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장동혁 ‘반장’ 전술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6.07.06 16:21:23
  • 호수 15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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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론을 해당 행위로 ‘징계 승부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돌아온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우재준·김용태·김재섭·송석준·이성권 의원 등을 징계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배현진·박정훈 의원도 징계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국민의힘 내 ‘반장 전쟁’은 이렇게 개막하는 걸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달 24일 병원에서 퇴원해 당무에 복귀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 대표는 단식 후유증 등의 영향으로 지난달 18일 입원해 6일 만에 퇴원했다. 그는 이날 사퇴를 거부했다. 이와 관련해 장 대표는 “당 대표의 거취는 당원들이 결정할 문제”라며 “당대표 마음대로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몇몇 의원들이 결정할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고 강조했다.

퇴원 후
사퇴 거부

이어 “지금은 특검·재선거·이재명 대통령 재판 재개에 집중할 때”라며 “그 어떤 일도 이에 우선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선 ‘자신의 진퇴 문제를 쟁점화하려는 시도를 일체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달 29일에는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원총회에서 어떤 결정을 하든, 최고위원회의에서 누가 어떤 발언을 하든 나는 사퇴하지 않는다”며 “최고위원 중 사퇴할 사람은 이 자리에서 사퇴하시라고 말했다”는 등 보다 직접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6일에는 ‘펜앤드마이크’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무소속 한동훈 의원을 비판하고, 징계 대상자를 거론했다.

장 대표는 한 의원에 대해 “갈등과 분열을 계속 유발하고, 우리 당이 이 지경에 오도록 원인을 제공했다”며 “한 의원과 힘을 합쳐 대표를 공격하는 것부터 바로잡는 게 기강 확립”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당내 징계 대상자 5명의 이름을 거론했다. 우선 장 대표는 가장 적극적으로 자신의 사퇴를 요구한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과 김용태·김재섭 의원을 언급했다. 징계 이유로는 “적과 싸워야 할 때는 기가 막히게 뒤에 숨어 있다가 당내에서 지도부를 공격할 때는 맨 먼저 나와서 가장 목소리를 높인다”는 점을 들었다.

그다음으로 언급된 징계 대상자는 친한(친 한동훈)계 3선인 송석준 의원과 소장파 그룹 ‘대안과 미래’ 간사를 맡고 있는 이성권 의원이었다. 장 대표에 따르면, 송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이천의 시장을 내줬고, 이 의원은 스스로 공천한 사하구청장 자리를 빼앗겼다는 것이 징계 사유였다.

아울러 징계 가능성이 거론되는 의원으로는 친한계 배현진·박정훈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이들은 한 의원이 지역구인 부산북구갑에서 재보궐선거 당시 한 의원과 함께 식사한 뒤 사진을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들의 행동을 두고 “국민의힘은 엄연히 박민식 후보를 공천했으므로, 그 행위 자체가 해당 행위 아니냐”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 대해 장 대표는 “배·박 의원에 대한 징계 요청서가 들어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심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 대표가 실제로 이들을 징계할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배 의원은 지난 3월 당원권 정지 1년 징계를 받았지만,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부장판사 권성수)는 배 의원이 국민의힘을 상대로 신청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1만8352명 서명 앞세운 강경 당심 호출
또 징계 카드? 법원 가처분 전례에 흔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징계를 추진하기엔 부담이 뒤따를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제명까지 당했던 한 의원은 무소속 출마·당선으로 정치적 재기에 성공해 장 대표가 더욱 궁색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김재섭 의원에 대한 징계도 실제로 추진하면 장 대표가 역공당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있다. 김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자신의 소장파 이미지·원래 더불어민주당 텃밭인 자신의 지역구 도봉 민심과의 괴리를 감수하고, 민주당 정원오 전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저격수 활동에 나섰다.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은 5선에 성공했고, 김 의원은 1등 공신 중 1명으로 거론됐다.

장 대표도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같은 날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에도 출연해 “만약 징계가 필요하다면, 징계 사안을 절차적·내용적으로 면밀하게 검토해 법원에서 새로운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안과 미래’ 전체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도 남겼다. 장 대표는 “지도부에 대한 공격만 계속하는 게 미래를 위한 대안 제시는 아닐 것”이라며 “장날만 되면 오는 약장수처럼 당 대표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혁신·대안·미래라는 이름으로 명분 없이 지도부를 흔드는 것은 이번에 반드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장 대표는 ‘대안과 미래’ 소속 의원 전체에 대한 징계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면, “6·3 지방선거 이후 장 대표의 입지가 줄었다”는 평가도 성립할 수 있다.

정치학자인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퀴타 미국 뉴욕대 교수는 셀렉터레이트 이론을 발표했다. 이는 “정치 지도자가 권력 유지와 생존을 핵심 동기로 삼고, 핵심 지지층에 대한 자원 배분을 통해 권력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국가·조직 내 핵심 지지층에 대한 자원 분배 여부에 따라 정치 체제가 결정된다”고 보는 이론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선거 패배로 지도자의 지지 기반이 약해지면 지도자는 반대파를 제도적으로 배제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소수의 지지층만으로 승리 연합을 재구성하려고 한다.

장 대표는 선거 패배 이후 상황인데도 중도층 등 외부의 지지를 확장하려는 방안을 언급하기보다 당심을 내세우며 단결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당 중앙윤리위원회 가동 등 제도적 제재 수단을 당권 유지와 2028년 총선 공천권까지 내다본 전술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날
약장수?

일각에서는 장 대표의 대응을 놓고 “권위주의화 과정의 초기 단계”라고 평가하고 있다.

장 대표의 징계 언급은 ‘대안과 미래’ 등 반대파의 사퇴 요구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장 대표는 사퇴 요구에 징계 언급이라는 답변을 제시해 일종의 게임을 제안한 셈이다. 당헌·당규상 공식 제재 기구인 중앙윤리위원회 회부를 무기로 꺼내 들고, 제명·당원권 정지 등 구체적 징계 가능성을 ‘비용’ 혹은 ‘판돈’으로 요구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장 대표가 거둘 수 있는 효과에는 징계 대상으로 언급된 의원들뿐 아니라 다수 의원들에게 공포를 유발하는 것도 포함된다.

장 대표의 방식이 당내에 뿌리내리면, 국민의힘은 ▲폐쇄적 권위주의화 ▲내부 순혈화 ▲선택적 동원 ▲축소 균형 등의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방선거 패배 책임론 속에서도 사퇴를 거부하고, 역으로 징계를 언급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폐쇄적 권위주의화 가능성이 있다”며 대표로서의 당무 운영 방식이 달라질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는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를 ▲지도부 흔들기 ▲해당행위 ▲당 기강 훼손 등으로 재규정했다. 장 대표가 실제로 징계를 추진하면, 핵심은 책임에서 기강으로 이동한다. 기강 중심 정치는 결국 지도부에 대한 충성 경쟁을 요구한다.

아울러 장 대표는 오 시장이 당선된 서울시장 선거를 포함한 전국 재선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어 김재섭 의원 징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등 자신의 지원 유세를 회피한 오 시장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드러내고 있다.

징계 대상으로 거론된 인사들 상당수가 수도권 중심 중도 확장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상황을 장 대표의 ‘기강 정치’와 접목하면, 내부 순혈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에 따르면, 장 대표는 ‘대안과 미래’ 등 중도 확장론자들을 다른 의견을 가진 당내 세력이 아니라 당내 순수성을 흐리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안과 미래’는 장 대표의 인식 속에서 “대안 없이 대표 퇴진만 요구하는 세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는 외연 확장론이 내부 균열·지도부 흔들기를 포장하는 명분에 불과해질 수 있다.

오락가락
당심 정체

또 장 대표가 언급하는 당심은 전체 당심 중 자신을 지지하는 당심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장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 1만8352명은 지난달 17일부터 19일까지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해 ‘대안과 미래’의 해체와 소속 의원 전원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징계를 요구한 명분은 “당내 계파 분열을 조장하는 사조직”이라는 것이었다.

국민의힘 책임당원은 지난 3월 100만명을 돌파했다. 장 대표는 이들 중 1만8352명의 요구를 당심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는 정치학적으로 선택적 동원이라고 한다. 전체 당원이 아닌 자신에게 우호적인 핵심 지지층만 선별적으로 동원해 권력 기반을 유지하는 방식을 말한다.

장 대표가 징계 카드를 언급하는 것은 1만8352명에 대한 구체적 화답이다. “당을 지키려면, 나를 지지하고 반대파를 압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폐쇄적 권위주의화 ▲내부 순혈화 ▲선택적 동원 등의 현상이 모이면 축소 균형으로 연결된다.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 지지층 안에서 권력을 안정적으로 배분하는 상태를 말한다. 외연 확장과 중도층 포섭을 포기하고, 강경 지지층과 조직을 확실히 장악해 내부 권력을 행사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북한이 30년 넘게 구사해 온 국제 외교술인 벼랑 끝 외교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북한은 경제력·재래식 군사력 열세 상황을 핵무기라는 비대칭 전력으로 상쇄하려고 한다. 장 대표는 선거 패배로 당내 리더십·정통성이 훼손되는 상처를 입었다. 장 대표는 징계를 시사하는 등 당헌·당규상 징계권이라는 제도적 제재 수단을 비대칭 전력처럼 활용하려는 것이다.

벼랑 끝 외교는 근본적으로 “우리를 건드리면 다 같이 죽는다”는 공포를 주입하는 외교술이다. 이것이 곧 상호확증파괴 논리다. 장 대표의 징계 가능성 시사도 “나를 강제로 끌어내리려고 하면 징계를 통해 당을 분열시키고 쑥대밭을 만들겠다”는 공멸의 공포를 주입하려는 시도로 보일 수 있다. 근본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치킨 게임이다.

이 같은 정치술은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건드린다. 국민의힘 내 ‘대안과 미래’·구 친윤(친 윤석열)계는 모두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자체가 붕괴되는 것을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다. 장 대표는 이들에게 ▲자신에 대한 침묵 ▲연쇄 징계 및 정당 붕괴 가능성 등 두 선택지만을 제공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 대표가 언급한 징계 시사는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같은 비가역적 무기라고 보기 어렵다. 아울러 장 대표가 징계를 강행하려면, 실질적으로 당을 주도하는 구 친윤계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 당 밖에는 법원이 있다.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해 징계 효력을 정지하는 상황은 이미 배 의원 사례에서 드러난 바 있다.

외연 확장 대신 내부 결속…축소 균형 선택?
‘절대 반지’ 2028 총선 공천권은 누가 차지?

구 친윤계에게도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다.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관측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구 친윤계에도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신감 어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징계 시사라는 벼랑 끝 전술은 당의 내전을 외부에도 공식화하는 조치가 될 위험이 있다. 친윤계가 장 대표를 필요할 때 움직일 수 있는 ‘가벼운 가마’로 여겼다는 관측을 전제로 하면, 징계전은 그 기대를 넘어서는 행동일 수 있다.

구 친윤계는 장 대표를 방파제로 보는 게 아니라 당의 존립을 위협하는 위험으로 재평가할 수도 있다. ‘대안과 미래’보다 구 친윤계 특유의 조용한 움직임이 어떻게 나올지가 장 대표의 정치 생명을 좌우하는 핵심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극단적 내부 숙청이 국민의힘의 추가 추락으로 연결되면, 공천권의 가치도 똑같이 공산이 크다.

장 대표가 이를 모를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장 대표가 벼랑 끝 전술을 추진하는 이유로는 ▲기세 유지 ▲비용 청구 ▲내부 지지층 결집 ▲책임론의 체제 수호론 전환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위험과 이익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장 대표는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 것이다. 장 대표의 논리 안에서 그는 국민의힘을 지키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1929년부터 1930년까지 중국 대륙에서는 반장 전쟁이라는 내전이 발생했다. 당시 장제스는 북벌 이후 난징 국민정부를 중심으로 중국의 명목상 통일을 이뤘다. 이어 국민정부 주석에 취임하면서 패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국민당에 합류했던 군벌들의 기세는 여전했다. 이들은 국민당 내 장제스 반대파와 합세해 반란을 일으켰다.

장 대표의 현 상황은 난징 중앙정부를 장악해 정통성을 쥐고 있었지만, 독자 기반이 완전히 압도적이지는 않았던 장제스의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당시 장제스는 군대 감축·통합을 통해 중앙 권위를 강화하려고 했다.

느슨한 연합체인 구 친윤계는 옌시산·펑위샹 등 반장 연합군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은 확고한 자기 영토를 장악했고, 중앙 권력이 생존권을 침해하려는 것을 막으려는 연합체라고 할 수 있다. 반장 연합군은 장제스의 군대 감축 시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과 ‘대안과 미래’ 등은 국민당 내 개혁파와 비교할 수 있다. 이들은 중앙 권력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대중적 지지와 명분을 토대로 중앙 권력을 쥐려고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직접 내전에 뛰어들기보다 독자 세력권을 유지한 채 판세를 관망하는 균형자에 가깝다. 반장 전쟁기의 장쉐량처럼, 결정적 순간 어느 쪽에 서느냐에 따라 판세를 흔들 수 있는 위치다.

반장 전쟁
결말은?

중국의 반장 전쟁에선 장제스가 승리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 반장 전쟁은 아직 승자가 판가름나지 않았다. 쉽게 판가름나기 어려운 이유는 이 대립이 2028년 총선 공천권이라는 ‘절대 반지’의 소유권 다툼을 배경으로 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 대표는 또 법원이 개입할 수 있는 공멸 비용 경고성 벼랑 끝 전술을 반복해서 사용하려고 한다. 과연 절대반지는 누가 차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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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 증거인멸’ 논란으로 경찰 조직이 시험대에 올랐다. 피의자 가족이 나서서 증거를 없애고 이 과정에 주변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청 해체 이후 수사 권력을 한 손에 쥘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한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던 남자에게 살해됐다. 여학생을 구하려던 남학생은 크게 다쳤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고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얼굴을 공개했다. 생떼 같은 10대 여고생의 황망한 죽음에 국민은 경악했다. 하지만 국민이 더 분노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위 의혹은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조직 명운 달렸다 장윤기 사건에서 수사 기밀 유출, 증거인멸, 초동수사 부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장윤기의 혐의를 경찰이 나서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장윤기에게 강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형량이 더 높은 강간·살인 혐의를 입증할 케이블 타이 등의 증거를 경찰이 없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의 보완수사로 드러났다. 현재 정치권은 해체될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둘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로 경찰의 부실 수사 문제가 확인되면서 권력을 한쪽에만 과도하게 몰아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이 장윤기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 유착 의혹을 두고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조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최대한 불식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는 게 중론이다. 안 그래도 검찰청 해체로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번 일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23년 8월 공동대표였던 하모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R스타트업의 이모 대표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하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단독대표가 돼 R스타트업을 떠안았다(<일요시사> 1493호 ‘<단독>스타트업 대표 1000억대 역외탈세 의혹’). 앞서 두 사람이 공동대표일 무렵 R스타트업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스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던 때였다. 하씨는 마스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법인을 이용해 수급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한 회사와 판매 계약까지 체결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사업은 ‘마스크를 수급할 수 없게 됐다’는 하씨의 말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마스크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하씨는 R스타트업을 떠났다. 2022년 3월경에는 서로 연락도 끊겼다.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도 이 시기에 정지 조처됐다. 회사와도, 사적으로도 이 대표와 하씨의 관계가 끝난 것이다. 상황은 2023년 6월 이 대표가 하씨의 이메일에서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며 반전됐다. 장윤기 사건으로 신뢰 바닥 새로운 자료 찾아도 시큰둥 이 대표는 하씨의 이메일을 통해 흐지부지된 줄 알았던 마스크 사업이 몰래 진행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씨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마스크를 수급하고 수출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이 시기에 알게 됐다.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인천 연수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연수경찰서는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를 1000억원대로 판단했고 수사를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로 넘겼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연수경찰서에서 추정한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는 1400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하씨는 회사(R스타트업) 메일 계정을 이용해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다. 그사이 회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더욱 화나게 한 건 경찰의 태도였다. 처음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미진한 수사 태도로 이 대표의 불만을 샀다. 이 대표는 “하씨가 한국에 있지도 않은데 출국금지를 걸지를 않나, 경제범죄를 수사하면서 CFO가 뭐냐고 묻질 않나, 이렇게 많은 양의 자료를 제출했는데 고소인 조사를 20분밖에 하질 않나, 수사 자체가 엉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2024년 2월 말 하씨를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의 판단은 달랐다. 인천지검은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하씨와 가족의 해외 계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의 불송치에 대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때가 2024년 3월이다. 경찰 수사에 답답함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와 관련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특히 하씨의 회사 계정으로 오간 이메일을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하씨가 카카오뱅크를 통해 6개월 동안 거래한 내역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거래 내역에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돈이 여러 차례 오간 것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2024년 5월에 거래 내역을 발견해 바로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이 나를 조사에 부른 건 (그해) 8월경이었는데 그때까지 거래 내역에 대한 어떤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수사 권한도 없는 일반인이 이 정도로 자료를 찾아 건넸으면 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 국민은 경찰보다 계좌 접근 권한이 제한돼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고소 이후 3년 지나 하씨와 그 가족의 필리핀 계좌를 보기 위한 국제 공조에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토로했다.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한 때가 2024년 3월29일이었는데 그해 7월에서야 공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처음 고소인 조사를 받을 때부터 필리핀 법인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필리핀 법인에 보낸 은행 송금증, 해당 필리핀 법인이 운영하는 SNS 내용, 현지 언론 기사까지 제출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보완수사가 떨어지고 나서야 공조를 진행하면 기다리는 고소인은 답답해서 죽는다”고 말했다. 하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써준 사실확인서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해당 인물이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후에 하씨와 함께 사업한 의혹이 있다. 이런 사람이 써준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있나. 경찰 조사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진술했는데 ‘고소인은 ○○○의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없음’ 이렇게 한 줄만 적었더라. 근거를 가지고 말했는데 경찰은 나를 ‘우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표가 경찰에 제출한 자료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하씨를 불송치 처분할 때 근거가 됐던 내용을 다시 들여다볼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불송치 이유로 ▲(하씨가) 거래대금을 몰래 착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실이 없다면서 배임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을 들었다. 이때 ▲미국 A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필리핀 법인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미국 A사 측의 거래 취소 요청 이메일 ▲계약 관련자의 사실확인서 등을 ‘혐의없음’의 근거로 제시했다. 즉, 경찰은 하씨가 마스크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마스크 사업으로 수익을 본 것도 없고 그러니 배임 혐의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표는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은 마스크 사업 과정에서 돈이 오간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고, 사실확인서 역시 동업 관계에서 나왔기에 그 배경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료만 제대로 봤어도 수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경찰의 결론 자체를 뒤집는 자료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이 대표는 하씨의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하씨가 마스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수급을 담당한 업체가 있는데, 그곳의 대표와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확인해 달라” 호소에도… 또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하씨가 2억4000만원에 이르는 신용 미수 거래를 한 내역도 찾아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신용 미수 거래금이 2억원이 넘는다는 건 담보 제공 현금이 1억5000만원 이상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스크 사장 이름을 알아낸 것도 그렇다. 대단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고 거래 내역에 있는 사람 이름과 다른 단어를 인터넷에서 조합해 검색했더니 내용이 나왔다. 이건 내가 다 수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행보에도 경찰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2계로 수사팀을 한 차례 바꾼 것 빼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4월30일 ‘수사 중지’를 결정했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 대표는 하씨의 거주지 주소가 바뀐 것을 지적하면서 ‘이송’을 요청했지만 ‘보완수사 중에는 관할지 이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후 수사는 1년 넘게 멈춘 상태다. 이 대표는 국세청에도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국세청에 같은 자료를 냈는데 국세청은 조사를 진행한 뒤 하씨가 ‘탈세를 한 게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자 ‘국세청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국세청에 확인했더니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왜 거짓말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그사이 하씨가 다른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9~10월경 가상자산 전문 매체 기사에서 하씨의 영어 이름을 발견했다. 하씨가 ‘키키캣 코인’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게 사기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씨가 코인사업을 하면서 ‘이태리 석유 재벌의 아들’인 척했다는 글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불송치했다 보완수사 결정 “그건 1계에서 처분한 것” 이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하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는 도중에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이 대표는 “(키키캣 코인의) 시가총액이 1억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 100만달러까지 떨어진 걸로 안다. 키키캣 코인을 구매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은 피해자 방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중지된 수사를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하씨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하씨와 거래한 마스크 제조업체는 여러 곳인데 수출을 진행한 곳은 하씨 동생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된다”며 “이 내용을 근거로 수사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규정 위반’이라고 윽박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규칙 제102조(수사 중지 사건 수사 재개)는 ‘경찰은 수사 중지된 사건의 피의자를 발견하는 등 수사 중지 사유가 해소된 때에는 …(중략)… 즉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경찰과 이 대표의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은 수사 재개에 필요한 요건을 국제 공조 수사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는데 왜 수사를 재개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결과가 아직 회신되지 않았다는 건 하씨의 해외 (계좌) 자료가 필요한 일부 수사에 제약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하씨의 마스크 사업 규모를 확인하는 정도에 필요한 자료”라며 “하씨의 여동생이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다는 의혹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다. 수사를 재개하고 관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계 담당자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올 때까지 수사를 재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하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언제쯤 올 것으로 예상되냐는 질문에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또 앞서 하씨를 불송치한 내용에 대해 거론했을 때는 “그 부분은 1계에서 처분한 것”이라며 “우리(2계)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 이후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는 경찰 수사 규칙에 따라 사건 기록에 편철해 놨다”며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없어도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지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질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하씨가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 아닌가. 피고소인이 현재 받는 업무상 배임 혐의 외의 별건 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담당 수사관에게 언급한 하씨의 코인 사업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