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왕열보다 더 나쁜 ‘2조 도박왕’ 추적기

여전히 호의호식…알고도 못 잡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오혁진 기자 = 거실 한가운데 5만원권 현금다발이 산처럼 쌓여 있다. 수사기관은 현금 규모가 500억원이 넘는다고 판단했다. 압수된 현금 주인은 필리핀 등에서 2조원대 규모의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를 받는 한창훈이다. 수사기관은 필리핀에서 잡힌 한창훈을 송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그는 베네수엘라로 국적을 변경하고 필리핀에 수감됐다.

필리핀 국가수사국(NBI)은 지난해 2월25일 한국 검찰과의 공조를 통해 한창훈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한창훈은 2014년 12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온라인 불법 도박 사이트 23개를 운영하며 약 2조원 규모의 도박 자금을 송금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마린시티
500억 탑

검찰은 이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수익 약 2000억원이 조직적인 자금세탁을 통해 은닉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범죄수익 가운데 상당한 자금이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대부업체 등으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부산지방검찰청은 지난 2024년 대규모 자금 세탁 조직을 적발하면서 한창훈 조직의 실체 일부를 밝혔다. 도박 사이트 조직원은 검거됐지만, 정작 총책인 한창훈은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검찰은 5년 넘게 그를 추적해 왔다. 그는 자금 세탁 용도로 타이어 회사를 약 140억원에 인수하는 등 범죄수익 2000억원을 은닉해 국민체육진흥법 및 범죄수익은닉법을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부산지검은 같은 해 12월 초 한창훈의 연인으로 알려진 인플루언서인 김모씨의 필리핀 입국 정보를 제공했다. 검찰에서 파견된 수사관이 김씨의 숙소를 파악하고, 세부에서 한창훈을 검거했다. 김씨와 한창훈이 함께 데이트하는 장면 등을 국가정보원이 포착하기도 했다. 5년6개월 간 도피한 끝에 잡힌 것이다.

NBI 등은 한창훈을 인계하는 과정에서 총격 사건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창훈이 세부 경찰을 매수하면서 NBI와 국정원 등에 실탄을 발사하도록 한 것이다. NBI는 교섭 끝에 가까스로 한창훈을 필리핀 이민국 비쿠탄 구금센터로 이송했다.  

제보에 따르면, BDC에 수감됐던 한창훈은 보석금으로 한화 약 150억원을 내고 풀려났다. 특히 필리핀 정부가 제공한 은신처에 숨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한창훈은 2019년 5월 필리핀으로 도피한 후 2020년 2월 베네수엘라 국적을 취득했다. 내부 조직원의 신고로 수사망이 좁혀오자 이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해당 조직원은 지난 2021년 인천지방검찰청에 한창훈을 고소했다. 조직원 A씨는 “수사기관에 도박 사이트 이용객 정보를 탈취, 제공하다가 한창훈에게 걸리면서 폭행당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A씨는 한창훈을 폭행, 협박, 도박장 개장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를 결심했다고 한다.

국내 최대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검찰 확인 범죄수익만 2000억원

<일요시사>가 확보한 A씨의 진술 조서에는 그가 2021년 2월부터 8월까지 한창훈 조직에 소속돼 다수의 도박 사이트 운영 업무를 수행했다고 적혀 있다.

A씨는 법정에서 “입·출금 내역 자료와 관리자 페이지를 확인하며 회원들의 입금액과 베팅 금액, 수익금 지급 여부 등을 관리했다”며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관리한 사이트 수가 20개가 넘었다고 증언했다. 

A씨는 “한창훈의 조직은 최소 23개의 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다. 사이트마다 규모 차이는 있었지만 개인 사이트 기준 회원 수는 약 1000명 수준, 일 베팅 금액은 수억원대, 월 수익금은 수십억원 규모였다”며 “일부 사이트는 최소 베팅 금액이 3만원 수준이었고, 최대 베팅 금액은 수백만원에 달했다”고 했다.

A씨는 2021년 2월부터 8월까지 경기도 소재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해당 사무실에는 조직원 수십명이 근무했다. 입금 확인과 충전 업무, 회원 응대, 관리자 페이지 관리 등의 업무가 분담돼있을 정도로 조직적이었다.

조직이 사무실을 이전하는 과정도 계획적이다. 그는 “수사기관 단속을 우려해 사무실을 다른 장소로 옮긴 적이 있다”며 “이전 과정에서 기존 자료들이 옮겨졌고, 이후에도 도박 사이트 운영은 계속됐다”고 말했다.

A씨는 법정에서 자신이 운영자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당시 운영자가 누구였느냐”고 묻자 그는 “나는 관리자 역할을 수행했을 뿐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만 조직 내에는 운영 책임자와 관리자, 충전 및 정산 담당자 등이 별도로 존재했으며, 여러 명이 역할을 분담하는 구조였다고 반박했다.

한 사장과
부산 식구들

또 검찰이 제시한 증거 사진 속 인물들에 대해서도 한창훈을 비롯해 일부 조직원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함께 근무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한창훈이 검거되긴 했으나 국내 송환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베네수엘라 국적을 취득한 한창훈은 단순한 한국인 도피 사범과 달리 국적 문제가 얽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 범죄인 인도는 한국 검찰이 요청한다고 자동으로 이뤄지는 절차가 아니다.

필리핀 법원의 심사를 거치고 한창훈이 각종 이의신청과 법적 대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에서도 한창훈이 베네수엘라 국적을 근거로 송환 반대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일각에서는 과거 필리핀에서 송환된 ‘마약왕’ 박왕열 사례처럼 송환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실제 필리핀은 범죄인 인도 외에도 이민법 위반이나 체류 자격 문제를 근거로 외국인을 강제 추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한창훈은 베네수엘라 국적 취득 이력이 있는 만큼 일반적인 한국인 도피 사범보다 송환 절차가 복잡할 수 있다.

법무부 국제형사과에 몸담았던 한 검찰 관계자는 “NBI 체포와 비쿠탄 수감까지 이뤄진 만큼 법조계에서는 송환이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송환되느냐가 핵심”이라고 봤다.

수사 초기 검찰이 확보한 사진에는 5만원권 현금 다발 수십만장이 해운대 마린시티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거실에 쌓여 있었다.

동업자
장씨는?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김보성 전 부산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현금 다발을 가로·세로·높이로 계산해 봤더니 500억원을 훨씬 초과하는 규모였다”고 밝혔다. 사건 주임검사였던 이홍석 검사도 “처음 봤을 때는 조작된 사진인 줄 알았다.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 돈은 한창훈이 필리핀 서버를 이용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 과정에서 벌어들인 범죄수익 일부였다. 이용자들이 입금한 돈은 수백개 대포통장으로 분산된 뒤 전국 ATM을 돌며 현금을 인출하는 방식으로 세탁됐다. 인출책들은 매일 수억원씩 현금을 뽑아 자금 세탁 조직에 전달했고, 이 돈은 다시 부동산과 슈퍼카, 미술품, 법인 인수 자금 등으로 형태를 바꾸며 세탁됐다.

한창훈 조직은 약 470억원 상당의 고급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부가티 시론 1대와 페라리 2대 등 약 50억원 상당의 슈퍼카를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압수 당시 발견된 부가티 시론은 시가 약 45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수사 과정에서는 범죄에 가족들까지 동원된 정황도 드러났다. 운영 총책 한창훈의 가족과 자금 세탁 조직원들의 배우자, 장모, 부모 등이 범죄수익 은닉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창훈 조직은 수사망을 피하고자 치밀하게 움직였다. 검찰 압수수색이 시작되자 수십억원대 슈퍼카를 지인 명의 오피스텔 주차장으로 빼돌렸다. 또 핵심 조직원이 소환되자 해외로 도피시키며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더 놀라운 것은 수사기관 내부 상황까지 파악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 검사는 “조직원들에게 검사 인사가 있는 2월까지만 해외에 나가 있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었다”며 “대형 로펌 여러 곳을 선임해 수사기관 내부 사정을 파악하려 했다”고 밝혔다.

내부 폭로자 등장, 겁먹고 국적 변경
베네수엘라 국적 취득…송환 불투명

조직의 계산은 빗나갔다.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검사가 인사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수사는 계속 이어졌고, 결국 핵심 조직원들이 잇따라 검거됐다. 검찰은 1년 동안 450개가 넘는 계좌를 분석하며 범죄수익 흐름을 추적했고 특정된 범죄수익 550억원 가운데 약 97%를 압류·추징 보전하는 데 성공했다.

한창훈 사건의 자금 세탁을 도운 동업자 장모씨도 재조명되고 있다. 장씨는 인터넷 방송업계에 거액의 후원금(별풍선)을 지출한 인물로 유명하다. 한창훈의 불법자금이 별풍선으로 BJ에게 입금되고, 이를 다시 장씨가 현금으로 돌려받는 형태다.

제보자에 따르면 과거 인터넷 방송 플랫폼에서 ‘예비회장’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장씨가 한창훈의 도박 사이트 지분에 참여하는 등 사업적으로 연관돼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장씨는 온라인 광고를 통해 도박 사이트를 광고하며 이용자를 끌어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장씨는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약 17억원 상당의 별풍선을 후원했다. 당시 일부 BJ들은 장씨의 후원에 힘입어 별풍선 순위 상위권을 기록하기도 했다.

제보자들은 장씨의 자금 출처와 관련해 의문을 제기한다. 검찰은 한창훈이 과거 검거됐던 세부 지역에 체류 중이라고 의심 중이다. 한창훈 검거 이후 장씨를 비롯한 관련 인물들에 대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장씨는 지난 2021년 아프리카TV 게시판에 “이제는 제가 떠나도 될 듯해 저는 이만 일상으로 돌아가려 합니다”라며 자취를 감췄다. 한창훈이 베네수엘라 국적을 취득한 지 1년여 만이다. 당시 일부 유명 BJ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연예계
돈세탁?

금융당국은 상품권을 유튜브 후원이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의 별풍선처럼 사용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언급하며 대규모 거래 가능성을 의심한다. 이 밖에 한창훈의 범죄수익금이 모 엔터테인먼트 회장 C씨에게 흘러간 것으로 보고 있다. C 회장의 지인이자, 부산 조직폭력배 관계자인 여모씨가 한창훈의 자금을 1차로 받아 C 회장에게 투자 형태로 흘렀다는 의혹이 골자다.

C 회장이 비서를 통해 여씨 측 자금을 수령했다는 취지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도 드러났다. 수사기관은  C 회장과 여씨 사이에 있었던 금전거래와 자금 세탁 의혹에 대해 수사할 방침이다. 여씨는 강남에 위치한 B 시계 상점 대표자이자 10여개 이상 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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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더 독해진 송영길 역할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미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은 김민석 전 국무총리에게 쏠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정청래 고립 작전’에 힘을 쏟고 있다. 친정청래계의 십자포화를 견디면서까지 존재감을 키우는 그의 의도는 무엇일까? 오는 8월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가 다가올수록 당의 내홍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지난달 대표직 사퇴 이후 사실상 연임을 선언한 정청래 전 대표는 ‘민주당 전통성’을 부각시키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노사모(노무현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출신인 점 등을 강조하면서 친문(친 문재인) 진영의 표심을 흡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타깃은 한 명뿐 그런 정 전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우는 건 또다른 후보군인 송영길 의원이다. 송 의원은 초반부터 매섭게 정 전 대표를 몰아세우며 그의 적통성 행보를 차단하고 나섰다. 송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전 대표가 친노(친 노무현)·친문 등 정체성을 부각한다”는 진행자의 말에 “그는 완전히 노무현 대통령과 등을 져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며 “다른 분이면 몰라도 정 전 대표는 (친노의) 적통성을 따질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2002년 노사모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정당 ‘정정당당 추진위원회’을 꾸리면서 정치에 입문했지만, 2007년 노무현정부와 대립각을 세운 열린우리당 정동영 당시 의장(현 통일부 장관)과 더 가깝다는 평이 나오면서 적통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정 전 대표는 “이렇게까지 하느냐. 100% 허위 사실”이라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고, 송 의원은 “당일 정 전 대표를 본 기억이 없어서 (노 전 대통령) 장례식에도 참석도 못했다는 말을 했다”며 사과의 뜻을 건넸다. 송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제 발언의 요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우리는 모두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사실이다. 다시 이런 비극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께서 한미 FTA를 추진할 때 민주당 대부분 의원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 선봉에 (당시) 정청래 의원이 있었다”며 또다른 논란을 꺼내 들었다. 이는 친청(친 정청래)계와 친명(친 이재명)계 간의 계파 대리전으로 번졌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이제는 한미 FTA 찬반까지 끌어와 당 대표 경선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이런 편파적 파묘 안 하시면 안 되느냐”고 지적했다. 이어 “갈등은 필연이지만 팩트로 논쟁하자”며 “적통 논쟁도 하지 말자. 지금은 AI시대”라고 말했다. “네가 친노?” 20년 전 사건까지 파묘 거세게 몰아치는 ‘정청래 고립 작전’ 최 의원은 송 의원의 ‘사당화’ 주장에도 반박했다. 앞서 송 의원은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려면 할 일이 많은데 우리 민주당은 운동장을 너무 좁게 쓰고 있다. 정 전 대표 측근 아니면 당무에서 거의 배제되고 최고위원도 자기들끼리만 한다”며 사당화를 도마 위로 올렸다. 이에 대해 최 의원은 “송 의원이 정 전 대표를 비난하면 기다렸다는 듯 재래식 언론이 줄줄이 보도한다. 민주당이 극복한 ‘문모닝(하루를 문 대통령 비판으로 시작한다)’의 악몽이 되살아나려 하는데 막을 사람이 바로 송 의원”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한가운데에 선 정 전 대표는 “소모적 적통 논쟁을 하지 말자”며 싸움을 그만둘 것을 제안했다. 그는 “저는 제 입으로 적통의 적자도 꺼낸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위대한 대통령 누구의 적통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정 전 대표는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했고,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좋아했다”며 “이재명 대통령과는 동지이자 전우로 윤석열 검찰독재정권의 폭압을 함께 뚫었다. 12·3 불법 비상계엄 내란의 밤 때는 목숨 걸고 국회 담장을 넘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렇게 말한 것이) 뭐가 문제가 되냐”면서 “제 입으로 말하지도 않은 것을 상상하고 비틀어서 ‘적통이네 아니네’ 하는 언론의 프레임에 맞장구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달 초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분위기가 한층 누그러졌다는 평이 나온다. 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찬 회동을 하며 지지자 간의 갈등 봉합을 시도했고, 보안수사권 폐지 역시 정부가 먼저 치고 나오면서 논란을 잠재웠다. 퇴로까지 끊었다 정 전 대표의 전당대회 필살기가 사라졌다. 여기에 친문 의원들조차 “하늘에 계신 분들이 (정 전 대표의 적통성을) 인정하겠나” 등 표현으로 거리를 두면서 고립 직전에 놓였다. 정 전 대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송 의원의 여론전도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송 의원은 정 전 대표에게 힘을 싣는 여의도 밖 스피커와도 각을 세우고 있다. ‘ABC론’ ‘증축·재건축론’ 등을 주장한 유시민 작가를 향해 “간신은 주군 옆에서 권력을 독점해 똑똑하고 새로운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유 작가는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열렬히 지켜주고 응원했던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증축이었는데, 대통령은 재건축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자신감이 지나쳤던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민주 진영 코어 지지층이 바란 것은 중도·보수로의 ‘증축’이지만 이 대통령은 원주민(코어 지지층)과 상의 없이 ‘재건축’에 나서 이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증축·재건축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송 전 대표는 YTN <장성철의 뉴스명당>에 출연해 “충신은 자기 주군의 성공을 위해서 더 똑똑한 사람, 새로운 사람을 계속 영입한다”며 유 작가의 주장을 반박했다. 연일 송 의원의 견제가 이어지고 있지만 강성 지지층의 두터운 지지를 받는 정 전 대표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김민석 전 총리와 송 의원 둘 중 누구든 결선에 진출해 ‘반 정청래’ 전선을 꾸리는 것이 1차 목표라는 설명에 힘이 실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송 의원은 당 대표를 하겠다는 열망보다 정 전 대표를 막겠다는 열망이 더 강해 보인다”고 봤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을 개별 후보가 아닌 김 총리의 페이스메이커로 보는 분위기다. 명심을 등에 업은 김 총리가 거칠게 나올 경우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송 의원이 ‘정청래 저격수’ 역할을 자처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오래전 큰 그림 송 의원의 의중과 상관없이 두 사람의 단일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전당대회서 정 전 대표에게 유리한 것으로 알려진 1인1표제가 적용되는 만큼 김 전 총리와 송 의원이 손을 잡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유에서다. ‘김민석+송영길 대 정청래’ 구도로 선거를 치른다면 압승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서는 전당대회에 출마한 송 의원이 가장 주목을 받는 시점에 김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선언한 후 사퇴하는 시나리오도 점치고 있다. 자신의 지지층 결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뒤 물러서는 방식으로, 이럴 경우 확실한 1 대 1 구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통해 체급을 키운 뒤 청와대에 외교부 장관 등 자신이 희망하던 자리를 요구하지 않겠냐는 해석도 나온다. 국회 입성 이후 송 의원의 외교부 장관 입각설 등이 꾸준히 나오는 것 역시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동안 송 의원은 자칭타칭 ‘외교 전문가’로 이름을 알려왔다. 그는 문재인정부 당시 러시아 특사를 지냈으며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과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초기 위원장을 지냈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꾸준히 외교·통일 정책 비전을 밝혀왔다. 지난 2월 복당을 앞둔 때에는 향후 외교 분야에서 역할을 맡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부산 벡스코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과 북극 항로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민주당 부산시당 주최 특강에서 “러시아와 미국 등 외교 현안에서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송 의원은 러시아와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현재 한국은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에 더 가까운 입장”이라며 “전쟁 중이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극 항로를 열기 위해서는 실용주의 외교가 필요하다”며 이정부의 실용주의 노선과 궤를 같이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활발한 외교 행보를 보였다. 지난달 24일 조정식 국회의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 출국길에 올라 전방위 외교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송 전 의원은 미국 워싱턴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와 미 의회 지도부와 연쇄 면담을 갖고, 북핵 문제와 경제 제재 예외 조치 등 한미 간 주요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당 후 역할은…” 마음은 다른 곳에?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이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송 의원이 이 대통령의 서면 축사를 대독에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 신지호 전 의원은 송 의원이 “양손에 떡을 다 쥘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이같이 주장하며 “누군가 송 의원에게 ‘너 외교부 장관 할래, 당 대표 할래?’라고 묻는다면 바보가 아닌 이상 당 대표라고 답한다. 이번에 당 대표가 되면 공천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라며 “(선거를) 하다가 여의치 않을 경우 외교부 장관으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이런 것들이 또 외교부 장관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될 수 있다. 지금 양쪽 접근을 다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리한 지점에 서 있는 만큼 송 의원의 당권 레이스 완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1년 치러진 전당대회서 당선된 경험이 있는 만큼 이미 민주당에 조직 기반이 있다는 점에서다. 최근에는 경남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당원 등 100여명이 모여 ‘8·17 전당대회, 응답하라 송영길!’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송 의원의 출마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금 대한민국은 대내외적으로 복합적인 위기와 갈등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며 “이런 시대일수록 국정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당을 하나로 묶어낼 검증된 지도력이 절실하다. 송영길 의원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가장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치적 경험과 국가 운영 능력을 갖춘 인물”이라며 평가했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은 8월 전당대회와 관련해 “제가 아는 송영길 의원은 (김 전 총리를 위한) 페이스메이커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누구든지 1등을 하기 위해서 나가고, 만약에 결선투표로 간다면 1등, 2등 해서 결선에 가서 이기겠다는 생각일 것”이라며 “송 의원이 누구를 위해서 자기가 페이스메이커로 나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손에 쥔 꽃놀이패 송 의원 역시 본인이 김 전 총리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는 분석에 대해 “후보자들은 일종의 면접시험을 보고 있는 것이고 인사권자인 당원들께서 판단하실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결선투표 제도가 없다면 단일화 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전당대회는 제도적으로 결선투표제가 있다”며 완주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만일 송 의원이 전당대회를 완주한다면 정 전 대표와 청와대라는 양강 구도에 변수가 된다. 그의 선택에 따라 이번 전당대회 판세가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그가 페이스메이커가 아닌 ‘게임 체인저’로 바뀔지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의도 복귀 김민석, 전대 신호탄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당권 경쟁자인 정청래 전 대표를 겨냥해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 굳이 (대표를) 두 번 할 필요나 필연성은 지금 발견하기 어렵다”고 직격했다. 총리직에서 퇴임해 여의도에 복귀하자마자 이같이 밝힌 김 전 총리는 유튜브 채널 ‘오마이TV’가 공개한 영상에서 “이제는 정청래 전 대표와 다른 색깔, 역량, 스타일, 장점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로 (정부 출범 후) 최초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당의 역할 폭과 숙제 크기가 더 넓고 커지고 강해졌다. 이제 당이 더 본격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당이 어떻게 가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최대한 반영하고 싶다”며 “대한민국 역사의 황금시대 도래, 그 첫 장을 이재명정부가 열고 있다고 보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일에 모든 걸 다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올해 초 정 전 대표가 시도했다가 무산된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도 꺼내들었다. 김 전 총리는 “그것(합당)을 풀어가는 데 문제 제기와 과정이 잘못돼서 일을 그르쳤다고 본다”며 “같은 세력은 통합하고 다르면 연대하고, 통합과 연대와 확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통합을 할 것이냐 연대를 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혁신당이 스스로 명확하게 판단하고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