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투자·배급사 플러스엠의 모기업인 메가박스중앙의 회생절차 신청 속에 올해 여름 국내 영화계 최대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해외 선판매만으로 제작비 상당 부분을 회수했지만,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한국 장르영화의 새 지평을 연 나 감독이 <호프>를 통해 극장가와 메가박스중앙에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나홍진 감독은 지난 16일 자신의 SNS에 JTBC와 메가박스중앙의 회생 신청에 대한 뉴스를 공유해 화제를 모았다. 메가박스중앙은 나 감독의 7월 국내 개봉 예정작인 <호프(HOPE)>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이하 플러스엠)의 모기업이다.
한국 영화
최대 규모
메가박스중앙은 현재 콘텐트리중앙에서 빌린 돈이 1690억원에 달하는 등 관계사로부터 꾸준히 자금 수혈을 받아야 할 만큼 수년째 자체 현금 창출력이 바닥을 친 상황으로,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거론돼 온 <호프>의 흥행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롯데시네마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대규모 외부 투자 유치를 추진해 왔으나 메가박스중앙이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이 또한 사실상 종료됐다.
JTBC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 이후 쏟아지는 계열사들의 회생 절차 관련 뉴스와 함께 <호프>에 미칠 영향과 흥행 가능성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플러스엠 측은 당초 일정대로 개봉한다는 계획이지만, 회생 절차가 개시되면 흥행을 위한 예산을 유연하게 집행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순제작비만 역대 한국 영화 최대 규모인 500억원 이상 투입된 <호프>는 쇼케이스와 시사회, 각종 광고 등 개봉 전후로 관객을 모으기 위해 수십억원의 홍보·마케팅 비용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 감독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메가박스중앙의 회생 신청 관련 뉴스를 직접 게재한 것 역시 이 같은 예산 집행 차질 및 홍보 위축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호프>는 상업적 성과 면에서 이미 대기록을 세웠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이후 한국 영화 사상 역대 최고액을 경신하며 전 세계 200여개 국가 및 권역에 선판매됐다.
플러스엠은 지난 29일 “<호프>가 해외 선판매만으로 순제작비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금액을 조기 회수했다”면서 “향후 해외 흥행 성과에 따른 추가 수익 창출이 이어질 것을 감안할 때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완성됐다”고 밝혔다.
해외 개봉 성과를 배분받는 형태로 계약이 이뤄져 앞으로 거둬들이는 수익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인 만큼, 플러스엠 측은 “국내 흥행 부가 판권 사업으로 인한 수익까지 더해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다음 달 15일 국내 개봉 예정인 <호프>는 SF, 액션,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과 함께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이클 패스벤더 등 할리우드 톱 배우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아시아 영화엔 특유의 용감함과 대담함이 있다”며 “특히 나 감독은 기존의 틀을 깨고,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를 섞고 탐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 작품은 <곡성> 이후 나 감독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촬영 준비 기간만 2년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박스 회생 절차에 ‘우려’
기대작 <호프> 흥행 차질 없나
영화는 DMZ(비무장지대) 인근 마을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에 비상이 걸리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지원 인력들은 산불을 끄기 위해 떠나 통신까지 끊긴 가운데, 노인들만 남은 마을은 예상치 못한 위기와 마주하며 서서히 극한 국면으로 밀려 들어간다.
작품은 “무지가 빚어낸 불행의 씨앗은 입장의 차이를 거쳐 온 우주의 비극이 되고야 만다”는 시놉시스 문장을 통해, 작은 마을의 사건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를 예고한다. 한정된 공간과 외계 생명체라는 요소를 결합해 인간과 낯선 존재의 충돌을 그린다.
영화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선택과 대응이 생존 문제를 넘어서는 공포와 비극으로 이어진다.
한국 영화로는 4년 만에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지난달 17일(현지시각) 공식 시사회를 가졌다. 나 감독은 칸 기자회견에서 “사람이 왜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이 왜 발생하는지 고민하다가 그 생각이 우주까지 갔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시사회 이후 현지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버라이어티(Variety)>는 “포복절도할 만큼 웃기고, 숨 막히게 우아하다”며 “가장 훌륭하고 재미있는 액션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eood Reporter)>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전개, 날카롭게 묘사된 캐릭터로 관객을 즉시 사로잡는다”며 “미친 듯이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고 액션과 속도감에 대해 극찬했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 워크와 프로덕션 디자인 역시 여러 매체의 찬사를 받았다.
반면 미국 영화 전문 매체 <인디와이어(IndieWire)>는 낙제점인 ‘D+’를 주며 “끔찍한 각본과 최악의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처참하게 무너진다”고 평했다. 이어 “<호프>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 영화가 위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희망(호프)을 줬기 때문”이라며 “이 영화가 당신을 버리기 전에 당신이 먼저 버려라”고 비판했다.
매체는 “겨우 50분 정도만 창의적인 추진력을 유지하는 진부하고 지루한 서사”라며 외계인이 아직 실체를 드러내기 전 이어지는 범석(황정민)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 시퀀스 이후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호평하는 매체들조차 공통으로 지적한 문제점은 CG였다. 실관람객들의 후기를 확인할 수 있는 글로벌 평점 사이트 레터박스(Letterboxd)에서도 “두 번째 관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는 관객들의 호평과 함께 “어린이용 비디오게임 같다”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징글징글
집요하다
평점 또한 5점 만점에 3.3점을 기록해 기대에 비해 다소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현지 평론가와 관객들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면서, 투자·배급사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기대하는 추가 수익 창출이 과연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장르 연출자로 꼽힌다. <호프>를 제외하면 나 감독의 장편영화는 단 세 편이지만 ‘스릴러 장르의 세공사’라는 수식어와 함께 한국 스릴러 영화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꾼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의 출발은 일반적인 영화계 입문 코스와는 조금 달랐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공예학과를 졸업한 후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20대 후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한 뒤 단편영화 <5 Minutes> <완벽한 도미요리> <한(汗)> 등을 연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완벽한 도미요리>는 2005년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작으로 선정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나 감독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칸 국제영화제다. 2008년 데뷔작 <추격자>는 칸 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충무로 연출부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에 대해 한 평론가는 “어딘가에서 자신을 끝없이 단련하고 있는 건강한 인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을 준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황해>는 2011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칸과의 인연을 이어왔다. 신작 <호프>까지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한국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장편 연출작 전편이 칸에 초청되는 기록을 세웠다.
칸의 경쟁 부문은 매년 전 세계 약 2500편의 출품작 중 오직 21편 내외만를 선정한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경쟁 부문까지 이어져 온 약 20년의 여정은 칸이 나 감독에 대해 갖는 신뢰를 입증한다. <버라이어티(Variety)>는 이번 경쟁 부문 라인 업에 대해 <호프>의 성과를 ‘드문 영예(rare distinction)’라며 집중 조명했다.
나 감독은 작품마다 철저한 완성도를 추구하는 연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곡성>에 ‘무명’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천우희는 나 감독에 대해 “징글징글했다”며 “감독님은 정말 타협이 없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고 전했다.
외지인 역할을 맡아 함께 출연했던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은 “고라니를 뜯어 먹는 장면에서 더는 못하겠다고 했는데 나홍진 감독이 ‘두 번만 더 해보자’라고 말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황정민은 “<곡성>을 찍으면서 나 감독이 인물을 집중도 있게 잘 찍어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며 “배우로서 저보다 더 집요한 사람을 만나면 끌리게 된다”고 말했다.
실화 바탕
폭력 논란
같은 장면을 수차례 찍어내 배우와 스태프 모두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나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이다 싶은 상황을 구상한다. 그런데 그걸 구현하려다 보면 난도가 높은 경우가 정말 많더라. 의도해서 일부러 어렵게 찍어내려고 한 건 아니다. 내가 쓴 시나리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화시키는 과정이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털어놨다.
<호프>의 촬영 현장에 대해서도 “나홍진은 집요하다”라는 증언이 이어졌다. 호포항 어촌 마을의 청년 ‘성기’를 연기한 조인성은 나 감독에 대해 “그분은 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한다. 배우 입장에서는 끝까지 해본 기분이기 때문에 좋고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추격자>에서 <황해> <곡성>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악(惡)의 3부작’으로 불린다. 세 작품의 장르와 배경은 다르지만 인간 내면의 악과 사회 시스템의 어두운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추격자>(2008)는 형사 출신 보도방 사장 엄중호(김윤석)가 자신이 관리하던 여성들이 잇따라 사라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고 추적하던 도중 연쇄살인범 지영민(하정우)을 만나게 되는 범죄 스릴러다. 10개월간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나 감독은 “시나리오를 구상하며 여러 살인범의 정보를 찾아 담았고, 그중 유영철 사건도 포함했다”고 밝혔다.
그는 “살인을 당하게끔 방치한 사회와 살인자들이 활개 칠 수 있게 만든 사회 시스템에 화가 났다”며 영화를 만든 계기를 설명했다. 나 감독이 초점을 맞춘 건 선악의 대결이 아닌 악인과 악인이 만났을 때 벌이는 심판이다. 단순히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피해자를 구하지 못하는 공권력과 사회 시스템의 실패를 그렸다.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과 부지런함으로 밤 장면과 비 장면이 대부분인 이 영화를 빈틈없이 완성했다”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한국 스릴러 영화의 흐름을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황해>(2010)는 나홍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하정우와 김윤석이 주연을 맡아 <추격자> 이후 다시 호흡을 맞췄다. 나홍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경찰 측 지인들과 식사하다가 50만원에도 청부살인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약 3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에도…
“포복절도” VS “처참하다” 갈려
영화는 중국 연변에 사는 조선족 택시 기사 구남(하정우)이 아내를 찾고 빚을 갚기 위해 살인 청부를 수락하면서 시작된다. 한국에 밀입국한 그는 목표물을 죽이기도 전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고, 청부살인을 의뢰한 면가(김윤석)와 배후 세력들까지 얽히면서 쫓고 쫓기는 생존극이 펼쳐진다.
식칼, 도끼 등의 도구가 등장하며 물리적 잔혹성을 더해 폭력 묘사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세 번째 장편인 <곡성>(2016)은 전라남도 곡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쇄 사건을 그린다. 경찰은 집단 야생 버섯 중독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지만, 모든 사건의 원인이 그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경찰 종구(곽도원)가 이를 수사하던 중 정체불명의 일본인(쿠니무라 준), 무속인 일광(황정민), 그리고 의문의 여자 무명(천우희)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스터리·호러 영화로, 개봉 당시 68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4주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다.
나 감독은 <곡성>을 만든 이유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추격자>와 <황해>를 만들며 가해자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던 나 감독은 오랜 시간 취재를 하고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를 보며 “그들의 심리 상태와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요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왜 그런 불행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던 그는 “범죄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게 이유일 수는 없지 않나. 그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현실에 국한될 수 없었다”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등장한 영화 속 여러 종교와 무속 신앙에 대한 배경을 전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곡성>에 대해 최고 점수인 5점 평점을 남기며 “그 모든 의미에서 무시무시하다”고 평을 내렸다. 글로벌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역시 99%의 신선도를 기록하며 <곡성>의 독창성을 높이 샀다.
반면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극적이기만 하다”는 관람객들의 평도 이어져 극단적으로 갈리는 <호프>에 대한 평가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한 언론은 “영화계에서는 여름 성수기에 개봉하는 유일한 한국 대형 상업 영화인 데다, 칸 영화제 화제성으로 흥행 요인은 확실한 작품”이라며 “<호프>가 흥행에 어려움을 겪으면 올해 들어 다소 회복세를 보이는 국내 영화 제작 시장이 다시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 팽배해 있다”고 보도했다.
‘SF 무덤’
이번에도?
이용주 감독의 <서복>(2021),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2021),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2022), 김용화 감독의 <더 문>(2023)까지 SF 장르의 문을 두드리는 감독들의 도전이 이어진 바 있다. 그러나 잇따른 흥행 참패로 ‘SF 장르의 무덤’으라 불리게 된 충무로에서, SF는 전망이 밝지 않은 장르로 꼽힌다.
이번 여름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그 오명을 끊고 흥행을 일으켜 국내 영화 시장과 메가박스중앙에 회복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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