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 분위기가 이상해요. 지방선거가 그렇게 됐는데….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마치 ‘6월3일’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잖아요.” 조국혁신당 관계자가 이같이 하소연했다. 6·3 지방선거 결과를 꼼꼼히 분석하기도 전 이미 모두의 마음이 콩밭을 향한 탓이다. 지금도 당은 오직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어떤 문제를 어디서부터 진단해야 할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이제 정국은 지방선거를 지나 전당대회로 향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역시 오는 7월25일 신임 당 대표를 선출하기로 합의했다. 전당대회 흥행에 힘을 쏟아야 할 시기지만 혁신당은 여전히 그로기 상태다. 예상보다 초라한 지방선거 성적표를 마주한 탓에 모두가 전투력을 상실한 것이다.
거센 파도
혁신당은 전국에 총 261명의 후보를 내보냈지만 이 중 39명만 당선됐다. 호남 기초자치단체장 역시 22명의 후보가 공천을 받았지만 장흥·신안군수 두 곳에만 깃발을 꼽는 데 그쳤다. 당초 도당은 14개 기초단체장 중 3∼4곳의 당선을 예측했던 만큼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었다.
2024년 혁신당이 몰고 온 ‘호남 돌풍’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광주 광산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배수진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임문영 후보에게 패배했고 그나마 지키고 있던 담양군수 자리도 민주당에 내줬다.
무엇보다 조국 전 대표의 패배가 뼈아프다. 그는 출마 당시 “국민의힘 제로(0)”를 외쳤지만 민주당과의 갈등만 깊어졌고 의석마저 국민의힘에 빼앗겼다. 조 전 대표는 “다 저의 책임이다. 비록 졌지만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이라는 바다를 향해 지치지 않고 흘러가야 한다”고 밝혔으나 혁신당을 둘러싼 평가는 냉정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조 전 대표가 복권 이후 지방선거를 통해 무리하게 복귀를 시도한 점 등을 꼬집었다. 특히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국민의힘 제로를 만들겠다며 평택을로 온 조국 후보가 국민의힘 후보를 당선시켰다”며 책임을 묻기도 했다.
송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조 전 대표는) 쇄빙선을 자처하고 본인이 검찰의 피해자임을 강조한 만큼 부산에서 한동훈과 싸워야 했다. 그걸 회피하고 평택으로 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아쉬운 대목”이라며 “양쪽 (평택을과 북구갑) 다 국민의힘 100%를 만들어줬다. 이런 어리석은 전략과 성과가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혁신당의 지방선거 성적표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의 평가다. 패배 원인을 찾고 무너진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피부로 느낀 후보와 실무자들의 성찰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본전도 못 찾은 평택을 출마 파장
‘조국 없는 조국혁신당’ 어디로?
하지만 쇄신을 위한 당의 동력도, 의지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선거 결과 발표가 선거관리위원회 사태와 맞물린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대로 된 반성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혁신당 의원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봤을까? 지난 4일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은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방선거 이후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개혁진영 내부의 분열과 연대 실패를 원인으로 꼽았다. 발언 말미에 “민주 진영과 협력을 우선시하면서도 검찰개혁이나 내란 전담 재판부 논의 등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박은정 의원은 선거 결과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자신의 SNS에 “검찰개혁, 새로운 형사소송법 개정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으며 김재원 의원 역시 조정식 신임 국회의장 축하 메시지를 작성했다. 신임 원내대표인 김준형 의원은 현충일 당일 관련 내용의 메시지가 담긴 카드 뉴스를 게시했다.
김선민 의원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나라, 혁신당이 꿈꾸는 사회권 선진국”이라는 문구를, 차규근 의원은 ‘조국혁신당’이 적힌 선거 운동복을 입고 허리 굽혀 인사하는 사진을 SNS 프로필로 교체했다. 황운하 의원은 지난 10일 라디오에 출연했지만 마찬가지로 선거 부실 사태에 집중했다.
정춘생·강경숙·백선희 의원은 SNS를 통해 당원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해민 의원은 “다른 정당과는 달리 혁신당은 지역조직이 전무하다”고 봤으며 서왕진 의원은 “앞으로 논의해 가야 하겠지만, 분명한 (패배)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안의 방심과 분열”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호남 정치의 ‘메기’가 되어 주민의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생활 정치 모델을 선보여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렇듯 12명의 목소리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전당대회가 치러진다면 당이 ‘집단 무기력증’에 빠질 것이란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선거 패배 이후 백서를 발간하기 위해 지도부 차원에서 위원회를 꾸리는 등 움직임이 있었지만 크게 동력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영부영 다가온 전당대회
“혹시 내가?” 당권 경쟁 불붙나
이때 오직 당권에만 욕심을 내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당이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만큼 이번 전당대회가 단순 인기 투표 형식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나온다.
특히 지방선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조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으면서 당권을 마음에 둔 이들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이들 또한 선거 패배 책임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니 전당대회 자체를 조용히 치르려는 분위기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선거 패배의 책임이 조 전 대표 한 명에게만 쏠린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차기 당 대표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신장식 권한대행을 예시로 보면, 그는 호남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지만 화력이 약했던 탓에 텃밭에서조차 선전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황명필 울산시장 후보 역시 민주당-진보당 단일화 논의에 묻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조 전 대표에게만 선거 패배 책임을 묻는 모습”이라며 “혁신당이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원인이 한 사람에게만 있는지 혁신당 의원들도 잘 생각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혁신당이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이유에 대해 “우리는 언젠가는 민주당에 흡수 합당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오는 8월 전당대회를 앞둔 더불어민주당 역시 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를 최대 쟁점으로 보는 만큼 곳곳에서 합당론에 군불을 땠고, 덩달아 민주당을 향한 혁신당의 의존도도 높아졌다.
흐르는 대로
혁신당은 “정치공학 합당은 거부한다”면서도 2028년 총선에 민주당 이름을 달고 출마할 수 있을지 눈여겨보는 분위기다. 김준형 원내대표는 “우리가 계속 개혁하고 진보하려면 연대는 최소한이고, 합당까지도 얘기할 수 있다”면서도 “지금까지의 연대와 합당 논의와 실천을 봤을 때 아쉬운 점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면 저희는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고 말해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윤석열 검찰 정권 퇴진”을 외치며 쇄빙선을 자처했던 혁신당이었다. 2024년 ‘조국 돌풍’은 정말 일회성이었을까? 2년 만에 표류선이 되어 망망대해를 떠돌지, 새로운 노선을 찾아 나아갈지 오직 당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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