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김성민 기자 = 윤석열정부 국정원의 민낯이 점입가경이다. 정치·민간인 사찰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국정원이 준비했던 건 사찰만이 아니다. 정권에 유리한 인지전도 포함됐다. 안보조사국 산하 현안 TF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복수의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현안 TF가 만들어진 배경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정보원은 윤석열정부 초기부터 대공수사권 부활에 힘썼다. 힘을 잃었던 국내 파트 간부들은 방첩정보 수집이라는 명분으로 2022년 말 ○○방첩센터에 모여들었다. 김규현 전 국정원장의 비서실장이던 A씨가 센터장이었다. A씨와 같은 국내 파트 출신들은 정치·민간인이 포함된 ‘안보 위해 세력 명단’ 작성뿐만 아니라 인지전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생존한 국내 파트
2차 종합특별검사팀(특별검사 권창영)의 수사로 알려진 국정원의 현안 태스크포스(TF)는 2023년 11월에 만들어졌다. 홍장원 전 1차장이 직무를 대리하던 때다. 시기는 겹치지만 홍 전 차장은 현안 TF의 업무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현안 TF는 국정원 2차장 산하 대공수사국(현 안보조사국)의 한 팀이다. 이 팀은 김 전 원장의 비서실장(3급) 출신 A씨가 이끌던 ○○방첩센터에 속해 있던 인물들이 주를 이뤘다. ○○방첩센터는 2022년 11월에 만들어진 조직으로 문재인정부 시절 사라진 국내 파트 중에서도 잘 나가던 종판·국회처 소속 인사 다수가 포진돼있었다.
이 인사들은 국내 파트·대공수사권 부활을 원했던 김 전 원장의 노선과도 맞았다. ○○방첩센터는 2023년 A씨가 ‘국정원을 떠난 뒤에도 김 전 원장을 통해 인사 개입을 시도했다’는 의혹 보도가 나오면서 예기치 못한 위기에 봉착했다. 같은 해 내부 감찰 문제로 김 전 원장과 권순택 전 1차장 간 충돌이 있었다는 주장이 정설처럼 퍼지면서 A씨의 이름도 여러 차례 거론됐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A씨와 관련된 인사 문제 보고서를 윤석열씨에게 처음 보고한 곳은 국가안보실이다. 안보실은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에게 접수된 투서 내용을 확인하고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윤씨에게 보고했다.
김태효 전 안보실 1차장의 보고를 받은 윤씨는 격노했다. A씨가 면직된 이후 김 전 원장을 통해 인사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사실에 가깝다고 판단한 대통령실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을 통해 권 전 차장에 대한 감찰에 들어갔고 국정원 수뇌부는 2023년 11월 물갈이됐다. 홍 전 차장이 잠깐 직무대리를 맡게 된 게 이 때문이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A씨가 면직되고 나서 평범하게 살고 있었다가 의혹성 보도에 억울함을 나타낸 적이 있다”면서도 “대통령실의 판단은 달랐다. 김규현 전 원장이 A씨에게 휘둘렸다고 봤다. 근데 김 전 원장은 초기에 A씨를 크게 신뢰했다. 문재인정부에서 주요 보직을 맡았을 정도로 정권에 따라서가 아닌 정보 수집과 정무 감각만은 인정받았던 인사”라고 말했다.
현안 TF, 전신인 ○○방첩센터·○○방첩단 국내 파트로 구성
안보 위해 명단, ‘종북세력 명단’ ‘종북좌파 게놈지도’로 불려
○○방첩센터는 A씨를 포함한 관련자 직위해제 뒤에 안보조사국 산하 1개 단으로 개편되면서 명맥을 유지했는데 이 팀이 ○○방첩단이다. ○○방첩센터가 ○○방첩단으로 이후에는 현안 TF로 바뀐 것이다. ○○방첩단이 정치인을 비롯한 민간인들의 정보를 취합하면 판단○○처가 보고서 작성을 맡는다. 이 보고서가 종합특검팀 수사로 수면 위로 떠 오른 안보 위해 세력 명단이다.
판단○○처는 지금까지 안보○○처, 안보○○처, 대공○○처 등의 이름으로 여러 차례 탈바꿈했다. 민간인 사찰 논란으로 문재인정부 때 사라진 업무를 비밀리에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안보 위해 세력 명단은 과거 ‘종북세력 리스트’ ‘종북좌파 게놈지도’로 불렸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안보 위해 세력 명단 작성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실제 간첩도 있고 대공 혐의점이 필요한 사람들을 정리한 것”이라며 “문제가 되는 건 대공 혐의점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들일 뿐이다. 이번 일로 국정원의 대공·방첩 업무가 위축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앞서 국정원은 윤정부 당시 민간인·정치인 사찰 의혹을 최초 보도한 <일요시사>에 “정치인의 북한 연계 의혹에 대한 조사 시도는 내부 반발로 중단되거나 실행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정원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제기한 안보 위해 세력 명단 거짓 보고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국정원 측은 “안보 위해 세력 명단을 둘러싼 거짓 보고 의혹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두 문건을 동일한 자료로 보면서 빚어진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안보 위해 세력 명단은 계엄 직후 작성된 것이 아니라 2023년 초 입수한 대북 특수 출처를 바탕으로 실무자가 작성해 보관하던 자료”라고 밝혔다.
이어 “이 명단에는 최재영 목사와 김민웅 대표, 양경수 전 민주노총위원장이 모두 포함돼있지 않았다. 반면 2024년 1~4월 운영된 ‘북한 영향력 공작 대응 태스크포스(TF)’가 작성한 별도 문건에는 김 대표와 양 전 위원장이 포함됐고 최 목사는 없었다. 두 문건은 다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3년 말 인지전 및 대응 기획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무산
특검, 내란 당시 담당 부서장 진술 확보 “여론조작 시도 의심”
국정원은 안보 위해 세력 명단과 정치·민간인 사찰(도·감청) 외에도 여론·인지전까지 추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현안 TF를 중심으로 2023년부터 계획됐다. 현안 TF는 판단○○처가 작성한 문건을 중심으로 국내 여론 인지전 및 대응을 기획하고 안보 위해 세력 명단을 대통령실에 보고했다고 한다. 국정원의 설명대로 이 또한 내부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민주당은 국정원이 2024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여론전에 나서려 했던 걸로 의심한다. 특히 12·3 내란에 직접적으로 가담했다고 보는 건 종합특검팀의 판단과 다르지 않다.
실제 종합특검팀은 국정원의 12·3 내란 가담 의혹 수사 과정에서 종북좌파 및 인지전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 방첩 담당 산하 부서 실무진이 작성한 문서에서 소관 업무와 무관한 ‘종북세력’ 관련 내용이 여러 번 등장했는데 해당 문건 작성은 부서장이 지시했다. 이 부서장은 종합특검팀에 “종북세력은 방첩 담당 부서 업무와 무관하다. 상부의 지시로 인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술했다.
인지전 담당 부서장은 “‘공개정보 담당 부서에서 관련 모니터링을 해서 인지전 담당 부서에 지원해주라’ ‘이 상황에서 국내발인지 외국발인지 구분할 수 있겠냐’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은 이 같은 진술을 근거로 국정원이 국내 가짜뉴스·허위 정보에 대한 모니터링 지시를 통해 여론조작에 나섰다고 보고 조태용 전 국정원장을 포함한 정무직 인사들을 수사 중이다.
도·감청에 인지전
한 국정원 간부는 “종합특검팀이 판단○○처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에 나서지 않고 현안 TF와 홍장원 전 차장 등 다른 쪽만 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검팀의 수사 범위가 아니어도 민간인이 포함된 안보 위해 세력 명단이 작성된 경위는 반드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특검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하게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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