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1만원의 기적’ X클럽 사기 피해담

“2273배 불려드립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11만원으로 시작해 수억원대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곳이 있다. X클럽이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기적의 플랜’은 전국 설명회를 타고 퍼졌고,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도 우후죽순 늘고 있다. 이들은 아직도 전국 팔도를 누비며 ‘달콤한 플랜’을 열변 중이다.

박씨가 X클럽을 처음 알게 된 건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당시 박씨는 직장생활을 잠시 쉬고 있었다. 지인은 “돈 벌 수 있는 게 있다”며 설명회 참석을 권했다. 처음부터 큰돈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시작 금액은 11만원. 박씨는 큰 부담 없이 한번쯤 들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동업자”

설명회에서 들은 사업 구조는 단순해 보였다. 제품을 구매하면 회사 매출이 발생하고, 그중 일부가 참여자에게 돌아온다는 내용이었다. 업체 측은 이를 ‘동업’이라고 설명했다. 돈을 맡겨 이자를 받는 투자상품이 아니라, 함께 제품을 구매하고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라는 취지였다.

박씨가 처음 들어간 것은 A 플랜이었다. X클럽은 내부 수익 프로그램을 ‘플랜’이라고 불렀다. 플랜은 여러 단계로 나뉘었고, 각 단계를 ‘회차’라고 했다. 1회차, 2회차, 3회차 식으로 순서를 따라가며 돈을 넣고, 일정 회차까지 이어가면 더 큰 수익을 받을 수 있다는 구조였다.

초반에 오간 금액은 크지 않았다. 11만원을 넣으면 제품을 받고, 일부 금액을 돌려받는 식이었다. 박씨는 “처음엔 실제로 돌아가는 사업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핵심은 ‘회차’였다. 처음 몇 회차에서는 수익이 크지 않아도, 끝까지 따라가면 목돈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박씨는 “처음엔 모르니까 하라는 대로 했다”며 “말을 잘 들으면 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문제는 그 11만원이 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X클럽의 구조는 한번 제품을 사고 끝나는 방식이 아니었다. 박씨가 참여한 A 플랜은 18회차까지 있었다. 18회차까지 참여하면 최종 수익은 무려 2억5000만원이었다.

하지만 18회차까지의 수익을 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었다. 바로 ‘마감’이라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마감은 정해진 기간이 끝난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X클럽 안에서 마감은 날짜 종료의 의미가 아니다.

11만원이 2억5000만원으로
6070 홀린 ‘기적의 계산법’

한 회차에 필요한 매출이 채워지고, 회사가 그 회차를 끝낼 수 있다고 판단해야 비로소 마감이 이뤄지는 구조였다. 쉽게 말해 돈을 넣었다고 곧바로 수익을 받는 방식이 아니었다. 참여자들이 회차별로 돈을 넣고, 그 돈이 일정 규모 이상 모여야 했다.

그래야 해당 회차가 끝났고, 이후 수익 지급이나 다음 회차 진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이 구조는 참여자를 붙잡아두는 장치가 됐다. 한번 들어간 회차가 마감되지 않으면 앞서 넣은 돈도, 받을 것으로 기대한 수익도 묶였다. 중간에 빠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박씨는 “중간에 빠지면 지금까지 받을 수익을 모두 받지 못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X클럽 관계자들은 빠지기 어려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누군가 빠지면 해당 회차가 마감되지 않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수익 지급도 늦어진다는 식이었다. 박씨는 “한 사람이 빠져도 마감이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며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박씨에게 압박으로 작용했다. 그만두고 싶어도 쉽게 빠질 수 없었다. 자신이 멈추면 이미 넣은 돈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이 있었고, 동시에 다른 참여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부담도 따라붙었다. X클럽이 말한 ‘동업’은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함께 돈을 벌자는 말인 동시에 함께 묶여 있다는 말도 되는 셈이었다.

많은 회차가 지나고, X클럽은 “A 플랜이 마감되지 않는다”며 약속된 수익금을 주지 않았다. 14회차 무렵부터 수익 지급이 멈췄다. 박씨는 이미 앞선 회차에 돈을 넣은 상태였다.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말이 이어졌고, 다음 회차에 참여해야 기존의 수익금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수익 안 주고
원금 못 받고

결국 박씨는 14회차 수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15회차에도 돈을 넣었다. 멈추면 손해가 확정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돈을 더 벌려고 했다기보다, 이미 넣은 돈이라도 받으려면 계속해야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마감이 늦어질수록 설명도 달라졌다. 회사가 살아야 플랜도 다시 돌아가고, 플랜이 돌아가야 참여자들도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기존 회차가 막히면 다른 플랜을 함께 해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고 박씨는 말했다. X클럽은 B 플랜, D 플랜, F 플랜 등 다른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를 유도했다.

박씨는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걸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A 플랜만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조는 더 복잡해졌다. 기존 플랜이 마감되지 않으면 다른 플랜을 통해 회사 매출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박씨 입장에서는 이미 큰돈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플랜이 바뀌어도 문제는 반복됐다. 새 플랜 역시 회차가 있었고, 마감이 필요했다. 마감이 늦어지면 수익 지급도 미뤄졌다. 박씨는 또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동안 회사 측은 참여자들에게 더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처음 설명과 달리, 시간이 지나자 박씨에게도 ‘추천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박씨는 처음 X클럽에 들어갈 때만 해도 사람을 데려올 필요가 없다고 들었다. 제품을 구매하고, 회차를 기다리면 수익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마감이 늦어지자 말은 달라졌다.

“나중에는 추천인을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그런 얘기는 없었다.” 박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X클럽 내부에서 추천인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돈이나 노력
하나는 해야”

새 참여자가 들어와야 플랜이 돌아가고, 플랜이 돌아가야 회차가 마감된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참여자들이 돈을 넣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누군가는 새 사람을 데려와야 했고, 그 새 사람이 다시 돈을 넣어야 했다.

X클럽이 비공개로 만든 네이버 밴드 내부 공지에서도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X클럽은 일부 회차에서 추천인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추천하지 않을 경우 추가 금액을 내야 한다는 안내도 있었다. 한 공지에는 “추천하지 않을 판매원은 기존 금액에 110만원을 더해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겼다.

실제 진행된 D 플랜 설명회에서는 피해자들이 말한 ‘동업’의 속내를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약 2시간짜리 설명회 영상에는 강사로 불린 인물이 X클럽의 구조를 설명하는 장면이 담겼다. 영상 속 강사는 참석자들에게 “궁극적으로는 투자 맞아요. 돈을 벌려고 하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방식의 투자는 아니다. 진짜로 독특하고 괴상망측하다”며 구조가 쉽게 이해되는 방식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강의의 상당 부분은 ‘기다림’에 맞춰져 있었다.

강사는 비트코인과 주식 투자를 예로 들며 가격이 크게 떨어지는 구간을 견뎌야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믿음이 있으면 기다릴 수 있고, 믿음이 없고 계속 의심을 하면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X클럽도 비슷한 시각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영상 속 강사는 X클럽의 흐름을 투자 차트처럼 설명했다. 상승과 하락이 있고, 하락 구간에서 빠져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길게 보는 사람이 결국 큰 수익을 얻는다는 논리였다. 그는 “X클럽은 길게 보고 하는 투자”라며 “단타는 안 맞다”고 말했다.

짧게 들어왔다가 빠지는 방식은 X클럽 시스템과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또 다른 핵심은 유입이었다. 그는 “유입되는 사람의 수가 결국 관건”이라며 “한 사람이 X클럽에 매출하는 액수도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즉 플랜이 계속 움직이려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 수와 한 사람당 넣는 금액이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회사가 살아야 나도 산다”
돈 안 주고 다른 플랜 유도

강사는 참여자들을 이해도에 따라 나눠 설명하기도 했다.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 반쯤 이해한 사람, 이해하지 못한 사람으로 구분한 뒤,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지면 “조금이라도 삐걱거리면 확 빠져버린다”고 말했다. 빠져나가는 사람은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됐다. 강의 말미에는 더 직접적인 표현도 나왔다.

강사는 X클럽이 성공하려면 개인의 이익보다 전체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돈이나 노력, 적어도 하나는 해주셔야 된다”고 했다. “둘 다 거부하면 나가셔야 된다”는 말도 이어졌다. 돈을 더 넣거나, 사람을 데려오거나, 최소한 회사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 기다리지 못한 사람, 동업에 기여하지 않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었다.

박씨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간에 멈추면 이미 넣은 돈과 약속된 수익을 모두 놓칠 수 있다는 불안이 컸다. 회사가 살아야 플랜이 다시 돌아가고, 플랜이 돌아가야 자신도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박씨가 넣은 돈은 불어났다. 시작은 11만원이었지만, 이후 들어간 돈은 약 6000만원에 달했다. 박씨는 “처음엔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받을 돈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계속 버티게 됐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약속했던 수익금은 물론 원금도 돌려받지 못했다. 결국 신용불량 상태에 놓였고, 신용 회복 절차를 밟게 됐다. 박씨는 “돈을 벌려고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넣은 돈이라도 돌려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X클럽의 피해를 주장하며 고소를 준비 중인 인원은 64명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피해 규모만 25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박씨는 드러난 피해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에 센터가 있었고, 각 센터에서 설명회를 듣고 들어간 사람들이 많다”며 “실제 피해자는 지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묶여버린
피해자들

박씨는 특히 고령층 피해를 우려했다. 설명회장에는 50대와 60대, 70대 참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박씨는 “처음엔 다들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들어갔지만, 나중에는 넣은 돈이라도 돌려받고 싶어서 버틴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 증거인멸’ 논란으로 경찰 조직이 시험대에 올랐다. 피의자 가족이 나서서 증거를 없애고 이 과정에 주변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청 해체 이후 수사 권력을 한 손에 쥘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한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던 남자에게 살해됐다. 여학생을 구하려던 남학생은 크게 다쳤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고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얼굴을 공개했다. 생떼 같은 10대 여고생의 황망한 죽음에 국민은 경악했다. 하지만 국민이 더 분노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위 의혹은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조직 명운 달렸다 장윤기 사건에서 수사 기밀 유출, 증거인멸, 초동수사 부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장윤기의 혐의를 경찰이 나서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장윤기에게 강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형량이 더 높은 강간·살인 혐의를 입증할 케이블 타이 등의 증거를 경찰이 없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의 보완수사로 드러났다. 현재 정치권은 해체될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둘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로 경찰의 부실 수사 문제가 확인되면서 권력을 한쪽에만 과도하게 몰아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이 장윤기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 유착 의혹을 두고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조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최대한 불식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는 게 중론이다. 안 그래도 검찰청 해체로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번 일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23년 8월 공동대표였던 하모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R스타트업의 이모 대표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하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단독대표가 돼 R스타트업을 떠안았다(<일요시사> 1493호 ‘<단독>스타트업 대표 1000억대 역외탈세 의혹’). 앞서 두 사람이 공동대표일 무렵 R스타트업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스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던 때였다. 하씨는 마스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법인을 이용해 수급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한 회사와 판매 계약까지 체결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사업은 ‘마스크를 수급할 수 없게 됐다’는 하씨의 말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마스크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하씨는 R스타트업을 떠났다. 2022년 3월경에는 서로 연락도 끊겼다.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도 이 시기에 정지 조처됐다. 회사와도, 사적으로도 이 대표와 하씨의 관계가 끝난 것이다. 상황은 2023년 6월 이 대표가 하씨의 이메일에서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며 반전됐다. 장윤기 사건으로 신뢰 바닥 새로운 자료 찾아도 시큰둥 이 대표는 하씨의 이메일을 통해 흐지부지된 줄 알았던 마스크 사업이 몰래 진행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씨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마스크를 수급하고 수출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이 시기에 알게 됐다.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인천 연수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연수경찰서는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를 1000억원대로 판단했고 수사를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로 넘겼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연수경찰서에서 추정한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는 1400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하씨는 회사(R스타트업) 메일 계정을 이용해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다. 그사이 회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더욱 화나게 한 건 경찰의 태도였다. 처음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미진한 수사 태도로 이 대표의 불만을 샀다. 이 대표는 “하씨가 한국에 있지도 않은데 출국금지를 걸지를 않나, 경제범죄를 수사하면서 CFO가 뭐냐고 묻질 않나, 이렇게 많은 양의 자료를 제출했는데 고소인 조사를 20분밖에 하질 않나, 수사 자체가 엉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2024년 2월 말 하씨를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의 판단은 달랐다. 인천지검은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하씨와 가족의 해외 계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의 불송치에 대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때가 2024년 3월이다. 경찰 수사에 답답함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와 관련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특히 하씨의 회사 계정으로 오간 이메일을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하씨가 카카오뱅크를 통해 6개월 동안 거래한 내역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거래 내역에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돈이 여러 차례 오간 것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2024년 5월에 거래 내역을 발견해 바로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이 나를 조사에 부른 건 (그해) 8월경이었는데 그때까지 거래 내역에 대한 어떤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수사 권한도 없는 일반인이 이 정도로 자료를 찾아 건넸으면 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 국민은 경찰보다 계좌 접근 권한이 제한돼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고소 이후 3년 지나 하씨와 그 가족의 필리핀 계좌를 보기 위한 국제 공조에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토로했다.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한 때가 2024년 3월29일이었는데 그해 7월에서야 공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처음 고소인 조사를 받을 때부터 필리핀 법인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필리핀 법인에 보낸 은행 송금증, 해당 필리핀 법인이 운영하는 SNS 내용, 현지 언론 기사까지 제출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보완수사가 떨어지고 나서야 공조를 진행하면 기다리는 고소인은 답답해서 죽는다”고 말했다. 하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써준 사실확인서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해당 인물이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후에 하씨와 함께 사업한 의혹이 있다. 이런 사람이 써준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있나. 경찰 조사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진술했는데 ‘고소인은 ○○○의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없음’ 이렇게 한 줄만 적었더라. 근거를 가지고 말했는데 경찰은 나를 ‘우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표가 경찰에 제출한 자료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하씨를 불송치 처분할 때 근거가 됐던 내용을 다시 들여다볼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불송치 이유로 ▲(하씨가) 거래대금을 몰래 착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실이 없다면서 배임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을 들었다. 이때 ▲미국 A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필리핀 법인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미국 A사 측의 거래 취소 요청 이메일 ▲계약 관련자의 사실확인서 등을 ‘혐의없음’의 근거로 제시했다. 즉, 경찰은 하씨가 마스크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마스크 사업으로 수익을 본 것도 없고 그러니 배임 혐의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표는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은 마스크 사업 과정에서 돈이 오간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고, 사실확인서 역시 동업 관계에서 나왔기에 그 배경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료만 제대로 봤어도 수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경찰의 결론 자체를 뒤집는 자료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이 대표는 하씨의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하씨가 마스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수급을 담당한 업체가 있는데, 그곳의 대표와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확인해 달라” 호소에도… 또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하씨가 2억4000만원에 이르는 신용 미수 거래를 한 내역도 찾아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신용 미수 거래금이 2억원이 넘는다는 건 담보 제공 현금이 1억5000만원 이상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스크 사장 이름을 알아낸 것도 그렇다. 대단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고 거래 내역에 있는 사람 이름과 다른 단어를 인터넷에서 조합해 검색했더니 내용이 나왔다. 이건 내가 다 수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행보에도 경찰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2계로 수사팀을 한 차례 바꾼 것 빼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4월30일 ‘수사 중지’를 결정했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 대표는 하씨의 거주지 주소가 바뀐 것을 지적하면서 ‘이송’을 요청했지만 ‘보완수사 중에는 관할지 이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후 수사는 1년 넘게 멈춘 상태다. 이 대표는 국세청에도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국세청에 같은 자료를 냈는데 국세청은 조사를 진행한 뒤 하씨가 ‘탈세를 한 게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자 ‘국세청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국세청에 확인했더니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왜 거짓말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그사이 하씨가 다른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9~10월경 가상자산 전문 매체 기사에서 하씨의 영어 이름을 발견했다. 하씨가 ‘키키캣 코인’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게 사기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씨가 코인사업을 하면서 ‘이태리 석유 재벌의 아들’인 척했다는 글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불송치했다 보완수사 결정 “그건 1계에서 처분한 것” 이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하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는 도중에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이 대표는 “(키키캣 코인의) 시가총액이 1억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 100만달러까지 떨어진 걸로 안다. 키키캣 코인을 구매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은 피해자 방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중지된 수사를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하씨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하씨와 거래한 마스크 제조업체는 여러 곳인데 수출을 진행한 곳은 하씨 동생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된다”며 “이 내용을 근거로 수사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규정 위반’이라고 윽박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규칙 제102조(수사 중지 사건 수사 재개)는 ‘경찰은 수사 중지된 사건의 피의자를 발견하는 등 수사 중지 사유가 해소된 때에는 …(중략)… 즉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경찰과 이 대표의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은 수사 재개에 필요한 요건을 국제 공조 수사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는데 왜 수사를 재개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결과가 아직 회신되지 않았다는 건 하씨의 해외 (계좌) 자료가 필요한 일부 수사에 제약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하씨의 마스크 사업 규모를 확인하는 정도에 필요한 자료”라며 “하씨의 여동생이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다는 의혹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다. 수사를 재개하고 관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계 담당자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올 때까지 수사를 재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하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언제쯤 올 것으로 예상되냐는 질문에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또 앞서 하씨를 불송치한 내용에 대해 거론했을 때는 “그 부분은 1계에서 처분한 것”이라며 “우리(2계)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 이후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는 경찰 수사 규칙에 따라 사건 기록에 편철해 놨다”며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없어도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지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질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하씨가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 아닌가. 피고소인이 현재 받는 업무상 배임 혐의 외의 별건 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담당 수사관에게 언급한 하씨의 코인 사업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