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몰아낼 오싹한 공포물 열전

시원하게 팝콘 좀 쏟아볼까?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살목지>가 때 이른 서늘함으로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다. 누적 관객 수 323만명.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장화, 홍련>을 23년 만에 넘어, 국내 공포영화 흥행 기록 1위로 올라섰다. 이 기세에 합승하려 진짜 여름 영화들이 시동을 걸고 있다.

공포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은 ‘팝콘’ 얘기를 종종 한다. 무서울 때마다 놀라서 팝콘을 엎거나 쏟았다며 호들갑을 떠는 식이다. <군체> 개봉 전까지 이런 영화관 팝콘 수익은 <살목지>가 대부분 가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 개봉해 314만 관객을 끌어들인 <장화, 홍련>은 국내 공포영화계 전설로 회자된다. 전개도 부족함 없이 깔끔하고, 배우들이 연기하는 방식과 영상미도 탁월하다. 오죽하면 부동하는 공포영화 1위 자리를 20년이 넘도록 유지했을까.

체험형
<살목지>

2000년대 중반부터 공포영화의 시장 전망이 암울하다는 기사가 종종 나왔다. <장화, 홍련>은 물론 “내 다리 내놔”로 유명한 KBS <전설의 고향>을 능가할 만한 공포물은 좀처럼 나와주지 않는다는 실망감을 토로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곤지암>이 2018년 개봉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역대 공포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체험형 공포’가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평이 다수였다. 이때부터 공포영화가 예전처럼 꾸준하게 극장가에 얼굴을 디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8년이 더 지나고, 올해 <살목지>가 <장화, 홍련> 기록을 깨부쉈다. 개봉 7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고, 33일 만에 관객 300만을 넘어섰다. 신선한(이라고 쓰고 ‘아직은 신인인’이라고 읽는) 배우들이 참여해 새로운 공포 연기를 보여준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30억원 규모, 비교적 저예산 영화라는 점 역시 수익 창출에 이바지했다.

‘살목지’는 실제 충청남도 예산군에 자리한 저수지 이름이다. 이미 귀신이 나오는 낚시터로 유명하던 곳을 다뤘다는 이유로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최근 공포영화가 갖추는 요소가 바로 일상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기술. <살목지> 역시 ‘로드뷰’ 화면을 소재로 삼아 흥행에 성공했다.

‘로드뷰에 찍힌 귀신’은 생활 밀착형 공포를 자극한다.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기술에,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함을 덧대 그린 공포다.

살목지 저수지에는 기이한 소문이 돈다. 촬영한 적 없는 정체불명 형체가 로드뷰 화면에서 포착되고. 반드시 당일에 재촬영을 끝내야 해 PD 수인(김혜윤 분)과 촬영팀이 살목지로 향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재촬영이 시작되자 행방이 묘연했던 선배 교식(김준한 분)이 등장하더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며 촬영팀은 점점 공포에 빠져든다. 공포영화 특유의 장치들이 긴장감 밀도를 높여간다.

영화 소개 페이지에서 “거긴, 절대 살아서는 못 나와”라 해서였을까. 영화를 본 이들이 살목지 저수지를 직접 탐방하며 인증에 나섰다. 한 편의 영화가 작은 저수지를 공포 체험지인 동시에 인기 여행 코스로 바꿔버린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달라진 소재
익숙한 디지털 기술과 맞닿은 공포

영화관에서 나오자마자 내비게이션을 켜고 ‘살목지’를 찾아본다는 관객이 한둘이 아니라더니, 한밤중에 살목지에 찾아가 찍은 사진으로 ‘인증’ 콘텐츠를 만들고 SNS에 올리는 이들 역시 늘었다. 예산군청이 야간 조명 시설과 순찰 인력을 확충했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한여름에 닿기 전, 봄에 개봉한 <살목지>는 이제 쿠팡플레이, Waave(웨이브), WATCHA(왓챠) 등 OTT에 풀려 안방극장에서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수능 귀신’에 맞서는 MZ 교생의 호러블리 코미디”라는 한 줄 설명만으로 벌써 흥미진진해지는 영화 <교생실습>. 지난달 13일 개봉 이후 호평을 받고 있다. 김민하 감독이 2014년 선보인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이후 이야기를 담아 꾸렸다.

엄청난 포부와 사명감을 가지고 모교에 부임한 교생 은경(한선화 분). 흑마술 동아리 ‘쿠로이 소라’에서 활동하는 세 학생을 만나며 공포를 연다. 모의고사 전국 1등을 놓치지 않는 이들의 비결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일본 요괴 이다이나시(유선호 분)에게 흑마술로 영혼을 바치는 대가로 언어·수리·외국어 영역 모의고사 전국 1등을 놓치지 않는다. 영혼을 판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은경은 이다이나시와 결투하기로 다짐한다. 이 과정에서 단계별로 귀신을 마주하며 문제를 푼다.

문제를 풀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정은, 게임을 하며 ‘미션’을 ‘클리어’하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교권과 사교육 등 사회 문제를 짚어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12세 이상 관람가인 만큼, 팝콘 쏟을 일은 거의 없겠지만 소소한 재미만큼은 분명 얻을 수 있다.

학교라는 일상 공간을 중심으로 청소년 괴담과 오컬트를 추가했다는 면을 높게 산다는 평이 나온다.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작품상과 배우상 등을 수상했다. 원한다면 이번 주말에도 극장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올해 스무살인 케인 파슨스 감독 영화 <백룸>이 개봉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더니, 월드와이드 박스오피스 정상 역시 밟고 섰다. 그는 역대 최연소 박스오피스 1위 감독이라는 타이틀까지 따냈다.

<백룸>은 노란 벽과 끝없는 형광등으로 구성한 기이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마주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수능 귀신
제3 공간

주인공은 가구 쇼룸 지하실에서 발견된 ‘이상한 문’을 통해 현실과 단절된 미지의 공간 ‘백룸’으로 들어간다. 노란 벽, 끝없는 복도, 형광등, 윙윙거림이 자아내는 제3 공간(리미널 스페이스, Liminal Space). 이곳에서 인물들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공간도 뒤틀리고 기억마저 뒤틀리며 공간에 휘말린다.

주요 등장인물은 가구 판매장 점장 클락(추이텔 에지오포 분)과 그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심리치료사 메리(레나테 레인스베 분)다. 클락은 건축가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아 이혼했다. 사업도 잘되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상담을 받게 되는데, 이때 상담해 주는 사람이 바로 메리다. 클락은 가구 판매장에서 자다가, 벽을 통과하면 노란 장판으로 이뤄진 방이 계속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방을 조사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 흥행 비결로 Z세대를 관통하는 플롯을 꼽는 이들이 많다. 유튜브 영상과 로블록스 게임 등으로 온라인에서 백룸 밈을 친숙하게 접해온 Z세대에게 걸맞은 방식으로 영화를 풀었다는 것.

유명 배우를 섭외하거나 일반적인 옥외 광고를 거는 대신 기괴하게 텅 빈 공간만 보여주는 맛보기 영상에 힘을 쏟았다. <백룸> 미국 관객 86%가 35세 미만이라는 점에서 Z세대 공략법이 잘 먹혀들었음을 읽을 수 있다.

“시작은 호기심이었다”로 시작해 “당신도 입장하시겠습니까?”로 끝나는 영화 설명이 인상적이다. 현재 상시 상영 중이라 원한다면 언제든 <백룸>에 입장할 수 있다.

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초청작이 한 편 더 개봉한다. <신사: 악귀의 속삭임>은 오는 17일이 예정일이다. 미대 출신 박수무당 명진(김재중 분)이 등장하는 샤머니즘 오컬트 호러 영화다. 영화 전체분을 일본 고베에서 촬영해 화제가 됐다.

김재중이 오랜만에 나선 스크린 복귀작이라는 점에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가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2012년 송지효와 주연했던 영화 <자칼이 온다> 이후 무려 14년 만이다. 일본에서 김재중이 갖는 인지도가 섭외에 영향을 줬다고. 그가 방울을 흔드는 박수무당 역할을 하는데, 스틸 컷으로 볼 때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명진은 어느 날 악몽을 꾸던 중 대학 후배 유미(공성하 분)의 전화를 받고 일본 고베로 향한다. 고베에 있는 폐신사에 답사차 떠난 대학생 세 명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파헤치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악귀를 마주하는 명진은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일본 악귀
실명 유전병

명진과 한주(고윤준 분)가 만나는 장면이 감상 포인트다. 명진은 한국 무속을 통해 사건을 추적하고, 한주는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악에 맞선다. 영화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지닌 고유한 문화화 공포가 맞닿는 지점을 보여준다.

박수무당으로 분한 배우 겸 가수 김재중, 대학교 후배 유미로 분한 공성하, 목사 한주 역을 맡은 고윤준이 좋은 합을 보여준다. 폐신사에서 마주하는 기이한 현상들을 빠른 속도로 전개하며 오컬트 장르 특유의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이 작품은 <요코의 여행>으로 상하이국제영화제 3관왕을 차지한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이 연출한 첫 한국 영화다. 가즈요시 감독만이 갖는 독특한 영상미도 영화 재미에 한몫할 듯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염병과 희귀병 역시 디지털 기술 못지않은 친숙하고도 강렬한 공포영화 소재가 됐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눈동자>가 희귀병 공포를 몰고 올 예정이다.

<눈동자>는 정통 서스펜스 스릴러다. 유전병으로 시력을 차츰 잃어가는 서진(신민아 분)이 쌍둥이 동생 서인(신민아 분)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파헤치다가 그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는 내용. 주인공의 시각 장치를 활용해 감각적 긴장감을 완성했다.

점점 흐릿해지는 시야를 뚫고 사건을 추적하는 서진이 몰아붙이는 공포가 영화 핵심이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주인공 시점에 몰입하며 극한에 달하는 긴장감을 경험한다. 신민아는 이 역할을 소화하느라 눈동자를 움직이는 연습을 많이 해 두통이 생길 정도였다고.

신민아는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와중에 누군가에게 쫓기는 공포가 흥미로웠다고도 했다. 그런 모습을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이 궁금해 도전하게 됐다고. 그는 극 중 캐릭터가 느낄 답답함과 안 보이는 데 따른 공포감을 살리려 노력했다고 하니,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겠다.

강렬한 음향과 감각적인 편집은 공포심을 더욱 자극한다. 작은 기척, 숨소리, 제한된 시야 속에서 포착되는 형체들까지 섬세하게 담아내 긴장감을 만들려 했다는 것이 제작진 후일담. <눈동자>는 오는 24일 개봉한다.

기이한 사건 따라가는 체험형부터
외계인 추적하는 액션 스릴러까지

올여름 개봉 기대작이라고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단연 나홍진 감독 영화 <호프>를 꼽겠다. 엄밀히 따지자면 영화 분류 방식으로는 SF이고 배급사에서는 액션 스릴러로도 설명하고 있으니, 정통 공포영화라고 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호프>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6분여간 기립박수 세례를 받은 것으로 유명해졌다. 수상은 불발했지만, 천문학적 홍보 효과를 거뒀다고 전해진다.

호재에 힘입어 <호프>는 한국 영화 해외 선판매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투자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는 “해외 선판매만으로 순제작비 절반 수준에 달하는 금액을 조기 회수했다”고 밝혔다.

한국 영화 역사상 최대 규모인 500억원대 제작비가 투입됐다. <호프>가 향후 한국 영화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짐작하게 하는 가늠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호프>에는 마이클 패스벤더와 알리샤 비칸데르 등 할리우드 배우, 국내 흥행 보증 수표로 알려진 배우 황정민과 조인성 등이 참여했다. 고립된 항구마을에서 일어난 의문스러운 공격에 맞서는 주민들 이야기를 다룬다.

1980년대 비무장지대(DMZ) 호포항 마을 외곽에서 미지의 존재(알려진 바로는 외계인)를 목격하고 그 실체를 수색하는 과정이 영화에 담겼다. 출장소장 범석(황정민 분)은 어느 날 마을 청년들로부터 동네 어귀에서 호랑이를 봤다는 얘기를 듣는다.

조인성은 사냥꾼 성기를, 정호연은 경찰 성애를 연기한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들이 외계인을 쫓고 덤비며 사투를 벌인다.

정보가 많지 않으니, 칸 영화제 이후 외신 반응부터 우선 살피는 것도 좋겠다. <할리우드 리포터(The Hollywood Reporter)>는 “10년 만에 나온 <호프>는 나홍진 감독의 전작들을 준비운동으로 보이게 한다. 2시간40분 동안 아찔하게 페달을 밟는다”고 분석했다.

이 러닝타임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 <버라이어티(Variety)>는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는 우려에 덧붙여 “나쁜 CG(컴퓨터그래픽)와 외설적인(bawdy) 농담”이라고 짚었다. 또 “외계 괴물 디자인은 구식 비디오게임 같은 느낌이 난다”고도 했다.

“영화 전체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추격전인데, 그 추격전이 정말 대단하다. <호프>는 할리우드가 만든 어떤 동종 영화보다도 더 할리우드적”이라고 전한 곳은 <데드라인(Deadline)>이다.

칸 화제작
<호프> 주목

<스크린 데일리(Screen Daily)>는 “나홍진은 안전한 선택을 거부했다. 잔혹하고 기괴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칸 영화제 측은 “무지가 재앙의 씨앗이 되고, 인간 사이 갈등을 거쳐 우주적 규모의 비극으로 치닫는다”는 문구로 <호프>를 설명했다. 어렵게 들리긴 하지만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는 장면도 있다고 하니, 여기에 희망을 걸어본다. 영화는 7월 중 공개 예정이고 날짜는 미정이다.

<younm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김민석 ‘이재명 그늘’ 득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김민석 전 국무총리의 출마 선언을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가 막이 올랐다.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 동반자임을 거듭 강조하며 당심에 호소하고 있다. 김 전 총리에게 쥐어진 이재명이라는 칼날은 분명한 자산이다. 그러나 전당대회에서 독으로 작용할지, 득으로 작용할지 조금씩 해석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지난 6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 정치적 스승인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을 되새긴다. 정치인은 외부를 향한 투쟁만큼 내부를 향한 투쟁에도 철저해야 한다”며 “이재명정부 국정 성공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위해 민주당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다”고 밝혔다. 더 끈끈한 당청 관계 이어 “이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며 “절대 과제인 이정부의 성공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먼저 집권당인 민주당의 혁신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김 전 총리는 정청래 지도부를 저격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민주당은 지난 1년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정 지지를 정당 지지와 선거 결과로 연결하지 못했다”며 “지난 1년, 자기 정치의 폐해가 당과 당정 협력을 혼선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합당 추진, 검찰개혁 논의, 공천과 선거 전략에서 나타난 숙의 부족, 토론 부족, 절차 미비, 일관성 부족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검찰개혁 엇박자, 6·3 지방선거 전략 등 정청래 전 대표의 과오를 꼬집은 것으로 해석된다. 김 전 총리는 “여당다운 여당을 만들어내겠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지난 지도부의 노력을 동지적 관점에서 치하한다”면서도 “결과 책임은 정치와 정당의 기본 윤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절박하고 엄격하지 않으면 우리는 총선 패배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며 “절박한 긴장감과 매서운 엄격함으로 당 대표 교체의 결단을 내려주실 것을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당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올바른 노선하에 당과 당원과 지지층을 통합하고 총선 승리로 달려가겠다”며 “1인1표 당원주권 행사에 모든 당원이 한 분도 빠짐없이 참여해 압도적 결의로 당의 리더십을 교체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 밖에도 김 전 총리는 자신이 이정부 초대 총리로서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점을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캠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국정 운영과 실무를 뒷받침해 온 경력을 필살기로 ‘검증된 파트너십’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역할’ 재정의 검증된 파트너십 호소 그는 최근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제1국가 과제”라며 적극 힘을 실었다. 국회 복귀 첫 지역 일정으로 메가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주요 지역인 충북 청주를 선택하며 이 대통령과 합을 맞추기도 했다. 출마 선언 이후 김 전 총리는 연달아 정책 토론회를 열면서 전당대회를 겨냥한 의제 경쟁을 시작했다. 지난 1년 동안 검찰개혁이나 당원 주권 강화에 쏠려 있던 민주당의 흐름을 여당다움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김 전 총리는 지난 7일 ‘균형발전을 넘어 지방주도성장으로’ 토론회에 참석한 데 이어 이어 언론, 지역주도 성장, 금융 분야를 민주당이 추진해야 할 4가지의 개혁 과제로 꼽으며 연속 토론 기획에 나섰다. 국민 삶과 직결되는 주제를 전당대회에서 다루기 위한 ‘어젠다 세팅’이라는 게 김 전 총리의 설명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강성 당원에게 어필하기 위한 선명성 경쟁도 과열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정 전 대표가 여권 강성 지지층의 최우선 의제인 검찰개혁과 관련해 “보완수사권의 티끌마저 없애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만큼 김 전 총리의 선명성이 상대적으로 흐려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통령과 손발을 맞췄다’는 점 역시 ‘이정부의 대리인’ ‘하수인’ 등 수동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완수사권 폐지를 전당대회의 필살기로 점찍은 정 전 대표는 보완수사권 논의를 “제헌절 전에 끝내자”며 속도감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강성 개혁파로 분류되는 김용민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과 ‘검찰개혁의 동지 김용민 의원과 함께 뜁니다’라는 게시글을 통해 “김용민이 정청래고, 정청래가 김용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날 정 전 대표는 “김 의원께서 검찰개혁이 더 절실하고 필요한 일이라며 전당대회 출마를 하지 않고 대신 제게 본인이 구상한 개혁 지도를 완수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며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의 혁혁한 공로자인 김 의원의 뜻을 잘 받들겠다”고 말했다. 부족한 선명성? 그러면서 “김 의원의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비롯한 사회대개혁 지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김용민과 정청래가 손잡고 함께 달리겠다. 김용민과 정청래의 의기투합! 응원해 주고 함께 뛰어달라”고 당부했다. 최근에는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대원칙은 정해지지 않았나”라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대해선 더 이상 당에서 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밝혔다. 정 전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토론회를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당내에서 보완수사권 폐지 관련 이견이 노출되면 민주당이 정한 수사 기소 분리의 대원칙 등에 대해 의심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누가 당원주권정당 1인1표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 누가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에 앞장섰는가? 반대했는가?”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이 대표 시절 주도했던 1인1표제와 검찰개혁을 필두로 선명성을 부각했다. 김 전 총리 역시 보완수사권 폐지에 의견을 같이 했다. 다만 보완수사권은 폐지하는 방향으로 잡되 혼란과 공백을 줄이기 위한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게 주된 입장이다.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대화와 토론에 중점을 맞춰 여러 이야기를 두루 듣겠다는 것이다. 정 전 대표의 일 처리 스타일과 선을 그은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총리는 총리 역임 시절에 “보완수사권 폐지가 현시점에서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라며 “폐지안을 기본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 입장을 (총리실 산하) 검찰개혁추진단 지침으로 여러 번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일부 존치’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대통령 뜻까지 포함해서 지금까지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진짜 ‘여당’ 정 심판론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한 뒤에는 “보완수사권 폐지 원칙은 지키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외부적 통제와 엄밀한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윤기 사건, 국민 여러분과 함께 분노한다”며 “개혁은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이 국민 앞에 더 투명하게 서게 하는 것이다. 민주적 통제와 투명한 검증의 원칙은 검과 경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보완수사권 폐지가 살인범 편들기라는 <조선일보>식 프레임은 조잡하다”며 “자극적 언어에도 금도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이 같은 친정부 이미지가 오히려 김 전 총리의 강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핵심은 안정성이다. 집권 2년 차에 들어선 이정부인 만큼 이를 뒷받침할 ‘관리형 여당 대표’ 이미지가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김 전 총리가 총리직을 사임할 때도 이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만들어낸 여러 성과가 있는데 김민석 국무총리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며 그를 치켜세웠다. 이어 “제일 높이 평가하고 싶은 건 자살자 감소”라며 “올 초 통계부터 보면 월간 수백명 단위로 자살자가 줄었다. 수백명의 목숨을 구한 건 매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의 “여당 다운 여당”과 “현재 당내에서 제가 총선, 대선, 지방선거를 다 직접 총괄 지휘해 보고 승리까지 이끌어 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제가 갖고 있는 나름의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것 역시 궤를 같이 한다. 2년 후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김 전 총리의 안정형 기조가 당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대로라면 총선 필패’ ‘여당으로서의 책임’ 등을 외치고 있다. 지난 1년 민주당의 키를 쥔 선장에 대한 일종의 심판론”이라며 “2028년 총선을 제대로 치르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승리가 최우선이어야 하고, 그런 점에서 정 전 대표의 ‘자기 정치’라는 꼬리표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28년 총선 이대로 괜찮을까? 김 “폭탄 선언식으로 안 돼” 모든 선거의 승패는 결국 중도층을 얼마나 확보하는지에 달려 있다. 현재 민주당의 강경한 기조는 지지층을 결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외연 확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이 나오는 만큼 김 전 총리는 민주당의 차기 지도부 과제로 ‘실용 통합’과 ‘외연 확장’을 제시했다. 김 전 총리는 유튜브 방송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며 민주 진영의 통합과 연대, 중도로의 외연 확장 기조를 밝혔다. 그는 “민주당은 일시적인 갈라짐이 있을 경우 통합했고, 지금 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과는 연대하지 않나. 그리고 국민회의로 집권한 뒤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어 중도·보수 인사를 대폭 영입했는데 이게 확장”이라며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다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당이 통합 대상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혁신당이 결정해야 한다”며 “거대 책임 정당인 민주당으로 성격이 같은 세력들이 결합할 때는 다 흡수 합당한다”고 했다. 정 전 대표가 시도한 혁신당과의 합당 추진 방식에 대해서는 “폭탄 선언식으로 해서 일을 그르쳤다”며 “과욕이었다. (그래서) 일이 꼬였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 역시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며 “안 그러면 다음 총선에서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민주당이) 집권여당이 된 지 벌써 1년이다. 아직도 야당인 줄 알면 되겠나”라며 “이번 전대(전당대회)에서 선출될 신임 지도부는 국민에게도, 대통령과 정부에도, 국회 야당에도, 정말 여당다운 책임을 다할 지도부가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총선을 해볼 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영길 의원도 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국민께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옐로카드를 보내셨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 다음 총선은 레드카드”라고 경고했다. 송 의원은 “다음 총선에서 지면 정권 재창출은 없다. 정권 재창출이 없으면 이정부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며 “(전당대회는) 누가 이정부와 협력해 대체 불가 대한민국을 만들 대표인가를 선택하는 선거”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가 “선명성만으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며 현실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개혁을 꿈꿔온 당원들의 숙원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계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체제를 더 굳건히 하는 중단 없는 개혁이 시대정신”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지지층 결집에 나선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담 못해” 안갯속 당심 결국 ‘국정 안정 파트너’와 ‘당원 주권·개혁 선명성’ 중 어느 프레임이 당원 표심을 더 움직이는지가 이번 전당대회 승패를 가를 것으로 관측된다. 당내 뿌리 깊게 박힌 ‘정통성’과 ‘개혁 선명성’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김 전 총리의 남은 과제로 여겨지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겸공’ 찾은 김민석, 김어준도 우군으로?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유튜버 김어준씨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했다. 김씨는 정청래 전 당 대표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던 만큼 그의 라이벌인 김 전 총리에게 해명의 명분을 줬다는 점에서 당의 이목이 쏠린다. 지난 6일 김 전 총리는 방송을 통해 자신이 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것에 대해선 “1초 늦었다”고 말했다. 김씨도 “감기약 먹고 일부러 안 온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면서도 “소모적으로 계속할 일은 아니기에 이것부터 털고 가자.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는 영상이 있다”며 계엄 당일 김 전 총리가 국회 담을 넘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과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 인터뷰를 공개했다. 앞서 친청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김 전 총리를 향해 ‘감기약 성분 의혹’을 제기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이 같은 김씨의 태도를 두고 여권 일각에서는 그가 정 전 대표와 결별 수순을 밟고 있거나, 한쪽으로 쏠린 기조에 부담감을 느꼈다는 등 다양한 해석을 제기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