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가득한 여름 즐기기 ②동의보감촌·덕천서원(산청)·한옥카페소북

지리산 자락서 쉬어가는 하루

산청은 조선 시대 허준 선생의 의학서 <동의보감>의 숨결이 스며 있는 곳으로, 한의학 문화와 역사, 자연을 하루에 함께 둘러보기 좋은 여행지다. 이번 산청 여행 코스에서는 동의보감촌, 덕천서원, 한옥카페소북을 차례로 방문한다. 실내 전시부터 역사 문화유산, 고택에서 여유롭게 쉬어가는 시간까지. 하루 동안 둘러보며 머물기 좋은 세 곳을 묶은 코스를 소개한다.

산청 여행의 첫 코스는 ‘산청 동의보감촌’이다. 2013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열렸던 곳으로, 전시관과 야외 공원, 출렁다리가 지리산 자락에 넓게 펼쳐져 있다. 전체 규모가 크기 때문에 관람 순서를 먼저 정해 두는 편이 좋다. 동의폭포에서 시작해 엑스포주제관, 한방테마공원, 산청한의학박물관, 약초테마공원, 무릉교 순서로 둘러보면 수월하게 관람할 수 있다. 가장 처음 마주한 곳은 동의폭포다.

동의보감 고장

바위 절벽을 따라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 뒤로 산자락이 시야에 들어온다. 동의폭포를 지나 엑스포주제관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전시장 벽면에는 동서양에서 전해 내려온 불로장생 이야기와 전통의약을 담아낸 영상이 펼쳐진다. 밤늦게 책을 읽는 아이를 위해 어머니가 총명탕을 준비하는 모습처럼, 생활 속 한의학을 작은 인물 모형으로 재현한 장면도 볼 수 있다.

엑스포주제관을 나와 산청한의학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한방테마공원의 곰과 호랑이, 황금 장수거북 조형물이 나타난다.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는 단군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쑥과 마늘은 <동의보감>에 기록된 약초로, 우리에게 친숙한 약재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인 만큼 산청 동의보감촌의 한방 테마와도 잘 어우러진다. 황금 거북의 목에는 부와 장수를 의미하는 복(福)자와 수(壽)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를 만지면 복을 받고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산청한의학박물관에 들어서면 허준 초상과 <동의보감> 목판, 여러 의서가 차례로 나온다. 안쪽에는 조선 시대 한약방을 재현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천장에는 약재 이름이 적힌 주머니가 빼곡하게 매달려 있다. 약재를 손질하고 저울에 달아 약을 짓는 모습을 실제 크기의 인물상으로 꾸몄다. 약장 서랍과 저울, 약재를 다루는 손동작까지 세세하게 표현해 당시 한약방의 모습이 한층 생생하게 다가온다.

실내 관람을 마친 뒤에는 약초테마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꽃과 나무 사이로 이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실내에서 오랫동안 웅크렸던 몸과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고, 지리산 자락의 공기도 한껏 마실 수 있다. 곳곳에 포토존이 마련돼 사진을 남기기에도 좋다. 산청 동의보감촌의 마지막 코스는 무릉교다.

무릉계곡 위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며 탁 트인 개방감을 선사하는 출렁다리다. 초록 숲 사이에 길게 뻗은 붉은 철제 구조물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중앙 철망 아래로 무릉계곡과 울창한 숲이 내려다보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려 아찔한 긴장감이 더해진다. 아이와 함께 건널 때는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편이 안전하다. 걸어가다 중간쯤 멈춰 서면 붉은 다리 너머로 지리산 능선이 겹쳐 보인다. 다리를 끝까지 건너면 필봉산 등산로와 산책로로 길이 이어지므로 체력과 일정에 따라 조금 더 거닐어도 좋다. 실내 전시와 야외 산책, 출렁다리까지 한 코스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자.

한의학과 문화가 살아있는 산청 여행

산청 동의보감촌을 둘러본 뒤에는 덕천서원으로 향한다.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576년에 세운 서원이다. 1609년에 광해군으로부터 ‘덕천’이라는 이름을 사액받았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20~1930년대에 걸쳐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덕천서원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냇가에 세워진 세심정을 먼저 만날 수 있다. 정자 아래로 하천이 흐르고, 잔잔한 물소리가 주변의 고요함을 채운다. ‘

마음을 씻는다’는 그 이름처럼 서원 안으로 향하기 전 잠시 걸음을 늦추고 숨을 고르기 좋은 곳이다. 서원 안으로 들어가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비가 내리면 덕천서원의 기와와 돌담, 마당의 흙빛이 한층 짙어진다. 나뭇잎마다 빗방울이 맺혀 서원 전체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여름에는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워 고택에 색을 더한다.

덕천서원의 정면에는 강당인 경의당이 있다. 중앙에는 넓은 마루가 있고 양쪽에는 방을 뒀다. 경의당은 유학자들과 선비들의 집단인 유림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행사를 열던 곳으로, 열린 마당에 앉으면 마당과 동재, 서재가 한눈에 들어온다. 경의당 앞 양쪽에는 유생들이 공부하고 머물던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고 서 있다.

비에 젖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건물이 좌우로 나뉘어 있어 서원의 배치도 또렷하게 살펴볼 수 있다. 강당과 유생들의 생활 공간이 어떻게 나뉘었는지 비교하며 걸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덕천서원은 공부하던 공간을 앞에 두고 제향 공간을 뒤에 배치한 ‘전학후묘’ 구조다. 경의당 뒤편으로 올라가면 남명 조식과 그의 제자 최영경의 위패를 모신 숭덕사가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조선 시대 서원이 교육과 제향을 함께 담당했던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여름철 빗물을 머금어 짙어진 기와와 마당의 고목을 바라보며 잠시 쉬어 가 보자.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한옥카페소북이다. 한옥카페소북은 부여에 지어진 120년이 넘은 고택을 산청 단계리 한옥마을로 옮겨와 옛 한옥 구조를 그대로 살린 공간으로, 카페와 작은 책방 ‘밀당책방’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대문 앞에 서면 한옥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책과 노니는 집 소서헌’이라는 글귀가 이 공간을 대표한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마당 풍경이 액자처럼 펼쳐져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설렘을 안겨준다.

대문을 지나면 넓은 잔디 마당과 고택이 한눈에 펼쳐진다. 대청과 툇마루, 누마루, 행랑채를 비롯해 서까래와 대들보까지 옛 한옥의 주요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에 계산대와 냉난방 시설, 테이블 등 현대적인 카페 시설을 더해 고택의 모습은 살리면서도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음료를 주문하는 공간은 깔끔하고 현대적으로 정돈되어 있지만, 나무 기둥과 자리가 한옥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공간마다 다른 가구를 배치해 원하는 자리를 골라 앉는 즐거움이 있다.

안쪽에는 작은 책방인 밀당책방이 자리한다. 커다란 책장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이 꽂혀 있다.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햄치즈 토스트와 단계딸기라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한옥카페소북의 대표 메뉴이다. 한옥 마루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마당을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도 한결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이다.

한옥 카페

한옥카페소북의 또 다른 매력은 카페에서 쉬고 있는 고양이들다. 입구에서부터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마당과 마루에서는 편안하게 낮잠을 청하곤 한다. 목걸이에 이름표를 달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어, 자연스럽게 고양이에게 시선이 머문다. 한옥카페소북에서 조용히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고양이가 오가는 마당을 천천히 바라보다 보면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산청에서 하루를 보내며 달콤한 휴식을 취해보자. 

<webmaster@ilyosisa.co.kr>

 

<여행 정보>

-산청 동의보감촌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로 555번길 45-6, 운영 시간: 09:00~18:00
※엑스포주제관, 한의학박물관 월요일 휴무, 엑스포주제관, 한의학박물관 이용 요금: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문의: 055-970-7216

-덕천서원(산청)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137, 문의: 055-970-6412~4

-한옥카페소북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신차로 526-9, 운영 시간: 10:30~18:00, 대표 메뉴: 단계딸기라떼, 돌체딸기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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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