의 죽음
파탄 난 가정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A씨를 만났다. A씨는 사망한 B씨의 남편으로, 보험설계사 등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최모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연락해 왔다(<일요시사> 1592호 ‘<단독> ‘기업 비자금’ 다단계에 털린 보험설계사들’ 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6864 기사 참조). 당시 기사에 언급된 ‘2명이 자살했다는 흉흉한 소문’이라는 표현에 대해 그는 “소문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최씨의 사기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여성 1명과 남성 1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는 말이 돌았는데, 이 가운데 B씨의 경우는 진짜라는 것이다. 보험설계사들이 고소한 사건에서 일부 피고소인은 “B씨가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기 피해로 인한 게 아니라 B씨의 문제였다는 뉘앙스로 읽혔다.

하지만 A씨는 “(병원)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이 일이 있기 전에는 우울증이 없었다. 최○○에 대한 원망, 채권자의 압박으로 인한 공포, 가족에 대한 미안함, 속았다는 자괴감 같은 게 아내를 갉아 먹었다. 자살할까 걱정돼 매일 붙어 있었는데 결국 허망하게 떠났다. 이렇게 갈 사람이 아닌데…”라고 한탄했다.

B씨가 사망한 시점은 지난해 7월경으로, 당시 B씨는 최씨를 ‘사기 및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소한 상태였다. B씨의 사망으로 현재는 A씨가 이어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A씨가 주장하는 B씨의 피해액은 20억원이 넘는다. A씨를 포함해 함께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 7명의 피해액을 합산하면 30억원에 이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B씨는 2020년부터 최씨와 돈거래를 한 것으로 확인된다. 보험설계사 등 피해자들이 2024년 4월, 변호사 등의 피해자가 2024년 7월 이후 최씨와 관계를 맺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시기다. A씨는 자신과 B씨가 “최○○ 사건의 초기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최소 2020년부터 최씨가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다.

2020년 지인 통해 소개받아
5년여 동안 20억 넘게 털려

A씨에 따르면 B씨는 학습지 교사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이모씨를 통해 최씨를 소개받았다. 두 사람은 함께 최씨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최씨는 자신을 ‘세무사 사무실 팀장’이라고 소개했다. A씨는 “(최씨가) 사람들이 빌려준 돈으로 고객의 세금을 대납해 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카드는 이택스 처리해 수수료를 받는 것이니 100% 안전하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택스(ETAX)는 서울시 지방세 인터넷 납부 시스템을 말한다.

B씨는 A씨에게 이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 최씨에게 투자할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A씨는 누나의 돈 4000만원과 신용대출로 받은 1억4000만원 등 총 1억8000만원을 아내에게 건넸다. 문제는 A씨가 융통해 준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A씨는 “돈 문제가 터진 시점(2024년 7월경)에 확인해 본 결과 아내가 최씨에게 (처음에만) 10억원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던 A씨의 월급을 모은 돈 3억~4억원, 이들 부부의 소유로 돼있던 집과 상가를 담보로 받은 대출금, 지인과 B씨 어머니의 돈 등이다. 이후 지난해 5월 B씨가 최씨를 고소하기까지 5년여 동안 20억5000만원에 이르는 돈이 빠져나갔다. A씨는 “최○○는 약속한 수수료를 준 뒤 그 돈을 다시 재투자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최씨는 2023년경 카드 수수료를 챙겨주겠다며 카드를 발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A씨에 따르면 당시 최씨는 “정유회사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기름값을 대신 카드로 결제해 주면 정유사 결제에 따른 포인트 환급수수료를 더해 추가적인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고 꼬드겼다.

B씨에게 카드와 현금을 투자할 다른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B씨를 일종의 ‘모집책’으로 이용하려 한 것이다. 2020년 이후 최씨와의 거래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터라 B씨는 그 말을 믿었다. 이른바 ‘수익성이 좋은 투자’라는 착각에 빠져 있던 것이다. 실제 B씨는 지난해 5월 고소 전까지 최씨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굳건했다고 한다.

카드 요구에
모집 요청도

하지만 최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려막기’ 수법은 2024년 7월경 정유 대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더는 통하지 않았다. 최씨는 피해자들의 카드를 이용해 정유 대금을 결제하고 이 중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받는 이른바 ‘카드깡’을 통해 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돈을 피해자들에게 수수료 명목으로 건넨 것이다.

동시에 세금 대납 등의 이유로 피해자들에게 받은 현금은 명품 구입 등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들은 최씨가 만날 때마다 명품 옷을 입고 나왔다고 기억했다. 사치스러웠다는 표현도 여러 차례 나왔다. 특정 명품 매장에서의 실적이 수십억원에 이른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부 피해자는 최씨와 명품 매장에 함께 간 적도 있다.

A씨는 “돈을 정말 턱턱 썼다. 선물로 명품 가방도 주고 한 끼 식사에 30만~40만원 하는 곳에 데려가기도 했다. 좋은 집, 화려한 차림새, 고급 외제 차, 값비싼 선물에 현혹된 것 같다. 심지어 생일까지 챙겨줬다. 정말 친한 언니, 동생처럼 굴었다. 아내는 철저하게 최○○를 믿었다. 그게 고객 관리였고 ‘가스라이팅’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토로했다.

2024년 7월 정유 대금 문제로 시작된 경찰 수사에서 최씨는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과정에서 일당 가운데 일부가 구속되자 최씨의 이른바 ‘돈줄’이 막혔다. 돌려막기의 한 축이 무너지자 순식간에 둑 터진 듯 최씨의 사기 행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일부 피해자들이 최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조짐을 보이자 그는 피해 금액을 보전해 줄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 나섰다. 최씨는 ‘기업 비자금을 관리한다’ ‘명품 리셀숍을 운영한다’ 등의 말로 피해자를 속였다. 이 시기(2024년 4월 이후)에만 수십억원에 이르는 돈이 최씨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피해자는 현재 파악된 숫자만 30여명에 달한다.

A씨는 정유 대금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사건의 자초지종을 정확히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유 대금 사건이 터지기 전 내 명의로도 카드를 몇 개 발급해 줬다. 하지만 (정유) 사건 이후 아내가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딸의 명의로까지 (카드를) 임의로 발급받은 사실은 그때 알았다”며 “카드값이 밀리니 카드사에서 독촉 전화가 오기 시작했고 그때서야 아내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들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24년 7월
드러난 사기

당시 B씨는 한계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최씨에게서 돈을 받지 못한 건 물론이고 지인에게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이 심했다고 한다. A씨는 “최○○도 최○○였지만 지인들의 압력이 대단했다. 채권자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한 것 같다. 수도 없이 쏟아지는 전화에 아내가 많이 무서워했다”고 전했다.

A씨도 최악의 상황에 놓였다. B씨에 이어 ‘독 안에 든 쥐’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집과 상가는 다 날렸고 신용대출로 빌린 돈, 카드값을 매달 143만원씩 갚고 있다. 그래도 대기업에 30년 동안 다니면서 돈을 꽤 모았는데 지금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한탄했다.

자녀, 특히 딸의 상황도 안 좋았다. A씨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딸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딸 앞으로도 5000만원가량 빚이 있다. 매달 50만원씩 10년간 갚아야 할 돈이다. 누군가에게는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딸은 막막했던 것 같다. 본인의 미래를 저당 잡혔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고 우려했다.

처가와의 관계도 송사로 번졌다. 현재 사는 집에 B씨의 어머니, 즉 A씨의 장모가 명도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씨는 “장모님께서 딸이 남편을 잘못 만나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딸이 잘못됐으니 사위가 원망스러운 거다. 여기(집)서 나가면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B씨를 원망하면서도 열심히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했다. 마치 스스로 다짐하는 듯한 말투였다. 그는 “평생 일만 하느라 집에 잘 신경을 못 썼다. 또 워낙 (아내가) 알뜰하게 살림을 했던 터라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대체 왜 그런 못되고 우악스러운 인간들하고 어울렸는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크다. 하지만 아내는 죽을 때까지 최○○의 실체에 대해 잘 몰랐다. 누군가는 아내를 최○○의 공범이라고 했지만 정말, 정말 아내는 (최○○가 사기꾼인걸) 몰랐다”고 항변했다.

소송 진행 도중 사망
남편이 이어받아 진행

그러면서 “최○○가 그린 시나리오에서 아내는 꼭두각시였다. 최○○는 피해자들에게 일종의 역할을 부여하고 그들의 머리 꼭대기에서 자기가 감독을 맡았다. 살면서 이렇게 ‘악마’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어떤 죄책감도 없는 모습에 아주 완벽히 질려 버렸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최씨는 10~15명 정도로 피해자를 분류해 따로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서 관리했다. A조, B조, C조 등으로 나눠 그 안에서만 정보를 공유하게 한 것이다. 피해자들끼리 접촉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증언이 여러 차례 나왔다. 피해자들끼리 서로 알게 되면 사기 행각이 탄로 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최씨가 사기 혐의로 기소돼 열린 재판 변론기일에 피해자가 15명가량 모였는데 서로 누가 누군지 모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각기 다른 그룹의 피해자가 최씨의 재판을 보기 위해 모인 것이다. 이날 재판이 끝나고 피해자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서로 모르고 있던 정보가 많이 공유됐다고 한다.

A씨는 “돈을 돌려받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한다. 그저 최○○가 더 이상의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 가족은 말 그대로 풍비박산 났다. 인생의 낙 같은 건 사라졌고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고 있다. 죽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안 된다. 최○○가 꼭 죗값을 치렀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A씨는 B씨의 휴대폰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혹시 사망 전 남긴 글이 있는지를 묻자, 그는 휴대폰에서 메시지를 찾아 기자에게 보여줬다. 글의 첫머리에 ‘화병’이라고 쓰여 있었다. 최씨, 최씨를 소개해준 사람, 지인 등에 대한 원망,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자책감, 두려움, 공포 등 온갖 감정이 버무려진 글이었다. 이 글은 B씨가 사망하기 열흘 전인 지난해 6월 중순에 쓰였다.

못다 이룬
버킷리스트

‘속이 너무 뜨겁다. 타는 것만 같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만 멈추고 싶다. ○○○(자녀 이름)의 목소리가 날 너무 아프게 한다. 나쁜 생각을 가지지 않으려 했지만 감당이 되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또 커다란 상처를 준다는 것도 알지만 내 스스로 이겨나갈 힘이 없다(유서 중 일부 발췌).’

스치듯 보게 된 B씨의 ‘버킷리스트’ 글에는 ‘무등산 수박 먹어보기’ ‘성지 순례’ 같은 소망이 쓰여 있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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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