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태리 나폴리 석유 재벌 아들’. 되짚어 보면 ‘아차’ 싶은 부분이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치솟았던 코인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진 뒤에야 투자자들은 그의 정체를 따져 물었다. 이 과정에서 외국인인 줄 알았던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4년 12월 국내외 가상자산 관련 매체에 ‘키키’라는 고양이 캐릭터를 내세운 밈 코인이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밈 코인은 인터넷과 SNS에서 유행하는 유머나 밈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자산을 뜻한다. 기술력이나 실질적인 가치가 거의 없이 이른바 재미를 추구하는 코인이다.
밈 코인
한탕 소재?
밈 코인의 특징은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다. 대중의 관심, 유명인의 언급만으로도 가격을 띄울 수 있다. 2021년 일본의 시바견 이미지로 만든 도지코인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SNS에 글을 올린 이후 가격이 급등한 게 대표적이다. 나쁘게 말하면 유명인을 앞세워 크게 ‘한탕’ 해 먹기도 좋은 구조라는 뜻이다.
키키코인은 2024년 12월27일 코인 1개당 가격이 142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하더니 지난달 7일에는 0.04원으로 최저가를 기록했다. 지난달 31일 기준 0.06원이다. 키키코인 1만개가 있어야 시중가 600원인 츄파춥스를 한 개 살 수 있다.
키키코인 관련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진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은 투자자들의 성토방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지난해 3월28일 생성된 채팅방에는 현재 투자자 등 14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시기 이미 키키코인 1개당 가격은 11원 정도였지만 일부 투자자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눈에 띄는 점은 단체 채팅방에서 끊임없이 언급된 ‘코코로’라는 존재였다. 단체 채팅방 개설 당일 운영자는 “여러분 오늘 코코로가 최소 1시간 정도 함께 하면서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준다고 하니, 많은 질문 부탁드릴게요 :)”라고 말했다.
실제 코코로는 이날 단체 채팅방에 참여해 키키코인의 현재 상황과 미래 비전에 대해 투자자에게 영어로 설명했다.
같은 날 올라온 공지 글에서도 코코로(KIKI_no_kokoro)는 팀의 리더로 소개된다. ‘KIKI_no_kokoro’는 코코로의 X(구 트위터) 계정 이름이다. 게시자는 코코로에 대해 “SHIB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라 불리는 미스터리한 존재”라고 적었다. ‘SHIB’는 밈 코인의 대표 격으로 알려진 시바이누코인을 가리킨다.
앞서 지난해 3월10일 키키코인의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 글에도 코코로에 대한 설명이 있다. ‘키키코인 한국 컨트리뷰터’가 키키코인과 관련해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로, 코코로의 정체를 언급했다. ‘이태리 나폴리 석유 재벌 아들’이라는 표현이 이때 나온 것이다.
당시 컨트리뷰터는 “이번 일로 인해 코코로가 한국 커뮤니티에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던데 개인적으로 코코로는 한국 커뮤니티에 어떠한 악감정도 없다는 것을 함께 밝히고 싶습니다”라고 운을 띄운다. 이 부분만 보면 코코로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024년 12월 중순 상장
급등 후 폭락 투자 피해
이어 “궁금하신 분들이 있으실까 봐 잠시 첨언하자면, 코코로는 이태리 나폴리 석유 재벌 아들이고, 시바 초창기 투자자이며 시바 커뮤니티에서는 샤이토시랑 거의 비슷하게 인정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국에 웬만한 크립토 사람들이랑도 다 연결이 돼있고 그만큼 개인적으로 한국을 좋아하고 애정이 있는 친구라고 토도르를 통해 들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샤이토시는 시바이누코인을 만든 개발자, 토도르는 텔레그램에 게시된 공지 글에서 키키코인 CCO로 소개된 인물이다. 코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투자자는 컨트리뷰터의 공지 내용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코코로는 자신의 X 계정(KIKI_no_kokoro)에도 줄곧 영어로만 게시글을 올렸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최근 코코로가 한국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동시에 그가 전 회사 대표로부터 사업 문제로 고소당하고, 병역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하모씨라는 주장도 나왔다(1493호 <단독> 스타트업 대표 1000억원대 역외탈세 의혹(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44726), 1593호 <단독> ‘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6963) 기사 참고).
하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나는 코코로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키키 프로젝트에 투자자로 참여한 건 맞지만 코코로는 자신이 아니”라며 “한국인인데 어떻게 이태리 석유 재벌의 아들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키키코인이 상장될 무렵 하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었다.
또 “코코로의 X 계정은 팀으로 운영된 것으로 알고 있고, (키키 프로젝트를 진행한) 불가리아 사람들이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나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도 투자했다가 손해 본 상태”라고 덧붙였다. 프로젝트의 규모나 자신의 투자 금액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하씨는 “그런 내용을 말하면 안 된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하씨의 해명에도 석연찮은 구석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하씨는 키키코인과 키키 프로젝트에 투자자 이상으로 관여한 흔적이 여러 루트로 드러난다. 또 하씨와 코코로를 동일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법한 내용도 다양한 방식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관련 정보가 나올수록 코코로 뒤에 하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모양새다.
지목 당사자
“나 아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하씨는 R스타트업에서 공동대표를 지내다가 2021년 무렵 회사를 떠났다. R스타트업은 뷰티, 패션 등 다양한 국내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위한 브랜딩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하씨가 R스타트업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마스크 수출 건이었다. 코로나19로 회사가 휘청이던 때였다.
하씨가 주도한 마스크 사업은 R스타트업에서 끝까지 진행되지 못했다. 2020년 3월27일 하씨는 마스크 사업을 위한 선금으로 또 다른 공동대표인 이모씨가 송금한 7250만원을 다시 반환했다. 이 거래를 끝으로 R스타트업의 마스크 사업은 종결된 것처럼 보였다.
이후 2023년 6월 이 대표가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을 확인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이메일 등에 따르면 하씨는 SAMAT이라는 법인을 통해 다수의 업체와 마스크 거래를 시도 또는 진행했다. SAMAT은 하씨가 실소유주로 추정되는 필리핀 법인이다. SAMAT은 B2B(기업 간 거래), B2C(기업과 고객의 거래), SNS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했다. 특히 하씨는 R스타트업을 나온 뒤에도 해당 회사의 이메일 계정을 거래에 사용했다.
이 대표는 “하씨는 SAMAT을 우리 회사(R스타트업)의 자회사로 소개했다. 그러다 계약 단계에 이르렀을 때 (계약) 주체를 SAMAT으로 바꿔 거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소 나한테 스팸 메일까지 ‘참조’ 형태로 공유했던 하씨가 마스크 관련 이메일은 일절 공유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씨의 이메일 계정에는 해당 업체들과 주고받은 계약서 날인본, 계약서 초안, PO(구매 주문서), FCO(구매 주문서) 초안 등이 남아 있었다. 이 내용을 토대로 파악한 거래 규모는 약 1억1000만달러가량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31일 환율(1달러당 1452원)로 계산하면 1568억원이 넘는 액수다.
실제 이 대표가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했을 당시 연수경찰서에서 작성한 범죄일람표상에 기재된 액수는 1400억원이었다. 현재는 인천경찰청에서 수사 중이다.
배임 피소
병역법 위반
하씨의 이메일 계정에는 그가 투자 계좌를 개설하거나 부동산을 취득하는 등 돈을 사용한 흔적도 남아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하씨가 여러 스타트업 업체에 분산 투자한 흔적도 확인된다는 점이다. 이 중 한 곳이 ‘KIKI Tech’라는 업체다. 키키코인의 대표 이미지인 고양이 캐릭터를 만든 회사로 SAMAT은 당시 2만달러를 투자했다.
두 업체 간에 맺은 계약서를 보면 서명란에 하씨의 이름이 영문으로 쓰여 있다. 계약 당사자인 것이다.
이 2만달러는 이후 36만달러로 변형돼 코코로의 X 계정에서 사용된다. 고양이 캐릭터 IP(지적 재산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36만달러를 썼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 내용은 지난해 8월 가상자산 전문 매체 <크립토 폴리탄>에서 보도한 키키코인 관련 의혹 기사에서도 언급된다.
고양이 캐릭터를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브라이언이라는 인물이 투자 금액은 2만달러였다고 매체에 말한 것이다. IP도 넘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키키의 IP 확보를 위해 36만달러를 사용했다는 등의 글은 거짓이라는 주장이다. 해당 매체는 ‘위장용’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씨와 코코로 간의 연관성도 이 기사에서 언급된다. 해당 매체는 “내부자 그룹이 키키코인을 출시한 후 공급량의 85%를 선점하고 24시간 만에 현금화했다”며 “300만달러가 넘는 투자 자금이 오프체인 거래, 허위 상장, 위조문서 등을 통해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내부자 그룹의 핵심 멤버로 ‘○○ 하’라는 인물을 지목하는데 ‘○○ 하’는 하씨의 영어 이름이다.
해당 매체는 “‘○○ 하’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코코로’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그는 관여하지 않는 척했지만 거래, 자금, 소통 등을 모두 통제했다”며 “심지어 프로젝트의 원래 CEO였던 ○○○조차 ‘그의 진짜 정체를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아무도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팀 리더, 미스터리한 존재’
외신에서는 영어 이름 언급
하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외신을 믿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제공한 게 아니냐는 뉘앙스로 읽혔다. 하지만 키키코인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공지 글에서도 하씨의 흔적은 묻어난다. 공지 글에는 게임과의 연계, 패스트푸드 업체와의 협업, 금융 및 결제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키키코인을 활성화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여기서 패스트푸드 업체로 언급되는 곳이 ‘B 햄버거’로 서울 성수동의 수제버거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에 따르면 B 햄버거를 운영하는 법인은 하씨의 부인 명의로 설린된 후 ‘H사’로 사명을 바꿨는데, 이 등기부등본상에 하씨가 대표이사로 재임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지난 2023년 5월 취임했다가 지난해 5월 사임했는데, 이는 하씨가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때(지난해 4월)와 시기가 맞물린다.
키키코인 공지 글에서 CCO로 소개한 토도르라는 인물이 X 계정에 올린 글에서도 ‘○○ 하(하씨의 영문 이름) AKA @kiki_no_kokoro’ 라는 문구가 있다. ‘AKA’는 Also Known As의 줄임말로 ‘~로 알려진 별명 또는 예명’을 뜻한다. 즉 해당 문구는 ‘kiki_no_kokoro로 알려진 ○○ 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시 말해 하씨와 코코로가 같은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정적인 부분은 kiki_no_kokoro 계정에 올라온 ‘36만달러’에 대한 해명 내용이다. <크립토 폴리탄> 기사를 통해 ‘○○ 하’가 키키의 IP 확보를 위해 36만달러를 썼다는 내용이 반박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항의가 나왔고, 이에 대한 해명을 위해 코코로가 올린 글이다. 5개의 링크는 36만달러를 가상자산으로 송금한 거래 내역이다.
이 대표는 “하씨는 ‘누가 이걸 추적해 볼까’라고 생각해 링크를 던진 듯하다. 이걸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가상자산이 하씨의 지갑(가상자산을 넣어두는 소프트웨어)에서 나가 여기저기로 옮겨가는 게 확인된다. 기사대로라면 36만달러는 브라이언에게 바로 가는 게 맞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꼬리 길면
잡힐까?
그러면서 “그 돈의 시작점은 업비트 핫월렛이고, 최종 도착지는 바이낸스 핫월렛이다. 바이낸스 핫월렛으로 들어간 36만달러가 어디로 갔는지는 수사기관이 확인해야 할 사항이지만, 하씨가 코코로 X 계정으로 올린 송금 지갑에는 내가 알고 있는 하씨의 지갑과 약 17만USDT를 주고받은 기록이 확인된다”며 “하씨는 나중에 가서는 자신이 하○○(하씨의 본명)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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