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 잠정 실적 발표를 통해 영업이익 89조4000억원을 기록했다고 지난 7일 공시했다. 이는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인 엔비디아를 뛰어넘는 실적으로 글로벌 빅테크 가운데 1위 성적이다. 하반기에도 성장세가 이어지면 연간 영업이익 3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돈을 제일 잘 버는 기업이 대한민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정상급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 경제의 승자는 물건만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세계의 자본이 모이고 금융이 움직이는 나라가 새로운 경제 패권을 갖게 된다. 이제 대한민국도 제조 강국을 넘어 금융 강국이라는 다음 목표를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뤄낸 나라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이었지만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과 철강, 디스플레이와 이차전지까지 대한민국 기업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는 기술과 품질의 상징이 됐고 제조 강국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국가 브랜드가 됐다. 이 성과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자산이다.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은 수출 중심으로 성장하는 길을 선택했다. 정부는 산업 기반을 만들고 기업은 세계시장에 도전했으며 국민은 밤낮없이 땀 흘리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섬유와 신발에서 시작한 수출은 자동차와 조선으로 이어졌고 다시 반도체와 정보통신 산업으로 발전했다.
제조업은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이었고 수출은 대한민국 성장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제조 강국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많이 만드는 나라가 강한 나라였다면 지금은 자본을 움직이는 나라가 더 강한 나라가 되고 있다. 공장의 규모보다 금융시장의 깊이가, 생산량보다 자본의 흐름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제조업이 성장의 출발점이었다면 금융은 국가 경쟁력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이다. 이제 대한민국도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경쟁력은 제조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뉴욕 월스트리트는 미국 경제의 또 다른 심장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자본시장을 바탕으로 글로벌 투자자금을 끌어들이고, 그 자본을 다시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와 우주산업 같은 미래 산업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도 결국 막강한 금융 경쟁력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제조와 금융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가 미국 경제의 진정한 힘이다.
영국 역시 산업혁명의 발상지였지만 현재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런던 금융시장이다. 싱가포르는 좁은 국토와 부족한 자원을 금융허브 전략으로 극복했고, 스위스는 자산관리와 금융서비스를 통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단순히 물건을 잘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세계의 돈이 모이는 나라라는 점이다. 결국 선진국의 마지막 경쟁력은 제조를 넘어 금융까지 완성하는 데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제조에서는 세계 정상권이지만 금융은 아직 그 위상에 미치지 못한다. 세계를 대표하는 제조기업은 많지만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금융기관은 거의 없다. 국내 기업이 대규모 투자나 해외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도 해외 금융시장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조 경쟁력과 금융 경쟁력 사이에 존재하는 이 격차가 대한민국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다음 과제다.
금융은 단순히 은행과 증권회사의 산업이 아니다. 금융은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기술혁신을 지원하며 미래 산업을 키우는 경제의 혈액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투자받지 못하면 성장할 수 없고 아무리 훌륭한 기업도 자본이 부족하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다. 제조업이 몸이라면 금융은 피와 혈관이다.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혈액순환이 멈추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금융이 약한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기 어렵다.
AI 시대에는 금융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바이오와 우주산업은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다. 데이터센터 하나를 구축하는 데도 수조 원이 필요하고 첨단 반도체 공장 하나를 세우는 데는 수십조 원의 투자가 요구된다. 정부 재정만으로는 이 같은 산업을 모두 뒷받침할 수 없다.
결국 민간 자본과 글로벌 투자자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게 된다. 앞으로는 기술 경쟁이 곧 금융 경쟁이고, 금융 경쟁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열린다.
세계는 지금 새로운 금융 패권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미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시키며 디지털 금융의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고, 유럽은 디지털 유로를 준비하며 새로운 결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앞세워 국제 결제시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과 싱가포르, 홍콩 역시 글로벌 금융허브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디지털 금융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금융의 미래 질서는 이미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제조에서는 앞서도 금융에서는 뒤처질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금융정책의 철학부터 바꿔야 한다. 지난 8일 필자와 만난 통일감정법인 양원진 회장은 “이제 금융은 규제보다 혁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은 규제 혁신과 과감한 투자로 세계 정상에 올랐지만, 금융은 여전히 지나친 규제와 소극적인 제도 속에서 혁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금융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 산업으로 바라봐야 한다.
금융을 성장시키는 정부가 결국 산업도 성장시킨다. 새로운 금융서비스와 디지털 금융, 글로벌 투자상품이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공정한 경쟁 질서를 만들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는 과감히 정비하고 새로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제조업이 규제 혁신을 통해 세계 정상에 올랐듯 금융도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
최근 세계 금융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금융의 확산이다. 금융은 더 이상 은행 창구에서만 이뤄지는 산업이 아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블록체인과 클라우드 기술이 금융과 결합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금융회사는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고, 데이터는 새로운 금융자산이 되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은 금융서비스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금융은 이제 첨단기술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아직도 이를 단순한 가상자산 정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지만 세계는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와 송금은 물론 무역과 투자까지 연결하는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국제 결제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미래 글로벌 금융질서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 스테이블코인은 선택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가 되고 있다.
양 회장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결제수단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원화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제 활용도를 확대하기 위한 국가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수출국이지만 국제거래에서는 여전히 달러 의존도가 높다. 제조 강국에 걸맞은 금융 경쟁력을 갖추려면 원화의 국제적 위상도 함께 높여야 한다.
금융 허브 전략도 이제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과거에도 서울과 부산을 국제금융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은 여러 차례 발표됐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제는 기능과 역할을 분명히 나누는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은 자본시장과 핀테크, 자산운용과 디지털 금융의 중심지로 육성하고 부산은 해양 금융과 물류 금융, 선박 금융의 중심도시로 특화해야 한다. 두 도시가 경쟁이 아니라 협력하는 금융 생태계를 구축할 때 대한민국 금융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물류 강국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항만과 공항, 글로벌 물류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물류 금융은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다. 선박금융과 무역금융, 공급망 금융, 물류 금융을 전략적으로 육성한다면 제조업과 금융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 수 있다.
물건을 만드는 힘과 자본을 움직이는 힘이 하나로 연결될 때 대한민국 경제의 경쟁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반도체도 금융이 있어야 만들 수 있고, 인공지능도 금융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으며, 이차전지도 금융이 있어야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앞으로 제조업과 금융은 서로 경쟁하는 산업이 아니라 함께 성장해야 하는 동반자가 될 것이다. 제조가 기술을 만들고 금융이 성장의 속도를 높이는 구조를 만드는 나라가 미래 산업을 주도하게 된다. 제조와 금융은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두 개의 축이 돼야 한다.
금융의 자율성도 과감하게 확대해야 한다. 시장을 불신하는 규제보다 시장을 신뢰하는 제도가 많아질수록 혁신은 빨라진다. 정부는 금융을 직접 통제하기보다 공정한 질서를 만들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금융회사는 창의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자유롭게 개발하고 세계시장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의 자율성이 커질수록 대한민국 경제의 역동성도 함께 커질 것이다.
특히 세계의 자본을 대한민국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절실하다. 과거에는 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이었다면 앞으로는 세계의 자본이 어느 나라를 가장 신뢰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세계의 연기금과 국부펀드,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털이 대한민국을 아시아 최고의 투자 거점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투자 환경과 세제, 규제를 국제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
돈이 모이는 곳에는 기업이 모이고, 기업이 모이는 곳에는 기술과 일자리, 그리고 미래 산업이 함께 성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 인재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제조 강국은 수많은 기술자와 기능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금융 강국 역시 국제 감각을 갖춘 금융인과 투자 전문가, 핀테크 인재, 금융공학 전문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세계 금융시장과 자본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대한민국 금융의 경쟁력도 함께 커질 것이다. 금융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산업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계 경제는 물건만 잘 만든다고 주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제조는 세계시장을 개척하는 힘이고 금융은 세계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두 힘이 하나로 연결될 때 대한민국은 생산과 투자, 기술과 자본이 함께 성장하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제조 강국 위에 금융 강국이라는 두 번째 성장축을 세우는 것이 대한민국 경제의 다음 과제다.
지금 세계는 AI와 디지털 금융, 스테이블코인과 글로벌 자본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 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흐름을 따라가는 나라와 주도하는 나라의 격차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제조 강국이라는 성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제조 강국은 대한민국의 첫 번째 경제기적이었다. 이제 금융 강국은 대한민국의 두 번째 경제 기적이 돼야 한다.
20세기 대한민국은 물건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금융으로 세계의 자본을 움직이는 나라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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