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뱃갑처럼’ 술병 경고 그림 실효성

술도 안 먹는데 굳이?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지나친 음주는 뇌졸중, 기억력 손상이나 치매 등을 유발합니다.” 오는 11월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술병에서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될 문구다. 정부가 음주 운전 예방과 음주 폐해 감소를 위해 술병 전면에 경고 문구와 경고 그림을 의무화하면서 주류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업계는 소비 위축과 브랜드 가치 훼손 등을 우려하지만, 진짜 쟁점은 이 같은 조치가 실제 음주 폐해 예방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 및 관련 고시를 개정해 오는 11월9일부터 새로운 주류 경고 표시 제도를 시행한다. 전통주부터 소주·맥주, 위스키와 와인 등 수입 주류까지 예외 없이 적용된다.

의무화 적용

기존의 건강 위해성과 임신 중 음주 위험 경고에 더해 음주 운전 위험성을 알리는 문구 또는 그림을 추가하고, 소비자가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주상표(전면 라벨) 하단에 표시하도록 했다. 경고 문구를 제대로 표기하지 않거나 표시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정부는 이번 제도 도입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음주 운전은 타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중대한 사회문제인 만큼 술을 구매하는 순간부터 위험성을 인식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음주 운전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여전히 심각하다. 지난해 음주 운전 교통사고는 1만351건 발생해 121명이 숨지고 1만6304명이 다쳤다. 사고 건수는 감소 추세지만 하루 평균 28건가량의 음주 운전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재범률도 높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경찰청과 삼성화재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음주 운전 재범률은 평균 43.9%에 달했다. 음주 운전자 10명 가운데 4명 이상이 다시 적발됐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 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소비자에게 보다 직관적인 경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글씨보다 그림이 전달력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경고 그림을 새롭게 도입했고, 경고 문구 글자 크기도 기존보다 확대했다. 단순히 술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술이 개인의 건강과 사회 안전에 미칠 수 있는 위험까지 함께 알려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정책 발표 이후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전통주 업계는 지역성과 문화적 가치를 담아온 병 디자인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위스키와 와인 등 수입 주류 업계 역시 브랜드 정체성과 상품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반발한다.

라벨을 새로 제작해야 하는 비용 부담은 물론 한국 시장만을 위한 별도 패키지 제작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하지만 이 제도의 핵심은 따로 있다.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술병에 경고문구와 그림을 붙이는 것만으로 실제 음주 운전과 과음을 줄일 수 있느냐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미 다른 기호식품에서 시행 중인 규제 방식을 참고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담뱃갑 경고 그림 제도다.

당시에도 정부는 강한 시각적 경고가 흡연율을 낮추고 국민 건강을 증진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제도 시행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담배 경고 그림의 효과를 두고는 여전히 다양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정부가 술병 경고 그림 도입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시각적 경고의 전달력이다. 글보다 그림이 소비자의 주의를 더 쉽게 끌고 위험성을 직관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이 같은 방식은 새로운 정책이 아니다.

전통주도 위스키도 ‘비상’
경고 표시에 가려지는 상표

국내에서는 2016년 12월부터 담뱃갑 전면에 폐암과 구강암, 후두암 등 흡연의 위험성을 담은 경고 그림이 의무화돼 시행되고 있다. 당시 정부 역시 흡연으로 인한 질병과 사망 위험을 소비자에게 보다 강하게 알리고 금연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도입 초기에는 혐오감을 유발한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통해 담뱃갑 경고 그림을 대표적인 금연 정책 가운데 하나로 권고하면서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국내 조사에서도 경고 그림은 일정 부분 효과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시행한 조사에서는 경고 그림을 본 흡연자 상당수가 흡연의 위험성을 다시 인식했고, 금연을 시도하거나 흡연량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다.

특히 청소년의 경우 경고 그림을 인지한 비율이 70% 안팎에 달했고, 흡연 예방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한 비율도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엇갈린다. 경고 그림이 흡연의 위해성을 알리는 데에는 일정 효과를 거뒀지만, 실제 흡연율 감소까지 이끌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담배 경고 그림이 도입된 시기와 맞물려 담뱃값 인상, 금연 구역 확대, 금연 클리닉 운영, 광고 규제 강화 등 다양한 정책이 동시에 시행됐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국 흡연율이 감소했다 하더라도 이를 경고 그림만의 효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 국내외 연구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이어진다.

경고 그림은 소비자의 위험 인식을 높이고 금연 의지를 자극하는 데는 비교적 효과적이지만, 장기적인 흡연율 감소나 담배 판매량 감소까지 설명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식 개선’과 ‘행동 변화’ 사이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는 평가다.

해외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해외 실험에서는 인식 개선이 곧바로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결과도 나왔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UC San Diego) 연구진이 미국 성인 흡연자를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진행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는 담뱃갑 경고 그림이 담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낮추고 금연 관련 생각을 늘리는 효과는 있었지만, 실제 금연이나 담배 소비량에는 영향을 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경고 그림이 흡연자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일정 효과가 있었지만, 단기간 내 실제 흡연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분석했다.

해외 연구 “행동 변화 근거 부족”
“위험 인식 높였지만 효과는 글쎄”

반대로 금연 시도 증가 효과를 확인한 연구에서도 실제 금연 성공률은 높지 않았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UNC) 연구진이 성인 흡연자 2149명을 대상으로 4주간 진행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는 경고 그림을 본 집단의 금연 시도율이 40%로 문자 경고 집단의 34%보다 높았다.

그러나 1주 이상 금연에 성공한 비율은 경고 그림 집단 5.7%, 문자 경고 집단 3.8%에 그쳤다. 금연을 시도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었지만, 실제 금연 성공까지 이끄는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술은 어떨까? 음주 역시 건강 위해성과 사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 경고 문구와 그림을 강화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이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연구가 진행돼 왔다.

세계 각국에서도 음주로 인한 건강 피해와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고 문구와 경고 그림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 정책 효과를 두고는 여전히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해외에서 먼저 시행된 주류 경고 라벨 제도도 실제 음주 행동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미국은 1989년부터 술병에 임신 중 음주 위험과 음주 운전 위험 등을 알리는 정부 경고 문구를 의무화했다.

그러나 도입 이후 평가에서 소비자의 경고 문구 인지율은 1991년 27%까지 오르는 데 그쳤고, 연구진은 경고 라벨 노출 효과를 “매우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음주 운전 예방 효과는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1989~1994년 경고 라벨 효과를 추적한 연구에서는 라벨 인지도와 메시지 회상률은 증가했지만, 음주 행동이나 음주 운전과 관련해 경고라벨 때문이라고 볼 만한 긍정적 변화는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임신부 439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고위험 음주자 집단의 음주 행동 변화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도 비슷한 결론을 내놓고 있다. 2024년 해외 체계적 문헌 고찰을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주류 경고 라벨은 알코올 음료 선택을 줄이는 데는 일부 근거가 있었지만, 일반 음주량과 음주 빈도, 음주 운전 자체에 대해서는 ‘무효 효과’가 시사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술병 경고문구가 위험 인식을 높일 수는 있어도, 실제 음주운전 감소로 이어진다는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다.

부족한 근거

이 같은 해외 연구 결과를 근거로 업계에서는 정책의 실효성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 A씨는 “음주 운전 예방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술병 경고 문구가 실제 음주 운전을 줄였다는 근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며 “주류 소비도 줄어들고 효과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업계 부담만 커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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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단독]‘이태리 석유 재벌 행세’ 이상한 경찰 수사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광주에서 일어난 ‘장윤기 사건 증거인멸’ 논란으로 경찰 조직이 시험대에 올랐다. 피의자 가족이 나서서 증거를 없애고 이 과정에 주변 경찰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청 해체 이후 수사 권력을 한 손에 쥘 경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다. 한 여고생이 일면식도 없던 남자에게 살해됐다. 여학생을 구하려던 남학생은 크게 다쳤다. 경찰이 범인을 검거했고 사건의 심각성에 따라 얼굴을 공개했다. 생떼 같은 10대 여고생의 황망한 죽음에 국민은 경악했다. 하지만 국민이 더 분노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위 의혹은 경찰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조직 명운 달렸다 장윤기 사건에서 수사 기밀 유출, 증거인멸, 초동수사 부실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장윤기의 혐의를 경찰이 나서서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다. 경찰은 장윤기에게 강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형량이 더 높은 강간·살인 혐의를 입증할 케이블 타이 등의 증거를 경찰이 없앴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검찰의 보완수사로 드러났다. 현재 정치권은 해체될 검찰에 보완수사권을 남겨둘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보완수사로 경찰의 부실 수사 문제가 확인되면서 권력을 한쪽에만 과도하게 몰아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이 장윤기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 유착 의혹을 두고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말한 것은 조직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최대한 불식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는 게 중론이다. 안 그래도 검찰청 해체로 수사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 이번 일로 그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23년 8월 공동대표였던 하모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R스타트업의 이모 대표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 대표는 하씨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 단독대표가 돼 R스타트업을 떠안았다(<일요시사> 1493호 ‘<단독>스타트업 대표 1000억대 역외탈세 의혹’). 앞서 두 사람이 공동대표일 무렵 R스타트업은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마스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내에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있던 때였다. 하씨는 마스크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했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필리핀의 법인을 이용해 수급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한 회사와 판매 계약까지 체결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사업은 ‘마스크를 수급할 수 없게 됐다’는 하씨의 말에 흐지부지됐다. 이후 마스크 관련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하씨는 R스타트업을 떠났다. 2022년 3월경에는 서로 연락도 끊겼다. 하씨의 회사 이메일 계정도 이 시기에 정지 조처됐다. 회사와도, 사적으로도 이 대표와 하씨의 관계가 끝난 것이다. 상황은 2023년 6월 이 대표가 하씨의 이메일에서 석연찮은 점을 발견하며 반전됐다. 장윤기 사건으로 신뢰 바닥 새로운 자료 찾아도 시큰둥 이 대표는 하씨의 이메일을 통해 흐지부지된 줄 알았던 마스크 사업이 몰래 진행됐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하씨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마스크를 수급하고 수출해 상당한 돈을 벌었다는 사실도 이 시기에 알게 됐다. 극심한 배신감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인천 연수경찰서에 고소하기에 이른다. 연수경찰서는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를 1000억원대로 판단했고 수사를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계로 넘겼다. 이 대표에 따르면 당시 연수경찰서에서 추정한 하씨의 마스크 거래 규모는 1400억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하씨는 회사(R스타트업) 메일 계정을 이용해 마스크 거래를 진행했다. 그사이 회사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더욱 화나게 한 건 경찰의 태도였다. 처음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미진한 수사 태도로 이 대표의 불만을 샀다. 이 대표는 “하씨가 한국에 있지도 않은데 출국금지를 걸지를 않나, 경제범죄를 수사하면서 CFO가 뭐냐고 묻질 않나, 이렇게 많은 양의 자료를 제출했는데 고소인 조사를 20분밖에 하질 않나, 수사 자체가 엉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2024년 2월 말 하씨를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의 판단은 달랐다. 인천지검은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하씨와 가족의 해외 계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경찰의 불송치에 대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때가 2024년 3월이다. 경찰 수사에 답답함을 느낀 이 대표는 하씨와 관련된 자료를 이 잡듯이 뒤졌다고 한다. 특히 하씨의 회사 계정으로 오간 이메일을 꼼꼼히 살폈다. 그 결과 하씨가 카카오뱅크를 통해 6개월 동안 거래한 내역을 찾아냈다. 이 대표는 거래 내역에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돈이 여러 차례 오간 것을 발견했다. 이 대표는 “2024년 5월에 거래 내역을 발견해 바로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이 나를 조사에 부른 건 (그해) 8월경이었는데 그때까지 거래 내역에 대한 어떤 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보다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수사 권한도 없는 일반인이 이 정도로 자료를 찾아 건넸으면 좀 들여다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일반 국민은 경찰보다 계좌 접근 권한이 제한돼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고소 이후 3년 지나 하씨와 그 가족의 필리핀 계좌를 보기 위한 국제 공조에도 시간이 지체됐다고 토로했다. 검찰에서 보완수사를 요구한 때가 2024년 3월29일이었는데 그해 7월에서야 공조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처음 고소인 조사를 받을 때부터 필리핀 법인 이야기를 숱하게 했다. 필리핀 법인에 보낸 은행 송금증, 해당 필리핀 법인이 운영하는 SNS 내용, 현지 언론 기사까지 제출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다가 보완수사가 떨어지고 나서야 공조를 진행하면 기다리는 고소인은 답답해서 죽는다”고 말했다. 하씨의 지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써준 사실확인서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해당 인물이 사실확인서를 써준 이후에 하씨와 함께 사업한 의혹이 있다. 이런 사람이 써준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있나. 경찰 조사에서 이 부분을 상세하게 진술했는데 ‘고소인은 ○○○의 사실확인서를 믿을 수 없음’ 이렇게 한 줄만 적었더라. 근거를 가지고 말했는데 경찰은 나를 ‘우기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대표가 경찰에 제출한 자료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하씨를 불송치 처분할 때 근거가 됐던 내용을 다시 들여다볼 여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당시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는 불송치 이유로 ▲(하씨가) 거래대금을 몰래 착복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실제 거래가 성사된 사실이 없다면서 배임 혐의를 부인한 점 등을 들었다. 이때 ▲미국 A사와의 거래 과정에서 필리핀 법인을 사용하기로 합의한 점 ▲미국 A사 측의 거래 취소 요청 이메일 ▲계약 관련자의 사실확인서 등을 ‘혐의없음’의 근거로 제시했다. 즉, 경찰은 하씨가 마스크 사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마스크 사업으로 수익을 본 것도 없고 그러니 배임 혐의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 이 대표는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은 마스크 사업 과정에서 돈이 오간 흔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이고, 사실확인서 역시 동업 관계에서 나왔기에 그 배경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자료만 제대로 봤어도 수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경찰의 결론 자체를 뒤집는 자료 아닌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1월 이 대표는 하씨의 카카오뱅크 거래 내역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하씨가 마스크를 수출하는 과정에서 수급을 담당한 업체가 있는데, 그곳의 대표와 이름이 같았던 것이다. “확인해 달라” 호소에도… 또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하씨가 2억4000만원에 이르는 신용 미수 거래를 한 내역도 찾아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했다는 뜻이다. 이 대표는 “신용 미수 거래금이 2억원이 넘는다는 건 담보 제공 현금이 1억5000만원 이상 있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스크 사장 이름을 알아낸 것도 그렇다. 대단한 기술을 쓴 것도 아니고 거래 내역에 있는 사람 이름과 다른 단어를 인터넷에서 조합해 검색했더니 내용이 나왔다. 이건 내가 다 수사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적극적인 행보에도 경찰은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1계에서 2계로 수사팀을 한 차례 바꾼 것 빼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4월30일 ‘수사 중지’를 결정했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근거였다. 이 대표는 하씨의 거주지 주소가 바뀐 것을 지적하면서 ‘이송’을 요청했지만 ‘보완수사 중에는 관할지 이송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후 수사는 1년 넘게 멈춘 상태다. 이 대표는 국세청에도 관련 내용을 제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국세청에 같은 자료를 냈는데 국세청은 조사를 진행한 뒤 하씨가 ‘탈세를 한 게 맞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경찰에 그 사실을 알리자 ‘국세청 관계자와 통화했는데 사건과 관련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국세청에 확인했더니 ‘기밀이라 말해줄 수 없다고 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왜 거짓말까지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그사이 하씨가 다른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9~10월경 가상자산 전문 매체 기사에서 하씨의 영어 이름을 발견했다. 하씨가 ‘키키캣 코인’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이게 사기라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씨가 코인사업을 하면서 ‘이태리 석유 재벌의 아들’인 척했다는 글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불송치했다 보완수사 결정 “그건 1계에서 처분한 것” 이 대표의 주장대로라면 하씨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는 도중에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뜻이 된다. 이 대표는 “(키키캣 코인의) 시가총액이 1억달러까지 올랐다가 현재 100만달러까지 떨어진 걸로 안다. 키키캣 코인을 구매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은 피해자 방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중지된 수사를 재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하씨의 여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페이퍼컴퍼니를 운영한 사실도 발견했다. 그는 “하씨와 거래한 마스크 제조업체는 여러 곳인데 수출을 진행한 곳은 하씨 동생 명의의 페이퍼컴퍼니로 확인된다”며 “이 내용을 근거로 수사를 재개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규정 위반’이라고 윽박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 규칙 제102조(수사 중지 사건 수사 재개)는 ‘경찰은 수사 중지된 사건의 피의자를 발견하는 등 수사 중지 사유가 해소된 때에는 …(중략)… 즉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경찰과 이 대표의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은 수사 재개에 필요한 요건을 국제 공조 수사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이 대표는 새로운 증거가 나왔는데 왜 수사를 재개하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필리핀과의 국제 공조 결과가 아직 회신되지 않았다는 건 하씨의 해외 (계좌) 자료가 필요한 일부 수사에 제약이 있다는 뜻일 뿐이다. 하씨의 마스크 사업 규모를 확인하는 정도에 필요한 자료”라며 “하씨의 여동생이 페이퍼컴퍼니를 갖고 있다는 의혹은 수사가 시작된 이후 3년여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내용이다. 수사를 재개하고 관련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다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2계 담당자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올 때까지 수사를 재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하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언제쯤 올 것으로 예상되냐는 질문에도 “알 수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또 앞서 하씨를 불송치한 내용에 대해 거론했을 때는 “그 부분은 1계에서 처분한 것”이라며 “우리(2계)는 검찰의 보완수사 요청 이후 수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소인이 제출한 자료는 경찰 수사 규칙에 따라 사건 기록에 편철해 놨다”며 “국제 공조 수사 결과가 없어도 수사를 재개할 수 있는지 국수본(국가수사본부)에 질의해 둔 상태”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수사가 길어지는 사이 하씨가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 않은 부분 아닌가. 피고소인이 현재 받는 업무상 배임 혐의 외의 별건 수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 대표가 담당 수사관에게 언급한 하씨의 코인 사업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