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2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결국 여야 합의 없이 진행됐다. 법제사법위원장 배분 등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11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임의 배정된 상임위원 전원 사임과 남은 상임위원장 수용 거부를 선언했고, 민주당은 즉각 상임위를 가동하며 입법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임위원장을 둘러싼 대립은 이제 단순한 자리 다툼을 넘어 국회 운영 전반을 흔드는 정쟁으로 번지고 있다.
상임위원장은 분명 중요한 자리다. 국회의 의사일정을 조정하고 법안을 심사하며 정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어느 상임위원회를 맡느냐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도 달라진다. 그래서 여야가 매번 상임위원장 자리를 놓고 극한 대치를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국회의원을 뽑을 때는 상임위원장을 시키기 위해 표를 던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 주민들은 자신의 지역을 발전시키고 지역의 목소리를 중앙정치에 전달할 사람을 선택한다.
국회의원은 무엇보다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고 있다. 아니 의원들 스스로도 잊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부분은 지역구에서 선출된다. 지역 주민들의 선택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 역시 지역의 발전과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일이어야 한다. 지역의 도로와 철도, 산업과 농업, 교육과 복지, 문화와 관광까지 지역이 필요로 하는 정책을 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이 지역구 국회의원의 본분이다.
이것이 국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헌법은 국회의원을 국민 전체의 대표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 전체의 법률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며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 역시 중요한 책무다. 그러나 지역구 의원은 지역 주민의 선택을 통해 국회에 들어온 만큼 지역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할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지역대표로 선출된 이상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국가를 위한 의정활동도 결국 지역 주민의 신뢰 위에서 시작된다. 지역을 위해 뽑힌 의원이 지역보다 중앙정치의 평가를 더 의식하게 되는 순간, 대표성의 본질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가장 먼저 관심을 받는 것은 어느 상임위에 배정되느냐다. 지역에서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보다 국정감사에서 얼마나 강한 질의를 했는지, 언론에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지가 의원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상임위 활동을 잘해야 유능한 의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다. 결국 지역을 위해 뽑힌 의원이 지역보다 상임위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는 구조다.
이것은 분명 모순이다. 지역 주민들은 지역을 위해 일하라고 국회의원을 선출했는데 정작 국회에서는 상임위 활동이 정치적 성과의 대부분을 결정한다. 의원 입장에서도 지역과 국회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쉽지 않다. 지역 행사를 찾으면 국회 활동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상임위에 집중하면 지역을 소홀히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지금의 제도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국회에서는 “나는 지역 주민들이 맡겨준 일을 더 충실히 하기 위해 상임위원장 자리는 사양하겠다”고 말하는 의원을 거의 볼 수 없다. 상임위원장은 누구나 맡고 싶어하는 자리고 정치적 영향력도 크다. 그러나 국민이 지역 주민들이 선택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면 한번쯤은 다른 선택도 가능해야 한다.
상임위원장이 되어 국가를 위해 뛰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이라면 무엇보다 자신을 국회로 보낸 지역 주민과의 약속이 우선이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주요 상임위원장이 되면 국회 일정과 당내 협의, 정부와의 조정 업무가 크게 늘어난다. 자연히 지역을 찾고 주민들과 만나 현안을 챙길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물론 상임위원장이 되면 정부 부처와의 협의 과정에서 지역 예산을 확보하는 데는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지역의 문제는 예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생활 민원과 각종 개발사업, 주민 갈등과 지역 숙원사업은 현장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주민들과 소통할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중앙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역과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 모순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상임위 배정 원칙부터 달라져야 한다. 물론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의원이라면 전문성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한 전문성이 없는 경우라면 지역의 특성과 가장 밀접한 상임위에 우선 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역과 상임위가 연결될 때 의원의 역할도 훨씬 분명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접경지역을 지역구로 둔 의원이라면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군사시설과 안보 문제, 군부대 이전과 지역 개발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농촌지역 의원이라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농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정책으로 연결할 수 있다.
산업도시를 지역구로 둔 의원은 산업 관련 상임위에서 기업과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광역자치단체와 지방행정 현안이 많은 지역의 의원은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지방분권과 지방 재정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7월1일 발표한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위 배정 결과를 보면 지역성과 전문성이 조화를 이룬 사례도 있었지만, 아쉬운 배치도 적지 않았다. 전북의 경우 한병도 의원이 운영위원장을 맡고 윤준병 의원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간사를 맡게 된 것은 지역 현안과 상임위의 연계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반면 새만금과 국가산단, 미래산업 육성이 최대 과제인 지역임에도 국토교통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는 전북 의원이 한 명도 배정되지 않아 지역 현안을 풀기 위한 전략적 대응력이 다소 약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지역 역시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 등에 많은 의원이 배치됐지만, 접경지역과 산업도시, 신도시 등 각 지역의 특성을 세밀하게 반영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결국 이번 민주당의 상임위 배정이 보여주는 것은 어느 특정 의원의 적합성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 상임위가 정치적 안배와 당내 균형보다 지역성과 전문성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배정되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지역의 대표라면 상임위 역시 지역의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지역 특성과 상임위를 연결하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생각보다 많다. 의원은 자신의 지역 문제를 국회에서 더욱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고, 정부 부처와의 협의도 훨씬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주민들은 자신의 대표가 지역 현안을 가장 적합한 상임위에서 해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상임위 역시 현장을 잘 아는 의원들이 참여하면서 정책의 현실성도 높아질 것이다.
지금처럼 상임위를 정치적 영향력이나 당내 힘의 크기에 따라 배정하는 방식은 국민의 눈높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어느 상임위가 더 힘이 세고 어느 상임위가 더 좋은 자리인지를 따지는 순간 국회는 권력의 공간으로 변한다.
그러나 상임위는 권력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상임위원장 역시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책임의 상징이어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회 안에서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회 밖에는 자신을 선택한 수십만명의 주민들이 있다. 주민들은 국회의원이 TV에 많이 나오는 것보다 지역 문제를 하나라도 더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예산을 확보하고, 주민들의 불편을 해결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성과다. 상임위 활동도 결국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이제 국회도 상임위 배정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전문성과 지역성을 함께 고려하는 원칙이 자리 잡는다면 의원들도 지역과 국회를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지역에서 얻은 경험이 국회에서 정책으로 이어지고, 국회에서 만든 정책이 다시 지역 발전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지역대표를 선출하는 현행 국회의원 제도와 가장 잘 어울리는 운영 방식이다.
22대 국회 후반기가 상임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대립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어느 당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는지보다 자신의 지역을 위해 누가 더 많은 일을 했는지를 기억한다. 언젠가는 “나는 지역 주민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쓰겠다”며 상임위원장 자리를 기꺼이 사양하는 의원도 나와야 한다.
그런 의원이 많아질수록 국회는 권력을 나누는 곳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곳으로 바뀔 것이다.
상임위는 권력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지역의 목소리를 국정으로 연결하는 통로여야 한다. 국회의원은 먼저 지역대표이고, 그 위에서 국가대표가 된다. 국민은 상임위원장을 기억하지 않는다. 지역을 위해 일한 국회의원을 기억한다. 상임위는 권력의 연장이 아니라 지역의 연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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