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제71회 현충일 추념식’ 보훈은 국가의 약속이다

기억은 추모로 시작되지만 책임은 실천으로 완성

1년 전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이틀 만에 첫 국가기념일 행사로 ‘제70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했다. 당시 이 대통령은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전유공자 배우자 지원 강화, 빈틈없는 보훈의료체계 구축, 군 경력 보상 현실화, 군 장병과 경찰·소방공무원 복무 여건 개선도 약속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이제 제71회 현충일을 맞아 우리는 국가가 그 약속을 얼마나 실천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현충일은 기억의 날이고 책임의 날이다. 정치권은 이날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개 숙이는 장면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실천이다. 국립현충원에서의 묵념이 하루의 의전으로 끝난다면 보훈은 형식이 된다.

국가가 진정으로 희생을 기억한다면 그 기억은 예산이 되고 제도가 되고 일상의 예우가 돼야 한다.

지난해 이 대통령의 추념사는 분명한 방향을 담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참전용사,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함께 언급했고 군 장병, 경찰관, 소방관을 ‘제복 입은 민주시민’이라고 불렀다. 보훈을 보수의 언어로만 두지 않고 민주주의의 언어와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안보와 민주, 희생과 헌신, 예우와 책임을 하나의 국가 가치로 묶으려는 메시지였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현충일 추념사는 새 정부의 통합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1년이 지난 지금,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참전유공자 배우자 지원이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참전유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배우자가 생활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부분은 일정 부분 이행됐다고 볼 수 있다.

고령·저소득 참전유공자 배우자에게 생계지원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마련됐고, 80세 이상 생계가 어려운 배우자를 대상으로 월 15만원을 지원하는 길이 열렸다. 참전유공자 본인에게 지급되는 참전명예수당도 월 49만원 수준으로 올라갔다.

물론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월 15만원은 생계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배우자 지원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국가 책임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참전유공자가 사망하면 배우자는 국가의 기억 밖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의 전쟁은 국가의 역사였지만, 남겨진 배우자의 노후는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이번 제도는 그 모순을 바로잡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훈급여금과 수당 인상도 일부 성과로 볼 수 있다. 국가유공자 보상금이 인상됐고, 참전명예수당 등 주요 수당도 오른 것으로 확인된다. 생존 애국지사에 대한 특별예우금과 간병비 인상도 추진됐다. 이는 ‘예우는 더 높게, 지원은 더 두텁게 하겠다’는 지난해 약속의 연장선에 있다.

적어도 말만 하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예산과 제도 일부를 움직였고, 보훈정책의 우선순위를 높이려는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보훈은 인상률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국가유공자와 유족이 실제 생활에서 체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물가가 오르고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현실에서 몇만 원 인상만으로 품격 있는 예우가 완성되지는 않는다. 특히 고령 보훈 대상자들은 복잡한 신청 절차, 지역별 지원 격차, 의료 접근성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다.

보훈 정책은 중앙정부 예산만이 아니라 지방정부 지원과 현장 행정까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평가는 ‘성과는 있으나 충분하지 않다’가 맞다.

보훈의료체계 구축 약속은 아직 진행 중인 과제로 보인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국가유공자가 집 근처에서 제때 편리하게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빈틈없는 보훈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위탁의료기관 확대와 보훈병원이 없는 지역의 준보훈병원 운영 방향을 내놓고 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라 접근성이다. 고령의 국가유공자가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지 않고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예약과 진료가 복잡하지 않아야 한다. 보훈의료는 병원 숫자가 아니라 보훈대상자의 이동 거리와 대기 시간으로 평가해야 한다.

군 경력 보상 현실화도 중요한 약속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군 경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현실화하겠다고 했다. 이후 공공 부문에서 의무복무 제대군인의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는 의미 있는 진전이다.

청년들이 군 복무로 보낸 시간이 사회 진출 과정에서 불이익이 아니라 정당한 경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방향을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병역 의무를 이행한 청년에게 국가는 “수고했다”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보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만 군 경력 보상 현실화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공공 부문 반영만으로는 부족하다. 민간 영역에서 군 복무 경력이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 취업과 임금, 경력 산정에서 어떤 기준이 적용될 것인지가 남아 있다. 군 복무를 마친 청년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나는 뒤처졌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보는 청년의 시간 위에 세워진다. 그렇다면 국가는 그 시간에 대해 분명한 사회적 보상을 설계해야 한다.

제복 공무원 처우 개선 역시 미완의 과제다. 지난해 이 대통령은 군 장병, 경찰관, 소방공무원들이 국민을 지키는 동안 대한민국이 그들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 표현은 강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사명감만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국가가 이들의 안전과 처우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군 장병의 복무 환경, 소방관의 현장 안전, 경찰관의 정신적·육체적 부담은 여전히 무겁다. 순직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추모는 반복되지만, 현장 위험을 줄이는 제도 개선은 더디게 느껴진다.

보훈 정책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기념일 정치’다. 현충일에는 누구나 애국을 말한다. 그러나 현충일이 지나면 예산 논리와 부처 이기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시 고개를 든다. 국가는 기억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유족은 행정 서류 앞에서 또 다른 싸움을 해야 한다.

이것이 보훈의 현실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과 그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자신의 희생을 다시 증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예우가 아니다. 보훈행정은 더 따뜻하고 더 간단해야 한다.

이제 제71회 현충일에 이 대통령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필자는 첫째, 지난해 약속의 이행 상황을 국민 앞에 솔직히 보고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말해야 한다. 참전유공자 배우자 지원은 시작됐지만 충분하지 않고, 보훈의료는 확대 방향을 잡았지만 현장 체감은 더 필요하며, 군 경력 보상은 법 개정의 첫발을 뗐지만 민간 확산이 남았다고 말해야 한다.

현충일 메시지는 추상적 감동보다 구체적 책임이어야 한다.

둘째, 제71회 현충일 메시지는 ‘기억하고, 기록하고, 책임지겠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기억은 말로 하는 것이다. 기록은 제도로 남기는 것이다. 책임은 예산과 행정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억하는 일은 추모곡을 부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왜 희생했는지, 어떤 국가를 꿈꾸었는지,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희생 위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를 다음 세대에게 알려야 한다. 보훈은 과거를 기리는 일이면서 미래를 교육하는 일이다.

셋째, 보훈을 진영의 언어에서 국가의 언어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동안 한국 정치에서 보훈과 안보는 보수의 가치로, 민주주의와 인권은 진보의 가치로 나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구분이다. 독립운동도 민주주의였고, 호국도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었다.

군인과 경찰, 소방관의 헌신도 민주공화국을 유지하는 힘이다. 보훈은 어느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보훈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뿌리다.

넷째, ‘제복 입은 민주시민’이라는 지난해 표현을 더 구체화해야 한다. 제복 입은 시민은 명령만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헌법을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며 민주공화국의 질서를 수호하는 사람이다. 국가는 이들에게 충성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안전한 장비, 충분한 휴식, 합당한 보상, 순직과 부상에 대한 신속한 예우를 보장해야 한다.

제복의 무게를 개인의 희생으로만 떠넘기지 않는 나라가 성숙한 나라다.

다섯째,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국가 책임도 더 분명히 해야 한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 말을 없애려면 역사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독립유공자 후손의 주거, 교육, 생계, 의료를 국가가 더 세밀하게 챙겨야 한다. 독립운동가의 이름은 기념관에 있지만 그 후손의 삶이 빈곤 속에 있다면 국가는 아직 빚을 갚지 못한 것이다.

제71회 현충일은 이재명정부가 보훈 정책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지난해가 통합 메시지의 출발이었다면 올해는 이행 점검과 책임 강화의 해가 돼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기념사만으로 감동하지 않는다.

국민은 묻는다. 참전유공자 배우자는 실제로 지원을 받는가. 국가유공자는 가까운 병원에서 진료받는가. 군 복무를 마친 청년은 사회에서 정당하게 인정받는가. 소방관과 경찰관은 위험한 현장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가.

정치는 선거가 끝나면 승패를 말한다. 그러나 현충일은 승패보다 더 큰 것을 질문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가. 그 희생을 오늘의 국가는 어떻게 갚고 있는가. 이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현충일만큼은 이 질문 앞에 함께 서야 한다.

보훈은 정권의 성과물이 아니라 국가의 의무다. 정권은 바뀌어도 국가의 책임은 이어져야 한다.

1년 전 약속은 일부 지켜졌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참전유공자 배우자 지원은 시작됐고, 보훈급여와 수당은 올랐고, 군 경력 인정 제도도 한 걸음 나아갔다. 그러나 보훈의료 접근성, 제복 공무원 처우, 지역별 지원 격차, 유족의 생활 안정은 여전히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71회 현충일의 메시지는 자화자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시작했지만 아직 부족하다.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고백이어야 한다.

현충일의 핵심은 추모가 아니라 계승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지킨 나라는 특정 정당의 나라가 아니며, 보수의 나라도, 진보의 나라도 아니다.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와 번영을 함께 지켜야 하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은 올해 현충일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국가는 기억하겠습니다. 국가는 기록하겠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이것이 71번째 현충일에 대한민국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앞에 드릴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약속이다.

<kangjoom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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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차씨를 통해 최씨를 만났는데, 두 사람은 보험사에서 5년간 동료로 지냈다. 홀린 듯이 돈 보냈다 지난 7일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A씨는 늦게까지 야근하고 있었다. 그는 “죽도록 벌어야 빚을 갚을 수 있다”고 말하며 힘없이 웃었다. 2024년 초 ‘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나오라’는 차씨의 부름에 나간 게 시작이었다. A씨는 인근의 카페에서 또 다른 피해자와 함께 최씨를 만났다. 또 다른 피해자는 차씨와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A씨는 “처음 만난 최씨는 쉽게 믿기 어려웠지만 차씨는 5년 동안 같이 일하면서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차씨가 나와 다른 피해자에게 ‘원금은 보장된다. 나도 2억을 벌었고 두 달 뒤에 추가로 1억을 번다’고 말하니 솔깃했다. 최씨의 신상에 대해서도 차씨가 신나서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차씨는 A씨에게 자신의 계좌를 보여주기도 했다. 카드 결제, 계좌 이체 등의 방식으로 최씨에게 돈이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시점은 2024년 4월경부터다. A씨의 카드는 2024년 4월부터 8월, 지난해 2월에 집중적으로 사용됐다. 거래처는 정유사, 명품관 등이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자동차 기름값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돈이 주유 대금으로 결제됐다는 점이다. 2024년 4월, A씨의 카드가 처음 사용된 날짜에 ‘○○석유’라는 곳에서 1200만원이 결제됐다. 이후에도 1000만원 단위의 돈이 ‘○○상사’ ‘○○○ 에너지’ 등에서 사용됐다. 카드로 긁어놓고 이후에 현금으로 되돌려받는 ‘카드깡’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동시에 최씨는 명품관에서도 총 7700만원을 긁었다. 이렇게 결제된 카드 대금은 3억6000만원에 달한다. 카드 대금과 수수료를 주겠다는 최씨의 말은 ‘공수표’였다. A씨는 “카드를 빌려준 쪽에서 돈을 넣어달라고 오히려 빌어야 했다. 몇 번을 요구해야 한번 돈을 넣어줄까, 말까였다. 한도가 막히면 다른 카드를 달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1년여에 걸쳐 최씨로부터 입금된 돈은 2억원. 원금과 주기로 한 수수료를 계산하면 턱없는 돈이다. 결국 A씨는 카드 대금으로만 1억5000만원을 뜯겼다. ‘짧게 쓰고 줄게’라며 빌려 간 자금은 상상을 초월했다. 피해자들은 최씨가 이자 명목의 돈을 주지 못한 시기를 2024년경으로 기억했다. A씨 역시 2024년 4월에 처음 돈을 넣고 한 달 뒤부터 제대로 돈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최씨가 회사 세무조사 등을 이유로 돈이 묶였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람도 죽었나 ‘돈만 들어오면 A씨부터 챙겨줄게’라는 말은 당시 상황에서 A씨가 매달린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손절’하기에는 이미 너무 큰돈을 넣은 상태였고 어떻게든 원금만이라도 돌려받아야겠다는 생각이 A씨를 지배했다. 그 대가는 가혹했다. ‘이번만 빌려주면’ ‘곧 돈이 들어온다’는 최씨의 말에 속아 A씨가 빌려준 돈은 15억5000만원에 이른다. 문제는 이 돈이 전부 A씨 돈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A씨는 “동생, 부모님, 지인, 심지어 고객에게까지 돈을 빌렸다”고 털어놨다. 이 중 3억원가량은 집을 담보로 제3금융권에서 빌린 돈으로 즉, 사채다. 급하게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제시한 높은 이자율은 A씨의 목을 옥죄고 있다. A씨는 지금도 그 이자를 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악랄한 수법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최씨는 A씨가 보험설계사인 점을 이용해 그의 고객으로 또 다른 피해자를 연결했다. 또 다른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대납해 주는 방식으로 돈을 갚겠다며 A씨를 이용한 것이다. A씨는 해당 고객이 최씨와 연결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몰랐다고 주장했다. 월 400만원이 넘는 보험을 2개 가입한 고객은 10개월 정도 보험료를 낸 뒤 사라졌다. 보험설계사는 고객을 유치하면 전체 납입 기간에 대한 선수수료로 익월에 월급을 받는다. 예를 들어 월 100만원, 20년 납기 보험을 든다고 하면 총 보험료 2억4000만원에 대한 수수료가 보험설계사의 몫이다. 능력에 따라 보험설계사의 연봉이 천차만별로 차이 나는 이유다. 하지만 여기에는 결정적인 단서 조항이 있다. 고객이 최소 25개월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설계사가 받은 월급은 ‘환수’ 조처된다. 보험설계사의 능력은 신규 고객 유치가 아니라 유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20년 가까이 단 한 건의 환수 조처도 없던 A씨의 경력은 최씨로 인해 무너졌다. A씨의 동료이면서 피해자인 이들 역시 최씨, 차씨 등이 연결해준 고객이 보험금을 납입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환수 조처로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최씨에게 넘어간 1억5000만원은 결정타였다. 그전까지 약 10개월간 돈을 보내지 않고 빚 독촉만 했던 A씨는 최씨에게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말을 듣게 된다. A씨에 따르면 최씨는 수표 다발이 찍힌 사진을 카카오톡 메신저로 보냈다. 그러면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과정에 1억5000만원의 수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1억5000만원을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돈 못 빌려주면 카드라도 내놔 주범 최씨 다른 사건으로 재판 5000만원만 마련해 갔던 A씨는 그 자리에서 고객에게 1억원을 빌려 최씨에게 건넸다. A씨는 “무슨 영화를 찍는 줄 알았다. 사채업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 ‘당신(A씨) 때문에 450억원을 출금 못하게 생겼다.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윽박질렀다. 최씨도 나서서 ‘빨리 어디에서라도 빌려봐’라고 계속 압박했다. 정말 내 책임이 될 것 같은 마음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1억5000만원은 공중으로 사라졌다. ‘껍질까지 벗겨 먹었다’ ‘뼈까지 발라 먹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A씨는 최씨에게 말 그대로 ‘탈탈’ 털린 상태였다. A씨의 사정을 들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속을 수 있냐고 의문을 표했다. 결국 A씨도 피해자들도 쉽게 돈을 벌고자 했던 욕심에 눈이 먼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피고소인 가운데 1명인 김씨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나 역시 최씨에게 빌려준 돈이 상당하다. 그걸로 마음고생 많이 했는데 되짚어 보면 내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소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돈 욕심에 시작했다가 원하는 만큼 돈을 받지 못하니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황유준 법무법인 LKB평산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실제 존재하는 웅덩이에 발을 담근 게 아니다. 웅덩이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다. 다시 말해 투자의 배경이 되는 회사나 사업체 같은 실체가 아예 없었다. 즉, 최씨는 처음부터 피해자들을 기망할 의도로 만났고 피해자들을 끌어들인 피고소인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A씨 등에게 받은 돈을 투자 목적이 아닌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자초지종을 듣기 위해 피고소인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최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몇몇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따져 물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통화가 연결된 김씨는 “최씨는 고소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부자도 아니고 특출난 사람도 아니다. 걔도 사업 과정에서 돈 문제가 꼬여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걔도 사기 피해자”라며 “가족하고도 사이가 틀어졌고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것으로 안다. 나는 (최씨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다”고 울먹였다. 최씨 사건은 크게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이 있고 A씨 등의 고소 사건도 비슷한 유형이라 검찰 송치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또 다른 보험사 지점, 헬스케어 제품 회사, 화장품 회사 등에도 피해자가 있다. 이들이 법적 대응에 나서면 최씨를 비롯한 중간 모집책들이 빠져나갈 구멍은 상당히 좁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피해 금액이 크기에 이들은 형량이 높은 ‘특경법’에 걸리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 사건으로 2명이 자살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도는 상태다. 최씨와 피해자 사이에서 모집책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여성과 큰돈을 투자했던 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피고소인들은 이 여성이 원래 우울증을 앓았고, 남성은 지병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추가 피해자 더 나올 듯 과거 사기 사건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피라미드, 다단계 사기 사건의 진짜 공포는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 돈을 뜯겼던 피해자가 원금을 회복하기 위해 다른 피해자를 양산하는 구조다. 사기 사건이 정말 사람을 죽이는 살인 사건에 비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들은 이미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 영혼이 다 빠져나갔을 것”이라며 “일전에 사기 사건 피해자들을 변호하면서 ‘소리 없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다’고 생각한 적 있다. 반드시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sjang@ilyosisa.co.kr>