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열린 포르투갈과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32강전 경기 막판 장면은 축구가 얼마나 섬세한 스포츠인지 다시 보여줬다. 크로아티아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는 듯했지만, VAR 판독 끝에 오프사이드가 선언됐다. 경기는 그대로 포르투갈의 2:1 승리로 끝났고,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문제는 판정 자체보다 그 판정이 시청자에게 설명되는 방식이었다. 필자 역시 처음에는 도대체 왜 오프사이드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 방송 화면에 잡힌 것은 크로아티아 선수가 공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그 화면만 보면 문전 가장 앞에 있던 크로아티아 선수가 이미 포르투갈 수비수보다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오프사이드였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후 설명은 조금 달랐다. 중간에 있는 크로아티아 선수의 머리에 공이 살짝 스쳤고, 그 순간이 새로운 오프사이드 판단 기준이 됐다는 것이었다.
축구 규칙상 오프사이드는 단순히 앞에 있다고 해서 바로 반칙이 되는 것이 아니다. 동료가 공을 플레이하는 순간 상대 진영에서 두 번째 수비수보다 앞에 있고, 그 뒤 공을 받거나 상대를 방해하거나 득점에 관여해야 반칙이 된다.
따라서 처음 킥 순간에는 온사이드였더라도, 중간에 동료의 머리나 몸에 공이 닿는 순간 앞에 있었다면 오프사이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처음 킥 순간부터 이미 오프사이드였다면 중간 터치 여부와 관계없이 그 순간 반칙이 성립한다. 결국 이번 장면의 핵심은 ‘첫 킥 순간이냐, 중간 터치 순간이냐’였다.
그렇다면 방송은 당연히 두 화면을 명확하게 보여줬어야 했다. 첫째, 크로아티아 선수가 처음 공을 올리는 순간 골에 관여한 선수가 온사이드였는지를 보여줘야 했다. 둘째, 중간 선수의 머리나 몸에 공이 닿은 순간 그 선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였는지를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시청자는 ‘아, 처음에는 오프사이드가 아니었지만 중간 터치 순간에 오프사이드가 됐구나’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중계 화면은 그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필자가 답답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처음 화면만 보면 이미 오프사이드처럼 보이는데, 뒤늦게 “중간 선수 머리에 스쳤기 때문에 오프사이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처음 킥 순간에는 오프사이드가 아니었다는 화면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왜 그 장면을 명쾌하게 정리해주지 않았는가.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것은 단순히 판정 결과가 아니었다. 판정이 어떤 기준과 어떤 순간을 근거로 내려졌는지였다.
물론 방송국이 의도적으로 오프사이드를 만들려고 화면을 구성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시청자가 그렇게 오해할 만한 여지는 충분했다. 처음부터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는 듯한 화면만 반복되면 보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처음부터 반칙이었는다”고 받아들인다.
그런데 실제 판정 설명은 중간 터치에 맞춰져 있었다. 이 간극이 해소되지 않으면 판정은 정확해도 중계는 불친절한 것이 된다.
우리 축구 방송 해설진도 아쉬웠다. 해설자는 바로 그 순간 시청자의 의문을 대신 물어야 했다. “처음 킥 순간에는 온사이드였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거나 “지금 VAR은 첫 크로스가 아니라 중간 터치 순간을 기준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두 장면을 나눠 봐야 합니다” 등의 설명이 있었다면 혼란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설은 판정 결과를 따라가는 데 그쳤고, 시청자가 왜 헷갈리는지는 충분히 짚어주지 못했다.
월드컵 중계는 단순한 경기 전달이 아니다. 전 세계인이 함께 보는 거대한 스포츠 해석의 장이다. 특히 VAR 시대에는 판정이 점점 더 정밀해지고 있다. 몇 센티미터, 몇 프레임, 공이 머리카락만큼 스쳤는지 여부까지 승패를 가른다. 그렇다면 중계도 그만큼 정밀해져야 한다. 기술이 정밀해졌는데 설명이 거칠면 시청자는 기술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판정을 보면서 또 하나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방송에서는 공 안에 내장된 센서가 중간 선수의 머리에 공이 스쳤다는 사실을 감지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기술적으로는 접촉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면으로 볼 때는 그 접촉이 골의 방향이나 속도에 거의 영향을 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공이 살짝 스쳤는지조차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고, 결정적인 슬로모션도 충분히 제공되지 않았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정말 저 정도 접촉만으로 새로운 오프사이드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 극단적으로 ‘만약 그 선수가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라는 질문도 떠오른다. 공이 머리카락 끝을 스친 것과 이마를 스친 것은 센서가 모두 같은 ‘접촉’으로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축구를 보는 사람들은 단순히 접촉 사실보다 그 접촉이 실제 플레이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술은 아주 미세한 접촉까지 찾아낼 수 있지만, 그 접촉이 경기의 본질적인 흐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이번 장면은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결정은 내려지는데 설명이 부족하다. 결과는 통보되는데 과정은 보이지 않는다. “전문가가 판단했다” “기술이 확인했다” “시스템이 결정했다”는 말만으로는 사람을 설득할 수 없다.
사람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왜 그렇게 됐는지 ▲어떤 기준이 적용됐는지 ▲다른 가능성은 없었는지 알고 싶어한다.
VAR도 마찬가지다. VAR은 판정을 돕는 기술이지 시청자의 의문을 자동으로 해소해 주는 장치가 아니다. 아무리 정확한 선을 그어도 그 선이 언제 그어진 것인지 설명하지 않으면 혼란은 남는다. 아무리 공 센서가 접촉을 확인해도 그 접촉이 왜 새로운 판단 기준이 되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납득은 어렵다.
기술은 사실을 찾아낼 수 있지만 신뢰는 설명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번 장면은 바로 그 점을 보여줬다.
방송은 판정을 전달하는 데서 멈추면 안 되며 나아가 해석까지 해야 한다. 특히 논란이 생길 수 있는 장면에서는 시청자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이번 경우 시청자가 궁금해한 것은 “오프사이드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오프사이드였느냐, 아니면 중간 터치 때문에 오프사이드가 됐느냐”였다. 질문이 다른데 답이 같으면 설명은 실패한다.
이번 포르투갈-크로아티아전의 마지막 오프사이드 판정은 규칙상 맞는 판정이라 믿는다. 반자동 오프사이드 시스템과 공 센서가 확인한 결과니 기술적으로는 정확했다고 본다. 그러나 시청자에게 남은 기억은 명쾌함이 아니라 찜찜함이었다.
‘왜 처음 장면은 제대로 안 보여줬지?’ ‘왜 중간 터치 화면은 확실히 안 나왔지?’ ‘왜 해설은 그 차이를 설명하지 않았지?’ 등의 질문이 경기 뒤에도 남았다면 중계진은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축구는 골로 말하지만 중계는 설명으로 말한다. 판정은 심판이 하지만 이해는 해설이 돕는다. VAR 시대의 중계는 더 이상 감탄사와 결과 전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규칙을 풀어주고, 화면을 해석하고, 시청자의 의문을 대신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 걸맞은 중계의 품격이다.
이번 장면이 씁쓸했던 이유는 크로아티아의 골이 취소됐기 때문이 아니다. 기술은 앞서가는데 설명은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면은 많았지만 핵심 화면은 부족했고, 말은 있었지만 핵심 설명은 부족했다. 여기에 공 센서가 감지한 미세한 접촉까지 판정의 근거가 됐다면 그 접촉이 실제로 어떻게 확인됐는지 시청자에게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방송의 의무였을 것이다.
기술은 정확성을 높일 수 있지만 신뢰는 설명이 만들어낸다. VAR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설명이다. 설명 없는 정확성은 신뢰가 아니라 의심만 낳는다.
<skkim596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