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어깨 무거운 나홍진 감독

  • 조유담 기자 ydcho@ilyosisa.co.kr
  • 등록 2026.06.23 10:13:12
  • 호수 1589호
  • 댓글 0개

500억 베팅하고 기대 반 걱정 반

[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투자·배급사 플러스엠의 모기업인 메가박스중앙의 회생절차 신청 속에 올해 여름 국내 영화계 최대 기대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해외 선판매만으로 제작비 상당 부분을 회수했지만,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한국 장르영화의 새 지평을 연 나 감독이 <호프>를 통해 극장가와 메가박스중앙에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나홍진 감독은 지난 16일 자신의 SNS에 JTBC와 메가박스중앙의 회생 신청에 대한 뉴스를 공유해 화제를 모았다. 메가박스중앙은 나 감독의 7월 국내 개봉 예정작인 <호프(HOPE)>의 투자와 배급을 맡은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이하 플러스엠)의 모기업이다.

한국 영화
최대 규모

메가박스중앙은 현재 콘텐트리중앙에서 빌린 돈이 1690억원에 달하는 등 관계사로부터 꾸준히 자금 수혈을 받아야 할 만큼 수년째 자체 현금 창출력이 바닥을 친 상황으로,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거론돼 온 <호프>의 흥행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롯데시네마와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대규모 외부 투자 유치를 추진해 왔으나 메가박스중앙이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이 또한 사실상 종료됐다.

JTBC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 이후 쏟아지는 계열사들의 회생 절차 관련 뉴스와 함께 <호프>에 미칠 영향과 흥행 가능성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플러스엠 측은 당초 일정대로 개봉한다는 계획이지만, 회생 절차가 개시되면 흥행을 위한 예산을 유연하게 집행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순제작비만 역대 한국 영화 최대 규모인 500억원 이상 투입된 <호프>는 쇼케이스와 시사회, 각종 광고 등 개봉 전후로 관객을 모으기 위해 수십억원의 홍보·마케팅 비용을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 감독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메가박스중앙의 회생 신청 관련 뉴스를 직접 게재한 것 역시 이 같은 예산 집행 차질 및 홍보 위축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호프>는 상업적 성과 면에서 이미 대기록을 세웠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 이후 한국 영화 사상 역대 최고액을 경신하며 전 세계 200여개 국가 및 권역에 선판매됐다.

플러스엠은 지난 29일 “<호프>가 해외 선판매만으로 순제작비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금액을 조기 회수했다”면서 “향후 해외 흥행 성과에 따른 추가 수익 창출이 이어질 것을 감안할 때 안정적인 수익 구조가 완성됐다”고 밝혔다.

해외 개봉 성과를 배분받는 형태로 계약이 이뤄져 앞으로 거둬들이는 수익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인 만큼, 플러스엠 측은 “국내 흥행 부가 판권 사업으로 인한 수익까지 더해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다음 달 15일 국내 개봉 예정인 <호프>는 SF, 액션,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며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과 함께 테일러 러셀, 카메론 브리튼, 알리시아 비칸데르, 마이클 패스벤더 등 할리우드 톱 배우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아시아 영화엔 특유의 용감함과 대담함이 있다”며 “특히 나 감독은 기존의 틀을 깨고,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를 섞고 탐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평했다. 이 작품은 <곡성> 이후 나 감독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촬영 준비 기간만 2년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박스 회생 절차에 ‘우려’
기대작 <호프> 흥행 차질 없나

영화는 DMZ(비무장지대) 인근 마을에 위치한 호포항 출장소장 범석(황정민)이 동네 청년들로부터 호랑이가 출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온 마을에 비상이 걸리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지원 인력들은 산불을 끄기 위해 떠나 통신까지 끊긴 가운데, 노인들만 남은 마을은 예상치 못한 위기와 마주하며 서서히 극한 국면으로 밀려 들어간다.

작품은 “무지가 빚어낸 불행의 씨앗은 입장의 차이를 거쳐 온 우주의 비극이 되고야 만다”는 시놉시스 문장을 통해, 작은 마을의 사건이 어디까지 확장되는지를 예고한다. 한정된 공간과 외계 생명체라는 요소를 결합해 인간과 낯선 존재의 충돌을 그린다.

영화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선택과 대응이 생존 문제를 넘어서는 공포와 비극으로 이어진다.

한국 영화로는 4년 만에 ‘제79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지난달 17일(현지시각) 공식 시사회를 가졌다. 나 감독은 칸 기자회견에서 “사람이 왜 범죄를 저지르고 폭력이 왜 발생하는지 고민하다가 그 생각이 우주까지 갔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시사회 이후 현지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뉘었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매거진 <버라이어티(Variety)>는 “포복절도할 만큼 웃기고, 숨 막히게 우아하다”며 “가장 훌륭하고 재미있는 액션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eood Reporter)>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전개, 날카롭게 묘사된 캐릭터로 관객을 즉시 사로잡는다”며 “미친 듯이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고 액션과 속도감에 대해 극찬했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 워크와 프로덕션 디자인 역시 여러 매체의 찬사를 받았다.

반면 미국 영화 전문 매체 <인디와이어(IndieWire)>는 낙제점인 ‘D+’를 주며 “끔찍한 각본과 최악의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처참하게 무너진다”고 평했다. 이어 “<호프>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 영화가 위대한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희망(호프)을 줬기 때문”이라며 “이 영화가 당신을 버리기 전에 당신이 먼저 버려라”고 비판했다.

매체는 “겨우 50분 정도만 창의적인 추진력을 유지하는 진부하고 지루한 서사”라며 외계인이 아직 실체를 드러내기 전 이어지는 범석(황정민)의 긴장감 넘치는 추격 시퀀스 이후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호평하는 매체들조차 공통으로 지적한 문제점은 CG였다. 실관람객들의 후기를 확인할 수 있는 글로벌 평점 사이트 레터박스(Letterboxd)에서도 “두 번째 관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았다”는 관객들의 호평과 함께 “어린이용 비디오게임 같다”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징글징글
집요하다

평점 또한 5점 만점에 3.3점을 기록해 기대에 비해 다소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현지 평론가와 관객들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면서, 투자·배급사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가 기대하는 추가 수익 창출이 과연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장르 연출자로 꼽힌다. <호프>를 제외하면 나 감독의 장편영화는 단 세 편이지만 ‘스릴러 장르의 세공사’라는 수식어와 함께 한국 스릴러 영화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꾼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의 출발은 일반적인 영화계 입문 코스와는 조금 달랐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공예학과를 졸업한 후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20대 후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한 뒤 단편영화 <5 Minutes> <완벽한 도미요리> <한(汗)> 등을 연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특히 <완벽한 도미요리>는 2005년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작으로 선정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나 감독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칸 국제영화제다. 2008년 데뷔작 <추격자>는 칸 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충무로 연출부 경험이 전혀 없었던 그에 대해 한 평론가는 “어딘가에서 자신을 끝없이 단련하고 있는 건강한 인재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안도감을 준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황해>는 2011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곡성>은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칸과의 인연을 이어왔다. 신작 <호프>까지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한국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장편 연출작 전편이 칸에 초청되는 기록을 세웠다.

칸의 경쟁 부문은 매년 전 세계 약 2500편의 출품작 중 오직 21편 내외만를 선정한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경쟁 부문까지 이어져 온 약 20년의 여정은 칸이 나 감독에 대해 갖는 신뢰를 입증한다. <버라이어티(Variety)>는 이번 경쟁 부문 라인 업에 대해 <호프>의 성과를 ‘드문 영예(rare distinction)’라며 집중 조명했다.

나 감독은 작품마다 철저한 완성도를 추구하는 연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곡성>에 ‘무명’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천우희는 나 감독에 대해 “징글징글했다”며 “감독님은 정말 타협이 없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고 전했다.

외지인 역할을 맡아 함께 출연했던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은 “고라니를 뜯어 먹는 장면에서 더는 못하겠다고 했는데 나홍진 감독이 ‘두 번만 더 해보자’라고 말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황정민은 “<곡성>을 찍으면서 나 감독이 인물을 집중도 있게 잘 찍어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며 “배우로서 저보다 더 집요한 사람을 만나면 끌리게 된다”고 말했다.

실화 바탕
폭력 논란

같은 장면을 수차례 찍어내 배우와 스태프 모두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나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는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이다 싶은 상황을 구상한다. 그런데 그걸 구현하려다 보면 난도가 높은 경우가 정말 많더라. 의도해서 일부러 어렵게 찍어내려고 한 건 아니다. 내가 쓴 시나리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화시키는 과정이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털어놨다.

<호프>의 촬영 현장에 대해서도 “나홍진은 집요하다”라는 증언이 이어졌다. 호포항 어촌 마을의 청년 ‘성기’를 연기한 조인성은 나 감독에 대해 “그분은 영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한다. 배우 입장에서는 끝까지 해본 기분이기 때문에 좋고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추격자>에서 <황해> <곡성>으로 이어지는 세 편의 영화는 ‘악(惡)의 3부작’으로 불린다. 세 작품의 장르와 배경은 다르지만 인간 내면의 악과 사회 시스템의 어두운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추격자>(2008)는 형사 출신 보도방 사장 엄중호(김윤석)가 자신이 관리하던 여성들이 잇따라 사라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고 추적하던 도중 연쇄살인범 지영민(하정우)을 만나게 되는 범죄 스릴러다. 10개월간 2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것에 대해, 나 감독은 “시나리오를 구상하며 여러 살인범의 정보를 찾아 담았고, 그중 유영철 사건도 포함했다”고 밝혔다.

그는 “살인을 당하게끔 방치한 사회와 살인자들이 활개 칠 수 있게 만든 사회 시스템에 화가 났다”며 영화를 만든 계기를 설명했다. 나 감독이 초점을 맞춘 건 선악의 대결이 아닌 악인과 악인이 만났을 때 벌이는 심판이다. 단순히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 피해자를 구하지 못하는 공권력과 사회 시스템의 실패를 그렸다.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과 부지런함으로 밤 장면과 비 장면이 대부분인 이 영화를 빈틈없이 완성했다”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임에도 5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한국 스릴러 영화의 흐름을 바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황해>(2010)는 나홍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하정우와 김윤석이 주연을 맡아 <추격자> 이후 다시 호흡을 맞췄다. 나홍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경찰 측 지인들과 식사하다가 50만원에도 청부살인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약 3년에 걸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에도…
“포복절도” VS “처참하다” 갈려

영화는 중국 연변에 사는 조선족 택시 기사 구남(하정우)이 아내를 찾고 빚을 갚기 위해 살인 청부를 수락하면서 시작된다. 한국에 밀입국한 그는 목표물을 죽이기도 전에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고, 청부살인을 의뢰한 면가(김윤석)와 배후 세력들까지 얽히면서 쫓고 쫓기는 생존극이 펼쳐진다.

식칼, 도끼 등의 도구가 등장하며 물리적 잔혹성을 더해 폭력 묘사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세 번째 장편인 <곡성>(2016)은 전라남도 곡성의 한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쇄 사건을 그린다. 경찰은 집단 야생 버섯 중독으로 잠정적 결론을 내리지만, 모든 사건의 원인이 그 외지인 때문이라는 소문과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간다.

경찰 종구(곽도원)가 이를 수사하던 중 정체불명의 일본인(쿠니무라 준), 무속인 일광(황정민), 그리고 의문의 여자 무명(천우희)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스터리·호러 영화로, 개봉 당시 68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4주간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다.

나 감독은 <곡성>을 만든 이유에 대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추격자>와 <황해>를 만들며 가해자에 대해 많은 조사를 했던 나 감독은 오랜 시간 취재를 하고 전문가들의 연구 자료를 보며 “그들의 심리 상태와 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요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왜 그런 불행을 겪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던 그는 “범죄자를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게 이유일 수는 없지 않나. 그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현실에 국한될 수 없었다”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등장한 영화 속 여러 종교와 무속 신앙에 대한 배경을 전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곡성>에 대해 최고 점수인 5점 평점을 남기며 “그 모든 의미에서 무시무시하다”고 평을 내렸다. 글로벌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 역시 99%의 신선도를 기록하며 <곡성>의 독창성을 높이 샀다.

반면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극적이기만 하다”는 관람객들의 평도 이어져 극단적으로 갈리는 <호프>에 대한 평가와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한 언론은 “영화계에서는 여름 성수기에 개봉하는 유일한 한국 대형 상업 영화인 데다, 칸 영화제 화제성으로 흥행 요인은 확실한 작품”이라며 “<호프>가 흥행에 어려움을 겪으면 올해 들어 다소 회복세를 보이는 국내 영화 제작 시장이 다시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 팽배해 있다”고 보도했다.

‘SF 무덤’
이번에도?

이용주 감독의 <서복>(2021),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2021),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2022), 김용화 감독의 <더 문>(2023)까지 SF 장르의 문을 두드리는 감독들의 도전이 이어진 바 있다. 그러나 잇따른 흥행 참패로 ‘SF 장르의 무덤’으라 불리게 된 충무로에서, SF는 전망이 밝지 않은 장르로 꼽힌다.

이번 여름 나홍진 감독의 <호프>가 그 오명을 끊고 흥행을 일으켜 국내 영화 시장과 메가박스중앙에 회복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ydcho@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코인스쿨 20억 사기 사건, 가상인물 ‘김승호’ 실체

[단독] 코인스쿨 20억 사기 사건, 가상인물 ‘김승호’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시작은 코인 교육방이었다. 20억원의 투자 피해를 입힌 ‘코인스쿨 리딩방 사기 사건’은 결이 다르다. 코인스쿨 강사 권원재의 본명은 김민균. 그는 직접 제작한 HTS(Home Trading System) 프로그램에 학생들을 끌어들여 투자를 권유했다. 결국 70여명의 피해자들은 2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김민균이 해외로 도망치자 경찰은 수사를 중지했다. 김민균은 가상 인물 ‘김승호’를 내세워 사설 해외 선물 HTS에 회원들을 끌어들였다. 피해자들은 “피의자 한 명이 도망갔다고 국내 공범과 자금 흐름 수사까지 멈추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발했다. 지난달 15일 경기남부경찰청은 피해자 측에 “2024년 8월2일 피의자 김민균은 미국으로 출국했고, 출국 후 현재 연락두절되고 소재가 불명한 상태”라고 전했다. 교육방이 리딩방으로 이어 “김승호의 구글 아이디에 대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고 사이버 국제공조를 통해 가입자 내역을 회신받았으나, 인적 사항이 특정되지 않는 등 실존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따라서 피의자 김민균의 소재 발견 시까지 수사 중지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수사 부실을 주장했다. 사건의 핵심은 김민균의 도주가 아니라, 선물투자에 성공한 김승호라는 인물이 실제 존재했는지, 누가 그 계정을 운영했는지, 코인스쿨의 실제 운영진과 자금 흐름이 어디까지 연결됐는지라는 것이다. 이들은 “경찰이 김승호의 실존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코인스쿨 일당의 조직적 범행 가능성을 더 강하게 수사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코인스쿨은 처음부터 리딩방을 표방하지 않았다. 코인스쿨은 ‘공학도 출신 50억대 트레이더 권원재’라는 이미지를 앞세워 회원을 모았다. 권원재는 코인 강사이자 멘토처럼 등장했고, 회원들은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코인 매매를 배웠다.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투자를 맡기는 구조가 아니라 교육방이었기 때문에 의심이 적었다”고 했다. 수사가 시작되자 권원재는 실체를 드러냈고, 본명은 김민균이라고 밝혔다. 또 코인스쿨 내부에서 활동한 모범 학생 ‘하모닉우치’ 계정도 김민균과 동일 인물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피해자들은 “권원재는 친절한 선생님, 하모닉우치는 실력 좋은 졸업생처럼 역할을 나눠 연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럴싸한 외부 홍보가 코인스쿨을 합법적이고 검증을 받은 교육기관처럼 오인하게 만든 결정적 장치였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024년 3월28일 김민균은 법무법인 아리율에서 만난 피해자들 앞에서 “1인 다역을 했다”며 스스로 실토했다. 그는 “다들 아시지 않느냐. 권원재, 하모닉우치, 김민균은 동일 인물이다. 하모닉우치 계정은 제 본래 핸드폰”이라며, 코인스쿨 안에서 ‘친절한 멘토(권원재)’와 ‘고수익을 인증하는 열혈 졸업생(하모닉우치)’ 역할을 홀로 연기하며 회원들을 속여왔음을 자인했다. 권원재 본명 김민균으로 확인 투자 프로그램으로 리딩 사기 코인스쿨은 단순 오픈채팅방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이 받은 위촉증명서에는 소속 ‘교육 7기수’, 부서 ‘교육’, 상호 ‘비타민 주식투자’, 대표자 ‘오단혁’이 기재돼있다. 피해자들은 “코인스쿨은 김민균 개인이 취미로 만든 방이 아니라 상호와 교육 기수, 위촉 체계를 두고 운영됐다”고 말한다. 코인스쿨과 연결된 홈페이지에는 권준상·오단혁이 비타민 주식투자 대표자로 소개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외 홍보도 있었다. 권원재는 과거 보도자료성 기사에서 ‘전업투자자 양성 전문가’로 소개됐다. 법무법인 아리율과 자문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도 노출됐다. 피해자들은 “법무법인 자문 계약과 언론 홍보가 코인스쿨을 합법적이고 검증된 교육기관처럼 보이게 만든 장치였다”고 주장한다. 교육방 내부에서는 ‘졸업생 신화’가 만들어졌다. 코인스쿨 측은 “2023년 모든 기수를 통틀어 목표 금액 달성자와 10억원 이상 달성자 등 졸업자가 63명”이라는 취지로 공지했다. 일부 계정은 고수익 인증을 올렸다. “월 수익 억 단위는 평균” “300만원으로 300만원 벌었다” “3시간 동안 360만원 벌었다”는 식의 대화가 오갔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분위기가 회원들을 해외 선물 프로젝트로 유도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고 보고 있다. 앞서 김민균은 해당 교육방 공지를 통해 “시드 불리기 프로젝트는 소수만 진행하며, 하모닉우치와 참여한다”고 직접 바람을 잡았다. 이어 김민균이 운영하는 팀 소속(바람잡이)인 ‘양희철’ ‘김다름’ ‘만불챌린지’라는 유저 등이 총동원됐다. 이들은 “권원재만 따라하면 월 수익 억 단위는 평균”이라며 우상화 분위기를 조성했다. 피해자들과 만난 김민균은 “바람잡이들도 있었고, 과장되게 광고를 한 것은 진짜 저희가 잘못한 게 맞다”고 실토했다. 법무법인 회유 정황 사기 사건은 김승호라는 가상 인물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권원재는 2024년 김승호를 코인스쿨의 제자이자 해외 선물로 성공한 투자자로 소개했다. 단순히 이름만 언급한 것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은 “권원재가 직접 김승호의 카카오톡 계정을 전달해 주며 회원들에게 소개했다”고 주장한다. 김승호는 ‘시드 불리기 프로젝트’의 핵심 인물로 등장했다. 코인스쿨 교육방에서는 “신청만 오늘 1시까지 받는다” “추첨은 순차적으로 진행 중” “프로젝트 승률은 100%”라는 취지의 공지가 올라왔다. 참여 희망자에게는 기존 기수와 닉네임, 목표 시드, 프로젝트 진행 동안의 각오를 적게 했다. 피해자들은 “절박한 사람을 선별하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주장한다. 김승호는 프로젝트방에서 나스닥 선물 종목 NQH24, NQM24를 두고 매수·매도 리딩을 지시했다. “포지션: 대기” “포지션: 매수” “17540 부근 1계약” “17500 부근 1계약 추가 예정”이라는 식의 안내가 이어졌다. 또 다른 방에서는 “포지션: 매도” “2계약 추가” 등의 지시가 올라왔다. 피해자들은 “김승호의 리딩을 따라 들어갔다가 손실이 커졌다”고 주장한다. 손실이 커지자 김승호는 ‘담보금’을 강조했다. “든든한 담보금은 엄청난 수익금을 안겨준다” “청산되면 내 사비로 보상하겠다” “제발 안전한 담보금을 준비해 달라”는 식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피해자들은 이 대목을 ‘담보금 가스라이팅’이라고 표현한다. 손실 위험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추가 입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피해가 속출하자 고소인들은 김민균에게 “김승호 본명이나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공유해달라”고 강요했다. 이에 김민균은 “12월에 텔레그램을 통해 알게 된 사이다. 본명인지 가명인지 나도 모른다. 가진 것은 텔레그램 아이디뿐”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연간 수십억원의 수수료를 버는 코인스쿨의 수장이 투자금이 걸린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설계자 김승호의 인적 사항조차 모른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피해자들은 “김민균이 범행이 발각되자 모든 책임을 가상의 인물인 김승호에게 떠넘기기 위해 기획한 시나리오”라고 확신하고 있다. 선상 파티 호화 도피 가장 충격적인 쟁점은 피해자들이 이용한 거래 플랫폼의 실체다. 김승호라는 가상 인물이 배포한 HTS 프로그램은 공식 증권사를 흉내 낸 ‘이베스트프로(ebest pro)’였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이베스트프로 HTS는 정교한 인터페이스와 실시간 환율까지 표기하며 제도권 프로그램처럼 위장했으나, 안내란에는 “1원 인증 없이 가상계좌가 발급된다”고 명시했다. 금융 보안 절차상 정상 증권사라면 결코 쓸 수 없는 표현이다. 또 피해자들이 출금을 요구하면 “수수료 및 거래 횟수 30회~50회를 채워야 출금할 수 있다”는 독소조항을 걸어 출금을 원천 차단하고 추가 입금을 유도했다. 김민균은 교육 영상을 통해 이베스트프로 MTS·HTS 주문 창을 가리키며 “지정가 진입하고 정리하는 것 진짜 어렵지 않다”며 “진입할 때는 다른 것 다 보실 필요 없이 매수와 매도만 기억하면 된다”고 현혹했다. 차트 숫자와 매수·매도 열이 조작되는 ‘모의 투자’용 사설 서버 프로그램을 두고, 피해자들에게는 마치 실제 해외 선물 시장에 자금이 진입하는 것처럼 철저히 교습해 의심의 싹을 잘라낸 것이다. 인터넷 도메인 등록 정보(WHOIS)에 따르면 ‘ebestpro.org’ 도메인은 2024년 초 프로젝트 시작 전인 2023년 9월15일에 선제적으로 생성돼있었다. 애초부터 출금해 줄 생각 없이 가짜 사설 프로그램과 교육 영상까지 치밀하게 사전 기획해 배포했다는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법무법인 아리율도 조직적 개입 및 수습에 조력한 정황이 포착됐다.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개최된 대면 미팅에는 주범 김민균뿐만 아니라, 법무법인 아리율 ‘형사사건 전문 TF팀’ 소속의 박 모 사무장이 전면에 나섰다. 박 사무장은 피해자 대표들 앞에서 “저희는 이 친구(김민균)를 방어(변호)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명확히 선을 그으면서도, “우리가 경찰 조사 내용을 수시로 피드백 줄 테니 검증 대조할 시간을 한 달만 달라” “실제 피해자만 따로 모아 폐쇄적인 방을 새로 파고 기존 통합방은 폭파해라”라며 사태 축소와 피해자 분열을 종용했다. 피의자 도주로 멈춘 수사 남은 공범들 어디 숨었나 특히 박 사무장은 수사기관을 폄하하며 피해자들의 법적 대응 의지를 꺾으려 시도했다. 그는 “김민균이 사기치기 위해 만든 회사가 아니다. 멘털이 약해 자살할까 봐 아침저녁으로 통화한다”며 동정론을 유발했고, “경찰 조사를 받으면 100% 수사 중지가 될 것 같다. 사이트나 대포통장 주인은 어차피 못 잡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총 피해 추정 금액을 15억 안팎으로 잡고 재정 상태를 확인한 뒤 원금의 50~60% 선에서 합의안을 제시하겠다”며 구체적인 액수로 피해자들을 회유했다. 그러면서 “총 결정권자인 위에 형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은 사람을 안 믿는다. 만약 고소가 계속 진행된다면 그분은 저를 위해 돈을 쓰실 거고, 저희가 ‘관여 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계속 돈을 쓰실 것”이라며, “고소를 계속하면 단 한 푼도 보상받지 못할 것”이라는 노골적인 협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피해자들은 사건 발생 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승호가 가상 인물이라는 취지의 설명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경찰도 김승호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김승호가 유령이라면 코인스쿨 측이 모든 혐의를 그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만든 시나리오 아니냐”고 반발했다. 또 코인스쿨 측은 “우리도 김승호에게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민균은 피해자들에게 “김승호를 함께 고소하자”고 제안하는 대담함을 보였다. 마치 코인스쿨도 피해자인 것처럼 꾸며 완전범죄를 만들려고 한 것이다. 피해자들은 경찰의 초동수사에 대해 비판했다. 고소인 측 대표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에서 “초동수사를 맡았던 김모 경위의 대처 미흡과 부실 수사, 직무유기로 인해 김민균의 해외 도주가 가능해졌다”며 “김민균이 해외 도주를 준비 중이라고 계속 알렸고 출국금지 필요성을 호소했지만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 초기부터 제대로 수사하라고 계속 추궁했다. 김민균이 도주하면 사건이 유야무야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김민균은 돌아오지 않았고 사건은 멈췄다. 해외로 도피한 김민균의 행적도 피해자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김민균은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겟(Bitget) 행사에 참석하고 VVIP 웰컴 기프트와 요트 파티 사진을 SNS에 올렸다. 수사 중지 끝난 사건? 제보자에 따르면, 코인스쿨 일당들의 최종 접속 IP 주소는 국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일대로 확인됐다. 김민균이 도피 후에도 국내에서 자금을 세탁하고 서버를 관리하는 공범 세력이 실존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국내의 ‘진짜 몸통’과 배후 세력에 대한 강제수사가 시급하다”며 “김민균이 도망쳤다면, 분당에서 서버를 돌리며 우리 돈을 삼킨 진짜 몸통은 누구인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