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응급의료 체계가 붕괴 임계점에 다다랐다.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수용 거부와 이송 지연이 반복될 때마다 정부와 소방당국은 개편을 약속했다. 그러나 소방의 홍보 행태와 구조적 퇴행 과정을 보면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쪽에서는 119로 언제든 의료 상담을 받으라고 홍보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비응급 신고를 자제해 달라고 읍소하는 모순을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소방청은 ‘올바른 119구급차 이용 문화 확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단순 감기나 치통, 경미한 찰과상 등 비응급 상황에서의 119 신고와 구급차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 같은 출동이 심정지나 중증 외상 환자의 골든타임을 빼앗고 소방력을 낭비한다는 논리다.
이는 타당하고 필요한 요구다. 한정된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시민의식에 호소하는 것은 정상적인 행정이다.
문제는 소방당국이 다른 편에서 상반된 메시지를 보낸다는 점이다. 소방은 “24시간 병·의원 안내, 질병 상담, 응급처치 지도를 편하게 받으라”며 ‘119구급상황관리센터’를 홍보한다. “응급의료 상담서비스도 119”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단순 안내와 약국 정보까지 제공하겠다고 자처한다.
이것이 치명적인 정책적 모순이다. 국민에게 “아프면 무조건 119”라는 인식을 심어놓고는, 막상 가벼운 증상으로 전화를 걸면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꼴이다. 하나의 번호에 ‘초긴급 출동 요청’과 ‘단순 의료 상담’이라는 이질적인 기능을 동시에 넣은 결함이 낳은 결과다.
응급과 비응급 전화가 119로 통합되면 시스템 내부에 부작용이 발생한다. 119 신고 접수자는 음성 통화에만 의존하므로 환자 상태가 구급차 출동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구별하기 어렵다. 이때 구급차 불출동에 따른 환자 상태 악화나 법적·행정적 책임을 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다.
결국 접수자는 판단이 모호할 때 우선 구급차를 출동시키는 안전한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불요불급한 출동이 증가한다. 정작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이 목격하는 것은 경증 환자다. 현장 대원들이 허탈감을 느끼고, 소방당국이 뒤늦게 출동 자제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화번호 분리는 신고자가 번호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고 출동 필요성을 분류하게 만드는 자정 단계다. 그러나 번호 통합은 이 분류 단계를 없앴고, 그 대가로 출동 폭증과 응급의료 체계 마비라는 청구서를 받았다.
이는 선진국 추세와 반대로 역행한 처사다. 과거에는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던 전문 응급의료정보센터 ‘1339’가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이 상주하며 24시간 의료 상담과 실시간 병상 안내를 전담하던 방어선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2012년 번호 혼란을 줄인다는 행정 편의주의적 명분으로 1339를 119구급상황관리센터로 흡수 통합했다. 행정 편의에 취해 전문 상담 기능의 독자성과 전문성을 말살하고 시스템을 퇴행시켰다.
선진국들은 긴급신고 체계와 일반 의료 상담 기능을 분리해 응급의료 자원의 과도한 소모를 방지한다. 영국의 ‘NHS 111’이 대표적이다. NHS 111에 걸려오는 일반 비응급 상담 전화의 약 5%는 실제 구급차 출동으로 이어진다.
환자는 경증이라 생각했으나, 전문 상담요원이 의학적 프로토콜에 따라 응급 상황을 포착해 구급차를 주선한 사례다. 번호 분리를 통해 불필요한 출동은 줄이면서도, 꼭 필요한 이들에게 구급차를 보내는 효과를 동시에 거두고 있다.
캐나다는 대부분 주에서 ‘811’ 간호사 상담체계를 운영하며, 호주 역시 ‘Healthdirect’ 센터를 통해 비응급 의료 상담을 처리한다. 일본도 다수 지역에서 ‘#7119’ 구급상담 서비스를 운영해 구급차 호출 필요성을 사전에 판단하도록 돕는다. 미국 역시 911 긴급신고와는 별개로 지역 보건기관, 보험사 간호사 상담 핫라인 등을 통해 일반 의료 상담 기능을 제도적으로 분리·운영한다.
대한민국 소방은 119라는 브랜드 인지도와 통합 편의성에 취해 의학적 방어선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의료 전달 체계를 지원해야 할 공공기관이 도리어 경증 수요까지 119라는 블랙홀로 빨아들이고 있다. 구급대원들은 폭증하는 단순 상담과 경증 이송 요청에 지치고, 중증 응급 환자들은 갈 곳을 잃어 길 위에서 헤매는 비극의 배경에는 소방의 잘못된 신호 전달이 있다.
소방당국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이중 홍보를 중단해야 한다. 긴급출동과 단순 상담을 하나의 번호로 잡겠다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민의 선의에만 기대는 캠페인이 아니다. 과거 1339가 수행했던 전문 상담 정신을 되살려 비응급 의료 상담 체계를 분리·독립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불요불급한 출동을 걸러내고 응급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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