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예능프로그램 <나는 솔로>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연애사가 펼쳐지는 곳이 있다. 바로 절과 성당이다. 천주교와 불교가 ‘성스러운’ ‘예스러운’ ‘어려운’ 등 수식어를 벗고, 청춘 남녀가 만날 수 있도록 팔 걷어붙이며 돕고 있다. 같은 종교 신자끼리, 혹은 어떤 종교든 상관없이 운명으로 엮인 짝을 찾으려는 청춘들이 눈을 반짝이며 종교계가 벌이는 축제 안으로 모여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즈음해서 혼인율과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잦은 기사에 익숙해져 지금도 2030 청춘을 염려하고 있다면 조금이나마 안심해도 좋겠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3월19일 발표한 ‘2025 혼인‧이혼 통계’를 살펴보면, 2021년까지 감소세를 보이던 혼인 건수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꾸준한 증가세로 바뀌었다.
팬데믹 이후
결혼율 증가
정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과 단체, 지자체에서 청춘 남녀를 응원하고 있는 덕이다. 그중에서도 종교 단체가 주선하는 프로그램이 특히 눈에 띈다. 천주교 ‘Jesus 시그널 피정(이하 시그널 피정)’과 불교 ‘나는 절로’는 매번 긴장감 넘치는 경쟁률을 기록하며 신청자를 받고 있다.
시그널 피정을 고안한 안미경 선교사(세례명 미카엘라)는 ICPE선교회 부지부장을 맡고 있다. ICPE선교회는 전 세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는 가톨릭 단체다. 1985년 몰타에서 설립, 2002년 교황청 정식 인준을 받았다.
안 선교사는 “코로나19 이후 성당에 발길을 끊고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며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청년을 숱하게 봤다”고 했다. 또 “청춘들이 이성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하고 결혼에 막연한 두려움을 느껴 섣불리 용기 내지 못하는 데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안 선교사는 이 청년들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로부터 도움을 받아서 시그널 피정 프로그램을 촘촘하게 완성해 나갈 수 있었다.
‘피정’은 ‘일상생활 안에 속하는 모든 업무와 소음을 일시 중단하고 외딴곳에 찾아가 하느님과 깊은 인격적 만남을 갖는 영성 수련’이라고 한다. 안 선교사 설명에 따르면 ‘쉽게 말해 가톨릭에서 진행하는 템플스테이 혹은 힐링 캠프 같은 프로그램’이다.
피정 대상은 가톨릭 미혼 신자(만 29~45세)로 제한을 둔다. 매년 29~35세 차수와 35~45세 차수를 구분해 남녀 비율을 맞춰 15~16쌍으로 진행한다. 단순히 남녀가 만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대신 올바른 신앙 가치관을 정립해 준비된 배우자가 되기를 목표로 한다.
프로그램 첫째 날에는 사랑을 주제로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자기 성찰 강연, 조별 토론, 게임, 산책, 일대일 대화 등을 통해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유기적으로 이어나간다.
피정 이후에는 후속 모임을 연계해 지속적인 교류를 지원한다고 한다. 안 선교사에 따르면 교회 안에서 터부시되기 쉬운 성과 결혼 이야기를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나눌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프로그램 운영하다 성혼도
선교사가 맺어낸 커플 9쌍
안 선교사는 시그널 피정을 다채롭고 정교하게 구성하기 위해 지자체 등이 운영하는 단체 미팅 프로그램과 결혼정보업체에서 주선하는 맞선 등을 참고했다. 이렇게 봉사하며 보낸 5년 동안 인연을 맺은 커플 수는 적어도 20쌍 이상, 성혼한 커플은 9쌍이 됐다.
안 선교사 역시 시그널 피정 프로그램을 통해 봉사하다가 배우자를 만나 지난 4월 성혼했다. 처음에는 봉사하는 여성 선교사와 짝을 찾기 위해 프로그램을 찾은 남성 참여자로 만났다. 자신감이 부족해 보이는 남성 참여자에게, 그가 얼마나 멋지고 매력 있는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안 선교사가 상담해 주면서 두 사람이 처음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는 삶에서 신앙이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또 서로 각자가 있는 그대로 ‘나답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끌렸다고 했다. 안 선교사 배우자는 “내심 사랑하는 이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표현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의 매력을 알아봐 준 안 선교사라면 기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듯싶다.
안 선교사는 “나 또한 여타 청년들처럼 상대를 볼 때 우선 조건부터 따졌었다. 그러면서 왜 내게는 좋은 짝을 주지 않느냐며 불평하던 때도 있었다. 동시에 짝 없는 자신을 깎아내리며 자기연민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던 그가 시그널 피정을 통해 여러 해 봉사를 거듭하면서 이성을 마주하는 태도를 바꿀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며 “문제는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고 했다.
신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니,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안 선교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선물처럼 서로에게’ 가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안 선교사는 상대의 내면을 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상대의 있는 그대로 모습에서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며 만났다는 그의 이야기에는 울림이 있었다.
프로그램 이후 많은 참가자가 “시그널 피정 이후 이성을 보는 기준이 바뀌었다” “나에 대해 잘 알게 됐다” “연애와 결혼에 대해 갖던 부정적 시각이 바뀌어 결혼하고 싶어졌다” 등 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이후 연애 상대가 생겼다거나 결혼했다는 연락을 종종 받았다고도 했다. 안 선교사의 친구 역시 시그널 피정을 통해 커플이 됐다고도 전했다.
봉사하다
결혼까지
안 선교사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며 나를 내어주는 일이 얼마나 거룩하고 참되고 사랑스러운 일인지. 비혼을 결심하거나, 결혼이 두렵다는 청년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9회째를 맞는 올해 첫 번째 시그널 피정은 이달 26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마포구 합정동 마리스타교육관에서 열린다. 안 선교사는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사랑과 결혼이 다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나를 내어주는 기쁨과 희생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그 경험이 자신을 얼마나 성장시키는지 많은 청년이 깨닫길 원한다”며 올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마음가짐을 전했다.
“번뇌 가득한 중생들이여, 극락도 락(樂)”을 캐치프레이즈로 걸며 올해 ‘서울국제불교박람회’를 MZ 놀이터로 만든 불교는 어떨까. ‘힙’을 수식어로 갖게 됐다는 명성에 걸맞게, 그 어떤 종교보다 청춘 남녀 만남에 적극적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하 재단)은 2013년부터 운영하던 ‘만남 템플스테이’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나는 절로’로 새롭게 단장해 운영하고 있다. 과거 보건복지부가 주도하던 저출산 문제 해결 프로그램으로 출발했으나, 최근 예능프로그램처럼 재미 요소를 가미하며 인기가 급상승했다.
참가자는 나이와 직업, 이름 등 개인정보를 숨긴 채 대화하며 서로를 알아간다. ENA‧SBS Plus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 운영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블라인드 데이트’ ‘야간 자유 데이트’ ‘플로깅 데이트’ 등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해 호응을 얻고 있다.
천주교가 운영하는 시그널 피정과 달리, 나는 절로는 종교를 불문하고 참가자를 받는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 과거 템플스테이 체험 프로그램을 그대로 옮겨오는 데 국한하던 것과 차별을 둔 것이 인기 비결이 됐다.
재단 홍보 담당자는 “어떤 종교를 가진 분이든 절을 좋아한다”며 “절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 신뢰감이 다른 곳에서 운영하는 청춘 남녀 만남 프로그램과 구별하게 하는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211 대 1’
열띤 참여율
템플스테이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진행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절에 기거하는 스님에게 고민을 상담하거나 조언을 듣는 것도 가능하다. 이 또한 일반적인 청춘 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에는 없는 특별함이다.
조계사, 전등사, 화계사, 쌍계사, 선운사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절 중 한 곳을 섭외해 운영하는 방식도 인기 비결 중 하나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낙산사는 여름, 동백꽃이 흐드러지는 선운사는 봄. 계절에 걸맞은 비경과 체험 프로그램도 청춘 남녀의 긴장과 설렘을 한껏 물오르게 한다.
홍보 담당자는 “참여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 1박2일 프로그램이 짧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라며 “오는 8월에는 2박3일 일정으로도 운영해 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나는 절로는 매 회차를 거듭하며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재단은 보건복지부로부터 나는 절로 프로젝트 사업비 일부를 지원받았다. 홍보 담당자는 “최근 저출산 등 문제가 심각하다”며 “미혼 남녀가 만나는 기회를 넓히기 위해 정부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나는 절로가 입소문을 타며 개신교, 천주교 등 다른 종교로도 프로그램을 확장할 가능성이 열렸다. 향후 정부가 ‘나는 교회로’ ‘나는 성당으로’ 등 프로젝트를 지원하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온라인상에서는 “절이라고 고기를 안 주는 게 아니고 굉장히 속세에 가까운 메뉴, 너무 좋아, 다 맛있었다” “완전 후회 안 함, 강추” “정말 추천하고 애정하는 나는 절로” “1박2일 동안 절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며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서 너무 좋았고 잊지 못할 것 같다” 등 긍정 후기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재단은 다음 달 11~12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나는 절로를 진행한다. 이번 회차에는 남성 1665명, 여성 2570명 등 총 4225명이 지원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던 2023년 이후 최다 인원 신청 기록이다.
남녀 각각 10인이 참여하게 되므로, 경쟁률은 남성 165.5 대 1, 여성 257 대 1이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으면 경쟁률이 211 대 1에 달한다.
‘나는 솔로’ 대신 ‘나는 절로’
종교 불문 청춘 남녀 사랑 찾기
이번 낙산사 편은 강원관광재단과 협업으로 진행한다. 첫날 아침부터 제비뽑기로 ‘두근두근 랜덤 데이트’를 진행한다. 점심 공양 데이트 상대를 결정하며, 이때 1차 선택은 남성이 한다.
‘수다 삼매경’, 일명 ‘TMI 토크’ 시간에는 결혼과 출산 가치관에 대해 심층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후 가치관이 잘 맞는 상대를 찾아 도량을 둘러보는 데이트를 하게 된다. 이번에는 여성이 상대를 선택한다.
이 밖에도 ‘블라인드 데이트’ ‘저녁 공양 데이트’ ‘야간 자유 데이트’ 등이 준비돼있다. 청춘 남녀 참가자가 1박2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둘째 날에는 해변을 바라보며 ‘커플 요가’를 하고 최종 선택으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한다. 이때 맺어진 커플에게는 낙산사 플로깅 데이트 시간이 주어진다.
가장 최근 운영한 지난 5월 동화사 프로그램까지 총 185쌍이 나는 절로에 참가했다. 이 중 무려 83쌍이 커플로 이어졌다. 홍보 담당자에 따르면 성혼까지 이룬 커플은 총 3쌍이며, 오는 10월 결혼을 앞둔 커플에 더해 대여섯 커플이 결혼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불교 신자들만을 맺어주는 프로그램은 따로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에서는 ‘결혼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1993년 개설한 ‘사찰 인연 맺어주기’ 프로그램의 원조 격이다. 결혼정보업체와 비교해 가입비가 저렴하고, 불교 신자 가족 중심으로 주선이 이뤄져 신뢰도가 높다.
일단 인연이 맺어지면 봉은사 주지 스님이 주례를 봐주며, 전통 사찰 혼례를 진행할 수도 있다. 상업적 결혼정보회사 만남이 부담스러운 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원불교 역시 지난해 저출산 극복을 목표로 지난해 ‘다붓다붓 맞선 캠프’를 세 차례 진행했다. 아이스 브레이크, 집단 상담, 명상, 역할극, 성격 유형 검사 및 강의 등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선보였다. 원불교 홍보 담당자에게 문의했더니, 올해는 아쉽게도 운영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한동안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맞선과 소개팅, 미팅 등을 불편해하는 2030세대가 많았다. 이들이 추구하는 바와는 별개로, 코로나19 이후 단체 모임이 빠르게 흔적을 감췄다. 그만큼 이성을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도 줄었다는 뜻이다.
절서 만나는
견우와 직녀
‘시절 인연’은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모든 만남과 일의 성사는 ‘때(시기)’와 ‘조건’이 맞아야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일상에서는 만남과 헤어짐을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억지로 붙들거나 밀어내지 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운명이 정해져 있는지, 혹은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지는 직접 부딪쳐 알아보는 수밖에는 없다. 청춘이 스스로 시절 인연을 알아보고 오래도록 붙들어 두기 위한 ‘부딪침’ 기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종교계에서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younme@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