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2인자 키우는 지도자가 진짜 리더

 워싱턴은 권력 내려놨고, 김대중은 인재 키웠다

역사는 수많은 영웅과 지도자를 기록하고 있다. 어떤 지도자는 전쟁에서 승리했고, 어떤 지도자는 경제를 일으켰으며, 또 어떤 지도자는 위대한 개혁을 이뤄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은 업적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남겼는지를 더 오래 기억한다. 거대한 건물도 세월이 지나면 낡고 정책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그래서 진정한 지도자의 가치는 자신이 이룬 성과보다 자신 이후를 어떻게 준비했는가에서 결정된다.

정치에서는 늘 권력을 잡는 사람에게 관심이 쏠린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을 어떻게 넘겨줄 것인가다. 여기서 말하는 2인자는 특정인을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뜻이 아니라, 지도자의 철학을 이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준비가 된 차세대 지도자군을 의미한다.

유혹과
불안감

민주주의에서 후계자는 임명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 검증되며, 다양한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지도자가 남겨야 할 가장 큰 유산이다.

모든 권력은 2인자를 두려워할 때부터 쇠퇴한다= 권력은 사람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처음에는 국민과 조직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주변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아질수록 언젠가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긴다. 그래서 실력 있는 사람보다 충성스러운 사람을 가까이 두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권력의 쇠퇴는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독재자들의 공통점도 여기에 있다. 소련의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끊임없이 숙청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 역시 잠재적 경쟁자를 철저히 제거하며 권력을 독점했다.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도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정치적 경쟁자를 몰아냈다.

그들은 권력은 오래 유지했을지 몰라도 건강한 승계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고, 결국 국가는 큰 혼란과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 인물만 키우거나 경쟁 자체를 막는다면 조직은 활력을 잃게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사라지고, 비판은 침묵하며, 조직은 점점 한 사람에게 의존하게 된다.

겉으로는 안정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불안정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권력은 독점할수록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약하게 만든다.

위대한 지도자는 자신의 경쟁자를 키운다= 반대로 위대한 지도자는 유능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보다 뛰어난 인재가 많이 나올수록 조직이 더욱 강해진다고 믿는다. 권력을 나누는 것이 자신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조직을 더욱 튼튼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는 사람을 통제하기보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유비는 이 같은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인물이다. 그는 백제성에서 임종을 앞두고 어린 아들 유선을 제갈량에게 부탁하며 “내 아들이 나라를 맡을 능력이 없으면 그대가 나라를 맡아도 좋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 유명한 ‘탁고(托孤)’다.

워싱턴은 권력 내려놨고
김대중은 인재를 키웠다

자신의 혈통보다 나라의 미래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제갈량은 끝까지 충성을 다하며 유선을 보필했고, 이 일화는 권력보다 국가를 우선한 지도자의 자세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물론 이는 <삼국지연의>의 서사와 <삼국지> 정사 기록이 뒤섞여 후대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역사적 세부보다 그 안에 담긴 리더십의 가치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데 집착하지 않는다. 자신의 뒤를 이을 사람이 자신보다 더 훌륭하기를 바란다. 자신의 경쟁자를 키울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위대한 지도자와 평범한 권력자의 가장 큰 차이다.

세종과 정조는 사람을 남긴 왕이었다= 조선의 세종대왕을 우리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성군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세종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글자를 만든 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집현전을 설치해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과감하게 발탁했고, 학문과 토론을 장려하며 국가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체계적으로 길러냈다.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 등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세종이 사람을 키우는 데 아낌없이 투자했기 때문이다.

정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규장각을 단순한 왕실 도서관이 아니라 국가 최고의 정책 연구기관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초계문신제를 통해 젊은 관료들을 선발해 직접 토론하고 교육하며 미래의 국정 운영 능력을 키워줬다. 왕이 직접 젊은 관료들과 정책을 논의하고 학문을 가르친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인재 육성 시스템이었다.

세종과 정조가 위대한 이유는 권력을 오래 행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없는 미래까지 준비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왕권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를 움직일 사람을 길러냈다. 권력은 제도와 인재를 통해 이어질 때 비로소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 그래서 역사는 세종을 ‘글자를 만든 왕’으로만 기억하지 않고, 정조를 ‘개혁 군주’로만 기억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사람을 남긴 지도자였기에 오늘날까지 존경받는 것이다.

조지 워싱턴은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더 위대해졌다= 권력의 역사를 바꾼 지도자는 반드시 권력을 오래 가진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강한 순간에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사람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었고, 국민적 지지도 절대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가 원했다면 사실상 종신 집권도 가능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은 달랐다. 그는 대통령직을 두 번만 수행한 뒤 스스로 물러났다. 누구도 그에게 퇴임을 요구하지 않았고, 헌법에도 연임 제한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권력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화국의 것”이라는 신념 아래 후임에게 권력을 넘겼다.

세종과 정조
위대한 이유

이 결정은 훗날 미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전통이 됐고, 1951년 수정헌법 제22조를 통해 대통령 3선 금지 원칙으로 제도화됐다.

워싱턴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대통령직이 아니라 권력의 평화로운 승계였다. 그는 후계자를 직접 지명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측근만 권력을 이어받도록 만들지도 않았다. 국민이 선택하고 제도가 작동하도록 길을 열었다. 위대한 지도자는 권력을 움켜쥔 사람이 아니라 권력이 제도를 통해 순환하도록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을 워싱턴은 행동으로 보여줬다.

김대중은 사람을, 노무현은 철학을 남겼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정치적 계승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사례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김 전 대통령은 노무현을 단순히 후계자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넘어 새로운 정치가 가능하다는 길을 열어줬다. 부산에서 세 번이나 낙선한 정치인을 전국적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든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김대중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그는 참여정부라는 새로운 국정 철학을 제시했고, 권위주의 청산, 지방분권, 균형 발전, 시민참여 확대, 검찰개혁 등 자신만의 시대적 과제를 추진했다. 이것이 진정한 계승이다. 계승은 복사가 아니라 발전이며, 충성은 모방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답을 만드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정치철학은 여전히 우리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은 떠나도 철학은 남는다. 이것이 지도자가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다. 사람은 시대를 이끌지만 철학은 시대를 넘어 다음 세대를 움직인다.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는 사람과 철학을 함께 남긴다.

대한민국 정치는 왜 늘 ‘인물 정치’를 반복하는가= 우리 정치를 돌아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절이 반복돼 왔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기보다 부정하는 데 더 많은 정치적 에너지를 쏟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결과 국가의 장기 전략은 자주 수정되거나 중단됐고, 사회적 비용도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정권은 바뀌더라도 국가 전략은 이어져야 한다는 원칙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물론 모든 계승이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김영삼정부 이후에는 정치적 구심점이 빠르게 약화됐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특정 인물 중심의 정치 문화가 강하게 나타났다. 정당보다 사람이, 정책보다 계파가 앞서는 정치가 반복되면서 ‘누가 더 나은 국가를 만들 것인가’보다 ‘누가 권력을 차지할 것인가’가 정치의 중심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치와 기업
다른 계승법

이제는 이런 정치 문화를 바꿔야 한다. 민주주의는 특정 인물에게 의존하는 체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지도자가 성장하는 체제여야 한다. 지도자의 역할은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도자가 경쟁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국민은 한 사람의 영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는 나라를 원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CEO를 준비하고, 정치는 지도자를 준비해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최고경영자가 취임하는 순간부터 다음 CEO를 준비한다. 삼성, 현대자동차, LG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핵심 임원들에게 다양한 사업 경험을 쌓게 하고, 해외 근무와 경영교육을 통해 장기간 검증하는 승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최고경영자의 공백이 곧 기업의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기업일수록 한 사람의 천재보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뛰어난 CEO가 회사를 성장시킬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떠난 뒤 회사가 흔들린다면 그것은 성공한 경영이 아니다. 그래서 이사회는 수년 전부터 차기 CEO 후보군을 관리하고,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게 하며 조직 전체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리더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한다.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은 임기가 정해져 있고, 당 대표도 언젠가는 자리를 떠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거가 다가와서야 차기 지도자를 찾기 시작한다. 정치가 기업처럼 사람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검증하는 문화를 갖춘다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국정은 훨씬 안정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제 정치는 권력의 경쟁뿐 아니라 지도자를 키우는 경쟁도 해야 한다.

AI 시대는 영웅보다 시스템을 요구한다= 20세기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국가를 이끌던 시대였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개인의 직관보다 데이터가, 영웅 한 사람의 능력보다 집단지성과 시스템이 더 큰 경쟁력이 된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한 사람의 경험만으로는 국가와 기업을 이끌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필자가 최근 여러 차례 칼럼에서 강조했듯이 AI 시대는 증축보다 재건축을 요구한다. 한 사람의 능력을 조금씩 보완하는 수준으로는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갈 수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특정 지도자 한 사람의 결단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다양한 인재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노무현 정신’ 오래됐지만
여전히 지금 정치에 영향

결국 미래의 지도자는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최고의 인재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창의적인 정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사람이다. 권력을 독점하는 리더보다 권한을 위임하는 리더가 더 강하다. 사람을 통제하는 지도자보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지도자가 더 오래 기억된다. AI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은 바로 그런 시스템 리더십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은 ‘다음 리더’다= 이제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새로운 과제가 남아 있다. 검찰개혁과 사법개혁, AI 산업 육성, 민생 경제 회복 등 국정 과제를 추진하는 것만으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임기 안에 성과를 만드는 것과 함께, 그 성과를 이어갈 정치적 토양과 인재를 만드는 일도 대통령의 중요한 책무다. 성공한 정부는 정책을 남기지만, 위대한 정부는 정책을 이어갈 사람까지 남긴다.

특히 오는 17일, 민주당 전당대회가 끝나면 당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차기 대선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당 대표가 곧바로 대선후보로 이어지는 일방통행식 구조를 당연한 관행으로 굳히지 않는 일이다. 당 대표는 당을 운영하는 자리고, 대선후보는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자리다.

두 자리가 반드시 같은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더 많은 인재가 성장하고 민주당도 더 건강한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진정한 정치적 유산을 남기고자 한다면 특정 인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김 전 대통령처럼 여러 지도자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정치 문화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고, 국민과 당원이 그 경쟁 속에서 가장 적합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며, 권력을 가장 아름답게 완성하는 방법이다.

성공한 권력은 사람 남기고, 위대한 권력은 미래 남긴다= 모든 민주주의 정부의 임기는 유한하다. 따라서 어느 정부든 진정한 성공은 자신의 임기 안에서만 평가받지 않는다. 자신이 시작한 개혁과 정책이 다음 정부, 그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는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정책은 법으로 시작되지만 사람과 제도를 통해 지속된다.

이 원칙은 특정 정당이나 특정 지도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부든 국가를 위한 개혁을 추진했다면, 그 개혁을 이어갈 인재와 시스템도 함께 남겨야 한다. 성공한 정부는 성과를 남긴 정부이고, 위대한 정부는 성과와 함께 미래를 남긴 정부다. 그래서 지도자의 마지막 과제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자신 없이도 국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더 건강한
정당으로

대한민국 정치도 이제는 ‘누가 더 오래 권력을 가질 것인가’를 경쟁할 것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지도자를 길러낼 것인가’를 경쟁해야 한다. 국민은 영웅 한 사람에게 국가의 미래를 맡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영웅이 없어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 지도자가 바뀌어도 국가 비전이 이어지는 나라를 원한다. 권력은 혼자 정상에 오르는 능력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능력이다.

다음 지도자를 키우지 못한 권력은 성공한 권력이 아니라 잠시 머물렀던 권력일 뿐이다. 권력은 더 나은 사람에게 기꺼이 넘겨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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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