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환호가 곡소리로 바뀌었다. 천장을 뚫을 듯했던 코스피가 고꾸라지면서 장에 진입했던 개미들이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다. 급상승과 급하락을 반복하는 ‘무빙’에 빚까지 냈던 이들은 정신을 못 차리는 모양새다. 심지어 전문가조차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주식이 아니라 도박이라는 한탄까지 들린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주가에 대한 ‘밈’이 퍼지고 있다. 주식이 급등할 때 그 배경을 묻자 ‘그냥’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떨어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우스갯소리처럼 나왔던 ‘그냥’이라는 단어는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관통하는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르는 데도, 내리는 데도 이유가 불분명한,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
사이드카
코스피가 9000에 다다를 때까지는 파죽지세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유가 상승 등 외부 요인은 상승세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주가를 떠받친 건 개미(개인 투자자)였다. 개미들은 예‧적금, 보험을 깨고 심지어 빚을 져가면서까지 시장에 뛰어들었다. 투자 심리가 극에 달했다.
빚투 지표인 신용거래융자 액수가 계속 커졌다. 여기에 ‘나만 뒤처진다’는 불안감이 주식시장으로의 진입을 부추겼다. 부동산에 몰린 돈을 주식시장으로 옮기겠다는 정부의 ‘머니 무브’ 정책은 그 속도에 붙을 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조차 집을 팔아 주식을 하는 게 낫다는 ‘시그널’을 줬다. 정부 차원에서 주식을 장려한 것이다.
상승장에서는 큰 탈이 없었다. 악재가 있어도 하루이틀이면 다시 지수를 말아 올리는 개미의 힘에 주식시장은 ‘파멸적’ 상승을 거듭했다. 급등세가 너무 가파르다는, 상승세가 일부 종목에만 집중됐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코스피 7000을 넘어 8000, 9000까지 오르는 사이 조용히 묻혔다.
실제 몇몇 언론에서 반도체 종목을 제외한 코스피 지수를 언급하면서 종목 쏠림 현상, 반도체 사이클 종료를 걱정하는 기사를 내보내자 이 대통령이 ‘왜 반도체 종목을 제외하느냐’고 지적하는 내용의 게시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코스피 상승에 고무된 투자자들도 이 대통령의 SNS에 크게 호응했다.
문제는 당시의 우려가 서서히 실제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현실화의 과정에 정부의 정책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주식시장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 대통령과 이재명정부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부동산 정책으로 비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주식시장까지 요동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최근 주가는 도박장을 방불케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단적인 예로 주식시장의 안전장치인 ‘사이드카’가 올해(15일 기준)에만 유가증권 시장에서 36회(매수 18회, 매도 18회)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선물 가격이 코스피 5%, 코스닥 6% 이상 급변한 상태가 1분 이상 이어질 때 프로그램 매매 호가 효력을 5분간 정지하는 제도다.
지난해 연간 발동 횟수(3회)를 크게 웃도는 것은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연간 기록(26회)도 이미 넘어섰다.
주가가 급격히 하락할 때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매매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크도 올해 들어서만 7번 발동했다. 2000년 제도 도입 이후 총 13차례 발동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올해에 몰렸다. 현재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삼전닉스 ETF 도입
극심한 변동성 휘청
눈여겨볼 대목은 서킷브레이크 발동이 지난 5월 말 이후에 집중돼있다는 사실이다. 이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를 상장한 시점과 맞물린다. 단일종목 레버리지는 특정 주식의 일간 변동률을 2배로 추종하는 고위험 상품이다.
오를 때 2배로 오르지만 내릴 때도 2배로 내리기에 변동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레버리지는 지난 5월27일 국내 증시에 상장됐다.
정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도입 배경으로 고환율을 꼽았다. 앞서 정부는 고환율의 주범으로 ‘서학개미(해외 주식 투자자)’를 지목했는데 이들의 투자 수요를 환류하려는 방편으로 상품을 만들었다. 도입 과정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상당한 진통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 원장은 지난달 22일 “매매 회전율 등이 급등해 시장 불안정성과 변동성이 굉장히 심화한 상황”이라며 “특히 반도체주 중심으로 거래 쏠림 현상이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해당 상품의 극심한 회전율로 증권사만 배 불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입 과정에서부터 급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고환율 완화 효과에 대해서도 “(효과는) 별로 좋지 않았던 것 같다”며 “부작용이 너무 커진 부분에 정부 입장에서도 사실 고민이 많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그때 드러누워서 막았어야 했나, 개인적으로 반성하는 상황이고 후회를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발언이었다.
최근에도 이 원장은 관련 발언을 이어갔다. 지난 13일 20개 자산운용사 대표와의 간담회에서도 ‘명확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한다. 주식시장 변동성이 지나치게 커지자 단일종목 레버리지에 대한 규제 및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수장이 ‘백기 투항’한 듯한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화살은 청와대로도 향하고 있다.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국민은 이제 코스피를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난다고 호소할 지경”이라며 “야당과 전문가는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코스피 지수 이면에 도사리는 과도한 변동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재명정부는 코스피 5000, 9000이라는 화려한 수치에 도취됐고 비판과 지적에는 귀를 닫았다”며 “도리어 정부가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을 자극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설계를 주도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을 겨냥했다. 정 원내대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무리하게 도입한 것은 주식시장을 비정상적인 카지노 도박판으로 만든 최악의 결정이었다”며 “이 결정을 주도한 김 실장에게 더 이상 한국 경제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우려했다.
서킷브레이크
책임 소재와는 별개로 단일종목 레버리지가 주식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현재진행형이다. 각종 대책이 언급되고 있지만 ‘뾰족한 수’는 없는 상태다. 주가가 급변할수록 개미들의 투자 심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주가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사이 개미는 원금이 ‘삭제’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 벌써부터 개미들이 모인 곳에서는 “다시는 국장 안 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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