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단순한 축구대회가 아니다. 올림픽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축제이자 국가와 국가가 자존심을 걸고 경쟁하는 무대다. 선수들은 마음 속에 국기를 달고 뛰고 국민들은 한 경기 한 경기에 나라의 명예를 건다. 그렇다면 벤치에서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
그는 단순히 전술을 짜는 코치가 아니라 경기 내내 국가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국가대표다.
6일 아침 브라질과 노르웨이의 월드컵 16강전을 시청하면서 두 감독의 복장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브라질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고, 노르웨이의 스톨레 솔바켄 감독은 흰 셔츠 차림으로 벤치를 지켰다.
두 사람 모두 단정했지만 전달하는 이미지는 분명 달랐다. 그 순간 문득 ‘세계 최고의 축제인 월드컵에서만큼은 감독들도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정장을 입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를 떠올려 보자. 유엔 총회든 G20 정상회의든 APEC 정상회의든 각국 정상들은 대부분 정장을 입고 참석한다. 누구도 편해서 정장을 입는 것은 아니다. 그 옷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한다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정장은 품격을 드러내고 상대국에 대한 예의를 표현하며 자신이 국가를 대신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언어다. 그래서 정상의 정장은 외교의 일부가 된다.
월드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 세계 수십억명이 지켜보는 무대에서 감독은 90분 동안 중요할 때마다 화면에 등장하는 국가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선수들이 경기장 안에서 국가를 상징한다면 감독은 벤치에서 국가의 얼굴이 된다. 국제회의에서는 대통령이 나라를 대표한다면 경기장 안에서는 감독이 국가를 대표한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축구 감독의 복장은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양복을 입은 감독이 대부분이었다. 경기장은 하나의 공식 무대였고 감독은 팀을 대표하는 최고 책임자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트레이닝복이나 폴로 셔츠를 입은 감독이 훨씬 많아졌다.
선수들과 함께 뛰는 현장형 리더라는 이미지가 강조되면서 활동성과 실용성이 우선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날 양복을 입은 감독은 오히려 더 눈에 띄는 존재가 됐다.
반면 농구는 분위기가 다르다. 국내 프로농구를 보면 대부분의 감독이 정장을 입는다. 농구 감독은 경기 내내 코트 바로 옆에서 선수들을 지휘하고 수시로 작전타임을 요청하며 심판과 대화를 나눈다. 카메라는 감독을 계속 비추고 관중 역시 감독의 표정과 몸짓을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자연스럽게 감독은 선수 못지않게 경기의 주인공이 됐고, 양복은 권위와 책임감을 상징하는 유니폼처럼 자리 잡았다.
이런 문화는 미국 농구의 영향도 컸다. 미국 프로농구에서는 오랫동안 감독이 정장을 입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었다. 감독은 단순한 코치가 아니라 팀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이자 전략가라는 인식이 강했다. 우리나라 농구도 이 같은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지금도 국내 농구 감독들이 정장을 입는 이유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리더십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축구에서도 정장을 고집하는 명장들이 있다. 브라질 대표팀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언제나 단정한 양복 차림으로 벤치를 지킨다. 화려한 제스처보다 침착한 표정으로 경기를 읽는 모습은 마치 전장을 지휘하는 장군을 연상시킨다. 그의 정장은 자신감과 품격,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을 상징한다.
6일 열린 브라질과 노르웨이의 16강전에서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리더십은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브라질이 후반 추가 시간까지 1대 2로 끌려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양복 차림 그대로 벤치에서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과장된 몸짓이나 흥분한 항의 대신 차분하게 경기를 지켜보며 선수들을 믿는 모습은 오히려 강한 자신감을 보여줬다.
브라질은 후반 추가 시간 1분 남겨놓고 1점을 넣었으나 1대 2로 지면서 월드컵의 꿈이 좌절됐다. 그러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뒤 안첼로티 감독은 가장 먼저 그라운드에 앉아 허탈해하던 선수에게 정장 차림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패배의 쓰라림보다 선수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그 한 장면은 세계적인 명장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전술뿐 아니라 태도와 품격으로도 브라질이라는 축구 강국의 이미지를 높였고, 이번 월드컵 16강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감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포르투갈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 역시 대표적인 정장파 감독이다. 경기 내내 선수들에게 강하게 지시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복장을 유지한다. 스페인의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도 중요한 경기에서는 정장을 즐겨 입는다. 그들에게 정장은 멋을 위한 옷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물론 흰 셔츠나 운동복을 입는 감독들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르웨이의 스톨레 솔바켄 감독처럼 셔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품격을 보여주는 지도자도 있다. 현대 축구는 활동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흐름으로 변했고, 많은 감독들이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는 현장형 리더십을 선택하고 있다. 그것 역시 존중받아야 할 철학이다.
그러나 월드컵은 조금 다른 기준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월드컵은 리그 경기와 다르고 친선경기와도 다르다.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국가대항전이다. 그렇다면 감독 역시 조금 더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장은 그 상징성을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언어 가운데 하나다.
기업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소에는 캐주얼 복장을 즐기는 최고경영자도 중요한 해외 투자 설명회나 국제 계약식에서는 정장을 입는다. 복장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며 행사의 권위를 인정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국제회의에서 국가 정상들이 정장을 입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그것을 불편한 패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 감독도 월드컵에서는 정장을 하나의 전통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처음에는 다소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한민국 축구의 품격을 높이는 문화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뛰듯 감독도 정장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상징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승패는 양복이 결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양복을 입어도 전술이 부족하면 이길 수 없고, 운동복을 입어도 훌륭한 지도력으로 우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옷 자체가 아니라 그 옷이 담고 있는 의미다. 복장은 말없이 자신을 소개하는 첫 번째 언어이며, 리더의 철학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상징이다.
필자는 월드컵만큼은 감독들이 정장을 입는 문화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기를 제안하고 싶다. 선수들이 국가대표라면 감독 역시 국가대표다. 국제기구 정상회의에서 각국 대통령과 총리들이 정장을 입는 이유가 국가를 대표하기 위해서라면, 월드컵 감독의 정장도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감독의 양복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국가의 품격을 입는 옷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사람들은 우승팀과 득점왕만 기억하지 않는다. 끝까지 침착했던 감독, 열정적으로 벤치를 누볐던 감독, 품격 있는 양복 차림으로 국가를 대표했던 감독의 모습도 함께 기억한다. 스포츠는 기록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이미지의 역사다. 그래서 월드컵 감독의 양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축제를 더욱 품격 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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