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 전국의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 의원들이 공식 임기가 시작됐다. 저마다 주민을 섬기겠다고 다짐했고 지역 발전과 민생 회복을 약속했다. 새로운 지방정부의 출범은 언제나 기대를 안겨준다. 그러나 진정한 지방자치는 취임식이나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단체장과 주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갑'과 '을'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계약에서도, 직장에서도, 거래에서도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부터 따진다. 지방자치도 예외는 아니다. 선거 전에는 주민이 갑이고 후보가 을인 것처럼 보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단체장이 갑이고 주민은 을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이 같은 사고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 돈을 내는 사람이 갑이라고 말한다. 소비자는 물건을 선택하고 가격을 비교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 않을 자유도 있다. 식당에서는 메뉴를 고르고, 쇼핑몰에서는 환불을 요구할 수도 있다. 소비자는 돈을 지불하는 순간 일정한 선택권을 갖게 되고, 많은 사람들은 쇼핑이나 외식, 여행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쇼핑을 즐기지만 어떤 사람은 계산대 앞에만 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같은 물건을 사면서도 누군가는 기분이 좋아지고, 누군가는 통장 잔고를 떠올리며 후회한다. 사람마다 소비를 대하는 심리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흥미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지불 고통(Pain of Paying)'이라고 설명한다. 돈을 쓰는 순간 심리적인 고통을 느끼는 현상이다. 여기에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는 이론도 있다. 사람은 같은 금액을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약형 사람일수록 소비보다 저축에서 더 큰 만족을 얻는다.
소비형 사람은 새 옷을 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행을 떠나면서 만족을 느낀다. 반대로 절약형 사람은 할인쿠폰을 활용하고 계획한 예산보다 적게 쓰며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한 사람은 물건을 소유하는 데 행복을 느끼고, 다른 사람은 돈을 지키는 데 행복을 느낀다.
행복의 대상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바로 통제감이다. 소비형은 자신의 소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통제감에서 만족을 얻고, 절약형은 자신의 돈을 스스로 지키고 관리한다는 통제감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결국 사람은 갑이라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낄 때 만족한다. 이것이 소비심리와 행동경제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메시지다.
그렇다면 이 원리를 지방자치에 적용하면 어떨까. 주민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단체장이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삶과 지역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는 데 참여하는 것일까? 지방자치의 본질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새롭게 출범한 지방정부가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과제다.
지방자치는 흔히 지방정부를 운영하는 제도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정의만으로는 지방자치의 본질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 지방자치는 단체장이 권한을 갖는 제도가 아니라 주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다.
권력이 지방으로 내려오는 것이 지방분권이라면, 그 권한이 주민에게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지방자치는 완성된다. 결국 지방자치의 핵심은 권한이 아니라 주민의 통제권이다.
주민들은 더 많은 지원금이나 더 큰 건물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낸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고 싶어하고, 우리 동네에 어떤 사업이 추진되는지 의견을 내고 싶어하며, 지역의 미래를 함께 결정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단순한 참여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역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주민참여예산제는 단순히 예산 일부를 주민에게 맡기는 제도가 아니다. 주민이 행정의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 설계자가 되는 과정이다. 주민발안과 주민투표도 같은 의미를 갖는다. 정책을 행정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함께 결정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활성화될수록 주민은 행정을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로 받아들이게 된다.
행정정보 공개 역시 마찬가지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면 주민은 판단할 수도 없고 참여할 수도 없다. 정보를 독점하는 행정은 주민과 멀어지고, 정보를 공유하는 행정은 주민과 가까워진다. 투명성은 행정을 불편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주민의 신뢰를 높이는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신뢰는 권한을 독점할 때가 아니라 통제권을 함께 나눌 때 만들어진다.
지방의회도 같은 관점에서 변화해야 한다. 지방 의원은 단체장의 정책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무조건 지원하는 사람이 아니다. 주민의 뜻을 행정에 전달하고 행정을 주민의 눈높이에서 감시하는 대표자다. 주민의 목소리가 의회를 통해 정책으로 연결될 때 지방의회는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 주민과 멀어진 의회는 정치만 남고 지방자치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많은 단체장은 취임하면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부터 발표한다. 어떤 사업을 추진하고 어떤 시설을 만들며 얼마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한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주민이 얼마나 직접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좋은 단체장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민이 결정할 기회를 많이 만드는 사람이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단체장은 갑일까? 많은 사람들은 권한을 가진 사람을 갑이라고 생각한다. 예산을 편성하고 인사를 하고 정책을 결정하니 당연히 그렇게 여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권한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주민이 일정 기간 맡긴 책임일 뿐이다.
그렇다고 단체장이 을인 것도 아니다. 일부에서는 단체장을 주민의 심부름꾼이라고 말한다. 물론 주민을 섬기는 자세는 중요하다. 그러나 행정은 단순히 주민의 요구만 따르는 서비스업이 아니다. 때로는 주민에게 불편한 결정이라도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책임 있게 내려야 할 때도 있다.
결국 단체장은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니다. 주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도 아니고, 주민의 눈치만 보는 심부름꾼도 아니다. 주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지는 관리자다. 따라서 단체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권한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과 공유하는 데 있다.
지방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지방 의원은 단체장의 편도, 반대편도 아니다. 주민을 대신해 정책을 검증하고 예산을 심의하며 행정을 감시하는 주민의 대표자다. 지방의회의 성패는 단체장과의 관계가 아니라 주민과 얼마나 가까이 호흡하느냐에 달려 있다. 주민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의회가 건강한 지방자치를 만든다.
지방자치의 가장 큰 과제는 예산 부족이 아니다. 주민들이 '내가 이 지역의 주인'이라는 실감을 하지 못하는 데 있다. 선거 때만 주인이 되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행정의 관객이 되는 구조에서는 진정한 지방자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주민이 정책을 함께 만들고, 함께 감시하고, 함께 평가할 때 지방자치는 비로소 생활 속 민주주의가 된다.
필자의 제안은 간단하다. 새로 출범한 지방정부는 '무엇을 해주겠다'는 약속보다 '무엇을 주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먼저 발표하기 바란다. 주민참여예산을 확대하고, 주민발안과 주민공청회를 활성화하며, 행정 정보를 더욱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읍·면·동 주민총회를 정례화하고, 주민이 정책을 직접 제안하고 토론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도 적극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지방정부의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예산을 얼마나 집행했는지, 공약을 얼마나 이행했는지가 중심이었다. 이제는 '주민이 얼마나 많이 결정했는가' '주민의 의견이 정책에 얼마나 반영됐는가'를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행정의 성공은 단체장의 권한이 아니라 주민의 참여와 통제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운 4년이 시작됐다. 그 시간이 권한을 쌓는 시간이 될지, 주민에게 권한을 돌려주는 시간이 될지는 단체장의 선택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에는 갑도 을도 없다. 주인만 있을 뿐이다. 단체장은 주민으로부터 권한을 잠시 위임받은 관리자이며, 지방자치의 성공은 단체장의 권력이 아니라 주민의 통제권이 얼마나 커졌는가에 달려 있다.
새롭게 출범한 지방정부가 주민을 행정의 대상이 아닌 지역의 진정한 주인으로 존중하는 지방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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