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제조 강국 다음은 금융 강국

만드는 나라 넘어 돈 모이는 나라 돼야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 잠정 실적 발표를 통해 영업이익 89조4000억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7일 공시했다. 이는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엔비디아를 뛰어넘는 실적으로 글로벌 빅테크 가운데 1위 성적이다. 하반기에도 성장세가 이어지면 연간 영업이익 3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돈을 제일 잘 버는 기업이 대한민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정상급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 경제의 승자는 물건만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세계의 자본이 모이고 금융이 움직이는 나라가 새로운 경제 패권을 갖게 된다. 이제 대한민국도 제조 강국을 넘어 금융 강국이라는 다음 목표를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뤄낸 나라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과 철강, 디스플레이와 이차전지까지 대한민국 기업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기술과 품질의 상징이 됐고 제조 강국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국가 브랜드가 됐다. 이 성과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자산이다.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수출 중심으로 성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정부는 산업 기반을 만들고 기업은 세계시장에 도전했으며 국민은 밤낮없이 땀 흘리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섬유와 신발에서 시작한 수출은 자동차와 조선으로 이어졌고 다시 반도체와 정보통신 산업으로 발전했다.

제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이었고 수출은 대한민국 성장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제조 강국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많이 만드는 나라가 강한 나라였다면 지금은 자본을 움직이는 나라가 더 강한 나라가 되고 있다. 공장의 규모보다 금융시장의 깊이가, 생산량보다 자본의 흐름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제조업이 성장의 출발점이었다면 금융은 국가 경쟁력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경쟁력은 제조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뉴욕 월스트리트는 미국 경제의 또 다른 심장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자본시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투자자금을 끌어들이고, 그 자본을 다시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와 우주산업 같은 미래 산업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도 결국 막강한 금융 경쟁력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제조와 금융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미국 경제의 진정한 힘이다.

영국 역시 산업혁명의 발상지였지만 현재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런던 금융시장이다. 싱가포르는 좁은 국토와 부족한 자원을 금융허브 전략으로 극복했고, 스위스는 자산관리와 금융서비스를 통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단순히 물건을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돈이 모이는 나라라는 점이다. 결국 선진국의 마지막 경쟁력은 제조를 넘어 금융까지 완성하는 데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제조에서는 세계 정상권이지만 금융은 아직 그 위상에 미치지 못한다. 세계를 대표하는 제조기업은 많지만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금융기관은 거의 없다. 국내 기업이 대규모 투자나 해외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도 해외 금융시장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조 경쟁력과 금융 경쟁력 사이에 존재하는 이 격차가 대한민국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다음 과제다.

금융은 단순히 은행과 증권회사의 산업이 아니다. 금융은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기술혁신을 지원하며 미래 산업을 키우는 경제의 혈액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투자받지 못하면 성장할 수 없고 아무리 훌륭한 기업도 자본이 부족하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다. 제조업이 몸이라면 금융은 피와 혈관이다.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혈액순환이 멈추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금융이 약한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

AI 시대에는 금융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와 우주산업은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다. 데이터센터 하나를 구축하는 데도 수조 원이 필요하고 첨단 반도체 공장 하나를 세우는 데는 수십조 원의 투자가 요구된다. 정부 재정만으로는 이 같은 산업을 모두 뒷받침할 수 없다.

결국 민간 자본과 글로벌 투자자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앞으로는 기술 경쟁이 곧 금융 경쟁이고, 금융 경쟁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열린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금융 패권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미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시키며 디지털 금융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고, 유럽은 디지털 유로를 준비하며 새로운 결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앞세워 국제 결제시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과 싱가포르, 홍콩 역시 글로벌 금융허브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디지털 금융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금융의 미래 질서는 이미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제조에서는 앞서도 금융에서는 뒤처질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금융정책의 철학부터 바꿔야 한다. 지난 8일 필자와 만난 통일감정법인 양원진 회장은 “이제 금융은 규제보다 혁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은 규제 혁신과 과감한 투자로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 금융은 여전히 지나친 규제와 소극적인 제도 속에서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금융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 산업으로 바라봐야 한다.

금융을 성장시키는 정부가 결국 산업도 성장시킨다. 새로운 금융서비스와 디지털 금융, 글로벌 투자상품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공정한 경쟁 질서를 만들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과감히 정비하고 새로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제조업이 규제 혁신을 통해 세계 정상에 올랐듯 금융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최근 세계 금융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금융의 확산이다. 금융은 더 이상 은행 창구에서만 이뤄지는 산업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블록체인과 클라우드 기술이 금융과 결합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금융회사는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고, 데이터는 새로운 금융자산이 되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은 금융서비스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금융은 이제 첨단기술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아직도 이를 단순한 가상자산 정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지만 세계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와 송금은 물론 무역과 투자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국제 결제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미래 글로벌 금융질서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 스테이블코인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가 되고 있다.

양 회장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결제수단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원화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제 활용도를 확대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수출국이지만 국제거래에서는 여전히 달러 의존도가 높다. 제조 강국에 걸맞은 금융 경쟁력을 갖추려면 원화의 국제적 위상도 함께 높여야 한다.

금융 허브 전략도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과거에도 서울과 부산을 국제금융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은 여러 차례 발표됐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제는 기능과 역할을 분명히 나누는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은 자본시장과 핀테크, 자산운용과 디지털 금융의 중심지로 육성하고 부산은 해양 금융과 물류 금융, 선박 금융의 중심도시로 특화해야 한다. 두 도시가 경쟁이 아니라 협력하는 금융 생태계를 구축할 때 대한민국 금융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물류 강국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항만과 공항, 글로벌 물류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물류 금융은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선박금융과 무역금융, 공급망 금융, 물류 금융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면 제조업과 금융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 수 있다.

물건을 만드는 힘과 자본을 움직이는 힘이 하나로 연결될 때 대한민국 경제의 경쟁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반도체도 금융이 있어야 만들 수 있고, 인공지능도 금융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으며, 이차전지도 금융이 있어야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앞으로 제조업과 금융은 서로 경쟁하는 산업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야 하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제조가 기술을 만들고 금융이 성장의 속도를 높이는 구조를 만드는 나라가 미래 산업을 주도하게 된다. 제조와 금융은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두 개의 축이 돼야 한다.

금융의 자율성도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 시장을 불신하는 규제보다 시장을 신뢰하는 제도가 많아질수록 혁신은 빨라진다. 정부는 금융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공정한 질서를 만들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금융회사는 창의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개발하고 세계시장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의 자율성이 커질수록 대한민국 경제의 역동성도 함께 커질 것이다.

특히 세계의 자본을 대한민국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절실하다. 과거에는 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이었다면 앞으로는 세계의 자본이 어느 나라를 가장 신뢰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연기금과 국부펀드,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털이 대한민국을 아시아 최고의 투자 거점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투자 환경과 세제, 규제를 국제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기업이 모이고, 기업이 모이는 곳에는 기술과 일자리, 그리고 미래 산업이 함께 성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 인재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제조 강국은 수많은 기술자와 기능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금융 강국 역시 국제 감각을 갖춘 금융인과 투자 전문가, 핀테크 인재, 금융공학 전문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세계 금융시장과 자본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대한민국 금융의 경쟁력도 함께 커질 것이다. 금융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산업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 경제는 물건만 잘 만든다고 주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제조는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힘이고 금융은 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두 힘이 하나로 연결될 때 대한민국은 생산과 투자, 기술과 자본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제조 강국 위에 금융 강국이라는 두 번째 성장축을 세우는 것이 대한민국 경제의 다음 과제다.

지금 세계는 AI와 디지털 금융, 스테이블코인과 글로벌 자본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흐름을 따라가는 나라와 주도하는 나라의 격차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제조 강국이라는 성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조 강국은 대한민국의 첫 번째 경제기적이었다. 이제 금융 강국은 대한민국의 두 번째 경제 기적이 돼야 한다. 

20세기 대한민국은 물건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금융으로 세계의 자본을 움직이는 나라가 돼야 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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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민석 전 국무총리의 출마 선언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막이 올랐다.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하며 당심에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리에게 쥐어진 이재명이라는 칼날은 분명한 자산이다.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독으로 작용할지, 득으로 작용할지 조금씩 해석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지난 6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 정치적 스승인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을 되새긴다. 정치인은 외부를 향한 투쟁만큼 내부를 향한 투쟁에도 철저해야 한다”며 “이재명정부 국정 성공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위해 민주당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더 끈끈한 당청 관계 이어 “이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며 “절대 과제인 이정부의 성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먼저 집권당인 민주당의 혁신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 전 총리는 정청래 지도부를 저격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민주당은 지난 1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정 지지를 정당 지지와 선거 결과로 연결하지 못했다”며 “지난 1년, 자기 정치의 폐해가 당과 당정 협력을 혼선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합당 추진, 검찰개혁 논의, 공천과 선거 전략에서 나타난 숙의 부족, 토론 부족, 절차 미비, 일관성 부족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검찰개혁 엇박자, 6·3 지방선거 전략 등 정청래 전 대표의 과오를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총리는 “여당다운 여당을 만들어내겠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지난 지도부의 노력을 동지적 관점에서 치하한다”면서도 “결과 책임은 정치와 정당의 기본 윤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절박하고 엄격하지 않으면 우리는 총선 패배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며 “절박한 긴장감과 매서운 엄격함으로 당 대표 교체의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올바른 노선하에 당과 당원과 지지층을 통합하고 총선 승리로 달려가겠다”며 “1인1표 당원주권 행사에 모든 당원이 한 분도 빠짐없이 참여해 압도적 결의로 당의 리더십을 교체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밖에도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정부 초대 총리로서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점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캠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국정 운영과 실무를 뒷받침해 온 경력을 필살기로 ‘검증된 파트너십’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역할’ 재정의 검증된 파트너십 호소 그는 최근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제1국가 과제”라며 적극 힘을 실었다. 국회 복귀 첫 지역 일정으로 메가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주요 지역인 충북 청주를 선택하며 이 대통령과 합을 맞추기도 했다. 출마 선언 이후 김 전 총리는 연달아 정책 토론회를 열면서 전당대회를 겨냥한 의제 경쟁을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검찰개혁이나 당원 주권 강화에 쏠려 있던 민주당의 흐름을 여당다움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김 전 총리는 지난 7일 ‘균형발전을 넘어 지방주도성장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데 이어 이어 언론, 지역주도 성장, 금융 분야를 민주당이 추진해야 할 4가지의 개혁 과제로 꼽으며 연속 토론 기획에 나섰다. 국민 삶과 직결되는 주제를 전당대회에서 다루기 위한 ‘어젠다 세팅’이라는 게 김 전 총리의 설명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강성 당원에게 어필하기 위한 선명성 경쟁도 과열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정 전 대표가 여권 강성 지지층의 최우선 의제인 검찰개혁과 관련해 “보완수사권의 티끌마저 없애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만큼 김 전 총리의 선명성이 상대적으로 흐려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통령과 손발을 맞췄다’는 점 역시 ‘이정부의 대리인’ ‘하수인’ 등 수동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완수사권 폐지를 전당대회의 필살기로 점찍은 정 전 대표는 보완수사권 논의를 “제헌절 전에 끝내자”며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강성 개혁파로 분류되는 김용민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과 ‘검찰개혁의 동지 김용민 의원과 함께 뜁니다’라는 게시글을 통해 “김용민이 정청래고, 정청래가 김용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정 전 대표는 “김 의원께서 검찰개혁이 더 절실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하지 않고 대신 제게 본인이 구상한 개혁 지도를 완수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며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의 혁혁한 공로자인 김 의원의 뜻을 잘 받들겠다”고 말했다. 부족한 선명성? 그러면서 “김 의원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비롯한 사회대개혁 지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김용민과 정청래가 손잡고 함께 달리겠다. 김용민과 정청래의 의기투합! 응원해 주고 함께 뛰어달라”고 당부했다. 최근에는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대원칙은 정해지지 않았나”라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대해선 더 이상 당에서 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밝혔다. 정 전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토론회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당내에서 보완수사권 폐지 관련 이견이 노출되면 민주당이 정한 수사 기소 분리의 대원칙 등에 대해 의심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누가 당원주권정당 1인1표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 누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이 대표 시절 주도했던 1인1표제와 검찰개혁을 필두로 선명성을 부각했다. 김 전 총리 역시 보완수사권 폐지에 의견을 같이 했다. 다만 보완수사권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잡되 혼란과 공백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주된 입장이다.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대화와 토론에 중점을 맞춰 여러 이야기를 두루 듣겠다는 것이다. 정 전 대표의 일 처리 스타일과 선을 그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총리는 총리 역임 시절에 “보완수사권 폐지가 현시점에서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라며 “폐지안을 기본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 입장을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지침으로 여러 번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일부 존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대통령 뜻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진짜 ‘여당’ 정 심판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에는 “보완수사권 폐지 원칙은 지키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외부적 통제와 엄밀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윤기 사건, 국민 여러분과 함께 분노한다”며 “개혁은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이 국민 앞에 더 투명하게 서게 하는 것이다. 민주적 통제와 투명한 검증의 원칙은 검과 경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보완수사권 폐지가 살인범 편들기라는 <조선일보>식 프레임은 조잡하다”며 “자극적 언어에도 금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이 같은 친정부 이미지가 오히려 김 전 총리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핵심은 안정성이다.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이정부인 만큼 이를 뒷받침할 ‘관리형 여당 대표’ 이미지가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김 전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할 때도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만들어낸 여러 성과가 있는데 김민석 국무총리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어 “제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건 자살자 감소”라며 “올 초 통계부터 보면 월간 수백명 단위로 자살자가 줄었다. 수백명의 목숨을 구한 건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의 “여당 다운 여당”과 “현재 당내에서 제가 총선, 대선, 지방선거를 다 직접 총괄 지휘해 보고 승리까지 이끌어 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제가 갖고 있는 나름의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궤를 같이 한다. 2년 후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김 전 총리의 안정형 기조가 당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대로라면 총선 필패’ ‘여당으로서의 책임’ 등을 외치고 있다. 지난 1년 민주당의 키를 쥔 선장에 대한 일종의 심판론”이라며 “2028년 총선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승리가 최우선이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정 전 대표의 ‘자기 정치’라는 꼬리표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8년 총선 이대로 괜찮을까? 김 “폭탄 선언식으로 안 돼” 모든 선거의 승패는 결국 중도층을 얼마나 확보하는지에 달려 있다. 현재 민주당의 강경한 기조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외연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나오는 만큼 김 전 총리는 민주당의 차기 지도부 과제로 ‘실용 통합’과 ‘외연 확장’을 제시했다. 김 전 총리는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민주 진영의 통합과 연대, 중도로의 외연 확장 기조를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일시적인 갈라짐이 있을 경우 통합했고, 지금 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과는 연대하지 않나. 그리고 국민회의로 집권한 뒤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어 중도·보수 인사를 대폭 영입했는데 이게 확장”이라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당이 통합 대상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혁신당이 결정해야 한다”며 “거대 책임 정당인 민주당으로 성격이 같은 세력들이 결합할 때는 다 흡수 합당한다”고 했다. 정 전 대표가 시도한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방식에 대해서는 “폭탄 선언식으로 해서 일을 그르쳤다”며 “과욕이었다. (그래서) 일이 꼬였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 역시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며 “안 그러면 다음 총선에서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된 지 벌써 1년이다. 아직도 야당인 줄 알면 되겠나”라며 “이번 전대(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신임 지도부는 국민에게도, 대통령과 정부에도, 국회 야당에도, 정말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총선을 해볼 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영길 의원도 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국민께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옐로카드를 보내셨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다음 총선은 레드카드”라고 경고했다. 송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지면 정권 재창출은 없다. 정권 재창출이 없으면 이정부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며 “(전당대회는) 누가 이정부와 협력해 대체 불가 대한민국을 만들 대표인가를 선택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가 “선명성만으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현실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개혁을 꿈꿔온 당원들의 숙원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체제를 더 굳건히 하는 중단 없는 개혁이 시대정신”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지지층 결집에 나선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담 못해” 안갯속 당심 결국 ‘국정 안정 파트너’와 ‘당원 주권·개혁 선명성’ 중 어느 프레임이 당원 표심을 더 움직이는지가 이번 전당대회 승패를 가를 것으로 관측된다. 당내 뿌리 깊게 박힌 ‘정통성’과 ‘개혁 선명성’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김 전 총리의 남은 과제로 여겨지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겸공’ 찾은 김민석, 김어준도 우군으로?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유튜버 김어준씨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했다. 김씨는 정청래 전 당 대표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던 만큼 그의 라이벌인 김 전 총리에게 해명의 명분을 줬다는 점에서 당의 이목이 쏠린다. 지난 6일 김 전 총리는 방송을 통해 자신이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것에 대해선 “1초 늦었다”고 말했다. 김씨도 “감기약 먹고 일부러 안 온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면서도 “소모적으로 계속할 일은 아니기에 이것부터 털고 가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영상이 있다”며 계엄 당일 김 전 총리가 국회 담을 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과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 인터뷰를 공개했다. 앞서 친청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김 전 총리를 향해 ‘감기약 성분 의혹’을 제기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이 같은 김씨의 태도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그가 정 전 대표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거나, 한쪽으로 쏠린 기조에 부담감을 느꼈다는 등 다양한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