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되는 새 대표의 임기는 2년이다. 2028년 치러지는 23대 총선 공천권을 쥐는 만큼 차기 당 대표가 곧 최고 권력자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인지 큰 잡음 없이 진행된 지난 전당대회와 달리 이번에는 신호탄이 울리기도 전부터 경쟁이 과열되는 모양새다. 중도 확장을 꾀하는 청와대와 왼쪽을 지키려는 정청래 전 대표 간의 힘겨루기도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섰다.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사퇴했다. 정 전 대표는 최고위원 회의 말미에 “며칠간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저 자신을 돌아보고 정치 인생을 살펴봤다. 저는 오늘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민과 당원의 절절한 바람을 알고 있다. 개혁의 엔진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해 사실상 연임 도전을 공식화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숨 고르기
그동안 민주당에서는 정 전 대표의 연임을 만류하는 분위기였다.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노골적으로 불출마를 종용했지만 그는 “오직 민심, 오직 당심만 보고 저의 길을 갈 것”이라며 당원에게 호소했다.
정 전 대표의 대항마로 떠오른 김민석 총리는 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찬가지로 후보로 이름을 올린 민주당 송영길 의원의 출마 선언도 머지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송 의원은 “당이 무너지면 대통령 레임덕으로 간다” “정 전 대표가 나오면 제 출마 개연성이 훨씬 커지는 것” 등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비당권파의 불출마 압박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 전 대표는 이른바 ‘올드 민주당’인 전통 지지층 결집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에 한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의 중도 확장 전략에 맞서는 동시에 ‘뉴이재명’ 덕을 보려는 당권주자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정 전 대표의 포석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특히 청와대가 과거 문재인정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을 수사했던 한찬식 전 검사장을 민정수석에 임명한 것을 두고 친문(친 문재인)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었다. 게다가 한 수석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 최병렬 전 대표의 사위인 만큼 민주당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정부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추미애 경기도지사 당선인은 “허탈함이 밀려온다”고 했으며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던 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는 “문조털래유(문재인·조국·김어준·정청래·유시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박과 경고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개혁 엔진 멈추지 않는다”
“오직 당심 뚝심으로 승부 ”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당시) 당사자들은 피를 말리는 시간을 견뎌야만 했다.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이들 또한 그 괴로움은 마찬가지”라고 불편함을 표했다. 범여권인 조국혁신당 역시 “올 하반기 당면한 검사 보완수사권 및 전건송치주의 문제에 대한 검찰개혁 2단계 논의를 앞둔 상황에서 한 수석의 임명은 우려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실용주의, 중도 보수를 향해 오른쪽으로 자리를 넓힐수록 정 전 대표를 구심점으로 한 전통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력이 세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 전 대표가 “이러쿵저러쿵 누가 뭐래도 이 대통령을 끝까지 지킬 사람은 저 정청래”라고 했지만, 전통 지지층과 친청(친 정청래)을 당의 주류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 전 대표는 마지막으로 주재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여러차례 언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자신의 “정신적 지주”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저는 노사모다. 노무현을 통해 정치 현실에 눈을 떴고, 노무현의 정치 개혁과 지역경선제 도입으로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다. 저는 노무현 키즈”라고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판문점 선언과 김정은과의 산책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라고도 치켜세웠다.
정 전 대표는 “이재명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역사를 자양분 삼아 이정부가 꽃을 피워야 한다” 등 이정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지만 그동안 청와대와 여러차례 엇박자가 나온 탓에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 대표직에서 사퇴한 뒤 첫 행보로 문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당권 레이스가 시작됐다. 이날 정 전 대표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아 ‘평산책방’ 운영자 자격으로 도서전에 참여한 문 전 대통령과 대화를 나눴다.
숨죽이던 친문계 ‘꿈틀’
‘올드 민주당’ 결집할까
이후 정 전 대표는 취재진을 만나 “책을 사면서 (문 전 대통령께) 사퇴의 변으로 ‘김대중과 노무현, 문재인의 역사를 자양분 삼아 이재명의 역사를 꽃피워야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잘했다’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이어 “문 전 대통령님과 사전에 일정을 조율하고 온 것이 아니고 원래 오늘 평산마을에 가서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여기에 오신다길래 왔다. 그래서 문 전 대통령은 아마 오늘 아침까지 모르셨을 것”이라며 “불쑥 찾아와서 영업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빨리 가야겠다’고 했더니 ‘이거(부스)는 꼭 설명을 듣고 가라’고 하시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정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전집 <운명이다>를 비롯한 <김대중 육성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 이 대통령의 책 <결국 국민이 합니다> 등 네 권의 책을 구매했다.
전당대회를 둘러싸고 민주당의 모든 계파가 총출동했다. 패배한 쪽이 정치적 치명상을 입는 만큼 여당 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친명계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친명계 최대 모임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이하 더민주)는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뛰는데 당권 전면전에 나선 정청래, 불출마로 책임져라”라며 마찬가지로 계파 결집에 힘쓰는 모양새다.
더민주는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뛰는 동안 정청래 대표는 선거 패배의 책임도 집권여당 대표의 책무도 망각한 채 당권 연장과 강성 지지층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성공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우며 정부와 전선을 형성하는 모습은 집권 ‘야당’ 대표의 행태에 다름없다”며 “대통령은 국민 통합과 실용을 이야기하는데 정 전 대표는 ‘정권은 짧고 당은 영원하다’는 인식 아래 1인1표제 추진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생결단
그러면서 “국민주권정부의 외교 성과와 국정 성공은 뒷전인 채 강성 지지층 결집과 당권 유지에만 몰두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며 “선거 패배의 책임은 외면한 채 정부와 충돌하고 당권 연장에만 몰두하는 정 전 대표는 더는 당 대표에 도전할 자격도 명분도 없다. 책임을 지고 차기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라”고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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