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지금보다 더 나은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이 욕망의 집합체는 ‘좋은 주거 환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천문학적인 돈의 흐름이다. 적게 잡아도 수천억원, 많게는 수조원에 이르는 사업비는 때론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똬리를 튼다.
낙후된 지역을 개발해 새 건물을 올린다. 해당 지역에 살던 원주민과 분양을 받아 들어온 이들이 사업비를 댄다. 이 돈은 건설사, 건축업체, 지자체, 운영비, 인건비 등으로 빠져나간다. 돈을 끌어오고 그 흐름을 조율하는 게 시행사, 즉 조합이다. 조합장과 집행부는 조합원의 뜻에 따라 사업을 진행한다.
뿔난 조합원
하지만 재건축‧재개발 사업은 생각보다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워낙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각자의 생각이 다르기에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왕왕 일어난다. 특히 돈과 관련된 문제는 재건축‧재개발 조합에서 빈번하다 못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움직이는 돈이 큰 만큼 그 흐름이 불투명한 사례가 있는 것이다.
최근 방배5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하 방배5구역 조합)에서 화두로 떠오른 일도 ‘회계’ 관련 사안이다. 방배5구역 재건축 사업은 서울 서초구 방배동 946-8번지 일대에 지하 3층부터 지상 최고 33층의 아파트 29개 동을 짓는 내용이다. 3064세대를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단지로, 지하철 4‧7호선이 오가는 이수역과 7호선 내방역 사이에 자리하는 역세권이다. 시공은 현대건설이 맡았다.
방배5구역 조합은 2004년 12월 추진위원회 구성, 2010년 9월 정비구역 지정 후 2012년 5월 설립 인가를 받았다. 사업 시행은 2013년 7월부터, 2016년 7월 관리처분 계획 인가를 받고 2022년 7월 착공했다. 이후 2024년 일반 분양을 거쳐 곧 준공 단계에 접어든다. 빠르면 올해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이 막바지로 접어든 이때, 방배5구역 조합원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은 말 그대로 ‘불바다’ 상태다. 조합원이 조합의 운영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일은 자주 있지만, 최근에는 그 수위가 더 높아졌다는 게 한 조합원의 증언이다. 조합의 회계 자료에서 석연치 않은 내용이 드러나면서다.
서울시는 정비사업과 관련한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정비사업 정보몽땅’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조합원은 사이트에 올라오는 자료를 통해 사업 진행 내용과 조합의 운영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조합은 수입과 지출을 정리해 매달 사이트에 올려야 한다. 회계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다.
지난 2월 회계 자료서 드러나
김영란법·뇌물죄 위반 가능성
문제의 자료는 지난 2월분 ‘계정별 원장’이다. 계정별 원장은 조합의 모든 거래를 계정 과목별로 모아서 날짜순으로 기록한 회계 장부다.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방배5구역 2월(2026년 2월1일~28일) 계정별 원장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특정 인물에게 나간 경조사비다.
자료에 따르면 2월23일 ‘서초구청 ○○○ 과장 결혼 축의금’ 명목으로 150만원이 나갔다. 계정별 원장에는 해당 인물의 이름이 실명으로 기재돼있다. A 과장은 서초구청 재건축사업과에 근무 중인 공무원이다. 다시 말해 재건축 조합에서 구청 재건축 관련 부서 과장에게 150만원의 결혼 축의금을 낸 것이다.
<일요시사>의 취재를 종합하면 A 과장의 딸은 지난 2월21일 서울 강남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했다. 이날 결혼식에 방배5구역 조합 관계자 등이 참석했고 사비로 축의금을 낸 뒤에 조합에서 비용으로 처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조합원은 “조합장과 기술이사가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로 떠오른 부분은 150만원이라는 축의금 액수, 공무원이라는 A 과장의 신분, 그리고 재건축 사업이라는 직무 연관성이다. 지자체 공무원과 재건축 조합 사이에 오간 돈이라는 점에서 뇌물죄나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에 저촉된다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선 법무법인 라움 변호사는 “뇌물죄는 직무에 관해 뇌물을 수수한 경우에 대한 처벌로, 대가성을 증명해야 죄가 된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은 직무와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대가성을 증명할 필요 없이 무조건 금품수수를 금지하는 것”이라며 “뇌물죄를 조금 더 세부적으로 쪼개 놓은 게 청탁금지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재건축사업과 근무
직무 연관성 논란
김영란법은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이 대가성 없이도 1회 100만원(연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거나 부정 청탁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다만 일부 상황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되 한도를 정하고 있다. 경조사비도 그중 하나로, 돈으로 낼 때는 5만원, 화환‧조화 등까지 포함하면 10만원까지 부조가 가능하다.
방배5구역 조합에서 A 과장에게 낸 축의금 150만원은 김영란법에서 정한 한도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다. 여기에 A 과장은 지난해 10월 빙모상을 당했을 때도 방배5구역 조합으로부터 근조화환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지난해 10월분 방배5구역 계정별 원장에는 그해 10월24일 ‘○○○과장 빙모상 근조화환’ 명목으로 15만원을 지출했다고 표기돼있다. 이 부분에서도 김영란법이 정한 경조사비 한도 액수를 넘겼다.
직무 연관성도 논란으로 떠올랐다. A 과장이 속한 부서는 서초구의 재건축 사업을 총괄한다. 방배5구역 외에도 관리하는 사업이 10곳도 넘는다. 한 조합원은 “재건축 과정에서 구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현재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준공을 앞두고 있다. 구청에서 사용승인을 내줘야 입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초구청 언론팀 관계자는 “(축의금을) 돌려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방배5구역 관계자가 낸 축의금을 확인한 즉시 돈을 돌려줬다는 설명이다. 근조화환에 대해서는 “당시 상중이어서 경황이 없지 않았겠냐”면서도 “공무원 개인 신상에 관한 내용이라 구청에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이선 변호사는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무원이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히거나 돈을 돌려주는 경우 처벌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공무원을 공격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기에 이른바 약간의 여지를 열어놓는 셈”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김영란법에 저촉될 만한 일을 하고 공무원을 신고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 기관장에게 즉각 신고하거나 금품을 반환하면 면책되는 조항을 만들어둔 것이다.
15만원 화환도
하지만 실제 A 과장이 축의금을 반환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방배5구역 조합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한 조합원에 따르면 “지난 2월에 회계 담당자가, 4월에 사무장이 그만두면서 조합 상황이 엉망”이라며 “조합원 요구로 조합 실태 점검을 요구했고 다음 달 초 서울시와 서초구청에서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30일에는 서초구청 앞에서 집회도 진행했다. 조합에 대한 빠른 실태 점검, 공사 진행 내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A 과장에게 간 축의금 150만원 문제는 안 그래도 화가 난 조합원에게 불을 지른 격이다. 필요하다면 형사 고발 등의 조치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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