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공개된 자료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넷플릭스의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수(MAU)가 1617만명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다소 주춤했던 넷플릭스가 다시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인 가장 큰 이유로 교육 드라마 <참교육>이 꼽혔다.
공개 이후 4주 연속 비영어권 TV쇼 세계 1위를 기록한 이 작품은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사람들은 화려한 액션보다 무너진 학교의 현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고, 드라마 속 이야기를 자신의 현실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의 인기가 콘텐츠 소비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최근 교육 현장에서는 현실의 변화가 이어졌다. 경기도교육청은 교육활동보호국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제주와 충남, 강원교육청도 각각 교권보호관과 교권보호지원단 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교육부 역시 교권 보호와 학부모 민원 대응 기능을 통합하는 전담 조직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름은 조금씩 달랐지만 방향은 하나였다.
교사가 더 이상 혼자 교육활동 침해와 악성 민원을 감당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만의 변화도 아니었다. 지난달 29일에는 대만에서도 의미 있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한국 드라마 <참교육>이 현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자 국민당 국회의원이 '교사 심신건강 및 권익보장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고, 집권당 의원들 역시 교사의 직업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 의사를 밝혔다.
하나의 드라마가 국경을 넘어 교육정책 논의를 촉발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다. K-콘텐츠가 문화 수출을 넘어 해외 사회 제도와 정책 담론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지난 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생들은 교권이 약해진 현실에는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있어도 교사는 생활지도를 망설이고, 학부모 민원을 먼저 걱정하는 모습을 학교에서 자주 본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해법은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 같은 특별기관이 아니었다. 교사가 혼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도록 교육청과 국가가 즉시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학생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 일련의 흐름을 보면 하나의 공통된 메시지가 보인다. 드라마가 현실을 바꾼 것이 아니라 현실이 이미 바뀔 준비가 돼있었던 것이다. <참교육>은 오랫동안 교육 현장에서 쌓여 왔지만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던 문제를 국민 앞에 보여주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허구의 교권보호국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런 조직이 필요하다고 느낄 만큼 우리 교육이 위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가 논의해야 할 것은 교권보호국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왜 국민들이 그런 조직을 현실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학교를 갈등의 공간으로 만들어 왔다. 학생 인권은 크게 신장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교사의 생활지도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학생을 지도하다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거나 반복적인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사례가 이어졌고, 교사는 교육보다 법률과 민원 대응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물론 모든 학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사례가 교사 사회 전체에 미친 심리적 위축은 예상보다 훨씬 컸고, 그 부담은 결국 교실의 분위기까지 바꾸어 놓았다.
학생들도 또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교폭력은 공개적인 폭력보다 따돌림과 온라인 괴롭힘처럼 교사가 개입하기 어려운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성적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고민을 나누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교사는 학생의 눈치를 보고 학생은 학부모의 민원을 의식하는 학교가 되어 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학교는 신뢰보다 갈등 관리가 우선되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은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의 빈틈을 상징하는 장치가 됐다. 교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결해 주는 조직이 등장한다는 설정은 다소 과장돼있지만, 그 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현실에서 교사가 너무 많은 문제를 혼자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진정으로 공감한 것은 통쾌한 응징이 아니었다. '왜 교사가 저런 조직까지 필요할 정도로 고립됐을까'라는 질문이었다. 결국 국민이 본 것은 영웅이 아니라 무너진 교육 시스템이었다.
과거 교권은 교사의 권위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 교권은 권위가 아니라 교육활동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다. 학생을 안전하게 가르칠 권리며, 정당한 생활지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분쟁과 악성 민원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다. 학생 인권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이 존중받으며 배우고 성장할 권리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보호돼야 하는 가치다. 어느 하나를 희생해 다른 하나를 지키려는 접근은 결국 교육의 본질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최근 전국 시·도교육청이 추진하는 교육활동보호국과 교권보호관, 교권보호지원단도 바로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명칭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교사가 교육보다 민원 대응을 먼저 걱정하지 않도록 법률과 행정, 심리 지원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조직을 하나 더 만드는 일이 아니다.
교사가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실제로 작동하는 지원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조직은 목적이 아니라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드라마의 방식까지 현실이 따라가서는 안 된다. 교권 보호는 물리력이나 강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학교는 학생을 처벌하는 공간이 아니라 교육하는 공간이며, 교사는 학생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교권 회복을 감시와 통제, 응징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또 다른 갈등을 만들 뿐이다.
교권 보호는 학생 인권을 약화시키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학생 인권을 더욱 건강하게 지키기 위한 기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참교육>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질문은 "교권보호국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국가는 교사의 교육활동을 어디까지 책임질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교권은 교사의 특권이 아니라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다. 그 기반이 무너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교사도, 학부모도 아닌 학생들이다.
교사가 교육보다 생존을 먼저 걱정하는 학교에서는 미래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반도체 공장이나 인공지능 연구소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이 등교하는 교실에서도 미래는 만들어진다. 학생 인권을 존중하면서도 교권을 보호하는 일은 충분히 함께 갈 수 있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은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악성 민원은 교육청과 국가가 책임 있게 대응하며, 교육활동 침해가 발생하면 법률과 심리, 행정 지원이 즉시 이뤄지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교권과 학생 인권은 어느 하나가 이기고 다른 하나가 지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두 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교육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이 추진하는 교육활동 보호체계 역시 이런 방향을 향해야 한다. 교사가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믿음을 갖고, 학부모는 “학교와 교육청이 공정하게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며, 학생은 “학교는 나를 처벌하는 곳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곳”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드라마 속 교권보호국은 현실에서 필요 없는 조직이 될 것이다.
그 지점이 바로 우리 사회가 <참교육>을 통해 얻어야 할 가장 값진 결론이며, 대한민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진정한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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