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일단 미군의 단속에 걸렸을 경우 여자는 낙검자 수용소로 끌려가야 했고 해당 클럽은 일주일 내지 한 달 동안 영업정지를 당해야 했다.
이른바 토벌이 시작되면 완전무장한 헌병 50여명이 기습적으로 진입하여 클럽의 모든 문을 봉쇄하곤 마치 전쟁기의 군사작전인 양 엄숙히 거드름을 피우며 여자들을 짐승처럼 닦달했다.
엊그제 자기가 놀러 왔을 땐 욕망 가득한 눈으로 희희낙락하며 주지육림 속에서 춤추던 놈들이….
변질된 마을
무엇보다 여자들 입장에서 황당스런 건 ‘컨택’이란 것이었다. 미군 병사가 성병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나거나 스스로 고백할 때, 미군 당국은 병원균을 원천적으로 차단키 위해 그와 섹스한 그녀를 찾았다.
그런데 그 방법이 꽤 기이했다. 미군부대 의무과엔 클럽 여성들의 확대 사진과 신상을 기록한 카드 목록이 비치돼있었다.
성병 보균자인 미군 사병은 그 중에서 자신을 괴롭힌 여자를 찍고, 그 후 헌병이 가서 위대한 미군에게 더러운 병을 옮긴 마녀를 잡아 수용소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 조처 과정은 미국 사람답지 않게 조잡스레 진행되고, 아직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여인이 참혹한 짓을 겪어야 하기도 했다.
실수로 잘못 찍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어떤 껄렁한 놈이 예쁜 여자에게 거절당해 앙심을 품고 사진을 지목한다면 그녀는 설령 깨끗한 몸이라 하더라도 꼼짝없이 당할 따름이었다.
승합차는 산기슭을 따라 난 좁은 길로 들어섰다. 황토가 드러나도록 헐벗은 채 소나무와 참나무가 드문드문 늘어서서 늦겨울 바람에 떨고 있는 소요산은 오랜 옛날부터 동두천 토박이 농부들에겐 든든한 뒷동산이자 마음의 벗이었다. 청운은 착잡한 심정이었다.
‘저 위에 과연 무엇이 있기에 난 지금 이 여자들과 함께 가고 있는 걸까?’
청운은 고개를 돌려 차라리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변질돼 버린 마을 너머로 잿빛 리본 같은 강이 이따금 눈물처럼 반짝이며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는 대로 가보는 수밖에.’
청운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문득문득 황당스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날 밤, 붉은 옷의 댄서와 함께 지샌 그는 정오가 넘어서야 눈을 떴다. 소파에서 굴러 떨어져 방바닥에 누운 그에게 여자가 물 한 컵을 들고 와 건넸다.
그건 마치 선녀궁의 감로수인 양 술취한 정신을 깨워 주었다. 한순간 하늘 궁전에 있다가 떨어진 느낌이었다.
“이봐요, 꺼벙씨 우리가 밤새도록 함께 있었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고 하면 아마 거짓말이라고 하겠죠?”
“글쎄요. 하지만 뭐 사실인 것 같은데요.”
“확신할 수 있겠어요?”
“글쎄 술에 너무 취해, 지금도 비몽사몽이라 확신까진 할 수 없지만 혹시 뽀뽀를 했는지도 몰라. 꿈 같기도 하고.”
청운은 머리를 긁적였다.
“만일 꿈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어쩌겠어요?”
여자는 보일락말락 미소 지었다.
“그럼 또 무슨 다른 일이?”
“호호홋, 궁금해요? 그럼 이리 와 봐요. 가르쳐 줄 테니.”
청운이 어리둥절한 채 어떤 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여자가 먼저 청운 곁으로 다가앉아 차가운 손으로 그의 볼을 감싸더니 지그시 눈을 들여다보았다.
반짝거리는 신비스런 눈동자를 채 보기도 전에 그녀는 긴 속눈썹을 덮곤 청운의 입술을 빨기 시작했다.
그가 혀를 그녀의 입속으로 진입시키려 하자 그녀는 살짝 눈을 흘기더니 입술을 옮겨 그의 턱과 목과 귀 그리고 다시 입술을 빨았다.
청운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러다가 한순간 틈이 생기자 살며시 혀끝을 입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며 숨결을 고루더니 입술을 열곤 부드러운 혀로 맞이했다. 그리고 문득 긴 속눈썹을 들어 그윽한 눈으로 청운을 쳐다보았다.
그때부터 그는 좀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입술은 입술로부터 그녀의 매끄러운 목을 지나 실크 가운을 헤치고 백설처럼 하얀 젖가슴으로 내려갔다.
브레지어를 벗겨내자 아담하면서 핑크빛 젖꼭지가 살짝 위쪽을 향해 쳐들린 도발적인 유방이 나타났다. 청운은 황홀한 심정으로 한동안 바라보다가 유두를 빨기 시작했다.
여자가 상체를 비틀며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러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 중 하나를 살며시 내려뜨려 바지 지퍼를 열었다.
부드러운 손가락들이 남자의 심볼을 살살 매만졌다. 청운이 더 참지 못하고 그녀의 팬티를 벗겨낸 순간 불현듯 출입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둘은 동작을 멈춘 채 숨소리를 죽였다. 화장대의 거울에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노크 소리는 더 거세어졌다.
미군 의무과에 클럽 종업원 목록
성병 옮긴 여성들 잡아 수용소로
“저건 상철이 녀석 같은데.”
대꾸하려는 청운의 입을 그녀가 검지손가락을 세워 대 막았다. 그런 모습은 거울을 통해 보니 언젠가 꾸었던 꿈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제기랄! 여기 있다는 것 알고 왔으니 문 좀 열어 봐요!”
여자는 조용히 일어나 문 앞으로 걸어갔다.
“뭐야?”
“빨갱이 누나 맞지? 있으면서 왜 대답을 안 해요?”
“빨갱이라니, 너 그게 무슨 뜻인지나 알고 까불어?”
“빨간 옷 입으니까 빨갱이지 뭐, 히히히.”
“미친 자식! 어서 가서 청소나 깨끗이 해!”
“히히, 운이 형 있다는 걸 알고 왔어요. 맞죠, 누나?”
“운이가 누구야, 엉?”
“에잇 참, 그 형이 누날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던데 아직 눈칠 못 챘어요?”
“꺼져!”
“히히, 알았어요. 아무튼 여기 있다는 걸 아니까 빨리 오란다고 전해 줘요!”
“상철아, 니가 찾는 그 꺼벙인지 멍청인지 모를 형님은 이미 벌써 새벽에 갔어. 그러니 빨리 딴데루 가서 찾아봐. 어이구, 미친 놈들 땜에 신경질나네!”
여자는 상철이를 속이려고 그런 연극을 했으나 일단 대사를 내뱉고 보니 정말 신경질이 난 듯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화장대 앞으로 가서 앉아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제 그만 가봐.”
“그래야겠지. 하지만 아직 시간은 있어.”
“아냐, 나도 준비하고 나가 봐야지.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이니 조심하라구.”
“알았어. 여자들 아니, 그대는 분위기에 예민하면서도 무척 냉정한 얼음 인형 같아.”
“호홋,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는걸 뭐.”
“얼음 인형이 아니라 백설 인형이 좋겠어.”
“흥, 백설 공주는 안 된다 이거지?”
“그건 너무 때가 묻은 말이라 싫어.”
“혹시 양공주가 떠올라서 그런 건 아니구?”
“그런 건 아냐. 그대는 접대부가 아닌 가수면서.”
스트립 쇼걸
“스트립 쇼걸이라고 하는 게 더 사실에 가깝겠지. 알몸을 파는….”
“그건 뭐 어떤 양키 놈은 예술이라고도 하던걸.”
“웃기는 얘기지. 흥, 백인이든 흑인이든 그놈들에게 한국 여자는 어쨌든 한갓 암컷밖에 안돼.”
“….”
“이젠 어서 가봐.”
“응.”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