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검찰 보완수사에 대한 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한쪽에서는 검찰과 경찰이 기소와 수사라는 완전한 기능적 분리가 검찰개혁의 핵심이기에 검찰의 보완수사는 폐지돼야 한다고 외치고, 다른 한편에서는 경찰의 오판, 오류, 그리고 비리 등으로 있을 수 있는 수사상의 문제들을 검찰 단계에서 한 번 더 들여다보고 필요하다면 보완수사를 지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검찰의 수사권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절대 권력은 부패한다는 경고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위 말하는 표적 수사나 별건 수사 등 그 막강한 권한이 오용되고 남용된 사례를 적지 않게 목격했다.
결국, 검찰개혁이라는 목표로 경찰의 수사와 검찰의 기소라는 가히 혁명적인 개혁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무릇 모든 개혁이나 심지어 작은 변화라도 그 목표나 목적은 분명해야 한다. 이유는 어떤 정책이라도 그 정책이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 집단, 또는 조직이나 단체, 더 나아가서는 계층의 의견과 이익이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럼에도 이번 보완수사 논란이 보완수사를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아쉽고 잘못된 것은 양측 모두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로지 집단과 조직의 대립과 권한 다툼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최선의 정책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사람이나 분야의 의견과 이해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면 보완수사 논란도 당연히 그래야 옳은데, 문제는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수사상의 모든 절차와 과정은 당연히 인권 보호와 투명성 강화를 통한 절차적 정당성의 극대화와 그러면서도 동시에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일 것이다. 특히 최근 자원의 한계로 인한 효율성의 지나친 강조로 놓치기 쉬운 적법 절차의 가치는 더 잘 보호돼야 할 필요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보완수사는 그 필요성이 없지 않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억울하고 무고한 시민이나 피해자나 심지어 피의자가 없도록 하자는 것이나 문제는 최근의 논의가 방향이 잘못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완수사 논란의 종착지는 피해자를 중심으로 피의자는 물론이고 모든 국민의 인권 권리의 보호 및 보장이어야 하고, 그렇다면 이는 권리나 권한이 아니라 사명이고 의무여야 한다. 만약, 보완수사가 권한이 아니라 의무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격한 논쟁을 벌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보완수사는 꼭 검찰이 해야 하는가, 그리고 검찰이 판단하고 결정할 일인가 하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보완수사가 권한이 아니라 사명이자 의무라면, 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가 아니라 피해자나 피의자, 고소인이나 피고소인, 나아가서는 일반 시민이라도 정당한 근거와 사유가 있다면 재심 등을 요구할 수 있고, 이에 대해서 적절한 제도와 절차에 따라 보완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재심이나 보완수사를 할 것인지, 여부는 언제, 누가,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할 것인가가 최근 보완수사 논의의 의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보완수사는 검찰이 해야 한다는 당위도 없어지고, 그렇다면 기관 간의 다툼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형사사법제도와 기관에 의한 크고 작은 오심과 오판은 존재해 왔다. 아홉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단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이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가장 가치 있다는 법률적 격언이 말해 주듯이, 이 같은 오판과 오류, 또는 잘못을 걸러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