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안예리 기자 = 서울시 상수도·물재생시설 수주 계약 방식이 중증장애인 사업장이 입찰할 수 없는 일반 사업자들의 진입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기존에는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이 우선구매나 수의계약 방식으로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 소속기관들이 계약 방식을 ‘지명경쟁’으로 변경하면서 장애인 사업장들은 입찰에 참여할 기회를 잃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지명경쟁에 초청된 일반업체들끼리 입찰가를 교묘하게 조정한 정황이 보인다는 점이다. 국가유공자 공법단체인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장애인보호작업장은 최근 서울시 감사위원회에 “서울시 상수도·물재생시설 계약을 둘러싼 비리가 있다”며 서울시 소속 상수도·물재생시설 관련 기관의 감사를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밥그릇 싸움
제보의 핵심은 계약 방식 변경이다. 월남참전자회 측에 따르면 중증장애인 사업장은 지난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중증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제도와 수의계약을 통해 상수도·물재생시설 관련 사업에 참여해 왔다. 장애인의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장애인 생산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만든 제도적 장치였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 산하기관이 관련 계약을 지명경쟁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명경쟁은 발주기관이 한국기계공업협동조합연합회(이하, 연합회)에 공사를 수행할 업체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면, 연합회가 통상 3∼5개 업체를 선정해 발주기관에 통보하고, 이 업체들만 입찰에 참여하는 구조다.
연합회가 추천 회사 리스트를 서울시 산하기관인 수요처에 전달하면 이 리스트를 조달청으로 보낸다. 조달청의 관리 감독하에 지명경쟁 입찰이 이뤄지고, 수요처가 정해둔 예산보다 가장 낮은 입찰가를 제시한 업체가 낙찰되는 구조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A~E 등 5개 업체가 예산 배정과 발주 요청에 따라 연합회로부터 추천을 반복적으로 받았고, 계약 체결로 이어지는 절차가 구체적으로 담겼다. 민원인은 “실질적으로는 발주기관과 연합회가 정해준 소수 업체만 참여할 수 있는 제한된 경쟁”이라고 반박했다.
기존에 수의계약을 통해 물량을 확보하던 중증장애인 사업장은 추천 명단에 포함되지 못할 경우, 입찰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 사업장의 자리는 연합회가 추천한 5개 일반사업자들이 차지했다. 민원 자료에 첨부된 2025∼2026년 추천 현황을 보면,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와 물재생센터 등이 발주한 ‘침사지 수집기’ ‘제진기’ ‘슬러지 수집기’ ‘송풍기’ 등 각종 시설공사에 일반 기계업체들이 반복적으로 추천됐다.
영등포정수장, 암사정수장, 난지물재생센터, 중랑물재생센터, 용답동 펌프장 등 발주처는 달랐지만, 추천업체 명단에는 연합회가 추천한 업체들이 돌아가면서 낙찰됐다.
수의계약 참여하던 장애인보호작업장 사실상 배제
발주기관 요청받은 기계공업협동조합연합회가 추천
월남참전자회 측은 특정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추천되는 배경부터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합회가 발주기관에 보낸 추천서에는 각 사업마다 5개 안팎의 업체가 입찰에 참여했다. 이 중 일부 업체는 여러 사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독점 의혹을 낳는다. 또 일부 추천업체가 같은 건물이나 인접한 장소에 입주해 있는 정황도 확인됐다.
민원인은 “업체 간 관계의 담합 성격과 실제 독립적인 영업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혹은 업체 추천에서 그치지 않았다. 실제 입찰 과정에서도 수상한 입찰 패턴이 자료를 통해 포착됐다. 입찰 결과를 보면 업체들은 마치 공모라도 한 듯, 일정 범위에서 촘촘하게 입찰가를 기재했다. 유독 특정 업체가 낙찰에 가장 근접한 가격을 제출해 반복적으로 계약을 따낸 것이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수요처의 예산 등 낙찰 하한율 산정 구조를 알고 있다면, 낙찰받기로 한 업체를 정해놓고 낙찰 하한율에 최대한 근접한 금액을 써낼 수 있다. 정해진 업체 외에 나머지 업체들은 이보다 미세하게 높은 금액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순서를 조정하는 부정행위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입찰 결과서에 따르면, 낙찰 하한율이 약 87.9995%인 계약에 참여한 업체들이 평균 90% 안팎으로 입찰가를 제시했다. 민원인은 “입찰 결과를 보면 짜인 순서에 따라 특정 업체가 낙찰받고 다른 업체는 들러리를 서는 구조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계약 현황에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업체들이 여러 입찰에 반복 참여한 기록이 나타난다. 사업별 낙찰자는 달라졌지만, 참여업체 구성이 비슷하게 유지됐다. 민원인은 이를 두고 업체들이 번갈아가면서 낙찰받는 이른바 ‘순번제 입찰’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합회의 업체 추천 과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자료에 따르면 연합회는 서울시 소속기관의 요청을 받아 공사별 우수 업체를 추천했다. 문제는 어떤 평가와 심사를 거쳐 해당 업체들이 우수업체로 선정됐는지 구체적인 기준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주기관이 연합회의 추천을 사실상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계약 대상 업체를 선정할 권한이 민간 협동조합에 넘어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추천업체들 사이에 특수관계나 거래관계가 존재하거나, 특정 업체가 추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지명경쟁의 공정성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동일 업체 반복 등장…투찰률 사전 조율 의심 정황
월남참전자회 “취약층 보호제 취지 정면으로 역행”
민원인은 입찰 참가 자격이 지나치게 일반적으로 설정됐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직접 생산확인증명서와 중소기업 확인서 등을 갖춘 업체라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정작 중증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이 갖고 있던 정책적 우선권은 사라졌다는 주장이다.
장애인보호작업장은 일반 기업과 출발선부터 다르다. 중증장애인을 고용하고 직업훈련을 병행해야 하는 만큼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만으로 일반 업체와 경쟁하기 어렵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우선구매와 수의계약 제도를 운영하는 이유도 이 같은 구조적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서울시가 지명경쟁을 확대하면서 장애인 사업장은 일반 업체와 가격으로 경쟁하거나, 아예 지명업체 명단에서 제외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게 민원인의 설명이다.
서울시에 감사를 요청한 월남참전자회 측은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가 행정 편의와 일반 업체의 이해관계에 밀려 무력화됐다”며 “단순히 계약 한두 건을 빼앗긴 문제보다 상수도 시설 관련 사업을 기반으로 일하던 중증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잃고 사업장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 조사과 측은 <일요시사>와 통화에서 “민원 처리를 위해 현재 조사를 시작한 단계”라며 “투명하게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연합회가 업체를 추천한 기준과 심사위원 구성, 추천업체별 평가자료도 감사위 조사 대상이다. 특정 업체가 반복 추천된 이유와 추천업체들 사이의 자본·인적 관계, 동일 주소 사용 여부, 공동 견적 작성 여부 역시 확인해야 한다. 낙찰 순서가 일정한 형태로 반복되거나 탈락 업체가 경쟁 의사 없이 고의로 높은 가격을 제출한 정황이 확인된다면 담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밀어내기
무엇보다 서울시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지명경쟁이라는 외형만 갖췄을 뿐 실제로는 소수 일반 업체가 반복적으로 사업을 나눠 가진 구조였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중증장애인과 장애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서울시 감사위 조사는 계약 절차의 공정성뿐 아니라 장애인 보호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가리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smk1@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