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죽이고 당당한 장윤기

  • 조유담 기자 ydcho@ilyosisa.co.kr
  • 등록 2026.07.13 11:28:30
  • 호수 15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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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아들 감싼 경찰 아버지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어린이날 새벽, 장윤기는 자신을 스토킹으로 신고한 직장 동료 여성을 수십 시간 동안 찾아다니다 대상을 찾지 못하자, 일면식 없는 고등학생을 쫓아가 살해했다. 이후 성적 동기가 의심되는 정황과 현직 경찰 간부인 아버지와 수사팀의 증거인멸 의혹까지 잇따라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한 개인의 강력범죄를 넘어 경찰 수사의 신뢰와 검찰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범행은 어린이날이었던 지난 5월5일 오전 0시11분께 광주 광산구 한 고등학교 앞에서 일어났다. 장윤기는 귀가하던 이채원양을 흉기로 살해하고, 비명을 듣고 돕기 위해 다가온 남학생 A군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조사 결과 장씨는 자신을 ‘스토킹범’으로 신고한 직장 동료 여성 B씨를 애초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채원양
살인사건

장씨는 지난 5월3일 B씨의 주거지에 침입한 뒤 교제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B씨가 장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장씨는 교제를 거절당한 이날 오후 흉기 2점을 구매했다. B씨는 자신의 집 주변을 배회하는 장씨를 발견하고 경찰에 스토킹 신고를 한 뒤 같은 날 오후 경북 지역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이 사실을 몰랐던 장씨는 경찰의 스토킹 경고 문자에도 흉기를 소지한 채 B씨를 찾기 위해 집과 직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30여시간 동안 배회하던 장씨는 5월4일 오후 11시55분께 도보로 귀가하던 이양을 발견했다. B씨를 찾는 것에 실패하자 일면식도 없는 학생에게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차로 1㎞ 정도 따라가며 동선을 파악했다.

그 후 폐쇄회로(CCTV)도 설치돼있지 않은 곳에 미리 차를 세우고 기다리다 이채원양을 살해했다. 흉기로 경동맥이 절단될 정도로 목을 깊게 찔렀고, 치명상이 여러 번 가해진 상태에서 폐를 찌를 만큼 강한 공격을 흉부에도 이어갔다.

범행 후 현장을 떠난 장씨는 인근 공원에 자신의 차량과 흉기를 버리고 도보와 택시 등을 이용해 도주했다. 경찰의 위치 추적을 피하고자 휴대전화 유심칩을 제거했고, 범행에 사용한 흉기도 배수로에 버렸다. 혈흔이 묻은 점퍼는 무인 빨래방에서 세탁하며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

빨래방에서는 전자담배를 충전하는 등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으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사로 비어 있던 지인의 원룸에 머물렀다.

약 11시간 만인 오전 11시24분께 자신의 주거지 인근에서 경찰에 긴급 체포된 그는 체포 당시 살해에 사용한 흉기 외의 포장을 뜯지 않은 흉기 1점을 소지하고 있었다. 해당 흉기는 B씨를 살해하기 위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B씨에 대한 살인예비 혐의까지 더해 광주 광산경찰서는 지난 5월14일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등으로 장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으며 주거지와 차량(SUV) 등에서 증거물 수집에 착수했다.

이양의 부모는 지난 6월1일 입장문을 통해 “‘광주 첨단 여고생’이 아닌 ‘이채원’으로 불러달라”고 밝혔다. “다시는 이 땅에 우리 아이와 같은 불행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라며 “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잊히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재판 과정에서 부당한 감형이 이뤄진다면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두 번째 살인과 다름없는 것”이라며 법정 최고형 선고를 요구했다. 범행 장소가 인적 드문 곳이었던 만큼 통학로·귀갓길의 치안 강화, LED 가로등과 고화질 CCTV·안심 비상벨 설치 확대, 야간 순찰 강화 등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 마련도 촉구했다.

아들 ‘강간살인죄’ 막기 위해…
리얼돌·케이블타이 감춘 아버지

또한 장씨가 자필 의견서에 ‘수용 생활 중 자격증 취득을 희망한다’라는 취지로 적은 내용에 대해, 이양 측 법률대리인은 “피해자의 시간은 영원히 멈췄는데 피고인은 재판을 받는 순간조차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삶이 무료해서 죽을 때 누구라도 데려가려 했다.” 검거 직후 장씨는 ‘자살을 결심한 상태에서 배회하다 마주친 피해자를 보고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한 “피해자가 학생인 줄도, 여성인 줄도 몰랐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은 “(우발적) 이상 동기 범죄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범행 대상과 장소를 선택했고 사전 준비와 은폐 행위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을 때 계획성과 목적성이 있는 강력범죄”라며 ‘계획형 분노 범죄’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 검찰은 범행 전 장시간 피해자를 뒤따라간 점, 앞서 저지른 성범죄와 범행 수법이 유사한 점, 장씨의 원룸에서 가슴, 목 부위가 집중적으로 훼손된 리얼돌 등 다수의 성인용품이 발견된 점 등을 종합해 성적 동기가 개입된 범행으로 판단했다. 또한 도주 당시 사용했던 휴대폰을 조사한 결과 장씨가 인근 아동 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6월부터 7월 사이 7차례에 걸쳐 지역아동센터를 방문한 여자아이들의 허벅지와 다리를 몰래 촬영한 것도 밝혀졌다.

원룸에서 발견됐던 훼손된 리얼돌은 압수물로 확보되지 않았다. 경찰은 리얼돌에서 채취한 장씨의 유전자 정보(DNA)와 감식 보고서, 훼손 상태를 촬영한 동영상 등을 증거로 확보했기에 실물까지 압수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당 DNA 감식 보고서는 검찰에 사건을 넘는 과정에서 누락됐으며, 주요 증거물 확보가 끝났다는 이유로 원룸에 대한 보존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현직 경찰 간부인 장씨의 아버지가 구속 이튿날인 지난 6월8일 원룸에서 리얼돌 여러 개와 장씨 명의의 휴대전화를 챙겨간 정황을 파악했다. 리얼돌들은 조각으로 토막 내 여러 장소에 나눠 버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형법상 친족 간 특례에 따라 아버지 장 경감은 증거인멸죄로 입건되지 않았다. 형법 제155조는 타인의 형사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면서도, 친족의 증거 인멸은 처벌하지 않는다. 해당 특례는 범죄를 저지른 가족을 숨겨주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는 가족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라는 점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특례가 없다면 형사처벌의 범위가 지나치게 커진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번 사건을 들어 살인 등 중범죄에 대해서는 특례 규정을 제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발적으로?
30시간 계획

장 경감의 직전 근무지는 아들 장씨에 대한 초동 수사를 맡은 광주광산경찰서였다. 장 경감은 지난해 3월까지 광주광산경찰서의 지구대 소속으로 근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장 경감은 현재 광주 내 다른 지구대에서 근무 중이며, 휴직 신청을 해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장윤기 체포 후 “아버지가 경찰관”라는 진술을 확보하고도 별다른 조처에 나서지 않았다. 장 경감이 아들 범행 사흘 만에 리얼돌 등 증거를 훼손할 때까지 사건 담당 경찰은 이런 사실을 몰랐다고 전했다.

지난 3일 광주지검 등에 따르면 아들의 원룸 주소조차 알지 못했던 장 경감에게 광주 광산경찰서 수사팀 경찰이 주소와 비밀번호를 알려줬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광주청 관계자는 “장윤기의 원룸 계약기간이 만료돼 짐을 빼야 한다는 이유로 집 주소 등을 알려줬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 경찰 수사팀 관계자를 통해 아들 장윤기와 “휴대전화는 강에 버린 게 맞느냐”는 내용의 통화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지난 5일, 장씨 체포 후 수사를 담당했던 광주 광산경찰서 관계자가 압수수색 및 구속영장 신청 등의 수사 진행 내용을 장 경감에게 알려줬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체포 직후 이뤄진 수십 건의 전화 통화가 이어졌으나 경찰은 가족을 동원한 피의자 설득과 신병 구속 절차에 따른 안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통화 사실은 수사 기록에 기재되지 않았으며, 수십 건에 달하는 통화 이력에 대해 각각의 주체와 구체적인 내용도 전부 파악하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과 압수수색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보호자와 개별 연락은 장 경감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최하위직이 주로 맡았다”고 해명했다.

정 경감과 수사 담당자 간의 유착을 조사하는 경찰청 감찰 결과 차량(SUV) 수색 당시 영상에 담겼던 케이블 타이가 사라진 사실도 드러났다. 영상에는 경찰관들이 “케이블 타이네”라고 말하는 대화가 담겼다. 해당 케이블 타이는 50cm짜리 공업용으로 사람을 결박할 수 있을 만한 길이다. 이는 피해자를 결박한 뒤 범행할 목적으로 미리 준비했다는 ‘계획 범행’ 의혹을 입증할 증거다.

왜곡된 성 의식을 입증할 단서인 리얼돌과 함께 최소 무기징역 이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강간살인죄’의 핵심이었다.

성범죄
상습범

장윤기 사건의 담당 수사팀장 박 모 경감의 “그대로 놔두라”라는 지시에 따라 케이블 타이는 확보되지 않았으며 당시 촬영한 영상도 삭제된 것으로 밝혀졌다. 영상을 삭제한 이유에 대해 박 경감은 “개인 휴대전화에 사건 영상을 남겨 두면 징계받을까 봐 지웠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 법원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후 박 경감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차량은 피해자 납치 수단으로 지목됐으나 혈흔 및 지문 채취 등 기본적인 감식만 마치고 사건 이튿날 곧바로 아버지인 장 경감에게 인계됐다. 장 경감은 해당 차량을 보름간 운행하며 증거를 훼손했다. 이때 조수석 수납함에 있던 케이블 타이 또한 장 경감이 집으로 가져갔으나 검찰이 추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채널A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장씨의 큰아버지 또한 현재 경찰관으로 재직 중인 사실을 파악했다. 그는 다른 지역 경찰청에서 근무하는 중간 간부급 경찰관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장씨 큰아버지가 장씨 사건 수사팀과 함께 근무했던 인연이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부적절한 연관성이 드러날 경우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부실 수사 의혹이 불거지자, 경찰은 규명을 위해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직접 이끄는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국수본은 “수사 과정에 제기된 각종 의혹 등을 철저히 밝히기 위해 오늘 광주경찰청에 구성된 ‘수사전담팀’을 ‘광주 광산경찰서 살인사건 관련 진상규명 특별수사팀’으로 확대 편성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수본 중대범죄수사과 팀장과 수사관 6명이 추가 투입돼 수사팀은 총 27명 규모로 구성될 예정이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은 장씨 사건에 대해 ‘유구무언’이라며 “명운을 걸고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국수본 관계자는 “특별수사팀은 광주청 지휘 라인을 배제해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수사한 후 최종 수사 결과만 국가수사본부장에게 보고할 예정”이라며 “언론 보도된 의혹을 포함해 수사 과정 전반에 대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일에는 전국경찰직장협의회가 성명서를 통해 “장윤기 사건의 초동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으로 국민 여러분께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드린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했다. “잘못을 감추지 않고,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국민 앞에 책임지는 경찰의 자세”라며 “특정 사건이나 일부 사례를 근거로 경찰 전체의 수사 역량을 부정하고 형사 사법개혁의 방향 자체를 되돌리려는 시도는 국민을 위한 접근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전했다.

‘경찰 부실 수사’ 논란 속
‘보완수사권’ 존폐 딜레마

이어 “최근 전국 각지의 평검사들이 비슷한 시기에 ‘경찰이 놓친 사건을 검찰이 바로잡았다’라는 사례를 잇달아 언론에 소개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제도 논의라기보다 검찰 조직의 마지막 권한을 지키기 위한 조직적 여론전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완수사권이 유지돼야 한다는)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그에 맞는 사례만 선별해 여론을 형성하는 방식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의 경찰 게시판에는 장윤기 사건 이후 ‘보완수사권’에 대한 글들이 올라왔다. 한 경찰관은 “(보완수사권은 폐지하고) 보완수사 요구권만 준다면 수사 경찰은 죽어날 것”이라며 “보완수사권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경찰도 “경찰은 보완수사권 폐지를 바라지 않는다”며 “고래 싸움에 등만 터져나간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처럼 범인의 현직 경찰 간부인 아버지가 사건의 핵심 증거를 없애고, 담당 수사팀이 도왔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경찰에 대한 비판과 ‘보완수사권’에 대한 찬반 논쟁이 커지고 있다. 보완수사권이란, 경찰이 수사한 내용이 법에 맞지 않거나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검사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추가 수사를 할 수 있는 권리다.

검찰의 기존 권한에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돼 ‘권력이 검찰에 집중돼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때부터 검찰 권력 견제를 위한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후 정부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즉 ‘검수완박’을 핵심으로 검찰개혁을 추진했다.

검찰청 폐지 방안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검찰청은 오는 10월2일 설립 78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업무 분할에 있어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 대립이 이어진다. 보완수사권이 그대로 존재한다면 검찰이 수사에 개입할 수 있어 ‘검수완박’의 취지인 검찰 권력 통제라는 목표를 제대로 이룰 수 없다. 반대로 보완수사권이 없으면 부실 수사로 억울한 피의자나 피해자가 생기거나 경찰이 위법·부당한 수사 행위를 할 때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진다.

뒤틀린
부성애

장윤기 사건이 바로 보완수사권의 폐지에 대한 우려를 키운 계기가 됐다. 검찰의 보완수사가 없었다면 ‘계획적인 성폭행 살인’이 장씨의 초기 진술에 따라 ‘우발적인 이상 동기 살인’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보수 야권에서는 “장윤기 사건들이 속출할 것”이라며 보완수사권의 폐지를 향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당은 보완수사권 폐지하기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 통과에 속도를 내면서도, 보완수사권 폐지 혹은 존치 여부로 단순화된 논의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분위기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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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의문 가득한 보완수사권 폐지 후폭풍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70년 넘게 유지된 우리나라 형사제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와 맞물려 사회에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 때부터 힘을 키워온 경찰은 이번 개정안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동시에 경찰은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 경찰을 믿을 수 있나?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형소법 개정안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제 검사는 사법경찰관에게 보완수사를 ‘요구’할 권한만 갖는다. 1954년 형사소송법이 제정된 이래 72년 만에 가장 큰 사법체계 변화를 마주하게 됐다. 격변하는 형사제도 형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주도로 이뤄졌다.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8명 가운데 찬성 175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민주당 곽상언 의원과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반대했고, 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기권표를 던졌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불참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보완수사권을 포함해 오는 10월 신설되는 공소청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수사 과정에서의 모든 자료를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기록하도록 했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장치로는 경찰이 사건을 불송치할 경우 고소인‧피해자‧고발인이 이의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이에 필요한 사건 기록 열람‧등사 권한도 부여했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마무리 수순에 접어 들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9월 검찰청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라 오는 10월2일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하는데, 공소청 검사는 공소 제기와 재판 유지만 맡는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에서 환영의 메시지가 나오면서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날 청와대는 “국회의 입법 과정과 최종 판단을 존중한다”며 “수사와 기소의 분리를 통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막는 한편, 피해자와 국민 인권 보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형사사법 시스템이 국민 곁으로 한걸음 더 다가서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놨다. 국민 10명 중 6명 반대 여당 주도 본회의 통과 이 대통령은 거부권 대신 ‘사필귀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삶을 더욱 안정적으로 지키기 위해 모든 권력기관은 예외 없이 국민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소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라고도 했다. 국회 본회의 통과, 국무회의 의결 등 법안 공포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사법체계는 그동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경찰’이 놓였다. 문재인정부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기소 독점주의가 깨지면서 경찰에 실리기 시작한 힘은 이번 형소법 개정안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이번 형소법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검찰에 ‘보완수사권’이라는 견제 기능을 남겨둘지를 두고 진통이 상당했다. 형소법 개정안이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만큼 경찰에 집중되는 권한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보완수사권은 그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다. 실제 보완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높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의 의뢰로 지난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보완수사권 존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62.5%가 ‘검찰에 보완수사 권한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불필요하다’는 응답은 31.8%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53.8%가 ‘보완수사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모든 지역에서 과반을 기록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73.1%로 가장 높았고 서울 64.7%, 호남권에서도 59.9%가 ‘보완수사권을 존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녀노소, 지지 정당, 정치 성향을 불문하고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는 쪽에 손을 든 것이다. 존치 의견 우세해도… 존치 찬성자들은 경찰의 수사 능력을 의심했다. 검찰보다는 경찰이 국민과의 접점이 더 넓은 상황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수사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윤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진 감도 없지 않았다. 장윤기 사건은 지난 5월 광주 광산구 월계동 남부대학교 인근에서 장윤기가 여고생을 흉기로 살해한 내용이다. 이 여고생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남학생도 크게 다쳤다. 장윤기와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알려지면서 ‘묻지마 범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장윤기 사건에 경찰인 그의 아버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장윤기의 부친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가 사건에 개입해 증거를 인멸하고 수사 관련 정보를 누설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게 검찰의 보완수사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장윤기의 아버지가 아들의 방에서 없앤 리얼돌은 성범죄 가능성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로 여겨졌다. 10대 여고생이 피살된 사건에서 경찰이 가해자 측과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보완수사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라도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모씨는 보완수사권 폐지와 관련해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무소속 한동훈 의원 주최로 열린 보완수사권 폐지 긴급 간담회에 참석했다. 피해자들 나섰지만… 김씨는 “세금을 내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지 않고 왜 그들(범죄자)을 보호하고 감싸려고 하는지, 죄를 짓지 않은 피해자는 잘 모르겠다”며 “변호사와 검사도 반대하고 경찰도 난리 나고 피해자도 반대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 이 시점에도 피해받는 피해자에 대한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형소법 개정안에 대한 국무회의 의결 전 경찰 수사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형소법 개정안이 국회 입법권을 부정할 만큼 심각하진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에 집중되는 거대한 권한을 걱정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경찰이 엄청난 권한을 갖게 되는데 ‘앞으로 안전할 걸까’라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다”며 “경찰 스스로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높은 책임감으로, 높은 윤리 의식으로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철저하게 범죄 피해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또 억울한 피의자가 생기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수사 비리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수사에 관한 비리를 저지르면 국민이나 피해자로서는 내 사건을 저렇게 망가뜨려서 가해자, 피해자를 뒤집어 놓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가 됐는데, 담당 경찰은 감봉 몇 개월하고 또 딴 데 가서 수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엄청난 힘” 우려하면서도 거부권 요구에 “심각하지 않아” 이어 “(경찰이) 증거를 숨기고 없애 버리고 내 사건을 뒤집어서 반대로 만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엄중함을 갖고 있냐. 전 자신이 없다”며 “수사와 관련된 비리나 비위에 대해 더 높은 책임을 요구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명백한 수사상의 비위가 발생하면 최소 해임, 파면 등의 조치를, 아니면 아예 영구적으로 수사를 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등의 엄중한 책임을 언급했다. 형소법 개정안 통과로 사실상 수사의 전 과정을 맡게 된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찰청은 지난 4일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과 전국 시‧도 경찰청장, 경찰서장 등이 참석한 지휘부 회상회의를 열었다. 형소법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현장 수사관과 중간관리자를 대상으로 개정 내용을 집중 교육하고 보강이 필요한 수사 인력과 예산을 검토해 관계 부처와 협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나왔다. 유 직무대행은 “국민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경찰은 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또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가 아니”라며 “경찰관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 수사 인권‧감찰 조사기구, 경찰 수사 개혁위원회 권고 사항 등을 포함한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아울러 “경찰 수사의 유일한 지향점은 국민이며 기준은 오직 법과 원칙”이라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불신 의심 극복되나 이 대통령의 당부,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 내부에서도 이번 개정안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 일이 몰려 과부하가 걸린 부분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수사에 대한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