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거가 김민석·정청래·송영길 후보의 경쟁으로 뜨거워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 후보와 정 후보의 지지세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충청권과 부산·울산·경남 경선을 거치며 두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흐름을 보인 것도 이번 경선이 사실상 양강 구도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제주·인천과 강원·대구·경북을 지나 호남과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판세는 여러 차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마지막 승부를 결정할 변수는 지역도, 조직도, 연설 능력도 아닌 한 문장의 선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 문장은 바로 “나는 2030 대선에 출마하지 않습니다”라는 약속이다.
김 후보와 정 후보 가운데 누가 먼저 이 말을 국민과 당원 앞에 분명하게 선언하느냐에 따라 전당대회의 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두 후보의 정치적 경력과 조직력, 인지도와 지지 기반이 비슷한 상황에서는 기존 방식만으로 상대를 확실하게 앞서기 어렵다.
상대보다 더 강한 표현을 쓰거나 더 많은 공약을 내놓는다고 해서 당원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 민주당 당원들이 바라는 것은 당에 대한 전락보다 당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결단일지 모른다.
필자는 최근 호남지역의 여러 인사와 연락하며 이번 선거에 대한 민심과 당심을 나름대로 살펴봤다.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이번 선거가 대표를 뽑는 선거인지, 차기 대통령 후보를 미리 뽑는 선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후보들의 연설과 행보가 당 운영 비전보다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과 차기 가능성을 부각하는 데 더 집중돼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원들 역시 김 후보와 정 후보의 경쟁을 보며 어느새 2030년 대선 예비경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전당대회가 미래 권력을 향한 출발점으로만 비치기 시작하면 정작 당 대표가 맡아야 할 본래의 임무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당 대표는 차기 대통령이 되기 위해 거쳐 가는 필수 코스가 아니다.
당 대표의 첫 번째 임무는 집권여당인 민주당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대통령과 정부가 성공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두 번째 임무는 당내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 민주당의 외연을 넓히는 것이다. 세 번째 임무는 2028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이재명정부의 후반기 국정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임무는 2030 대선에서 민주당이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지도자를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일이다.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다음 당 대표가 반드시 2030 대선후보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대표가 자신의 대권 준비에 몰두하면 당의 공정한 경쟁구조가 훼손되고 다른 지도자들이 성장할 공간도 줄어들 수 있다. 공천권과 조직권을 가진 대표가 차기 대선까지 준비한다면 당의 주요 결정이 당 전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정치 일정에 맞춰질 것이라는 의심도 받을 수 있다.
대표의 모든 행보가 이정부를 돕기 위한 것인지 자신의 차기 기반을 만들기 위한 것인지 끊임없는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필자는 당 대표와 차기 대선후보의 역할을 일정 부분 분리하는 것이 오히려 민주당의 건강성을 높이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로 정 후보는 지난달 13일 출마 선언을 하면서 "당 대표직을 이용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는 당권을 대권의 발판으로 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점에서 의미 있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당 대표직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지, 2030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약속은 아니었다.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당 대표 재임 중 출마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대표가 되는 순간부터 차기 대권을 내려놓고 2028 총선 승리와 새로운 대통령 후보를 키우는 데 전념하겠다는 보다 분명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선언이다.
김 후보와 정 후보는 모두 오랜 정치 경험과 강한 지지 기반을 갖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민주화운동 세대에서 출발해 국회의원과 당 지도부를 거치며 민주당의 성장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오르느냐보다 민주당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두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2030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포기가 아니라 더 큰 책임을 선택하는 일이 된다. 대통령이 되는 길을 내려놓고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김 후보든 정 후보든 먼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사람이 이번 선거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본다. 그 선언은 당원들에게 당권을 개인의 대권 발판으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신뢰를 줄 수 있다. 대통령과의 불필요한 긴장이나 조기 레임덕을 막고, 오직 정부의 성공과 총선 승리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도 된다.
다른 차기 주자들에게는 당내 경쟁이 열려 있다는 신호를 주고, 청년 정치인들에게는 자신들도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특정 인물의 정당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지도자를 만들어내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
선언의 시점도 중요하다. 필자는 제주·인천과 강원·대구·경북 경선이 끝난 직후인 오는 10일을 가장 적절한 시점으로 본다. 9일까지의 경선 결과가 나오면 전체 판세가 어느 정도 드러나고, 곧바로 민주당의 최대 승부처인 호남 경선이 시작된다. 호남은 단순히 당원 수가 많은 지역이 아니라 민주당의 정신과 방향을 묻는 상징적인 곳이다.
따라서 호남의 선택을 앞두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그것은 선거 전략을 넘어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정치적 약속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호남은 대통령이 될 사람만 선택해 온 지역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정권교체를 위해 때로는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지도자를 선택해 온 곳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끝까지 지지했던 이유도 단순히 호남 출신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정권교체라는 더 큰 목표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호남 당원들 역시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는가보다 누가 민주당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2030년 대선 불출마 선언은 호남에서 더욱 큰 울림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김 후보가 먼저 선언한다면 총리와 국회의원, 당 지도부를 거친 경험을 2028년 총선 승리와 후배 정치인 육성에 쏟겠다는 뜻이 된다. 정 후보가 먼저 선언한다면 강한 당원 지지와 정치적 영향력을 개인의 대권이 아니라 당의 단결과 정권 재창출에 바치겠다는 약속이 된다.
어느 후보가 선언하더라도 상대 후보 역시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번 전당대회는 차기 대권 경쟁이 아니라 누가 민주당의 미래를 더 책임질 것인가를 겨루는 선거로 바뀔 것이다.
대표가 된 뒤에는 2030년 대선주자들을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발굴해야 한다. 특정 계파나 측근이 아니라 세대와 지역, 성별과 경력을 뛰어넘는 지도자군을 키워야 한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장관, 전문가, 청년 정치인들이 정책과 비전으로 경쟁하는 상설 무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대표는 그 경쟁의 선수가 아니라 공정한 심판이어야 하며, 자신이 출전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때 비로소 모든 후보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할 수 있다는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다음 대통령 후보는 과거의 정치 문법보다 AI 시대의 국가 운영 원리를 이해하는 지도자여야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 반도체와 에너지, 디지털금융과 바이오산업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성장 전략을 새롭게 설계하고, 일자리와 교육, 복지, 안보까지 혁신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진영 간의 낡은 논쟁에 머물 것이 아니라, 에너지와 첨단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반도체와 방산 수출을 확대해 국민의 삶과 국가 경쟁력을 높일 실질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당이 2030년에도 집권하려면 지금부터 그런 능력을 갖춘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 국민 앞에 세워야 한다. 다음 대표의 사명은 자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AI 시대에 맞는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민주당은 386에서 486, 586을 지나 이제 686세대가 중심이 된 정당이다. 민주화를 이끈 세대의 경험과 공로는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 세대가 당의 주요 자리를 계속 차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보미 전 당 대표 예비후보가 "686이 786, 886까지 가면 민주당은 망한다"고 경고한 것도 결국 권력의 세대순환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686세대가 민주당을 떠나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앞줄을 조금씩 내주고 다음 세대가 성장할 공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의미다.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도 이제 단순한 후보 지지율 조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민주당 당원과 지지층을 대상으로 "2030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후보에게 당 대표를 맡길 의향이 있는가" "당 대표는 차기 대선보다 총선 승리와 차세대 지도자 육성에 집중해야 하는가"를 함께 물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결과가 공개되면 당원들이 이번 전당대회를 어떤 의미로 바라보는지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고, 후보들도 실제 당심을 바탕으로 자신의 진로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선 불출마 선언은 정치인에게 매우 어려운 선택이다. 대통령의 가능성을 스스로 내려놓는 순간 지지층이 흔들리고 정치적 영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부담도 따른다. 그러나 대표로서 2028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새로운 대통령 후보를 키워 2030년 정권 재창출까지 이뤄낸다면 그 성취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한 사람의 성공을 넘어 정당과 국가의 미래를 만든 지도자로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정치의 가장 높은 자리는 반드시 대통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김 후보와 정 후보의 지지세는 현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승부는 조직을 조금 더 동원하거나 상대를 더 강하게 공격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과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누가 먼저 자신의 기득권과 가능성을 내려놓는가로 결정돼야 한다.
두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8월9일 지역 경선을 마친 뒤 “나는 2030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2028 총선 승리와 새로운 대통령 후보 육성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선언하기를 기대한다.
당 대표는 다음 대통령이 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다음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자리다. 대표가 자신을 위한 공천과 조직을 만들기 시작하면 민주당은 과거의 인물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반대로 자신의 대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인재를 키운다면 민주당은 AI 시대를 이끌 미래정당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2030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후보가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이겨야 민주당도 살고, 2030년 정권 재창출의 길도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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